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역 인근 경의선공유지라는 철도부지에서 26번째 자치구운동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서울 곳곳에서 쫒겨난 사람들이 자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삶을 유지하면서 서로 연대해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철도 유휴부지가 대기업의 사유재산이 아니라 시민의 공간으로 유지되길 바라는 활동을 한다.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십시일반 26번째 자치구의 주민으로 기꺼이 비용을 부담해주고 있는 70여명의 도움으로 전기료나 수도요금을 납부하고 일년에 2차례 정도는 주변에서 버린 공유지의 폐기물을 처분한다. 허가절차가 불필요한 활동을 위해 공간을 나누고 음악회, 토론회, 심포지엄 등의 행사를 함께 진행해온지 3년이 넘어가고 있다.
법적으로는 국유지이고 행정적으로는 철도부지로 한국철도시설공단이 관리자인 이 공간은 원래 철도가 지나던 곳이지만 경의선 지하화에 따라 유휴부지가 되었다. 그리고 구 마포우체국 부지와 함께 특정한 대기업의 수익사업을 위해 임대가 진행 중이다. 벌써 4년이 지났지만 구 마포우체국 부지는 철제펜스가 쳐진 체 흉물로 남아 있고 그 반쪽의 공간만 시민들이 스스로 관리하고 운영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중이다. 그 사이 철길 옆 낡은 집들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 브랜드의 아파트가 들어섰다. 통상적인 단지가 아니라 시민들의 세금으로 조성된 경의선숲길을 아파트 의 경관 자산 삼아 지어진 아파트엔 각종 유명 가게들이 들어서 높아진 자산가치를 짐작케 한다.
지난 2월의 일이다. 경의선공유지에서 활동하는 활동가 한 명에게 다급한 문자가 왔다. 주말에 탄원서 주민서명을 받으러 관리단에서 사람이 왔는데, 경의선공유지의 철거와 관련해서 마포구청에서 진행하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해당 주민은 “마포구청에서 경의선숲길 근거 아파트들 관리실을 통해 탄원서 서명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열정으로 재단장이나 도와주면 좋겠다며 이런 공간이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남겼다.
해당 내용을 접하고 아주 익숙한 기시감에 빠졌다. 다른게 아니라 2017년 8월에 있었던 아현포차의 철거 과정이다. 30년 넘게 아현초등학교 담장 옆에서 포차를 운영했던 열댓개의 포차는 그 해 초에 있었던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집단 민원으로 인해 철거 위기에 놓였다. 당시 마포구청은 초등학교 근처의 포차가 위험하고 또 해당 도로를 확장할 계획이 있기 때문에 철거를 해야겠다 말했다. 그러면서도 지난 30년 동안 운영된 아현포차가 어떤 위험을 남겼는지 설명하지 못했고 확장된다는 도로의 계획도 말하지 못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그 도로는 확장되지 않았다. 당시 구청은 아파트 단지 주민들의 집단 민원에 상당히 민감한 상태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해당 아파트의 주민체육시설 개관식엔 구청장과 지역 국회의원이 참석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아현포차가 훨씬 전부터 자리잡고 있어도 새롭게 들어선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이 더 세다는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일이 다시 경의선공유지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 2월에 들었던 주민서명은 실제로 공덕더샵 관리단과 공덕마포자이 입주자대표회의의 명의로 '철도공원부지 정비 요청의 건'과 '철도공원부지 정비(문화공간 설립) 요청의 건'으로 마포구청에 접수되었다. 각각 100명과 424명의 서명이 첨부되었다. 해당 사항은 이미 행정문서공개시스템을 통해서 공개되어 있는 사항이다. 일단 경의선공유지부지가 '공원부지'가 아니라는 사소한 오류는 뒤로 하더라도, 실제 주민이 전해준 일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데 허탈감을 느꼈다.
