12월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언한지 1년이 되는 날이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 45년 만에, 그리고 1972년 유신 이후 52년 만에 현직 대통령이 선포한 '친위 쿠데타'이자 '내란'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28일 갤럽에서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11명의 전직 대통령(윤보선, 최규하 제외) 중 가장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비상계엄 사태는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여전히 내란 관련자들의 재판이 진행 중이고 국민의힘에서는 '윤 어게인'을 외치는 상황이다. <프레시안>에서는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비상계엄이 우리에게 준 의미, 그리고 청산해야 할 문제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오는 12월 3일, 계엄령 선포 1주기를 앞두고 '아직 내란은 청산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귀연 재판부'의 재판 지휘에 문제가 있다거나,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 주요 내란 가담자의 수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거나, 윤석열 전 대통령이나 김건희 씨가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다.
이호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공동대표는 "이게 다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내란 청산은 인물 몇 명의 수사나 처벌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내란을 가능케 했던 우리 사회의 토양 바꿔내는 것이란 이유에서다. 극우 정치인이 대통령에 당선됐고, 극우 세력이 급속히 성장했으며, 그 대통령이 민주주의까지 뒤흔들 수 있었던 토양을 바꿔내지 않으면 "내란은 진짜 청산된 게 아니"라고 말했다.
이 공동대표는 지난 계엄 정국 당시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 공동의장을 맡았다. 7개월간 서울 여의도·광화문 광장을 지켰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기약 없이 늦어질 시기 단식농성도 했다. <프레시안>은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이 공동대표를 만나 계엄 정국 1주기를 앞둔 소회를 물었다.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프레시안 : 6개월 전 비상행동 활동이 종료됐다. 마지막 말이 '주권자 시민이 승리했다'였다. 이 평가는 지금도 의미가 있나?
이호림 : 2024년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계엄이라는 민주주의 위기에서 시민들은 스스로 회복해 냈다. 그리고 삼권분립 훼손, 수많은 거부권 행사 등으로 임기 내내 문제가 됐던 제왕적인 극우 대통령을 파면시켰다. 이 자체만으로 주권자 시민이 승리했다는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윤석열 정권의 권력 남용과 억압에 맞서 왔던 수많은 시민이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될 때까지 스스로 광장을 열고 이어온 결과다. 주권자 시민들이 함께 저항하고 힘을 모았기에 가능했던 변화다.
프레시안 : 그렇게 새 정부가 들어선 지 6개월이 지났다. 내란 세력의 재집권을 막았단 평가를 받았다. 1년 전 광장에 쏟아진 요구에 비춰, 지난 6개월을 어떻게 바라봤나?
이 : 어떤 변화는 분명히 있었다. 사회 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부분이 있었다. 당장 10·29 이태원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꾸려지고 진상조사가 시작된 것 등이 단적인 예다.
동시에 아쉬운 평가도 있다. 비상행동은 한편으로는 윤석열 정권 퇴진을 위한 활동을 이어왔지만, 또 한편으로는 단지 대통령 한 명의 퇴진이 아니라 이런 제왕적 대통령이 탄생할 수밖에 없게 만든 구조적 토양을 바꾸기 위해 힘썼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불평등과 차별, 혐오 등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제시하려 했다.
그런데 지금 많은 문제가 경제 성장의 문제로만 환원되는 것 같다. 이재명 정부는 끊임없이 민생을 얘기하지만, 그 민생은 지나치게 협소하게 들린다. 민생은 경제적 안정이나 성장만을 뜻하지 않는다. 불평등 해소, 그리고 시민들이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차별, 혐오, 구조적 폭력의 해소도 민생의 문제다.
프레시안 : 어떤 점이 협소하다는 건가?
이 : 이를테면,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한 가장 심각한 구조적 문제 중 하나는 극우세력의 성장과 집결이다. 한편에선 내란 세력의 재집권을 막았지만, 그와 동시에 극우세력이 더 확장됐다. 과거와 양상이 정말 다르다. 양재 시민의 숲, 명동시장, 학교 앞과 같은 정말 일상적 공간에서, 자발적으로 조직된 극우 시민들이 모여 수시로 집회를 연다.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분출한다. 실제 물리적인 위협을 느낄 수준이다.
극우 세력이 뿌리내리고 성장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토양을 바꿔내는 일은 '내란 책임자' 처벌로는 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혐오, 차별, 사회 불평등의 구조를 바꿔내는 일은 굉장히 부차적인 일처럼 미뤄지고, '민생'이 아닌 것처럼 분류되고 있다. 새 정부가 구조적 문제에 대해선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고 본다.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그런가?
