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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대화의 문, 정부가 더 적극적이고 크게 열자

[기고] 모두가 자기 몫 내려놓고, '협력 혁명'으로 가야

2019년, 올해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민주공화제'라는 정체가 역사적으로 그리고 제도적으로 시작된 지 백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3월 1일이 3·1운동 백주년이었고 이제 곧 상해임시정부 수립일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엄혹한 일제 강점기 기미년의 독립선언과 만세 소리가 만방을 울린 뒤, 그 해 상해에서 민주공화제를 표방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범한 지 백년이 됩니다. 견해가 다소 다를 수도 있겠지만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출발, 그리고 임정의 법통을 계승하는 현재의 헌법정신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우리는 대한민국 건국 백년의 시간을 맞았고, 대한민국이 백년의 공화국이 되었다고도 하겠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이 백년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한 국가의 전성기가 2백 년을 넘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고대 그리스 국가들의 전성기도 2, 3백 년이고, 로마 제정의 황금기도 약 2백 년에 그쳤습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주도했던 춘추오패의 흥망도 약 370년에 걸쳐 있고, 전국 칠웅의 부침도 약 2백 년에 걸쳐 있습니다. 몇 십 년 만에 흥하고 망한 나라도 많습니다. 한 국가가 2백 년의 번성을 지속하려면 국가갱신의 새로운 계기가 거듭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 백년의 시간은 꿈과 희망을 일구었던 '적덕'과 더불어 청산해야 할 '적폐'도 충분히 쌓인 시간입니다. 적덕을 잇고 적폐를 씻어내어 2백 년 번영국가로 나아가기에 대한민국 백년의 시점은 참으로 적절한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백년이라는 단순한 시간의 양 때문이 아니라, 백년간 우리에게 누적된 구조적인 위기와 불안의 양이 우리 국가공동체의 갱신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백년 시민이 민주공화국 백년의 역사를 딛고 새로운 백년의 미래를 열어야 할 놓쳐서는 안 될 시간을 맞았습니다. 민주공화제 백년의 시간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공공적 삶을 위한 ‘공화적 협력’에 충실했던가를 생각해 봅니다.

백년의 시간: 문명사와 세계사, 한국사의 시간

인류의 문명사는 적대와 협력의 서사가 순환했습니다. 침략과 전쟁과 억압의 서사 속에서도 인류의 유전자는 협력의 문명을 일구었습니다. '작업'을 통한 협력과 '종교'를 통한 협력에 이어, 근대 세계는 제3의 협력 문명이라고 할 수 있는 '이념 협력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시대를 거치며 이념은 더는 협력이 아니라 적대와 대결의 수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념의 시효가 만료된 후 세계질서는 냉혹한 이익의 정글로 변했습니다. 이익과 탐욕의 바다에서 이제 인류는 제4의 협력 문명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민주공화제 백년의 시간은 바로 새로운 협력 문명이 절실한 인류의 문명사적 시간과 겹쳐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는 분단의 비극을 맞았고 동아시아의 운명은 이른바 샌프란시스코체제라는 이름으로 정치·군사적 대결의 최전선이 되고 말았습니다. 동구의 붕괴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광풍이 세계를 휩쓴 이래 오늘날 동아시아에는 신 냉전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도 합니다. 거대전환의 세계질서 한가운데에서 이제 동아시아와 한반도 분단 체제는 긴박하게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문명사적 시간과 아울러 동아시아의 세계사적 시간도 바로 대한민국 백년의 시점에 닿아 있습니다.

