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거센 격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혼란 속에 시작된 2025년은 결국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을 거치며 또 한 번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권력은 교체되고, 국정 운영의 방향도 달라졌지만, 사회 곳곳에 켜켜이 쌓여온 불평등과 구조적 모순은 여전히 지역과 현장을 짓누르고 있다.
전북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역소멸 위기, 새만금 논란, 교육·환경·노동 현안까지 긴박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있는 가운데 그 시간의 중심에는 언제나 그를 헤쳐나가기 위해 온 몸을 던지는 ‘사람’이 있었다.
프레시안 전북취재본부 연말특집기획 <전북과 사람〉은 상대적으로 주목은 받지 못했지만 모든 것이 촘촘히 엮여 있는 ‘지방권력의 기득권’ 구조 속에서 홀로 질문하고, 침묵을 거부하고, 불합리를 견뎌 온 이들의 활동상을 다시 불러내 본다. 때로는 고립되기도 하고 지역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 사회 정의와 상식, 존엄을 지키기 위해 '외롭지만 멈추지 않았던 이름들'을 기록하고자 한다.
2025년, 전북을 살았던 사람들의 시간. 침묵 대신 질문을 선택했던 사람들의 한 해를 통해, 우리는 다시 지역 민주주의의 좌표를 확인하려 한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홍범도 장군님의 귀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공군이 안전하게 호위하겠습니다. 필승!"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봉환될 당시 영공에서부터 호위에 나선 공군기 조종사들이 일제히 거수경례를 하며 외친 말이다.
지난 2021년 8월 15일, 독립투사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공군전투기 6대의 엄호 비행을 받으며 국내에 봉환됐다.
그러나 불과 1년 여 후인 2023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홍범도장군은 공산당에 입당했던 공산주의자로 육사교정에 흉상을 존치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부당하므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큰 논란이 이어지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면서 '2025년 영산외교인상'에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에 외교적 역할을 한 김대식 전 주카자흐스탄 대사가 선정됐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주카자흐스탄 대사를 역임한 김 전 대사는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고려인사회 정체성 확립 등을 위해 노력해온 ‘전북출신’ 인물이다.
김은미 영산외교인상 위원장은 김 전 대사의 수상자 선정 이유에 대해 "홍 장군 유해 송환을 위한 외교적 노력 속에 주카자흐스탄 대사로서 외교 실무를 총괄하며 복잡한 국제 협의 과정을 조율해, 장군 서거 78년 만의 유해 귀환이라는 국가적 숙원을 성사시켰다"며 "김 전 대사는 역사를 잊지 않고 외교를 통해 국민적 자긍심을 되살리고, 한국 외교가 지향해야 할 신뢰와 품격을 보여주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전북국제협력진흥원장을 역임하기도 한 김대식 전 대사는 전주고와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외무고시 17기에 합격한 후 각국 대사관에서 근무해왔다
프레시안전북취재본부 연말기획특집 '2025 전북과 사람' 첫 인물로 김대식 전 대사를 만나 본다.
프레시안: 먼저 ‘영산외교인상' 수상을 축하한다. 소감부터 한 말씀 부탁한다.
김대식 전 대사: 이번에 뜻밖에도 외교 분야의 가장 권위가 있는 상의 수상자로 선정 되었습니다. 공직에서 이미 퇴직하였고, 그 당시 공직자로서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인데, 이리 큰 상을 받게 되니, 무척 영광스럽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 국내봉환을 위한 카자흐스탄 정부와의 협상이 저의 외교관 생활에서 마지막 중요업무였고, 공직생활 전체를 통해서도 가장 보람 있는 일이었습니다.
