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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게임 '노동자'인가: 게임 노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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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누가 게임 '노동자'인가: 게임 노조 이야기

[게임필리아] 게임 노동, 새로운 미래에 맞는 새 해법 내놓을 때

올해 초, 가족과 함께 오랜만에 한국을 다녀왔다. 그 무렵 국내 주요 언론의 헤드라인을 연일 장식한 것은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의 총파업 소식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한국 반도체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한 언론 보도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노동조합의 격차와 사회적 양극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삼성전자의 반도체를 만드는 데 투입되는 수많은 하청·계약·파견 노동자들이 정작 성과급 논의나 정당한 권리 보장의 영역에서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뉴스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게임 산업 내 노동의 문제로 생각이 이어졌다. 과연 게임은 누가 만드는가, 그리고 게임 개발 '노동자'의 범주와 자격은 어디까지인가? 이에 대해 각기 다른 해석과 해법을 내놓고 있는 세 나라의 사례를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 게임 개발자는 노동자일까

게임업계 종사자의 노동자 권리보호 문제가 가장 크고 복잡한 곳은 미국이다. 참고로 게임산업은 미국에서 영화, 음악 등과 함께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인식되는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미국의 게임업계 노조 논쟁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 게임 산업의 시초는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들어 몇몇 괴짜들의 발명품쯤으로 치부되던 컴퓨터 게임은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미국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어 1990년대의 가파른 성장세 속에서 게임 개발은 영화, 음반, 공연 예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대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여느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그러했듯, 게임 노동 역시 '열정 노동'의 프레임 속에 갇히게 되었다. 허름한 사무실에서 게임을 향한 순수한 열정 하나로 밤을 지새우다 보면 언젠가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식의 할리우드식 성공 신화. 이 과정에서 게임 개발사는 게임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좋아하는 게임을 하면서 돈도 버는' 꿈의 직장으로 포장되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미국과 일본 등 게임 산업을 선도하던 국가들은 게임을 카트리지나 CD, DVD 형태의 '패키지'로 판매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러한 패키지 게임은 프로젝트 단위로 개발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노동 계약 역시 프로젝트 종료와 함께 끝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대형 게임 하나가 출시되면 개발에 참여했던 인력들이 해산하여 또 다른 신작 프로젝트로 흩어지는 방식, 즉 영화 프로덕션과 유사한 형태가 정착된 것이다.

개인의 열정을 강조하는 업계 분위기, 그리고 프로젝트 단위의 계약 체계. 미국 게임 대기업들은 이 두 가지 요소를 교묘히 결합해 게임 개발자를 '노동자'의 위치에서 지워버렸다. 이들은 개발자를 '기술 혁신을 이끄는 앙트프루너(Entrepreneur)'와 '감동을 창조하는 열정적인 예술가' 그 어딘가에 있는 존재로 프레임화했다. 철저한 성과주의와 과도한 장시간 노동, 상시화된 고용 불안정성은 노동착취가 아닌, 게임을 향한 열정과 진정성을 증명하는 숭고한 수단으로 교묘하게 포장되었다.

