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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벨' 12년 뒤 '암살자(들)'…부산국제영화제가 다시 묻는 영화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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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벨' 12년 뒤 '암살자(들)'…부산국제영화제가 다시 묻는 영화와 정치

정치권 '역사왜곡' 공방, 배우 자택 집회·신변보호까지…7일 야외무대인사도 취소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막을 올렸지만 7일 예정됐던 한 무대는 끝내 열리지 않는다.

허진호 감독과 배우 유해진·박해일·이민호가 영화 '암살자(들)'로 관객을 만날 예정이었던 야외 무대인사다. 제작사는 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자 관객과 참석자들의 안전 등을 고려해 개막식 참석과 야외 무대인사 등 부산국제영화제 일정을 취소했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전경.ⓒ프레시안

'암살자(들)'은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실제 역사적 사건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내용을 두고 정치권에서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지면서 작품을 둘러싼 논쟁은 개봉 이후 정치권으로 빠르게 번졌다.

국민의힘에서는 영화 상영 중단과 허 감독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 출석 요구가 나왔다. 6일에는 소속 국회의원 전원 명의로 싱가포르 국제영화제 측에 '암살자(들)'의 개막작 선정을 재고해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고 대구·경북 지역 의원들도 국내 상영 중단 등을 촉구했다.

▲장동혁 대표가 5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고 육영수 여사의 충북 옥천 생가를 방문해 역사 왜곡 논란을 빚고 있는 영화 암사자(들)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대쪽에서는 정치권이 창작 영역에 지나치게 개입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재정 국회 문체위원장은 허 감독을 국감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부르는 데 반대하며 창작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결국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허 감독은 국감 증인·참고인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논란은 정치권에 머물지 않았다.

유해진의 자택으로 알려진 곳을 비롯해 그가 광고모델로 활동하는 업체 본사와 영화 제작사 앞에서 보수단체의 집회가 이어졌다. 온라인상에서는 협박성 발언까지 등장했고 서울 성북경찰서는 6일 소속사의 요청에 따라 유해진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고 112 시스템 등록과 자택 주변 순찰 강화 등 신변 보호 조치에 들어갔다.

▲4일 서울 성북구에 있는 영화 '암살자(들)'의 주연 배우 유해진 자택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제작사와 배우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에서 예정됐던 일정도 잇따라 사라졌다. '암살자(들)' 팀의 개막식 참석과 야외 무대인사가 취소됐고 이민호가 관객을 만날 예정이었던 부산국제영화제 '액터스 하우스' 일정도 무산됐다. 유해진은 '암살자(들)'과 별개의 작품으로 후보에 오른 7일 부일영화상에도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실제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에는 사실관계와 표현 방식을 둘러싼 검증과 비판이 뒤따를 수 있다. 창작의 자유가 작품에 대한 비판 자체를 막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작품에 대한 비판과 감독의 국감 출석 요구, 상영 중단 요구, 출연 배우 개인의 주거지 앞 집회와 신변 보호 문제는 서로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논란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영화제가 이미 정치와 영화의 경계를 둘러싼 큰 갈등을 겪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12년 전인 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당시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이었던 서병수 부산시장이 상영 철회를 요구했지만 영화제는 작품을 예정대로 상영했다. 이후 영화제 운영과 감사, 지원 등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졌고 이 과정은 2019년 'BIFF 2014~2018 외압사태 백서'로 정리됐다.

▲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이상호·안해룡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 포스터.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문구와 함께 당시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논란을 담았다.ⓒ영화 '다이빙벨' 포스터

물론 2014년과 지금을 그대로 겹쳐 놓을 수는 없다. '다이빙벨' 사태는 부산시장의 상영 철회 요구와 이후 제기된 외압 문제가 핵심이었다. 이번 '암살자(들)' 논란은 정치권의 비판과 국감 출석 요구, 시민단체의 집회, 제작사의 안전 판단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측이 작품 상영이나 행사 취소를 결정한 사안도 아니다.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도 6일 개막 현장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해 영화제를 국내외 많은 사람이 함께 누리는 "문화적인 민주적인 행사"라고 표현하며 "이번 계기로 많은 것을 한 번 또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7일, 당초 관객 앞에 설 예정이었던 '암살자(들)'의 감독과 배우들은 무대에 오르지 않는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계속되고 있지만 작품을 둘러싸고 정치권으로 번진 논쟁의 여파가 영화제 일정과 배우의 안전 문제에까지 이어진 상황이다.

12년 전 '다이빙벨' 사태와 이번 논란의 성격은 분명 다르다. 다만 정치적 논쟁이 영화와 영화제, 창작자의 활동에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둘러싼 문제는 다시 부산국제영화제 앞에 놓였다. 작품을 비판할 자유와 창작의 자유 사이의 경계를 어디에 둘 것인지도 이번 논란이 남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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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욱

부산울산취재본부 윤여욱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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