유해 반환에 대한 기획과 협상을 다 마무리해놓고 유해를 모시고 국내로 입국 날을 대기하다, 2020년 초 마침 코로나-19사태가 전 세계를 강타하는 바람에 모시고 들어오지 못해 당시 아쉬움이 컸습니다. 유해는 실제로 코로나가 어느 정도 진정된 2021년 8월 15일에 돌아왔는데, 그 업적이 지금 평가되어 수상하게 되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마치 고국에 돌아와 흡족하신 홍범도 장군의 영혼이 그 당시 그분을 향했던 저의 뜻과 자세, 역할을 잊지 않고 평가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장군님의 유해가 국내로 돌아오니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와 국민이 장군님의 삶과 위업을 기리기 위한 사업과 활동을 적극 전개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협상을 이끌었던 저로서도 국내에서 이렇게 왕성하게 홍 장군님과 그분의 위업들이 선양되니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프레시안: 지난달 17일 제86회 순국선열의 날 행사가 처음으로 육군사관학교에서 개최됐다. 김민석 총리가 참석해서 “선열들의 강인한 정신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세운 토대”라고 기념사를 했다. 이 장면을 어떻게 보셨는가?
김대식 전 대사: 2023년 윤석열 정부 시절, 육사 교정에 설치되었던 홍범도 장군 흉상철거 문제로 우리 사회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소모적인 이념논쟁이 일었습니다.
토막 지식과 현재 관점에서만 고착된 단편적인 반공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이, 전 생애를 조국독립을 위해 바친 독립투쟁 영웅을 뼛속까지 깊은 공산주의자였느니 등 홍 장군님의 인격과 삶에 대해 어설픈 폄하의 강변을 늘어놓았습니다.
이들의 주장과 왜곡에 대해서는 역사적 자료, 학술토론과 언론 보도 등을 통해서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 논쟁을 촉발한 사람들이 홍 장군의 삶이나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에 관해 제대로 공부했다면, 그리고 시대적 맥락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라도 갖추었다면 그런 자세를 취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독립유공 선열들의 희생과 공헌이 없었다면, 2차 세계 대전 후 독립한 수많은 국가 중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한꺼번에 성취하고 지금은 선진국 반열에 오른 위대한 대한민국이 어찌 만들어질 수 있었겠습니까?
역설적으로 그들이 오늘날 저리 자유롭게 가벼운 언사를 남발할 수 있는 것도 선열들의 희생으로 이룩한 당당한 나라가 만들어졌기에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그런 선열의 삶을 부인하고 나설 어떤 자격이나, 나라를 위한 무슨 공헌이라도 세웠는지를 되묻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민석 총리의 “선열들의 강인한 정신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세운 토대”라는 말씀은 적확하다고 봅니다. 이 말은 ‘부모 없이 자식이 있을 수 없다’는 것 만큼이나 명확한 진단으로, 상식을 가진 대한민국의 국민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올 것입니다.
프레시안: 광복회는 제86회 순국선열의 날 행사가 처음으로 육군사관학교에서 개최된 것에 대해 “지난해 육사 내 홍범도 장군 등 독립영웅 흉상철거 문제로 야기된 우리 국군의 정체성과 정통성 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의미”라고 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을 겪은 후라서 더욱 의미가 크다고 본다. 홍 장군의 흉상 이전 논란에 대해 정리해달라.
김대식 전 대사: 2024년 12월 19일에는 서울에서 홍범도 기념사업회의 송년 만찬이 있었는데, 초대, 제2대 회장이셨던 이종찬 광복회 회장님과 우원식 국회의장께서 참석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이종찬 회장은 내년(2025년)이 을사늑약 체결 120주년, 광복 80주년, 한일 국교 수립 60주년이 되는 특별한 해임을 상기시키면서, “홍범도 장군께서는 일제에 항거하여 의병 활동을 하셨고, 나중에는 독립군이 되셨고, 그 독립군들의 활약은 나중에 광복군으로 명맥과 역할이 이어졌음”을 언급하시면서, 내년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위업을 달성하신 홍범도 장군의 활약상이 우리 사회에서 더욱 부각되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육사가 홍 장군의 흉상이전의 문제의 현장이기에, 제86회 순국선열의 날 행사가 그곳에서 개최된 것이 ‘ 독립영웅 흉상철거 문제로 야기된 우리 국군의 정체성과 정통성 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의미’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독립투사들의 희생과 공헌을 충분히 새기지 못한 사람들은 으레 역사와 사회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채, 자신들이 이룩한 기득권의 방어에만 급급하게 되지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많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인식과 삶의 태도를 지닌 사람들로 인해 12.3 비상계엄도 발생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홍 장군의 업적은 박정희 정부에서 훈장을 수여하고, 역사 교과서에서도 위인으로 평가되신 분이십니다.
