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과 친노는 유권자인 국민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을까? 나는 민주당과 친노에게 대국민 인식조사를 권하고 싶다. 아마도 상당히 의미 있는 조사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민주당을 이번 대선에서 패배로 이끌었는지 보다 면밀한 분석과 판단이 필요하겠지만 그 중 특히 대국민 의식조사를 통한 자화상을 볼 필요가 있다.
지난 총선 패배에 이은 이번 대선은 민주당과 민주당의 주도세력인 친노세력이 어떠한 상황이 와도 대선에서 져서는 안 되는 선거였다. 더욱이 이명박 정권의 민생파탄으로 국민의 60%가 정권교체를 바라는 필승이 예상되는 선거였고, 박근혜 후보의 출신성분과 역할, 그리고 운명을 달리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한다면 패배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야권은 스스로 다수 국민의 새로운 시대적 여망을 좌절시켰고, 나아가 민주주의의 역사를 내줬다. 무엇이 이렇게 참담한 결과로 이끈 것일까? 문재인 후보가 언급한 자신의 문제기도 하고, 친노와 민주당의 한계이기도 하고 진영논리의 문제이기도 한 것은 맞는 말이다.
수긍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렇게만 판단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다수 국민이 갖는 집단이성과 민주당과 친노, 야권 전체가 갖는 문제의식에 있어 집단이성이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번 대선의 키워드는 변화와 민생이었다. 하나는 변화된 새로운 정치와 혁신이었고 다른 하나는 팍팍해진 국민의 삶, 즉 민생회복이었다. 이점에 있어서 야권도 문제 더 잘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여 진다.
그렇지만 패배했다. 문제는 민주당과 친노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민주당은 민주당 답고 친노는 친노 다웠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주류와 친노는 안철수 현상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소화하지 못했다. 안철수 현상의 최초의 출발은 오픈소스에 있다. 즉 기득권을 내려놓고 자신을 던져 사회와 소통하는 새로운 모습이다. 그것은 사회와의 융합이다.
민주당은 이점을 철저히 외면한 모습으로 국민에게 각인되었다. 민주당은 단일화를 압박했고 단일화 과정은 민주당 스스로 한계를 노출시켰다. 민주당의 욕심이 화를 자초했다. 정권교체를 위해선 민주당도 후보를 내려놓을 수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단일화에 집착하고 단일화의 결과로 인한 지지율 상승이란 에스컬레이터만 기대했다. 아름답지 못한 단일화는 변화된 새로운 모습이 결코 아니었다. 결국 이기는 후보로 비춰지지 못한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는 자신의 존재감마저 상실하며 문재인 신드롬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대선에서 문재인은 없었다. 그것이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의 문제이다. 대선 승리에 반드시 필요한 마지막 남은 5% 유권자의 매서운 눈이 이를 놓칠 리가 없다. 이들은 새 정치를 갈구하지만 구태 한 모습이나 실망스런 정치행위에 언제든 등을 돌려 안정을 희구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투표하지 않는 부동층이다.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는 이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변화하지 못한 것이 패인의 첫 번째 이유다.
그렇다면 친노의 친노식은 어떠한 문제인가. 아마도 대한민국에 친노인사들 만큼 또 그 지지층만큼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 강한 집단도 없다고 할 만큼 맹렬하다. 그 점은 매우 부러우면서도 존중되어져야 한다. 또한 친노는 그들끼리 단합과 소통이 견고하다. 그 점도 긍정적면이 있기 때문에 모든 면이 다 문제라고 탓할 수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친노의 바로 맹렬하고 강고한 집단이성이 외화되어 나타나는 모습은 매우 냉소적이다. 그것이 전체적인 정치공간 안에서 화학적 결합을 방해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정치적 유연성을 해친다. 정치라는 공간에서 매몰된 이성은 퇴로가 없는 하나의 길로만 이끈다. 때로는 지나친 권력욕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끝내 문제인 후보는 친노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친노는 더 성찰하고 변화된 모습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는 데 실패했다. 결국 극복되지 못한 공격의 대상이 되고 사냥꾼의 표적이 된 사슴이 된 채 선거는 끝났다.
지적할 수 있는 세 가지 중 마지막은 전략의 실패이다. 정권교체란 유효한 전략인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당과 문제인 후보는 무엇을 위한 정권교체인가? 이 점 이상을 국민에게 다가서는 데 부족했다. 변화된 새 정치와 민생해결을 위한 정권교체의 대안으로서 문재인 후보를 국민에게 각인시키지 못했다. 새 정치와 정치혁신은 안철수 전 후보가 가져갔고 경제민주화와 민생해결 과제는 박근혜 후보를 확실히 압도하며 차별화 하지 못했다. 박근혜 후보쪽이 오히려 민생대통령과 중산층 회복, 가계부채 해결이란 프레임과 정책으로 유권자가 550만이나 증가한 50대 층에게 현실감 있게 더욱 파고들었다. 박근혜 후보를 공격하는 데 있어서는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반해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내 것을 확실히 세우는 데는 그렇지 않았다. 법정 선거 시작부터 미래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프레임을 짜기보다 유신과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부각하는 데 치중하며 국민후보 문재인의 대선 판을 만들지는 못했다. 과거의 프레임에 묶여 쌍방이 난타를 할수록 문재인 후보가 더 이득을 보기 어렵다. 박정희 성장신화의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온건적 개혁이미지까지 형성된 콘크리트 지지율의 박근혜 후보였기에 오히려 이러한 견고한 이미지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중도층이 기대하는 신선한 전략으로 파고들었어야 하는 것이 맞다. 실상은 그러지 못했다. 더욱이 TV토론에서 이정희 변수와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에 대한 민주당의 과도한 대응은 문재인 후보를 더욱 부상시키는 데는 결과적으로 효과적이지 않았다.
국민은 미래를 기다렸다. 내일의 평안을 가져다 줄 변화된 지도자를 원했고 그러한 정권교체를 원했다. 새 정치와 정치혁신을 갈구하면서 동시에 나의 삶에 더 나아진 해답을 가져다주길 바랬다. 결과는 박근혜 후보를 찍고자 하는 더 많은 지지층이 투표장으로 갔다. 고령화 사회, 현실적 민생의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는 50대에 대해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가 이 세대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한 것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후보의 문제였고 전략의 문제였다. 또한 민주당과 친노가 보여 준 한계였다. 네 탓이 아니고 내 탓이었다. 2%가 부족했다고 자성한다면 참으로 오산이다. 2%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98%의 처절한 성찰과 변화 없이는 안 된다. 다시 말해 2%의 문제가 아니라 98%의 문제이다. 이제 무엇을 인정하고 어떠한 방법으로 문제의 답을 찾아갈지 의문이다. 그 해답마저 그 한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민주당은 더 많은 것을 계속 내놓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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