대한민국 백년의 시간은 일제의 강점과 수탈기였던 '식민의 시대'를 기점으로 합니다. 전쟁과 분단을 겪으며 우리는 좌와 우로 나뉘어 적대하는 '이념의 시대'를 맞았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적을 이루었으나, 민주주의가 내면으로 정착되기도 전에 외환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의 거센 파도가 덮쳤습니다. 가혹한 경쟁과 이익으로 쪼개진 '욕망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시장의 욕망을 탐욕으로 부추기며 가진 자가 무소불위의 횡포를 일삼는 갑질과 가학의 문화를 자리 잡게 했습니다. 마침내 대한민국은 정치적 적대와 경제적 탐욕과 문화적 가학이 중첩된 '분열의 시대'를 맞았습니다. 고도화된 불평등이 그 중심에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백년의 질서, 백년의 미래, 협력의 시대

인류의 문명사적 요구와 동아시아의 세계사적 요구, 그리고 우리의 시대적 요구가 대한민국 백년의 시간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민주공화국 백년의 역사가 미래 백년으로 나아가는 시간에 삼중의 역사와 삼중의 시대적 요구가 겹쳐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문명사적으로 '이념협력'이 종료된 후 인류가 추구하는 제4의 협력문명은 '가치협력'으로 열어야 합니다.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는 역내의 협력과 자율을 기반으로 과거와 미래의 책임을 공유하는 '동아시아 책임과 협력의 공동체'를 구현하는 데 있습니다. 분단을 넘어서는 '한반도 협력시대'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념과 이익과 탐욕으로 갈라진 분열을 넘고, 불평등과 불공정을 넘어야 하는 시대적 과제도 연대와 협력의 유전자를 깨우는 데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인류의 문명과 동아시아의 운명과 대한민국의 미래가 바로 '협력의 시대'를 여는 데 있습니다.

협력과 연대는 몫을 나누는 데서 나옵니다. 불공정과 불평등의 골이 깊은 곳에서는 서로가 자기 몫을 움켜쥐기만 합니다. 나눔과 양보는 세상이 공정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공정한 질서는 새로운 대한민국과 협력시대를 열 근본조건입니다. 2019년 대한민국 백년의 공화국에서 협력의 빗장은 여전히 닫혀 있습니다. 독점과 독식이 일상화된 경제는 대한민국을 불평등과 불공정의 수렁으로 몰아갑니다. 대결과 적대가 일상화된 정치는 대한민국의 희망을 지웁니다. 갑질과 가학이 일상화된 문화는 대한민국을 증오의 나라로 만듭니다. 대결의 정치와 불공정 경제와 증오의 문화가 나라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이번 정부와 우리 시대는 정치와 경제와 문화의 발목을 잡는 바로 이 삼중의 늪에서 대한민국을 건져 올려야 할 무거운 책무를 지고 있습니다. 불평등과 좌절과 증오의 계곡을 빠져나와야 할 시간입니다. 기업과 국가만 성장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성장하는 나라,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포용국가를 향한 위대한 협력시대의 빗장을 과감하게 열어젖힐 때입니다. 백년 공화국의 백년 미래를 열어야 할 엄중한 책무가 우리 시대에 있습니다.

대한민국 미래 백년은 이번 정부의 성패에서 시작됩니다. 보수정부든 진보정부든 국민이 선택한 정부는 성공해야 합니다. 게다가 두 번의 정부가 남긴 파탄의 상처가 크고도 깊습니다. 이번 정부의 성패는 한 정권의 성패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 정부의 성패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정부와 우리 시대의 성공은 정파를 뛰어넘는 과제이고 대한민국 백년의 미래가 걸린 과제입니다. 이 엄중하고도 절실한 시대과제의 실현을 위해 정부는 더 보강되고 더 정교한 정책설계를 갖추어야 합니다. 더 확장된 정책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합니다. 더 진화한 정책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백년의 공화국, 백년의 시민이 촛불정신을 잇는 조용하고도 멈추지 않는 협력혁명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백년의 미래와 외부협력