국가유공자들을 모시는데, 어찌 진보, 보수가 편을 가른단 말입니까? 국가보훈 사안에서는 오히려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발을 벗고 나서는 것이 상식이 아닙니까?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역사적 관점은 연속성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이념논쟁과 대결은 국내적으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가 에너지를 낭비할 뿐 아니라, 외교적 차원에서도 국가체면을 크게 손상시키는 일입니다.
카자흐스탄 정부와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후세교육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면서 어렵게 그들을 설득했던 저의 입장에서는 흉상이전 문제가 터졌을 때 당시 한겨레 신문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정말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보수세력 중에서도 극우의 일부 세력에 의해 촉발된 독립영웅들의 흉상 철거와 같은 소모 논쟁은 지난번 사회적 피해에서 교훈을 얻어,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프레시안: 김대식 전 대사께서는 문재인 정부 당시 주카자흐스탄 대사로 홍 장군 유해 봉환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어떤 연유로 홍 장군 유해를 봉환하게 됐나?
김대식 전 대사: 2018년 홍범도 장군의 묘소가 있는 카자흐스탄 남부 끄즐오르다 주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때 장군님의 묘역에는 바람이 강하게 일었고, 주위에 먼지와 쓰레기들이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비감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독립된 지 얼마이며, 세계 10위권의 위상에 이른 오늘날까지도, 그 유명한 독립영웅께서 아직도 이국만리 황량한 벌판에서 이리도 쓸쓸히, 외로이, 우리의 관심에서 벗어나 계시다는 것에 정말 언어도단의 심경을 갖게 되었습니다.
2017년 부임할 때부터 장군님을 조국과의 연결시키는 것이 저의 중요 임무 중 하나라 생각하고, 그 일의 추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고려인 사회와의 친분과 협조 관계를 구축하는 등 나름의 정비작업을 꾸준히 전개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방문을 계기로, 장군 유해의 국내봉환을 정상회담 의제로 채택할 것을 본국에 건의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1년 여간의 협상을 거쳐, 카자흐스탄의 정부와 고려인들의 동의를 2020년 2월 초까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협상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공헌이 이제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의 국가와 국민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 후손들에 대한 역사교육과 국가유공자에 대한 보훈이 국가의 정체성 확보와 유지 차원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독립유공자에 대한 후손들의 도리, 국가 차원의 보훈과 예우, 나라 정체성 확립과 유지, 후손들에 대한 역사교육의 가치를 고려하여, 홍 장군님의 유해 국내봉환을 추진하였던 것입니다.
프레시안: 그 당시 홍 장군 유해 봉환에 협력해 준 고려인 사회의 관계자들에 대한 고마움도 클 것 같다. 생각나는 분들과 사연이 있나?
김대식 전 대사: 이번 상을 받으면서, 유해 국내봉환을 위한 협상 과정에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고려인 대표들에 대한 고마움이 가장 큽니다. 카자흐스탄의 국민인 고려인 동포의 협조가 없었다면, 아마도 카자흐 정부의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수 많은 고려인들이 도와주었지만, 가장 크게 기여하신 몇 분만 언급하고자 합니다. “김 로만” 당시 全 고려인협회장, “박 타티아나” 독립유공자 후손회 회장과, 장군님의 유해가 있었던 끄즐오르다의 고려인협회 “김 엘레나” 회장입니다.
김로만 회장은 당시 카자흐스탄 하원 의원이면서 全 고려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김 로만” 회장은 필자가 부임하는 날, 알마티에서 수도인 아스타나로 가는 비행기에서부터 만나, 근무 기간 3년 내내 가장 가깝게 지낸 고려인 대표 인사입니다.
