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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하찮게 여기는 회사에 질 수 없습니다

[기고] 일진다이아몬드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

일진다이아몬드는 공업용 합성 다이아몬드 시장에서 전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는 국내 유수의 전도유망한 기업이다. 수년 전 내수 부진과 인력난이 겹쳐 충북 음성지역 제조업계 전반에 한파가 몰아닥쳤을 때에도 일진다이아몬드만큼은 불황을 모를 정도였다. 그만큼 명성과 내실을 겸비한 기업으로 음성지역에서는 비교적 평판 좋은 회사였다.

나 역시 회사의 이런 긍정적 이미지에 매료돼 2010년 입사를 지원했다. 입사 후 한동안은 듣던 대로 괜찮은 회사라는 느낌을 갖기에 충분했다. 회사는 현장 동료들과 소통하며 우애를 다질 수 있는 자리를 틈틈이 제공했고, 그 덕분에 우리들은 열악한 조건에서 고되게 일하면서도 한 가족처럼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 언제까지고 이 회사를 다니는 게 마냥 즐겁고 행복할 것만 같았다.

삭제된 시간들


그런데, 5년 전 새로운 공장장이 오면서 공장에 감돌던 부드럽고 따스한 분위기는 일순 얼어붙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던 예전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매월 생일자를 축하하고 격려하는 자리가 돌연 사라지더니, 생일자에게 지급되던 몇 만 원 안 되는 축하금도 한동안 지급되지 않았다. 한 해 동안 땀 흘려 일한 노동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달하는 연말 송년회도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었다. 매년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한 데 어우러지며 김치를 담가 나누어 먹는 김장날도 없어졌다.

큰돈이 들어가는 행사도 아니었는데 회사가 어렵다는 핑계로 1년 365일 중 마음껏 웃고 떠들던 몇 안 되는 나날들이 우리들의 시간표에서 하나하나 삭제되었다.

언젠가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회사가 내 집 마련의 꿈을 돕겠다며 퇴직금 중간정산을 약속했고, 이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노동자들은 앞다퉈 전세금 대출 신청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가 언제 그랬냐는 듯 퇴직금 중간정산 약속을 번복한 것이다.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당혹감을 넘어 분노가 차올랐다.

ⓒ일진다이아몬드지회

빼앗긴 임금

노동자들에게 제공하던 사소한 복리후생만 축소된 게 아니었다. 회사는 노동자들의 가느다란 월급봉투 두께마저 줄일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다.

2015년까지 일진다이아몬드 사측은 노동자들의 기본급을 낮게 책정하는 대신 정기상여금 600%를 얹어 부족한 임금을 맞춰왔다. 그런데, 2016년과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상여금 600% 중 400%를 기본급과 고정수당으로 일방 변경해 그나마 오른 최저임금 인상분마저 가로챈 것이다. 임금은 이미 2014년부터 5년 내내 동결상태였다.

치솟는 물가에도 수년째 임금이 오르지 않으니, 결국 근속 년수 1년차 노동자나 10년차 노동자나 너 나 할 것 없이 전부 최저시급으로 하향평준화 되었다. 회사는 매년 눈부신 매출과 순이익을 기록했지만, 정작 성장에 기여한 노동자들의 지갑과 통장은 항상 빈털터리였다.

'직원을 가족처럼 대한다'는 회사는 지난 5년 새 칼만 안 들었다 뿐이지 순 '날강도'로 돌변했다.

짓밟힌 존엄

임금과 복리후생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인권과 생명권 또한 바닥 신세를 면치 못했다. 다음은 나와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동료의 이야기다.

2018년 1월 어느 날, 작업 현장에서 '쾅'하는 폭발음이 들렸다. 급성독성물질이자 관리대상유해물질인 불산이 누출된 것이다. 당장 작업자의 신체 피해를 막고 유해물질을 저감할 수 있는 안전장치나 보호구가 현장에는 없었기에, 거기 있었던 나와 동료는 그 자리로부터 황급히 벗어나는 것 말고는 별 수가 없었다. 다행히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때 나와 함께 있었던 동료는 귀가 후 수면 중 호흡이상과 가슴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다음날 그는 회사에 출근해 관리자에게 정밀검진을 신청했다. 하지만, 사측 관리자 어느 누구도 그에게 괜찮냐는 안부 인사 한 마디도 건네지 않더라고 한다. 오히려 사고를 축소·은폐하기에만 급급했고, 심지어 불산 누출 사고에 책임이 있는 연구소 관리자는 이렇게까지 말했다고 한다.

"병원은 뭐 하러 갔느냐?"

"여기 일이 맞지 않는 거 아니냐?"

"다른 부서로 보내겠다."

비단 내가 일하는 현장뿐만 아니라, 일진다이아몬드 음성공장에는 황산, 염산, 질산 등 화학물질이 도처에 가득하다. 반면,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시설 및 보호장구는 턱없이 부족하다. 수년째 사측에 시설 개선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행 방안은 먼 산 메아리 울려 퍼지듯 아득하고 기약 없는 상황이다.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

어쩌면,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지금 우리가 40일 넘게 전면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빼앗긴 임금과 상여금을 원상회복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 인간답게 존중받을 권리를 반드시 쟁취하고 싶다.

비록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힘든 여정이지만,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조합원들은 이 투쟁 속에서 오래도록 맛보지 못했던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이 노동자가 존중받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오르막길 어디쯤이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애초 이 싸움을 중도 포기할 생각도 없었거니와, 포기하기엔 이미 멀리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인간다운 삶'을 찾아 노동조합 깃발을 올리고 떠난 여정, 고달픈 가시밭길이지만 지금껏 우리는 단 한 사람의 이탈자도 없이 한 몸처럼 걸어왔다. 일진다이아몬드지회가 흔들림 없이 앞만 바라보며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응원과 연대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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