대한민국 백년 시민이 백년의 미래를 개척하는 길은 '위대한 협력시대'를 여는 데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위대한 협력시대는 '제도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변혁의 과정 없이 실현될 수 없습니다. 새로운 협력의 질서를 향한 제도혁명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불평등과 적대와 증오의 세상이 아니라 공정과 포용과 협력의 시대를 열어주기 위해서는 변화와 혁신의 고통을 감내하는 과감한 ‘협력혁명’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위대한 협력시대는 두 방향의 협력혁명으로 추구되어야 합니다. 한 방향은 외부를 향한 혁명이고 다른 한 방향은 내부를 향한 혁명입니다. 외부혁명은 무엇보다도 지속가능한 인류와 지속가능한 동아시아와 지속가능한 한반도의 질서를 만드는 일입니다. 지속가능한 인류의 조건은 평화의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가치협력의 문명을 구축하는 데 있습니다. '평화협력'이 지속가능한 인류를 위한 문명사적 조건이자 과제입니다. 지속가능한 동아시아의 조건은 동아시아의 대결과 분열을 배태하고 있는 역사와 현실에 대한 책임의 가치를 공유하는 데 있습니다. '책임협력'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동아시아의 세계사적 조건이자 과제입니다. 지속가능한 한반도의 질서는 분단체제가 만든 민족적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화해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습니다. '화해협력'이 지속가능한 한반도의 조건이자 과제입니다.

평화협력이 지구적 숙제라면 동아시아의 숙제는 평화협력과 책임협력을 이 지역에서 구현하는 데 있습니다. 나아가 한반도의 숙제는 평화와 책임과 화해의 가치를 남과 북에서 구현하는 데 있습니다. 삼중의 외부협력은 그 방향이 원심적이라야 합니다. 말하자면 협력의 질서가 외부에서 한반도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과 북이 흔들림 없는 신뢰로 구축한 한반도 화해의 질서가 동아시아 책임공동체를 만들고, 동아시아 책임의 질서가 다시 지구적 평화의 질서를 만드는 방향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화해협력과 책임협력과 평화협력으로 이어지는 삼중의 협력혁명이 원심협력을 완성합니다. 대한민국 백년시민이 나아가야 할 외부협력의 방향이 여기에 있습니다.
백년의 미래와 내부협력

대한민국의 위대한 협력시대를 여는 다른 방향은 우리 내부를 향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미래 백년이 협력의 내부질서를 구축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우리 시대가 당면한 첫 번째 발전과제는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일입니다. 둘째로는 일하는 사람들의 형평적 삶이 보장되는 노동존중과 복지기반사회를 만드는 일입니다. 셋째로는 어떤 지역에서라도 다양한 방식의 삶이 보장되는 지역기반사회를 만드는 일입니다. 이 세 가지 당면과제는 기업과 노동과 지역의 협력 없이는 이룰 수 없습니다.

새로운 성장사회와 사람과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 그리고 지역기반사회는 획기적인 협력과 연대의 기반을 갖추는 데서 현실이 됩니다. 미래 백년을 이끌 협력의 질서는 공정과 책임과 성장과 자치분권의 기반을 갖추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내부혁명이 열어야 할 문이 여기에 있습니다. 첫째, 불공정한 제도와 관행을 바로 잡는 데 모든 사회구성원이 협력하는 '공정협력'의 제도혁명을 이루어야 합니다. 둘째, 복지와 교육과 안전한 삶을 책임지는 사회적 가치와 사회적 투자에 모든 사회구성원이 협력하는 '책임협력'의 제도혁명을 이루어야 합니다. 셋째,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일자리를 만드는 일에 모든 사회구성원이 협력하는 '생산협력'과 '성장협력'의 제도혁명을 이루어야 합니다. 넷째, 공정협력과 책임협력과 성장협력이 지역균형과 자치분권의 차원에서 구현되는 데 모든 사회구성원이 협력하는 '자치분권협력'의 제도혁명을 실현해야 합니다.

공정과 책임과 성장과 자치분권을 향한 협력은 대한민국 미래 백년의 내적 결속을 다지는 일이자 포용국가의 기반입니다. 협력시대를 여는 내부협력은 구심협력이자 구심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위대한 협력시대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와 인류문명으로 나아가는 원심협력과 함께 우리 내부의 결속과 연대와 포용을 다지는 구심협력의 양방향으로 추구되어야 합니다. 위대한 협력시대는 양방향의 이중혁명으로 완성됩니다.