부임 직후, 고려인 대표들을 초청한 관저 만찬에서 김 회장에게 홍범도 장군 유해의 국내 봉환 문제를 꺼내보았습니다. 대사 개인의 의견임을 전제로, ‘이제는 조국의 품에 모시는 것이 우리 후손의 도리가 아니겠냐’고 넌지시 의향을 떠봤더니, 그간 고려인 사회에 다른 의견도 있지만, 자신도 대사의 언급 취지를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태도에서 ‘추후 우리 정부가 공식으로 추진하는 경우, 고려인 사회가 지지해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 후, 김 회장에게 우리 정부의 공식 추진 입장을 전하면서 협조를 당부했을 때는 고려인 사회의 전체의 의사를 파악하여 결정해야 하는 입장을 설명하면서, 고려인의 지지확보에 필요한 시간을 줄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실제로 그 시간은 꽤나 오래 걸렸습니다. 여러 다른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김 회장은 일부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고려인의 지지를 결정해 주었습니다.
다음은 박 타티아나 독립유공자 후손 협회 회장입니다. 연해주 독립투사들에게 자본과 각종 활동을 지원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신 최재형 선생님의 외증손녀이십니다. 그분은 독립운동가 후손답게, 처음부터 우리 정부의 홍 장군 유해의 국내봉환 추진 방침을 시종일관 열성적으로 지지해주었고, 우리 정부방침을 알린 후 얼마 안 되어 독립유공자 후손회의 찬성 의사를 담은 지지 서한을 대사관에 공식송부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 지지 서한을 받고 나머지 고려인 사회도 결국은 찬성하리라는 것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박 회장은 그 후 육사내 홍 장군 동상 이전추진 문제가 등장하자,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유해봉환에 동의해준 자신들의 한국정부에 대한 분노와 실망의 소회를 간절하게 피력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장군의 유해가 있는 끄즐오르다 주의 고려인협회의 김 엘레나 회장을 들고 싶습니다. 그분은 유해가 있는 현지 주의 고려인협회 회장이었습니다. 친화력과 왕성한 활동을 통해 고려인들의 지지를 모으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현지 고려인들은 같은 공간에 함께 계시던 홍 장군님의 유해가 자신들의 곁을 떠난다는 데 대해 몹시 서운해하면서 큰 상실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김 회장은 우리 정부가 추후 이행해주기로 한 후속 사업을 동료 고려인들에게 설명해가면서, 그들을 설득하고 지지를 모아주었습니다. 그분은 지금은 고려인 후손들의 국내 정착 지원 정책으로, 지금은 안산에 정착하여 살고 계십니다.
이 세 분이 외에도, 고려인 사회의 대표적 단체인 고려극장의 니 류보피 극장장, 고려일보의 김 콘스탄틴 총주필과, 카자흐스탄 각 주에 있는 고려인협회 회장들의 공헌과 역할도 컸습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우원식 현 국회의장님이실 것입니다. 우 의장님께서는 그 당시, 홍범도 기념사업회 이사장이자, 한-카자흐스탄 의원 친선협회 회장이셨습니다. 계기마다 필요한 우리 정부의 지원을 국회 차원에서 이끌어주셨고, 카자흐스탄 정부와 고려인 사회를 향한 의원 외교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주셨습니다.
이분들이야말로 진정한 공훈자들이니만큼, 우리 사회가 홍범도 장군의 삶과 위업을 기리는 과정에서 앞으로도 그들의 공로와 기여를 길이길이 기억해주면 좋겠습니다.
프레시안: 한편으로는 카자흐스탄 고려인 사회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심도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인데?