예로 들어, 지난겨울 광장에 쏟아졌던 시민들의 대표적인 요구 중 하나가 차별금지법 제정이었다. 단지 묵은 과제여서가 아니라, 거리에서 싸우던 주권자 시민들이 거세게 요구해 온 과제다. 어떤 광장에서보다 성소수자 시민의 목소리가 폭발적으로 분출했다. 연대하는 시민의 목소리도 거세게 터져 나왔다. 그만큼 '윤석열 이후' 우리 사회에 주어진 중요한 과제로 극우 세력의 문제와 혐오, 차별의 문제를 분명히 요구해 왔다. 그러나 이 정부하에서 과연 충분하게 논의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집권 세력이 내란 청산이나 민생을 굉장히 좁은 의미에서만 다루는 것 같다.
프레시안 : 지난 6월 대선 직후 비상행동 활동이 종료됐다. 지난 1년을 돌아볼 때, 아쉬운 점이 있었나?
이 : 우리 사회가 정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래서 핵심 과제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충분한 논의를 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사회대개혁 과제를 설정하긴 했다. 1700여개 단체가 모였던 비상행동은 10개 부문의 소위원회를 두고 부문별로 개혁 과제를 모은 뒤, 내란 이후 우리 사회의 개혁 과제로 130여 개 의제를 설정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제를 늘어놓는 나열이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전망과 이를 위한 핵심 과제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내부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구조적으로 어려운 측면도 있다. 비상행동엔 1700여개 단체가 있었다. '이 계엄은 잘못됐다'는 것에 동의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기에 굉장히 스펙트럼이 넓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지연, 윤 전 대통령 구속 취소 등 예측하기 어려운 일들도 벌어져 논의에 힘을 쏟을 여유도 부족했다. 현실적인 한계도 있었다.
프레시안 : 지난겨울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
이 : 계엄령 선포 이후 처음 열린 주말 집회가 기억에 남는다. 집회 사회자는 이날 평등 수칙을 말했다. 이런 집회에선 거의 처음일 것이다. '이 공간에서 소수자에 대한 비하나 혐오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모두가 평등하게 이 공간에서 함께 하자고. 그때 내 주변에 있었던 청년, 대학생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정말 크게 환호했다. '왜 이렇게 많은 성소수자들이 이 광장에 나와 목소리를 냈는가'를 생각할 때 항상 떠올리는 장면이다. 내가 평등하게 존중받는다는 원칙을 확인하는 것이 수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줬고, 그렇게 수많은 성소수자 시민이 발언하는 용기를 보였고, 그 용기가 또 다른 이들에게 용기로 계속 확산이 됐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2024년 12월 3일을 잘 기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 활동가와 시민의 방법은 조금 다를 것 같다. 활동가에겐 시민들이 분출했던 목소리가 무엇이었는지를 잘 생각하고, 이를 의제로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나가는 것이라 본다.
시민의 입장에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때 '광장이 안전하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여성, 성소수자 등 너나 할 것 없이 그랬다. 광장엔 평등수칙이란 게 있었고, 비하와 혐오가 용인되지 않는다는 걸 서로가 약속했다. 모두가 함께 목소리는 내는 공간이면서, 서로가 공존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공간, 혐오와 차별에 단호하게 대처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있는 공간임을 느꼈다. 이처럼 서로의 다름에 대해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내 삶의 공간에서 만들어가는 것, 또 내 삶의 공간에서 광장이 확장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지난 광장을 잘 기억하는 방법이 아닐까.
프레시안 : 현재 하는 고민은?
이 : '광장에 모였던 시민들을 변화를 만드는 동료로 만들기 위해, 변화에 대한 열망이 흩어지지 않고 이를 어떤 힘으로 모이게 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노력했나?' 라고 물으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비상행동 활동에 대한 아쉬움이면서,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때 목소리를 냈던, 같은 광장에 있었던 성소수자 시민들과 어떻게 더 연결돼서 안전하고 평등하고 행복한 사회를 같이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지금의 고민이다.
또, 어떤 면에서 굉장히 악화한 토양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계속 '오른쪽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조금씩 더 당겨올 수 있을까도 많이 생각한다. 극우 정치가 자리를 잡아 가고, 세계적으로 20~30대 청년 남성 세대 등을 중심으로 보수화 경향도 확장된다. 이런 토양에서 미래를 위한 변화를 끌어내는 운동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도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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