그러다 2000년대에 이르러 마침내 게임 노동자들의 불만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곪을 대로 곪았던 이 문제가 공론화된 계기는 2004년 에린 호프만(Erin Hoffman)이 쓴 <EA 배우자(EA Spouse)>라는 글이 인터넷상에서 거대한 반향을 일으키면서부터였다. 이 글은 거대 미국 다국적 게임사 EA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과 사측의 불합리한 행태를 폭로하며, 이러한 착취가 노동자 개인은 물론 그 가족의 삶까지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 비판했다. 이후 업계 곳곳에서 "나 역시 같은 처지"라는 공감과 제보가 잇따랐고, '꿈의 직장'이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 숨어 있던 게임 산업의 그늘이 비로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과 자조는 공허한 메아리로 머물곤 했으며, 근본적인 해결책은 요원했다.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둘러싼 미국 사회 내 극단적인 정치적 대립은 물론, '기업가 정신(앙트프루너십)'과 '자율 규제'를 추구하는 실리콘밸리 특유의 신자유주의적 문화가 게임업계에도 강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스타크래프트>의 엑티비전 블리자드, <어쌔신 크리드)>의 유비소프트, <피파> 시리즈의 EA 같은 미국의 초국적 게임 기업(AAA급 개발사)들은 전 세계에 거점을 두고 인력을 활용한다. 게임 대기업의 노동 착취 구조는 자연스럽게 글로벌 하청 국가들로 이식되었고, 이는 다시 미국 내 노동자들의 처우를 동결하고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명분으로 악용되었다. "싫으면 나가라, 당신 말고도 일할 사람은 전 세계에 넘쳐난다"는 자본의 논리가 정당화됐다. 나아가 일부 대형 게임사들은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 형성을 방해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노조 설립을 시도하거나 권리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사측의 교묘한 회유와 인사상의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다.

하지만 사측의 억압은 역설적으로 미국 게임 노동자들을 더욱 강하게 단결시켰고, 개별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선 '초기업적 게임 노동조합’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2018년, 게임 업계 노조 설립을 목표로 하는 운동 단체 'Game Workers Unite(게임 노동자 단합)'가 발족했다. <EA 배우자> 글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지 무려 14년 만의 결실이었다.

얼마 후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라이엇 게임즈, EA, 유비소프트 등 미국을 대표하는 내로라하는 초대형 게임사들에서 직장 내 성차별과 성희롱 스캔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게임 개발 노동을 '남성 중심적 마초 문화'의 성역으로 치부하며, 여성과 성소수자 노동자들을 조직적으로 배제·희롱하고 성을 상품화해 온 업계 유명 경영진들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났다. 이 충격적인 스캔들은 역설적으로 게임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와 단체교섭권 쟁취 투쟁에 거대한 동력이 되었다. 일부 사건은 치열한 법적 공방으로 이어졌고, 결국 2021년 사측과의 지루한 싸움 끝에 액티비전 블리자드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ABK Workers Alliance'가 출범했다. 미국 게임 산업 역사상 최초로 공식 인정받은 게임 노동조합이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다만 지금까지도 미국 게임 산업 내 노동권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전체 미국 게임 업계 종사자 중 노동조합에 가입된 비율은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며, 그나마 존재하는 노조들조차 앞서 언급한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사례처럼 초대형 스캔들이 터졌을 때 사측이 리스크 관리와 보상 차원에서 선심 쓰듯 승인해 준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 본토 게임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단체행동은 여전히 드문 편이며, 오히려 캐나다나 프랑스 등 해외 지사 스튜디오의 노동자들이 미국 본사를 상대로 노조를 결성해 협상에 나서는 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물론 해외 지사 노조가 미국 본사를 상대로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본사가 해당 지사를 닫아버리면 그만이다.) 하청·파견 노동자는 물론 게임 성우, 번역가 등 게임 핵심 개발인력에서 배제되는 이들 또한 여전히 노동권의 깊은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

한국: "게임 개발자는 노동자다 – 조합원이라면"

다음으로 살펴볼 국가는 바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다. 한국의 주요 게임 대기업들에는 노동조합이 존재하며, 이들이 조합원들을 대변해 경영진과 정식으로 교섭을 벌인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18년 출범한 대한민국 최초의 게임 노동조합, 넥슨(Nexon)의 '스타팅포인트(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넥슨지회)'다. 넥슨은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등을 서비스하는 국내 내로라하는 대표 게임사였기에, 스타팅포인트의 출범은 업계 전체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에서 이제 막 'Game Workers Unite'를 발족하며 "게임 개발자도 노동자다"라는 원론적인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을 무렵,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는 이미 공식 노동조합이 닻을 내린 셈이다. 그래서 당시 넥슨 노조의 탄생은 해외 게임 산업 종사자들과 언론, 평론가들의 조명을 받았다. 나에게 "한국에는 벌써 게임 노조가 생겼다며? 정말 대단하다, 축하해!"라는 메시지를 보내오는 외국인 개발자들이 있었을 정도였다.