김대식 전 대사: 홍 장군의 유해 봉환과정에서도 이런 점들을 고려한 정책을 시행한 바 있습니다. 먼저 그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려인 동포사회는 국가 차원의 보훈과 역사 바로 세우기, 후세들에 대한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웠던 강제이주 시절 자신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했고,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셨던 홍 장군께서 자기들 곁을 떠나간다는 데는 일종의 심리적 박탈감을 가지고 있어, 그런 부분을 메워 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또한, 홍 장군의 유해가 있던 크즐오르다 주 정부에도 그간의 홍 장군 묘소 제공과 강제이주 당시의 끄즐오르다의 카자흐스탄 국민의 보살핌과 지원에 대한 보은과 답례, 협상 과정에서의 지원과 협조에 성의를 표시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판단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본국 정부와 협의하여 고려인 동포와 끄즐오르다 주측에 약속했던 내용은 묘역에 유해가 한국으로 이전된 이후에도 원래 모습의 묘소 복원, 보전과 전시관내지 기념관 설치; 묘역 재단장; 끄즐오르다주 코르큿 아타 국립대학에 한국어 강의 개설; 고려인들에 의해 개척된 벼농사 관련 사업과 문화협력 사업 추진; 고려인들의 현재 중심지인 알마티에 있는 고려극장과 고려일보 지원 등 이었습니다.
이런 약속과 후속 사업들은 주로 우리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아 추진하는 일이었는데, 저의 후임 대사가 실행하였고. 유해 국내봉환 후 대부분 실행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편, 전 세계에 걸쳐 우리 동포 수는 720여만 명에 이르고 있는데요. 크게, 재미동포, 재일교포, 중국을 중심으로 한 조선족 동포, 러시아와 중앙아 지역의 고려인 동포, 그 외 지역의 동포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고려인 동포들은 운명적으로 가장 나중에 고국과 연결되었고, 지금은 눈부시게 발전하는 고국과 연결 강화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도 고려인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나가고 있습니다.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도 그간 상대적으로 소홀내지 소외된 고려인들에 대한 지원과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리라고 믿습니다.
고려인 재외동포 지위 및 권익 향상을 위한 정책 강화, 법적 지위와 체류 안정성 강화, 언어 및 문화 적응 지원, 일자리와 경제적 지원, 학습 지원 프로그램 및 한국 사회 적응 교육 지원,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 시행, 고려인 커뮤티니 센터 등 지원조직 확대 등 지역사회와의 연계 강화와 정책 참여 기회를 확대해 나가리라 봅니다.
고려인 동포사회 독립유공자 후손들에 대해서도 배우자 국립묘지 안장, 후손 자긍심 및 사회적 안정감 제고를 위한 사업 등도 확대해 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전북과 같은 지자체 차원에서도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지자체 상황과 필요에 맞는 협력과 지원 사업을 추진해 나갈 수 있다고 보는 데, 특히 일자리 부족 문제 해결 차원에서 그들이 전북에 와서 일하거나 정착할 수 있는 정책이 앞으로도 더욱 강하게 추진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 이같이 잊어서는 안되는 선열들의 자랑스런 역사의 흔적조차 왜곡하고 부정하려고 하는 시도가 왜 반복해서 일어난다고 보는가?
김대식 전 대사: 우선 역사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일제와 친일사학자의 영향이 우리 학교 교육은 물론, 사회 곳곳에 미만해 있고, 독립운동에 대한 역사교육과 독립유공자 대한 연구와 평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라 생각합니다.
해방 후 그 상황에 대해 지적이 계속되어왔으나, 아직도 충분히 시정되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바로 잡으려는 시도가 있으면, 수구세력들의 저항이 너무도 거세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반대세력들은 국가위기, 사회분열 조장이라는 장벽을 쳐가며 저항 하였고, 해방 후 6.25 전쟁 등으로 생존과 먹고살기에 급급했던 시기였기에, 우리 사회가 그 일에 본격적인 노력을 기울이기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역사 왜곡과 과오 반복에서 또 하나 중요한 측면이 있습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데는 타이밍이 결정적인데,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그것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해방 후 반민특위의 실패일 것입니다. 민족과 국가 정체성을 바로 세울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일제 잔재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자, 친일 세력을 비롯한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의 저항이 사회적 타성이 되어 버리고 만 측면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과오와 욕심에 대해 양심의 가책은커녕, 피해자들을 멸시하고 꾸짖기까지 하는 형국이 전개되었습니다.
