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일본에 살고 있는 프레시안 독자가 지난 22일 한-스페인 8강전을 응원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전해온 것이다. 우의수라는 이 독자가 전해온 이 글을 보면 가깝고도 먼 나라 한국과 일본이 스포츠를 통해, 아시아라는 공통분모로 화해할 수 있는 여지를 보여 주고 있다. 편집자
한국의 4강 진출 신화에 대한 세계 각국의 언론과 국민들의 반응이 참 다양합니다. 패전 당사자들은 심판의 판정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며 여론을 주도하고 있고, 한국전에서 패한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과 경쟁관계에 있는 유럽의 또 다른 국가들은 오히려 한국팀의 선전을 칭찬하면서 경쟁자들의 "심판핑계"를 힐난하고 있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월드컵을 시청하고 있습니다. 최대의 번화가인 시부야에 일본 현지법인 사무실이 있어 일본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일본인들의 열광적인 반응도 직접 체험하였습니다.
한국과 스페인의 경기가 열린 지난 22일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신오쿠보로 향했습니다. 내심 일본의 탈락을 즐거워 하면서, 한국의 유학생들과 어울려 함께 응원하고 승리의 기쁨을 함께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신오쿠보역에 도착하자, 지난 번 한국인 유학생이 일본인 승객을 구하고 사망한 사건이 벌어진 역이라고 동행인이 알려 주었습니다.
경기 시작 10분전에 역에 도착하였고, 붉은 티셔츠를 입은 한국인 유학생들을 상당히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장구와 꽹과리를 들고 있는 응원단도 승리에 대한 예감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약 5분 정도를 걸어 한국의 단체응원으로 명소가 된 대사관이란 한국 음식점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한국응원단이 너무 많아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인근의 조그만 한국식당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이미 식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좌석을 차지하고 있었고, 가족으로 보이는 한 일행은 모두가 붉은 티셔츠에 대한민국 국기를 양 볼에 붙이고 있었습니다. 남자어른과 그의 부인으로 보이는 여성,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3명의 여학생들, 그리고 남자아이 한 명. 참 보기에도 단란해 보이는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사업을 하는 가장을 따라 가족 모두가 일본에 나온 것으로 지레짐작을 하고 테이블 한 쪽에 앉았습니다.
게임은 이미 시작되었고, 식당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한국을 응원하고 함성과 탄식을 쏟아내었습니다. 그런데, 얼굴이 벌개져서 응원에 열중을 하다가, 조그만 충격을 받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태극기를 얼굴에 붙인 붉은 악마 복장의 그 가족이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시 한번 그들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 보았습니다. (한국인과는 생김새가 다른) 일본인들이 맞더군요… 그들은 제자신도 미처 준비하지 못한 붉은 티셔츠를 입고 진심으로 한국을 열심히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사업을 하면서도 일본인들이 이중적이라는 선입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저는 그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일본어에 서툴기 때문에 한국을 왜 응원하는지는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순수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안고 있는 역사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소화해 낼지가 난감하였습니다. 일본이 우리에게 했던 역사적 만행들은 결코 잊을 수는 없지만, 한민족으로서 제가 품고 있는 비수가 그들에게만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결국, 이운재 선수의 선방과 홍명보 선수의 마지막 페널티킥이 골네트를 흔들면서 우리는 모두 함께 일어나 손 뼉을 마주치면 환호 하였습니다. 신주쿠 거리로 그들과 함께 나아가 인근에서 응원하던 다른 한국사람들과 함께 승리의 뒤풀이를 하였습니다.
돌아오는 신오쿠보역에서, 일본인을 구하고 사망한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씨와 한국을 열심히 응원한 일본인 가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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