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장관의 사퇴로 들끓었던 한 정국이 매듭됐다. 그러나 급작스러운 사퇴로 하나의 문장이 온전하게 마침표를 찍지 않고, 문장의 한가운데를 예리하게 자르듯이 매듭지어진 것은 당혹스럽다. 사퇴 당일부터 언론들은 왜 사퇴했는지, 사퇴 과정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두고 마치 아는 것처럼 또 요설을 부린다. 지겹다. 당분간은 이런 요설에서 눈을 거둔다. 다만 잘라진 문장이 원래는 검찰개혁이라는 메시지로 연결된 것이었고, 둘을 하나로 잇는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만 기억하자.
"역사에는 어느 한 편을 들 수밖에 없는 때가 있다."
프랑스 정치인 장 조레스의 말이다. 장 조레스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활동한 사회당 소속 정치인이다. 조레스의 정치 일생은 온전히 약자들을 위한 사회개혁과 제1차 세계대전을 막는데 바쳐졌다. 당시 보수 일색이었던 프랑스 언론들은 조레스가 약자들의 목소리를 낼 때는 과격한 노동자들 편에 선다고 몰아세웠고, 전쟁 반대를 외칠 땐 독일편에 섰다고 공격했다. 이런 공격을 받을 때마다 조레스 "지금은 노동자가 옳다", "전쟁보다는 평화가 옳다"고 외쳤다. 단호한 외침이 너무 치열해서였을까, 1차 대전 발발 며칠을 앞두고 조레스는 호전적 우익청년이 쏜 총탄에 암살당한다. 그의 시신은 현재 팡테옹에 잠들어 있다.
선악에 바탕한 단호한 세계관은 위험하다. 역사란 안에서 보든 밖에서 보든 대체로 모호함 속에 자신을 감추고 있어 옳고 그름의 판단을 쉽사리 허용치 않기 때문이다. 큰 격변이 없고, 민주화가 진행된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판단이 가능할 때가 있다. 간혹 사회의 제 세력들이 각축하면서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순간, 이기느냐 지느냐의 승부를 놓고 사력을 다해 싸우는 그 때. 그때는 각자가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다 드러내게 마련이다. 이 때가 바로 모호함 속에 감추어졌던 제 세력들의 적나라한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소위 사회 전체가 발가벗겨지고 어쩔 수 없이 감추고 싶었던 도덕적 세계관까지도 드러낸다.
'조국정국', 보다 정확하게 규정하자면 문재인 정부 흔들기가 도를 넘던 지난 2개월 남짓, 그 혼란 속에서 오히려 안개가 갇혔다. 모호해서 쉽게 드러나지 않던 선악적 대비가 한순간 선명해졌다. 혹자는 그 속에서 풀어야 할 수 많은 사회적 숙제와 고민거리들, 진보의 이중적 민낯을 보았다고 말했다. 이게 전부일까? 그렇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내가 본 것은 혹세무민에 다름없는 거짓말들, 저주를 담은 독설들, 잔인함, 기득권의 뻔뻔스러움, 악착스러움 같은 것들, 다시 말해 '악'이라는 말을 앞에 붙이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다. 그래서 화나고 치 떨린다.
어느 시대에나 한쪽을 완전한 악으로 끌어내리거나, 반대로 다른 한쪽을 완전한 선으로 추켜올리는 건 불가능하다. 그건 조레스의 시대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럼에도 한 쪽 편을 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공동체에 함께 살기 때문이다. 공동체적 세계는 선택이 아니고 당위고, 도덕적 가치관을 근거로만 성립된다. 바로 이 도덕적 가치관 때문에 "역사에는 어느 한 편을 들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다"는 말이 성립한다. 어느 쪽이든 단지 하나의 진영에 불과하다는 말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2016년의 촛불은 문재인 정부에 권력을 맡겼지만, 당시 지배적 헤게모니는 보수가 움켜쥐고 있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처음부터 자갈길에서 역사의 수레를 끌어야 할 운명이었다. 자갈길에서는 아무리 능숙하게 끌어도 수레는 덜컹거리게 마련이다. 그런데다 끄는 힘이 촛불이 요구했던 치열함에 한참 모자랐다. 야당도 뒤에서 밀겠다고 했지만 미는 척 잡아당겼을 뿐이다. 미는 척 뒤에서 당기는 자들보다는 힘이 약해도 앞에서 끄는 자가 그래도 옳다고 할 수밖에 없다.
살아있는 권력. 수 없이 들었던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살아 있는 권력인가? 조국 장관이 살아 있는 권력이었나? 가소로운 얘기다. 우리는 봤다. 지금도 똑똑하게 보고 있다. 누가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권력인지. 불법을 저질러 놓고도 국민들 보는 앞에서 "우리에게는 법을 집행해서는 안 된다"고 감히 말하는 자, 대통령의 인사권조차도 비웃듯이 호기롭게 권력을 휘두르는 자, 언론자유에 거짓말할 자유라도 있다는 듯이 거짓보도를 쏟아내며 여론몰이를 하는 언론들,,, 이들이야말로 살아 있는 권력이 아닌가.
'꼭 조국이어야 하나'는 말도 그렇다. 세상에 꼭 그 사람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예를 들어 황교안 대표에게도 의혹은 따라다니는데, '황교안 아니면 야당에 사람 없나'고 물으면 뭐라 답할 것인가.
바둑에 '흔들기'라는 용어가 있다. 형세가 불리한 쪽이 판을 역전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도발적인 수를 남발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총선은 다가오는데 자신들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필연적으로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내릴 필요가 절박해진 자들, 필사적으로 개혁을 막아 이미 움켜 쥔 권력을 안 놓으려는 자들, 여론을 움직일 힘은 있지만 여전히 잃어버린 '밤의 대통령'이라는 옛 향수가 그리운 자들. 조국 정국은 이런 집단들이 한통속이 돼 벌인 흔들기의 절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온갖 거짓과 악행들이 난무했지만 국민들 귀를 온전히 뚫지 못했고, 눈을 다 가리지 못했다. 참다못한 국민들이 다시 촛불 치켜들었다. 촛불이 다시 횃불처럼 타오르던 그 순간 조국정국은 매듭됐다.
조국 이후가 시작됐다. 조국 낙마는 저들을 고무시켰다. 그리하여 흔들기는 계속된다. 더 억센 힘으로. 여의도에서든 광장에서든 다른 어느 곳에서든... 이건 양쪽 간 진영 싸움이 아니다. 진영은 단지 이쪽저쪽을 가르는 말일 뿐이다. 우리는 더 분명한 기준으로 말해야 한다. 모든 게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현실을 앞두고 진영을 말하는 건 그냥 못 본 채하자는 얘기일 뿐이다.
다시 강조하자면 이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역사의 수레를 한발이라도 더 앞으로 끌고 나가려는 자와, 모든 개혁을 거부하고 수레를 엎어버리려는 자들 간 싸움이다. 나는, 비틀거리면서라도 수레를 앞으로 끌고 가려는 자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 왜? 세상은 바뀌어야 하니까. 그리고 거짓에 능통한 자들에게 속고 싶지 않으니까.
조국 장관 사퇴 직후 나경원 의원은 "사필귀정" 운운했다. 그러나 시간은 남아 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총선이 다가오는 앞으로는 누구의 시간도 아닌 국민의 시간이 될 것이다. 어쩌면 머지않아 자신이 뱉은 사필귀정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나경원 의원이 다시금 깨닫게 될지 모르겠다. 지금은 딱 이 한마디로 족하다. '사즉생'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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