프레시안: 12.3 내란재판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김 전 대사께서는 지난 4월 한 언론 기고에서 "우리나라가 많은 면에서 발전하고 진보했지만, 21세기 한복판에서 대한민국에서 역사의 퇴행이 일어났다"고 진단한 바 있다. 왜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고 보는가?
김대식 전 대사: 12.3 계엄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이성(理性)과 상식이 활짝 개화되었다 할 21세기 백주 대낮에 발생한 것은 사회와 역사 등 모든 면에서 분명 퇴행입니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전쟁이 남긴 잿더미 속에서도 온 국민의 혼신의 노력과 단결로 경제발전과 민주사회를 성취하고, 요즘은 K 컬쳐의 문화의 힘까지 전 세계의 흠모를 받는, 선진국의 위상을 지닌 나라입니다.
선진사회에서는 그에 걸맞는 사고수준과 행동거지가 있는 것이지요. 12.3 계엄 선언은 국제사회에서 아름답게 활활 타오르던 우리나라의 위상과 평판에 그야말로 찬물, 아니 오물을 껴안기는 사태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몸담아왔던 외교현장의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우리 외교관들과 외국에 나가있는 국민들은 외국인들이 대한민국을 자신들도 본받고자 하는 나라라고 말할 때 마음속 깊이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근면 성실한 국민성, 유구한 역사, 풍성한 문화 역량을 힘주어 자랑하고 하였지요.
그런 마당에 마른 하늘에 날 벼락 같은 비상계엄에 대해, 무슨 말로 변명할 수 있었겠습니까? 대외의존도가 어느 나라보다 높은 우리나라인데, 나라의 위상과 신뢰도가 하루아침에 급전직하하도록 만든 사태를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다행히도 온 국민이 지혜와 단결, 시민의식으로 헌정질서를 회복하고 위난을 극복해나가고 있습니다, 정부도 새로 출범하여 사회쇄신과 성찰에 매진하고 있고, 대외적으로도 이재명 대통령은 적극적인 실용외교를 통해 추락한 국가 위상과 신뢰를 빠른 속도로 다시 회복하고 있습니다.
국가를 이런 혼란과 위기로 내몰았던 세력은 권력과 사회적 성공의 정점에 있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들은 공익과 사회적 책임, 정도에 대한 성찰과 정의감보다 개인적 이익과 이해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역사의식과 사회공동체 의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사회지도자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과 양심을 뒤로하고, 나만 잘살면 된다는 탐욕의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남을 짓밟아서라도 성공하고 말겠다는 극한 경쟁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사회 엘리트로 양산해 낸 결과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위선과 몰상식, 가치 경시와 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냉철한 성찰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그런 차원에서도 12.3 비상계엄에 대해서는, 그런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준엄한 심판과 엄정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 '친일잔재 청산과 내란청산', 1944년 9월 "우리의 모든 과거 불행은 반역을 처벌하지 못한 데서 온 것이다"라고 말한 알베르 카뮈의 발언에서 우리가 반면교사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김대식 전 대사: 우리가 나치 청산의 대표 사례로 프랑스를 자주 거론하지만, 사실 나치 침공을 받은 노르웨이 등 북유럽국가들도 인구비율로 보아 프랑스보다 더 높은 비율로 나치 잔재를 청산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드골이 앞장서 이끌었지만, 사회 각계의 지성과 양심 인사들이 적극 나섰고, 제일 먼저 제기한 사람이 알베르 카뮈였습니다.
8.15해방 후 이승만 대통령의 반미특위 강제해산으로 친일 세력을 응징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이 해방 후 지배 세력으로 군림한 우리 사회와는 너무 대조적입니다.
