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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성별화된 질환 섭식장애, 여성만의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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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가장 성별화된 질환 섭식장애, 여성만의 문제일까?

[서리풀연구通] 섭식장애의 성별 격차를 다시 보기 -트랜스젠더·성다양성 개인의 경험

섭식장애에 대한 유병률 조사는 2006년 이후 한국에서 체계적으로 이뤄진 바 없으나, 2025년 기준 섭식장애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인구 1만 4841명 중 여성은 1만 2080명으로 여성이 전체의 약 81.4%를 차지했다. 이처럼 여성이 월등히 높은 유병률을 보이는 상황은 섭식장애를 가장 대표적인 '성별화된' 질환 중 하나로 그려 왔다. 그리고 섭식장애를 둘러싼 논의 역시 오래도록 여성의 압도적으로 높은 유병률을 설명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곤 했다. 그런데 여기서 섭식장애가 '성별화되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트랜스젠더와 성다양성 개인의 섭식장애 경험은 이 질문에 부분적으로 답을 준다. 트랜스젠더와 성다양성 개인의 삶 속에서 섭식 문제는 신체를 젠더 정체성과 일치시키려는 시도와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젠더긍정치료(호르몬 치료와 수술 등)에 접근이 제한적이거나 사회문화적 이해가 심각하게 부족한 환경에서, 음식 조절은 신체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는 트랜스젠더 및 성다양성 개인의 섭식 문제가 성별불쾌감과 소수자 스트레스가 교차하며 나타나는 복합적인 결과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섭식장애가 태어날 때 부여받은 생물학적 성별(sex)에 내재한 것이 아니며, 개인이 스스로 느끼고 신체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젠더(gender)의 경험과 더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오늘 소개할 연구는 트랜스젠더와 성다양성 개인들이 시스젠더 인구에 비해 섭식장애에 얼마나 더 노출되어 있는지 살피며, 이들의 성별 불일치가 어떻게 섭식 문제와 연결되는지, 또 젠더 정체성과 지정성별에 따라 어떠한 차이가 발생하는지 분석한다(☞논문 바로가기: 트랜스젠더와 성다양성 개인들의 섭식장애 증상 횡단연구).

연구의 필요성은 두 가지로 제시된다. 첫째, 트랜스젠더 및 성다양성 개인들은 자신의 신체가 젠더 정체성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감각을 빈번히 느끼며, 이 부조응의 감각이 낮은 의료 접근성 등의 상황과 겹쳐지면서 음식을 통해 체형을 변화시키는 시도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트랜스젠더·성다양성 개인의 섭식장애 유병 수준 그 자체에 더하여, 이들이 왜 섭식 문제를 겪는지, 특히 그것이 신체적 특징이나 젠더 표현을 변화시키는 시도인지, 낮은 의료 접근성과는 어떻게 관련되는지 등을 폭넓게 살필 필요가 있다.

둘째, 기존 섭식장애 연구에서는 여성에게서 남성보다 훨씬 높은 섭식장애 위험이 보고되어 왔지만, 이러한 성별 격차가 트랜스젠더와 성다양성 개인에게도 동일한 방식으로 나타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따라서 트랜스젠더와 성다양성 개인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시스젠더 인구와 비교하는 것을 넘어, 지정성별과 젠더 정체성을 고려하여 보다 세밀하게 섭식장애 양상을 살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2017년부터 성별 불일치와 관련하여 덴마크 건강보험 시스템을 이용한 사람들 1132명과 이들과 비슷한 인구사회학적 배경을 지녔으나 성별 불일치 관련 의료를 이용하지 않은 사람들 688명의 설문 응답을 수집했다. 그리고 섭식장애 검사(EDE-Q)를 통해 섭식 제한, 음식에 대한 염려, 체중 및 체형에 대한 염려가 어느 정도인지를 물었다. 또 자신의 신체와 젠더 정체성이 얼마나 일치한다고 느끼는지를 의미하는 '젠더 일치감', 신체 불만족과 삶의 질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신체 발달이나 체형 변화를 위해 식사 습관을 바꾼 적 있는지, 그 행동이 성적 특징이나 젠더 표현을 변화시키려는 목적과 어느 정도 관련되는지 질문하였다.