현재 활동 중인 한국 게임업계 노동자 교섭단체는 총 7개이다. 이들의 주요 교섭 주제는 단연 임금, 근무환경, 복리후생 등이며 특히 "크런치 모드(Crunch mode)"라고 하는 게임업계의 반복되는 소위 '인력 갈아넣기' 이슈, 게임업계의 관행적인 사내 면접, 포괄임금제, 그리고 최근엔 게임업계의 연이은 구조조정과 생성형 AI 도입으로 인한 고용 불안 등이 있다.

한국 게임 산업이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게임을 '디지털 서비스' 산업으로 바라보는 구조적 특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한국 게임 산업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 것은 전국적인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과 PC방의 폭발적 보급이 이뤄 지면서부터였다. 즉, 한국 게임사들은 카트리지, CD, DVD 형태의 패키지 게임이 아닌 인터넷을 통해 지속해서 게임을 제공하는 '온라인 서비스'에 특화되어 성장했다. 영화에 비유하자면 일회성 영화 개봉이 아닌, 장기 시리즈물이나 OTT 플랫폼 서비스에 가깝다. 이 경우 게임은 개발 착수일은 존재하지만 프로젝트의 완결점, 즉 끝을 기약할 수 없다.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팀이 해체되고 새로운 계약을 찾아 떠나야 하는 프로덕션식 개발 체제와 달리, 한국의 개발자들은 서비스의 유지·보수와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위해 계속해서 필요하다. 게임사 입장에서 핵심 인적 자원의 확보와 안정적인 관리는 게임 서비스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 역시 명확한 한계를 지닌다. 최근 삼성전자 노조의 사례가 보여주었듯, 한국 게임 산업의 노조들 역시 개별 법인의 울타리에 갇혀 있으며 그 안에서도 특정 조건에 부합하는 정규직 조합원만을 대변한다. 대화의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은 대개 본사에 직접 고용된 이들에게만 한정되며, 게임 서비스에 필수적인 수많은 리소스를 제공하는 파트너사, 하청·위탁업체 직원, 프리랜서 등은 배제된다. 더 나아가 노동조합의 존재는 일부 대형 게임사에 국한되어 있을 뿐, 중소 개발사나 인디 게임 업계에는 사실상 전무하다. 결국 대한민국 게임 산업에는 게임을 만드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연대하여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초기업적 소통 창구가 부재한 실정이다. 이는 AI 등 고용 구조의 근간을 흔드는 거대한 변화 앞에서, 노동자들이 단결된 목소리로 권익을 방어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핀란드 게임노동조합 'Game Makers of Finland' ⓒGame Makers of Finland 링크드인 대표 이미지

핀란드: "노동하면 노동자다"