그 당시 그들 국가에서도 정의냐 관용이냐의 여론이 대립되었지만, 민족과 정의 이름으로 외세 치욕의 역사를 처리하고, 국가 정통성을 바로 세워 새로운 민주적이며 도덕적인 국가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늦게나마 노무현 정부 시절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활동 등을 통한 노력이 있었지만, 통탄스럽게도 일제 청산을 위한 절호의 시기를 놓쳤고, 그 폐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그들의 의식 속에 처벌 분위기가 팽배한 시기만 잠시 넘기면 아무 피해 없이 다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 것이 최대의 악폐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제 청산을 다시 소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 청산을 위한 역사적 기회를 놓친 과오를 교훈 삼아, 12.3 계엄에 대해서 엄정한 심판과 준엄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12.3 사태를 최대한 조속 마무리하고, 매우 어려워진 대내외적 환경하에서 국익 증진과 민생 개선에 국가적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국민의 정책 참여도와 관심 제고, 새로운 미디어 등장, 상호 연결과 의존성 증대, 빠른 속도의 생활 리듬,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 극도로 불안정한 국제환경 등 2차대전 직후와는 다른 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 대다수 국민 의사와 반했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과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경험한 우리가 새삼 깨우쳐야 할 정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김대식 전 대사: 1905년 을사년에는 을사오적들이 나라를 팔아먹었고, 올해 을사년은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나라를 말아 먹으려다, 탄핵을 당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120년이 지났고, 대한민국이 선진 민주공화국이 되어 전 세계의 찬사와 부러움을 사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우리는 헤겔이 “역사로부터 배우는 교훈은 우리가 너무 자주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라고 통탄한 바를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두 번의 을사년 사태에 대한 철저한 반성으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인간은 살면서 언제든지 실수와 과오를 저지를 수 있는 나약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에 대한 반성과 그런 실수를 다시는 저지르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느냐, 그 반성을 통해 앞으로 나아 가느냐 입니다.
그것은 개인, 국가 모든 경우에 해당합니다. 독일은 1, 2차 세계 대전에 대한 철저한 사회적 반성을 통해, 그 과오로 분단되었던 국가를 다시 통일로 이끈 바 있습니다.
12.3 사태에 대한 반성은 우선 준엄한 법적인 심판과 처벌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며, 보다 근원적으로는 사회지도자들이 공익을 우선시하고 멸사봉공의 자세를 가져야 하며,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아 성찰과 인간 존엄성 존중과 정의의 가치를 더욱 깊이 새겨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2.3 계엄을 주도한 무리 들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자기 사익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지지· 비호하는 기득권 수구세력의 행태와 심리구조를 저는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소위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다는 사람들이 역사나 사회적 책임의식도 없고, 양심의 거리낌 없이 기회주의적 처신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보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지 않는 자들과 같다고 봅니다. 아침의 세수는 청결유지라는 위생적 측면도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과거를 단절하고 새롭게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런 차원에서 종교적 세례가 있는 것이고, 인도사람들의 경우 갠지스 강가의 목욕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프레시안: 외교관으로서 영예로운 ‘영산 외교인상'을 수상하시면서, 홍 장군 유해 봉환과 관련해 소회가 다시 깊어질 것 같다.
김대식 전 대사: 저는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우연하게도, 과거 불행한 역사로 인해 해외에 있게 된 우리 유산을 국내로 반환해오는 역할을 두 번이나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이 그렇고, 2011년 145년 만에 국내로 돌아온 외규장각 도서반환 협상이 그것입니다. 188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에서 왕실을 약탈해 갔는데, 그 반환 협상에서 제가 외교부 구주국 심의관으로서 국내 실무를 총괄 지휘하였습니다.