백년시민의 다시 꾸는 꿈

대한민국 백년시민이 이제 새로운 백년의 미래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야할 때입니다. 백 년 전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은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민족협력’에 있었습니다. 문재인 정부를 만든 촛불혁명의 정신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시민협력'에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과 시민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이제 위대한 협력시대를 여는 데 백년시민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민주공화제 백년의 역사 앞에서 이제 우리는 겸허한 마음으로 우리 국가공동체의 더 나은 공공성을 지향하는 진정한 의미의 '공화적 협력의 시대'를 떠올려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대한민국 백년시민의 새로운 출발을 선언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출범은 공화주의에 기반한 민족협력의 정치적 실천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미래 백년은 공화적 공동체, 공화적 협력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 백년은 21세기의 위대한 협력시대를 여는 진정한 의미의 공화적 협력을 향한 정치적 실천이 되어야 합니다. 백년 공화국의 국가경영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경직된 관료주의나 소수의 정치세력이 주도하는 배타적 국가경영을 넘어서야 합니다. 정당과 시민사회는 극단의 이념만 앞세우는 분열의 정치참여를 넘어서야 합니다. 공화적 협력을 지향하는 모든 사회적 자원을 가용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와 함께 하는 '포괄적 국가경영'의 시대, '최대 협력의 국가경영' 시대를 선언해야 합니다. 모든 사회영역을 포괄하고 최대협력을 이끌기 위해서 다양한 영역에 걸쳐있는 정부의 공적 기구와 시민사회를 결합해 포괄 경영과 협력 경영의 전위로 삼아야 합니다.

둘째로 시민사회에 내재된 국민적 협력의 에너지를 모아야 합니다. 일제 강점 이후 백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세계를 놀라게 한 협력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구한말 국채보상운동이 근대적 협력의 기원이었다면 일제하 독립을 위한 좌우합작과 민족협력은 외세와 대면한 국민적 협력의 근간이었습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온 국민이 은행 앞에 줄을 이었던 금모으기 운동은 우리 안에 있는 위대한 협력의 유전자를 다시 한 번 확인케 했습니다. 흰 방제복을 입은 시민의 끝없는 대열이 기름으로 범벅이 된 태안 해안의 돌멩이를 하나씩 닦았던 파노라마야말로 우리가 만든 위대하고도 생생한 협력의 역사입니다. 다시 한 번 백년 시민의 위대한 유전자를 일깨울 때입니다. 촛불혁명의 절박한 시대인식이 우리 안의 DNA를 깨우고 협력의 DNA가 제도와 정책과 문화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셋째로 시대의 벽을 뚫을 '사회적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어떤 방식이든 사회적 대화에 성공하지 않고 선진국이 된 나라는 없습니다. 대화와 협력은 자신의 몫을 조금이라도 내려놓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모든 대화의 관건은 소통의 합리성에 있고 합리적 소통은 불합리한 권위와 이익과 차별을 내려놓은 데서 출발합니다. 서로의 진정을 알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사회적 대화의 문은 열립니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사회적 대화의 문을 적극적이고도 크게 그리고 다양하게 열어야 합니다. 23년 간 매주 목요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열었다는 스웨덴 에를란데르 수상의 '목요클럽'이 대한민국 백년의 시민에게 절실합니다. 노조의 협조와 재계의 결단이 여기서 나왔고 마침내 스웨덴이라는 나라는 '국민의 집'이 되었습니다. 국민의 집은 '협력의 집'입니다. 한국형 목요클럽이 다양한 방식으로 열려 대한민국의 위대한 협력시대를 여는 신호가 되었으면 합니다.

올해는 지난 백년을 발판으로 새로운 백년의 출발을 선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우리에게 내재된 협력의 DNA를 깨우기에도 이런 기회가 없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사회적 대화와 합의의 질서로 열기에도 이만한 적기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을 누르는 백년의 무게와 백년의 기회를 단순히 회고와 추억과 기념의 낭만으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이백 년 번영국가로 가는 개혁의 물꼬가 여기에서 터지고 국가갱신의 제도가 여기서 열려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제도혁명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위대한 협력시대를 여는 외부협력과 내부협력을 성공시켜야 할 시대의 소명이 2019년을 사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오로지 '협력혁명' 만이 백년시민의 또 다른 백년의 꿈을 현실로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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