연구 결과는 첫째, 트랜스젠더·성다양성 집단이 비교집단보다 섭식장애 증상을 더 많이 겪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EDE-Q 테스트에서 섭식장애 진단 기준을 넘은 사람은 트랜스젠더·성다양성 집단에서 19.25%로 비교집단의 14.02%보다 높았으며, 섭식장애 위험군으로 분류된 사람의 비율은 각각 40.53%와 27.29%였다. 전체적인 섭식장애 증상 점수 역시 트랜스젠더·성다양성 집단에서 유의미하게 높았다. 또 EDE-Q 결과 섭식장애 기준을 넘음에도 불구하고 섭식장애 진단과 치료를 받는 이들은 소수였다.

둘째, 왜 음식을 조절하는지와 관련한 질문에서, 트랜스젠더·성다양성 개인의 79.06%는 신체 발달이나 체형에 영향을 주기 위해 다이어트를 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 가운데 80.6%는 다이어트가 성적 특징이나 젠더 표현을 변화시키려는 시도였다고 답했다. 비교집단에서 같은 응답을 한 비율은 27.54%였다. 즉, 트랜스젠더·성다양성 개인에게 음식과 체중을 조절하는 행위는 신체적 특성을 젠더 정체성 및 표현과 일치시키려는 시도와 높은 확률로 연결돼 있었다.

셋째, 트랜스젠더와 성다양성 집단 내부에서 지정성별에 따른 섭식장애 증상의 유의한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일반적으로 시스젠더 여성에게서 남성보다 높은 섭식장애 증상이 나타나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다만 각 집단을 시스젠더 남성이나 여성에 비교했을 때에는 차이가 있었다. 트랜스젠더 남성과 지정성별 여성인 성다양성 개인은 시스젠더 남성과 여성 모두에 비해 섭식장애 위험이 높았지만, 트랜스젠더 여성과 지정성별 남성인 성다양성 개인은 시스젠더 남성보다는 높은 위험을 보인 반면 시스젠더 여성과는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섭식장애에서 흔히 관찰되는 여성과 남성 간 격차가 트랜스젠더·성다양성 집단 내부에서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을 가능성을 드러낸다.

이 결과들은 트랜스젠더 및 성다양성 개인이 시스젠더 개인에 비해 섭식장애 위험에 더 노출되어 있다는 표면적인 사실과 함께, 그 차이가 성별불쾌감 그 자체, 그리고 그것을 다루기 위해 접근할 수 있는 충분한 제도적·문화적 지원이나 담론의 부재 때문일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또한 지정성별이 섭식장애 발생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섭식장애의 발생이 지정성별보다는 젠더 표현과 관련될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트랜스젠더 및 성다양성 개인의 섭식 문제는 '미적 욕망'을 넘어 성별 불쾌감을 줄이고 젠더를 긍정하기 위한 실존적인 노력의 일환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소개한 연구는 섭식장애를 경험하는 인구 전반에 대한 오랜 편견 – 거식과 폭식 등의 행동은 줄곧 '마르고 싶은 "여성"들의 비이성적인 외모 가꿈'과 관련된다는 – 을 겨냥한다. 이러한 편견을 깨는 것은 그간 비가시화된 트랜스젠더 및 성다양성 개인들의 섭식장애 경험을 드러내어 포괄적인 대응 체계를 마련하고, 시스젠더 여성들 사이에서도 매우 다양할 섭식장애의 동학을 밝히는 것과 긴밀히 연결된다. 또한 섭식장애를 둘러싼 임상 및 보건학적 접근과 관련해서도, 오래도록 시스젠더 여성의 생물학적 성별에 집중하던 시선을 체화된 젠더 경험으로 확장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섭식장애에 대한 다각적인 젠더 프레임 위에서, 가장 '성별화된' 질환 섭식장애에 대한 포용적이고 역동적인 이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험자들의 필요를 충족하는 보건의료체계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서지정보

Rasmussen, S.M., Clausen, L., Pop, M.L. et al. (2025). "Eating Disorder Symptomatology among Transgender and Gender-Diverse Individuals: A Cross-Sectional Study." Journal of Eating Disorders 13(30). https://doi.org/10.1186/s40337-025-01212-2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역 인근에서 열린 2026 제27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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