핀란드 역시 게임 노동조합이 활동 중인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핀란드의 게임 노조인 'Game Makers of Finland'는 2017년에 설립되어 세계 최초의 게임 노동조합이라는 역사적 타이틀을 갖고 있다. 이 노조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개별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초기업적(산업별) 노동조합이라는 점이다. 특정 법인에 소속되어 있는지, 정규직인지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가입 조건 역시 매우 간단하다: 스스로 게임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판단한다면 누구나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이 독특하고 포용적인 노조 구조를 이해하려면 먼저 핀란드 특유의 제도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핀란드는 산별·분야별 노동조합을 기본 축으로 삼는다. 제조업 노조, 서비스 노조, 의료 및 사회복지 노조, 교육 노조처럼 산업 영역별 이해관계별로 노동조합이 다수 존재하며, 이를 아우르는 노조 연맹들이 있다. 그리고 이에 맞서 고용주 측을 대변하는 사용자 단체(상공회의소 등)들 또한 결집해 있다. 이들 연맹과 사용자 단체는 몇 년에 한 번씩 모여 각 산업 별 적용될 '단체협약(Collective Agreement)'을 체결한다. 이 협약서가 해당 산업 전반의 최저임금 또는 권장임금 기준, 근무 환경, 노동시간, 임금 가이드라인, 복리후생의 기준을 결정짓는다. 그리고 핀란드 법에 따라, 이 단체협약의 효력은 노조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그래서 핀란드의 고용 계약서는 대체적으로 얇은 편이다. 계약서에 자세한 근무 조건에 대해 명시하지 않고도 끄트머리에 '세부적인 사항은 00산업 단체협약서의 의거한다' 한 줄이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적 기저에는 북유럽 특유의 철학, 즉 노동에 대한 매우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해석이 깔려 있다. 이곳에서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노동하면 누구나 노동자다.' 노조 가입 여부나 고용 형태, 정규직이나 비정규직, 파트타임이나 풀타임은 노동의 분류일 뿐 본질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핀란드에는 '기업 경영 전문가 노조'나 '예술가 노조'들도 자연스럽게 존재한다. 그렇기에 앞서 미국 사례처럼 게임 개발자를 '기업가 정신'과 '예술가'라는 환상에 가두며 노동자성을 부정하려 했던 시도는 핀란드에서 아예 출발조차 할 수 없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 덕분에 핀란드에서는 고용 형태와 관계없이 임금을 받는 모든 노동자에게 연금보험이 원천징수되며, 이 과정에서 노조 조합비 역시 자연스럽게 함께 공제되는 구조가 정착되어 있다. 만약 "나는 노조에 가입하고 싶지 않다"면 노조 조합비가 제외된 실업기금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노조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단체협약의 보호를 똑같이 누릴 수 있기에, 굳이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이들도 존재한다. (노조에 가입할 경우 각종 변호사 자문 서비스나 여행자보험, 공연이나 레저 시설 할인 등 실질적인 혜택이 있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 위에서 탄생한 조직이 바로 핀란드의 게임 노동조합 'Game Makers of Finland'다. 핀란드 사회는 전통적으로 게임을 IT 산업의 한 줄기로 바라보았기에, 2017년 전까지 많은 게임 노동자들이 IT 산업의 단체협약을 기준으로 복리후생과 단체교섭권을 보장받아 왔다. 다만 자신의 직무에 따라 IT 전문직 노조, 엔지니어 노조, 전자통신 자영업자 노조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어 연대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파편화되어 있던 노동자들의 소속을 '게임 산업'이라는 분야로 일원화한 것이 Game Makers of Finland이다.

그래서 그럴까, 핀란드 게임 노조의 모임이나 행사는 분위기가 자못 가볍고 경쾌하다. 미국처럼 투쟁을 위해 비장한 각오를 다져야 하는 중압감도, 한국처럼 조합 가입 여부를 확인하는 경계심도 찾아보기 어렵다. 대형 게임사의 정규직은 물론 파견직, 계약직, 프리랜서, 심지어 사장님들까지 한자리에서 어우러진다. 최근에는 e스포츠 캐스터 등 게임 생태계 전반의 종사자들까지 조합원의 범주로 끌어안았다.