그 유해, 유물들을 국내로 모셔올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국력이 그동안 그만큼 많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힘이 없어 빼앗겼고 모셔 올 수 없었지만, 우리가 힘을 갖추니 그게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런 국력의 축적은 독립유공자들의 희생과 공헌으로 나라를 되찾았기에 가능한 것이었기에, 우리 국민 모두는 여-야, 보수-진보의 정파를 떠나,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존경과 예우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분들의 공헌이 없었다면, 우리가 오늘날 다른 의견과 입장을 견지하고 표현할 나라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다시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전과 같은 불필요한 이념논쟁으로 우리 사회가 분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번 영산 외교인상을 받으면서, 홍범도 장군께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를 하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국조 단군께서 주창하신 "홍익인간 정신을 회복하라" "우리가 이룬 경제발전과 민주주의 성취, K-컬처의 문화융성의 계기를 계속 이어가라"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 전통을 기반으로, 세계 평화와 번영을 이끌어가라"고 말입니다.
프레시안: 전북 출신으로 전북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평소 생각해 온 것이 있다면?
김대식 전 대사: 전북은 과거에 음식, 문화 등에서 전국에서도 가장 알려진 지역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빠르게 비슷한 음식과 문화를 모방하여 전북의 특성이 전국적으로 일반화되어 버렸다. 전북이 자신의 원천적 기술과 강점을 시대와 사람의 기호 변화에 맞게 변환시키는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전북사람들은 온순하고 인심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뒤에 숨어있는 소극성과 비좁은 안목이 함께 숨어있는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현대사회에서 빛을 발하기보다는 오히려 경쟁에서 뒤지게 하는데, 외부 변화에 대한 적응을 늦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전북에 약 2년 반 동안 체류하면서, 새로운 시도에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어렵다 하는 태도가 적지 않게 일상화되었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법과 규정은 지켜져야 하나, 어떤 사안을 대하는 자세가 소극적이고 일단 물러서려는 듯한 태도가 강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좁은 시각과 작은 이해관계에 갇혀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바깥세상의 변화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들의 과거 영화를 추억하면서 기득의 편의에 안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만의 리그에 갇혀있는 형국이었습니다. 더욱 난감한 것은 자신들이 그러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변화에 대한 무감각과 대처 부족, 소극성과 냉소적 태도, 비좁은 안목의 타성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호남이라도 전남은 적극적이고 진취적이고 도전적입니다. 일전에 운전하고 전남을 지나면서 라디오를 트니, 온통 AI 얘기였습니다. 앞으로 세상은 AI가 대세를 이룰 것인데, 전남은 빠르게 시대적 추세에 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방송을 하는 채널도 있었습니다. 진행자가 한국말로 얘기하고, 다음 장면에서 같은 내용을 영어로 다시 한번 얘기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전남과 대한민국에 국한하지 않고 전 세계를 상대로 할 시대를 대비하는 차원으로 다가왔습니다.
AI 데이터 센타가 전남에 설립되면, 전 세계를 상대로 할 일이 많아지는 만큼, 전남인 스스로가 그 추세를 인식하고 미리 대비해 나가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 시대를 대비해 광주, 전남 통합 얘기까지 나옵니다. 저돌적이고 전향적입니다. 전북에는 아쉽게도 그런 움직임을 아직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전북은 농업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산업기반이 없고, 현대사회가 첨단 기술 산업 위주의 발전에 의해 주도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도세가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처지만 한탄하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세상은 최신의 기술·통신을 토대로 촘촘히 얽힌 디지털, 메타, 팬덤 경제의 시대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적 환경의 특성을 잘 활용하면 전북의 약점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첨단 신산업 분야를 계속 유치, 발굴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지고 있는 분야에서도 디지털과 AI 기술을 접목하고, 미래 소비와 기호 패턴, 주요 잠재 수출국의 변화 추이를 감안하여 생산과 유통의 체계를 혁신하면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전북인의 시각과 인식이 변해야 합니다. 우선 전 세계를 상대하겠다는 포부와 안목을 갖추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 진취적 태도와 적극성을 길러야 합니다. 또 미래와 변화의 트렌드를 공부하여 대비하고 창의성과 비판적 정신을 기르는 한편 안방 궁시렁과 꼰대 정신은 버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떤 분야든 이제는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전북에 앉아 전 세계를 시장으로 만들 수 있고, 세상 어느 나라든 내 일자리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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