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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어버린 육신에 불어넣은 봄볕, 할아버지의 마지막 여정을 지켜준 두 손 [장기요양 돌봄사례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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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어버린 육신에 불어넣은 봄볕, 할아버지의 마지막 여정을 지켜준 두 손 [장기요양 돌봄사례 공모전]

[장기요양 돌봄사례 공모전] 동행돌봄상 수상자 양환근

서울시 장기요양요원지원센터는 장기요양 현장에서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기요양요원과 장기요양서비스를 경험한 서울시민의 이야기를 통해 돌봄 현장을 가까이 들여다보고 일상 속 '좋은돌봄'의 가치와 의미를 시민들과 나누기 위한 공모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을 통해 올해 수상작을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편집자.

평생 꼿꼿하고 강인한 가장이셨던 할아버지의 육신은 야속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돌처럼 굳어갔습니다. 정신은 너무나도 또렷하셨지만, 온몸의 근육이 굳어져 손가락 하나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됐습니다.

혼자서는 식사조차 할 수 없어 누군가 곁에서 미음을 떠먹여 드려야만 간신히 삼키실 수 있었고, 하루 종일 천장만 바라보며 침대에 누워 지내셔야 했습니다. 지금은 하늘의 별이 되어 평안히 쉬고 계시지만, 당시 할아버지의 굳어가는 몸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은 가족 모두에게 뼈를 깎는 듯한 아픔이었습니다.

생업과 병행하며 거동이 전혀 불가능한 할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벅찬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욕창을 막기 위해 두세 시간마다 무거운 할아버지의 체구를 뒤집어 드려야 했고, 식사 시간이면 굳어가는 턱관절 때문에 밥 한 그릇을 비우는 데 한 시간이 훌쩍 넘게 걸렸습니다.

지친 몸으로 퇴근해 또다시 간병의 밤을 지새우다 보면,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평생 자존심 강하셨던 할아버지는 그런 제 눈치를 보며 입을 굳게 닫고 식사를 거부하시거나, 붉어진 눈시울로 조용히 눈물만 흘리셨습니다. 막막한 벼랑 끝에서 우리가 붙잡은 마지막 구명줄이 바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이었습니다.

처음 홍정숙(가명)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오시던 날, 저는 타인에게 할아버지의 가장 무력한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현관문을 들어서며 환한 미소와 다정한 목소리로 그 무거운 공기를 단숨에 바꿔놓으셨습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하루 종일 누워계시느라 얼마나 답답하셨어요. 오늘부터 뭉친 몸도 시원하게 풀어드리고, 맛있는 진지도 챙겨드릴 저는 홍정숙이라고 해요."

선생님은 거동을 못 하는 할아버지의 시야에 맞추어 침대 곁에 무릎을 굽히고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뻣뻣하게 굳어버린 할아버지의 두 손을 가만히 감싸 쥐는 것으로 첫인사를 대신하셨습니다. 할아버지의 굳어버린 육신만큼이나 제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은 할아버지가 잃어가고 계신'존엄성'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깊은 감동을 받았던 따뜻한 순간은 선생님이 오시고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아침, 출근 준비로 마음이 급했던 저는 굳은 턱 때문에 식사를 잘 넘기지 못하고 자꾸 흘리시는 할아버지께 결국 짜증을 내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 제발 꿀떡 삼키시라니까요. 저 출근 늦었어요." 제 날카로운 목소리에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깊은 슬픔으로 흔들렸고, 저는 큰 죄책감을 안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하루 종일 무거운 마음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았고, 자책감에 시달리다 퇴근했을 때, 저는 할아버지의 방문 너머로 들려오는 잔잔한 콧노래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살며시 열린 문틈으로 보니, 선생님은 따뜻한 물수건으로 할아버지의 굳게 닫힌 입 주변과 목, 어깨를 아주 정성스럽게 마사지하고 계셨습니다. 따뜻한 온기에 굳은 근육이 조금 풀리자, 선생님은 할아버지가 생전 좋아하시던 가곡을 흥얼거리며 아주 천천히, 할아버지의 호흡에 맞춰 식사를 떠먹여 드리고 계셨습니다.

"어르신, 천천히 드셔도 돼요. 제가 다 기다려 드릴 수 있어요. 오늘따라 참 맛있게 잘 드시네요."

그 따뜻한 음성에 할아버지는 그제야 평온한 얼굴로 식사를 받아넘기고 계셨습니다. 문가에 서서 눈물을 훔치는 저를 발견한 선생님은 다가와 제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셨습니다.

"손주님,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어르신이 몸은 굳으셨어도 정신은 또렷하시잖아요. 평생 가족들을 호령하시던 분이 남의 손을 빌려 식사하시니 얼마나 속상하시겠어요. 드시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니까 걱정 마세요. 제가 어르신의 손과 발이 되어드릴 테니, 손주님은 퇴근하고 오셔서 어르신께 든든하고 밝은 미소만 보여주세요."

선생님의 그 한마디에 저는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습니다.

그날 이후 선생님이 보여주신 돌봄은 단순한 간병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은 매일 굳은 관절을 부드럽게 주물러 주시며 할아버지의 빛나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려달라 청하셨고, 할아버지는 눈짓과 희미한 미소로 화답하셨습니다. 볕이 좋은 오후면 할아버지의 침대를 창가 쪽으로 밀어 따뜻한 햇살과 바람을 느끼게 해주셨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피어나는 꽃과 나무의 색깔을 조곤조곤 설명해 주시며 할아버지의 좁은 방 안에 넓은 세상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비록 입술이 굳어 단 한마디 말씀도 전하지 못하셨지만, 선생님이 오시는 시간이면 할아버지의 눈동자는 기쁨으로 반짝였습니다. 가끔은 선생님의 거친 손등 위로 할아버지의 뜨거운 눈물이 툭 떨어지며 소리 없는 깊은 감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의 굳은살 배인 따뜻한 두 손은 할아버지의 굳은 육신을 풀어주는 것을 넘어, 무력감에 얼어붙었던 마음까지 눈 녹듯 부드럽게 녹여주었습니다.

지금 할아버지는 무거웠던 육신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하늘에서 자유롭게 거닐고 계실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여정이 비참하거나 외롭지 않았던 것은, 온전히 선생님의 헌신적인 돌봄 덕분입니다. 제가 겪은 '좋은 돌봄'이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한 사람의 존엄성을 지켜주고, 굳어가는 몸속에 갇힌 영혼까지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숭고한 사랑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장기요양보험 제도는 절망의 끝자락에서 우리 가족을 살려낸 든든한 구명줄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할아버지가 누워계시던 빈자리를 보며 더 이상 슬퍼하지만은 않습니다. 그곳에는 할아버지의 존엄을 지켜주었던 선생님의 따뜻한 온기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할아버지의 가장 어두웠던 시간을 눈부신 봄볕으로 채워주신 선생님,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장에서 묵묵히 땀 흘리고 계실 전국의 모든 장기요양요원 선생님들께 이 글을 빌려 깊은 존경과 감사를 바칩니다.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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