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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내고, 사랑할게' 상실 뒤 삶을 이어가는 자살 유족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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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내고, 사랑할게' 상실 뒤 삶을 이어가는 자살 유족의 이야기

[프레시안 books] 송지영 <널 보낼 용기 - 딸을 잃은 자살 사별자 엄마의 기록>

유독 타인의 고민을 잘 들어주던 동료 A가 있었다. 우왕좌왕 털어놓는 상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급하게 만들지 않는 그 모습에 여러 번 놀랐다. 나는 종종 힘겨웠던 어느 동료의 지속적인 고민 상담을 A는 내색하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과거에 누군가를 지켜내지 못한 죄책감'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시간이 흐른 뒤 알게 되었다.

A는 우울증을 앓던 친구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었다. 가까운 사람을 자살로 잃은 '자살 사별자'였다. A는 친구가 세상을 등지기까지 보내온 신호를 자신이 놓친 것이라고 확신했다. 오래도록 고통스러웠다고 말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다. 그래서 A는 또 다른 누군가를 상실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들어주고, 붙잡았다. 단 하나의 신호도 놓치지 않기 위해 더 다정한 사람이 되기로 다짐한 것이다.

송지영 작가의 책 <널 보낼 용기>는 '세계 자살 유가족의 날'이 있는 11월에 출간됐다. 우리나라에는 덜 알려진 기념일이지만, 자살로 아버지를 잃은 미국 해리 리드 전 상원 의원이 발의한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지난 1999년부터 매년 추수감사절 전주 토요일에 전 세계적으로 기념되고 있다.

올해는 지난 22일이 '세계 자살 유가족의 날'이었다. 단순한 기억일을 넘어, 자살로 상실을 경험한 유족이 그 고통을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공감하고, 연대하며, 지지하는 시간이다. 부모, 자녀, 형제자매, 배우자뿐만 아니라 연인, 동료, 친구 등 자살로 가까운 이를 잃은 모두가 자살 유족에 포함된다. 자살 사별자, 자살 생존자로도 표현한다.

나종호 미국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조교수는 지난 8월 페이스북을 통해 한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한 사람의 자살은 최대 135명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평균적으로 15~30명에게 매우 중대한 영향을 준다고 한다. 1년에 1만4000여 명이 사망하는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40만 명이 심각한 영향을 받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자살 유족을 대하는 태도는 충분하지 못하다. 지난 2003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지만, 부족한 제도와 인식은 자살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그래서 유족은 외로운 위치에 있었다. 자살에 대한 사회적 낙인, 상실의 경험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분위기는 이들을 더 약한 곳으로 몰아넣었다.

<널 보낼 용기>는 자살로 딸을 보낸 엄마, 자살 사별자 송자영 작가의 기록이다. 여전히 커다란 상실을 품고 있지만, 작가는 "우리 가족의 비극을 우리만의 비밀로 가두는 대신, 모두의 과제로 내어놓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시는 누구도 잃고 싶지 않은 간절한 마음에서다.

딸의 소멸은 모든 것이 한순간에 뒤집히고, 텅 비어버린 "천체 충돌"과 같다는 작가는 여전히 딸을 잃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사라짐 앞에서 모두가 분석가가 되려 할 때, 나는 평생 내가 가해자가 아니었음을 스스로 증명하며 살아야 한다"는 작가의 말은 우리 사회가 자살 유족을 바라보는 시선을 내포한다. 강한 죄책감, 상실감 그리고 고립감을 강요하는 모습이다.

한 명의 자살로 최소 6명의 유족이 발생한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지난 9월 발표한 '2024년 심리부검 면담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자살 유족의 54.8%는 자살사고를 표현했다. 즉,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거나 어떻게든 자해하려고 생각한다"며 생명을 끊는 것을 머릿속으로 생각한다고 밝힌 것이다.

자살 유족의 자살 위험은 일반 인구 집단 대비 20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2022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 연구팀)도 있다.

작가는 삶을 이어 나가기 위해 치열하게 통과했다. 딸의 자살을 마주하고,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작가는 열일곱 딸이 살아온 시간을 돌이켜 짚어보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 하루에 그치지 않고, 누구보다 예쁘고 사랑한 딸이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떠올리며 기록했다.

"밀려나면 존재가 부정당하는 생존 게임"과 같은 경쟁으로 던져진 청소년의 현실로 시선을 넓혀, 10대의 우울과 자살의 문제점도 함께 짚었다. 그저 사춘기인 줄 알았던 딸은 "겉은 평온하지만 속의 파동이 잘 드러나지 않는" 양극성 장애 2형을 진단받았다. 작가는 아파했던 딸의 신호를 몰라봤던 자신, 그리고 사회 구조를 향해 끝없는 질문을 던진다. "구조 요청을 보냈던 아이보다, 손 내밀어야 했던 어른과 사회는 훨씬 더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는 생각이 뻗어나간다.

이어 작가는 "그리워 말고 추억해 주세요"라는 딸의 부탁에 응답해 남겨진 자살 유족으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고, 버텨내고 있는 이들이 "조금 더 살아내는 선택"을 하도록 지속 가능한 제안을 한다. 그리고 이 연대에는 더 넓은 사회 공동체의 노력과 관심, 힘이 필요함을 당부한다.

'저 집엔 무슨 문제가 있겠지' 가족의 부재를 바라보는 시선을 견디고, "'나는 좋은 부모였던가'라는 질문 앞에 늘 피고처럼 서야 했다"는 작가. '우리만의 이야기'를 아는 가까운 이들과 딸을 곁에 두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는 말을 나누며 오래도록 울었다는 작가는 그와 같은 상황에 있는 이들이 더는 침묵하지 않고, 남은 삶을 꾸려나가는 데 주저하지 않도록 손을 내밀고 있다.

"고인을 애도하는 데는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말을 나는 딸을 보내고 나서야 이해하게 되었다"는 작가는 "한 사람의 부재로 얼룩지는 삶이 아닌, 비어 있는 자리를 안고 나아가는 사람들의 의지"를 모으기 위해 공동체에 슬픔을 꺼내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리고 "끝내 지키지 못했지만, 끝까지 사랑하겠다"는 다짐으로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송지영 <널 보낼 용기>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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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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