겉으로 보기에 핀란드의 게임 노조는 이상적인 모델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 활동에도 명확한 한계가 있다. 인구 550만의 작은 나라인 핀란드는 구조적으로 글로벌 정세와 거대 자본의 흐름에 매우 취약하고, 이미 핀란드의 게임 산업 자체가 미국, 중국 등 거대 자국의 초국적 자본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예로, 핀란드의 국민 게임 기업이자 <클래시 오브 클랜>으로 유명한 슈퍼셀(Supercell)의 대주주는 중국의 텐센트(Tencent)이며 <앵그리버드>의 개발사 로비오는 일본의 세가(Sega)에 인수되었다. 핀란드 중소 개발사들 역시 해외 투자자와 글로벌 퍼블리셔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유통 또한 스팀(Steam)과 구글(Google) 같은 거대 플랫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여차해서 미국이나 중국, 일본에 위치한 본사가 핀란드 스튜디오에 대한 구조조정이나 폐쇄를 결정한다면, 핀란드 노조가 이를 막아낼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은 전무하다. 이는 비단 핀란드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다국적 게임사들의 하청 또는 파트너사가 대거 위치한 프랑스, 스페인 등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 또한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핀란드 게임 산업은 거대한 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치솟는 에너지 값, 널뛰는 국제정세 등으로 인해 핀란드 경제는 실업률 10%라는 심각한 침체를 겪고 있으며, 미국발 게임업계 구조조정도 고스란히 핀란드에도 여파를 미치고 있다. 여기저기 핀란드 게임 스튜디오들의 고용 동결 또는 구조조정 소식이 하루가 멀다하고 들린다. 거기에 많은 게임 스튜디오들이 해외 본사의 요구에서든, 해외 투자자의 요구에서든, 아니면 스스로 위기감을 느껴서이던 AI 도입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어 핀란드 게임업계의 고용 침체는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무엇이 정답일까?

'게임 개발자는 과연 노동자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답을 내놓은 세 나라의 이야기를 간략히 다루어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노동자'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해석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직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이 질문을 좀 더 넓혀서 근원적인 화두를 던져볼 때다. 기술이 발달하고 개발 생태계가 더욱 파편화되고 복잡해짐에 따라, 이제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게임이고 게임 개발자인지조차 구획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이 상황에서 게임 노동이란 과연 무엇인가?

가령 게임 속 캐릭터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그 캐릭터의 외형을 디자인한 아티스트와 움직임을 구현한 프로그래머의 일을 게임 노동의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그 캐릭터가 내뱉는 대사를 집필한 하청 스튜디오의 작가, 목소리를 입힌 프리랜서 성우 역시 개발자라 부를 수 있을까? 캐릭터가 탄생할 수 있도록 개발 환경과 서버를 관리한 파견직 엔지니어는 어떠한가? 나아가 캐릭터의 동작이 자연스러운지 검증하고 모니터링한 QA(품질보증) 담당자들은 노동자인가? 만약 그 테스트 과정 전체를 AI가 대체하기 시작한다면, 개발의 주체와 노동의 정의는 어디로 향하게 되는가? 그 게임 캐릭터를 가지고 방송을 하는 스트리머들의 노동 시간은 어떻게 산정해야 하는가? 이 상황에서 노동자의 연대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흔히 게임 산업을 첨단 기술과 창의적 감각이 집대성된 종합 미디어 산업이라고도 말한다. 게임 제작 과정은 한없이 복잡할 뿐 아니라, ‘재미’라는 주관적인 가치를 다루기에 예측 불가능성 또한 크다. 그렇기에 기술의 빠른 변화 앞에서 게임 산업의 고용 구조와 노동 환경은 그 어떤 분야보다 가파르게 재편되고 있다. 미국의 처절한 투쟁이든, 한국의 법인별 노조가 지닌 한계든, 핀란드가 보여준 보편적 산별 연대의 모델이든, 각국의 노동 운동은 이제 다가올 미래의 노동 환경에 맞서 새로운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제는 '게임 노동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이 근원적 질문을 단순히 노동자의 자격을 묻는 논쟁에 머물게 해선 안 된다. 오히려 거대 자본과 AI라는 거친 풍랑 속에서, 게임을 만들거나 이용해 노동하는 모든 이들의 생존과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절박한 연대의 첫걸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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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솔잎

핀란드 알토대학교와 유바스큘라대학교에서 포닥(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게임 생산자(game developers)와 게임 이용 장애(gaming disorder)를 연구합니다. 한국의 게임 문화와 연구 사례를 유럽에 소개하는 역할도 종종 겸하고 있습니다. www.parksoli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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