경의선공유지에서 활동을 하면서 몇 차례 인근 주민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입주자대표회의에 있다는 사람을 비롯해서 '공원이라고 해서 분양받고 왔는데 이게 뭐냐'고 항의하는 황당한 입주민의 항의까지 받았다. 그 과정에서 매번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공간은 특정 아파트 주민들의 공간이 아니므로 이 공간을 어떻게 운영하면 좋을지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 때마다 이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그것은 지역주민인 자신들이 결정할 문제라는 것이다. 자신들은 공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 공원을 짓는데 입주민들이 조성비를 낼 것이냐고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서울시가 지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보이는 태도에 서울에서 집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권력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경의선공유지에서 활동하는 3년 동안, '민원이 들어오면 공연을 멈춘다'는 황당한 공원 사용 기준을 알게 되었고 정확한 법규나 근거도 없이 '민원이 들어왔으니 어쩔 수 없다'는 구청 공무원과 경찰을 마주했다. 이들에게 '민원의 적절성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나'라는 질문의 답은 들을 수 없었고 '민원이라 하더라도 공무라면 관련 규정이나 근거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걸 따지는 것이 공무집행 방해라는 황당한 답을 듣기도 했다. 소음이 문제라면 적절한 기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은 없었다. 실제로 '광장에서 기침을 해도 민원이 들어오면 단속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럴 수 밖에 없다는 답을 들기도 했으니, 정말 민원의 힘은 크구나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문제는 이런 민원 구조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원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는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경의선공유지에 대한 민원은 법정민원, 질의민원, 건의민원이 아니라 기타민원에 속하는 것으로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불편사항에 대하여 알리는 등 행정기관에 특정한 행위를 요구하는 민원'에 해당된다. 그리고 제21조에서는 민원처리의 예외로서 '사인 간의 권리관계 또는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사항'을 정함으로서 사인 간의 갈등에 행정민원이 악용되는 것을 막고 있다. 노점이라 하더라도 그 행위는 행정관청과 노점상의 관계이거나 혹은 노점상과 주민이라 불리는 사인 간의 관계에 해당한다.
그런데 행정관청에 특정인에 대한 '강제집행'을 요구하는데 민원이 활용되고 있다. 특히 5인 이상의 동일한 사항에 대한 민원을 다수인관련민원이라고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데, 아파트 단지의 특징 상 다수인관련민원이 형성되기 쉽다. 즉, 행정기관이 행정업무에 대한 것이 아니라 특정인에 대한 행정조치를 하는데 민원을 활용하는 빈도가 커지면 아파트 단지와 같이 동일한 이해관계를 갖기 쉬운 주민들이 민원의 힘을 독점적으로 이용할 개연성이 커진다. 그리고 이를 3년 전 아현포차의 철거에서, 그리고 지금 경의선공유지에서 실제로 확인하고 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어떤 민원이 수용되고 어떤 민원이 수용되지 않는지를 규정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 지난 2월에 아파트 주민이 알려준 것과 같이 구청이 집단민원을 활용한다면, 민원이야 말로 행정이 초법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지역의 행정권력과 일부 주민들의 담합이면 특정인을 지역에서 몰아내는 것도 가능해진다. 민원이라는 것이 행정권력의 근거가 되고 이를 집행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면 우리 사회는 모든 이들의 권리가 평등한 사회가 아니라 아파트라고 부르는 집합적인 자산을 지닌 이들이 더욱 높은 권리를 지니는 신분제 사회가 되는 셈이다. 실제로 재개발 과정에서 진행되는 피해주민들의 집단민원이 어떻게 처리되었는가를 생각하면, 이런 민원의 불평등이 가지는 힘을 느낄 수 있다.
공개된 행정문서의 목록을 보면 마포구청은 지난 5월 7일 경의성공유지를 점유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기했다. 가처분신청은 행정대집행을 하기 위한 사전절차다. 주민들의 민원에서 시작해서 법원에 가처분신청까지 마포구청의 행정처리를 보면 그 속도나 반응이 너무 빨라 현기증이 일 정도다. 문제는 이런 과정이 민원의 결과로 타당하냐는 것이다. 경의선공유지는 철도부지이고 관리청인 한국철도시설공단이 법적인 당사자다. 마포구청은 그야말로 우연히 관할 부지의 행정청일 뿐이다. 비슷하게 아무리 지역주민이라 하더라도 아파트 부지와 전혀 연관이 없는 공간의 사용에 대해 배타적인 권리를 요구할 수 없다. 더더구나 누군가를 사라지게 하는 청원이 타당할리 없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세상에 누군가 사라지라는 민원이라니, 게다가 이를 받아들고 시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구청이라니, 정말 할 말이 없어지는 민원 만능의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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