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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을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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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을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는?"

안병진의 X파일 이야기<2> 히스테리의 정치학

***오페라의 유령의 편지 정치**

올해 여름 최고의 문화 공연이 무엇이었느냐고 누가 물으면 필자는 단연코 오페라의 유령을 꼽는 데에 주저하지 않겠다. 비록 크리스틴 역할을 맡은 배우는 아쉬움이 많지만 유령의 신들린 연기는 마치 천상의 공연을 보는 것 같은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이러한 천상의 공연을 보면서도 극에 몰입하지 못하고 속된 지상의 정치를 떠올리는 것은 아무래도 정치학 교수라는 본인의 직업의식의 발로인 것 같다.

극 중에 보면 형체를 드러내지 않은 유령이 자주 편지로 오페라 극장의 향후 비전과 개혁방안을 지시해 극장 관계자들을 당황스럽고 두렵게 하는 부분이 나온다. 사회의 비주류로서 소외받아 온 유령이 졸부 출신 극장주나 위선적 귀족 등 기득권자들에 대해 갖는 분노와 적대감도 그렇지만 이러한 편지 정치의 방식은 아무래도 노무현 대통령의 얼마 전 행보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이들 귀족들을 두렵게 하는 근본적 이유는 도대체 이 유령의 의도와 욕망이 무엇인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현재 한나라당의 동요의 핵심도 노무현 대통령의 진정한 의도와 욕망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더구나 과거 노대통령의 의도에 대한 사소한 오판이 탄핵정국에서의 치명적 자해 행위를 야기한 외상이 있다는 점에서 불안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안한 상황의 심리 기제에 대해서는 동구의 탁월한 심리학자인 지젝이 흥미로운 설명을 제기한 바 있다. 그는 오랜 기간 박해 받아 온 유대인에 대한 인종주의적 차별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유대인이 의심받는 것은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들의 의도와 욕망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에게 던진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 속에 함축된 몰이해의 느낌을 일소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감춰진 음모에 의거하여 그들의 행위를 설명하는 시나리오를 창조한다. '그들이 실제 원하는 것은 이것(우리의 돈을 전부 갖는 것, 세계를 장악하는 것)이다!'(마이어스 2003, 178)"

비슷한 방식으로 노대통령의 의도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을 반복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히스테리와 음모적 시나리오 가설은 어쩌면 노대통령의 의도와 욕망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데에서 오는 불안감에서, 이를 메워나가는 편집증적 경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노 대통령의 무의식을 분석한 정신과 의사가 국제관계에도 필요한 이유**

8월30일자 한겨레신문에는 언제나 예리한 정신분석을 수행해 온 정혜신 씨의 '노대통령 무의식 분석' 칼럼이 실렸다. 정신분석을 당하는 당사자들은 별로 유쾌하지 않을 수 있지만 사실 한국 정치에서 이러한 분석의 안경은 낯익고 적실성이 높은 것이다. 단적으로 과거 YS의 많은 정치 행위는 필자 같은 학자들이 주로 '과학적'이라고 선호하는 '합리적 선택 행위 이론'보다는 그저 DJ에 대한 질투와 증오로 쉽게 설명될 수 있었다.

하지만 국제관계론에 들어서면 사정이 180도 달라진다. 아직도 한국에는 학자들이건 미디어나 일반 독자들이건 정신분석의 안경을 다소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한국에는 특히 미디어를 중심으로 합리적 계산에 의한 음모론이란 안경이 지나치게 만연하고 있다. 필자가 앞으로 이 연재에서나 향후 출간될 책('케네디 비밀테이프 속으로', 푸른길)에서 핵심적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정책결정자들의 무의식적 인식틀, 편견들에 대한 심층적 이해의 중요성이다. 이는 이후 연재에서 설명하겠지만 당면한 한반도 위기에서 미국과 북한 지도부의 행위를 정확히 이해하고 위기를 해소해 가는 데 대단히 중요한 안경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케네디 이해의 실천적 중요성 : 뮌헨 외상 증후군**

필자는 지난 1회 연재에서 케네디의 비밀 테이프를 이 잡듯이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케네디의 테이프는 미국이 이러한 낮선 타자들의 돌발적 행위에 직면할 때 불안감을 메꾸기 위해 동원하는 인식틀의 내용을 생생히 보여준다. 정혜신씨 같은 정신과 의사들에게는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귀중한 임상 사례인 셈이다.

1962년 10월 16일, 그 악몽 같던 전쟁 위기가 시작되는 백악관으로 잠시 가보자. 그렇지 않아도 조간신문 톱 기사가 유약한 케네디를 비판하는 기사로 장식되어 있던 참에, 미국의 앞마당인 쿠바 섬에서 발견된 소련 핵 미사일은 케네디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는 이러한 핵미사일 반입이 향후 미-소간 주요 전략 대결지인 베를린을 장악하기 위한 소련의 일 단계 포석이라고 이해했다. 사실 비밀 테이프 녹취록을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은 케네디의 분석이 나온다.

"(…) 그렇게 하고 나서 (소련은) 공군기지를 거기(쿠바)에 건설하고 더욱 더 강화해갈 것이다. (…) 그렇게 하고 나서 그들은 베를린에서 우리를 쥐어짜기 시작할 것이다."(1997, 90)

하지만 이는 소련이라는 타자의 동기가 무엇인지가 불확실하고 불안한 상황에서 케네디 행정부 인사들의 머리 속을 지배하는 과거 외상적 기억에 기초한 '환상'이 작동한 것일 뿐이다. 케네디 행정부 인사들에게 있어 가장 지배적인 외상은 과거 2차대전을 촉발시킨 히틀러에게 속아 체결한 유화적인 뮌헨조약의 상처였다. 이는 당시 패권주의적 팽창 정책을 추구했던 히틀러를 영국의 체임벌린 수상 등이 뮌헨조약에서의 일부 영토 할애로 히틀러의 확장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 대실책을 가리킨다. 당시 체임벌린은 히틀러를 만나고 나서 그의 교언영색에 속아 '자신의 말을 지킬 줄 아는 신뢰할만한 인물'이라고 주변에 떠벌렸다.

이 외상적 기억은 냉전 시기 미국 정치인들의 외교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마치 냉전 이후 9.11 테러의 외상적 기억이 시기 전체를 규정짓는 것과 같은 위상을 지닌다. 이 뮌헨조약 이후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이 또 다른 체임벌린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악몽처럼 떠올리고 있었다. 특히 케네디 등의 리버럴처럼 국가안보 사안에서 공화당보다 유연한 입장을 취하는 정치인들에게 있어서 뮌헨의 낙인은 정치 생명의 종말을 의미했다. 개인사적으로도 케네디는 그의 아버지가 뮌헨조약 당시 영국 대사로 있으면서 체임벌린의 입장을 지지했던 치명적인 낙인을 간직하고 있었다. 실제 케네디에 의해 국무부 부장관으로 임명된 조지 볼(George Ball)은 행정부 참여 이전에 케네디의 사상 검증을 먼저 해보려고 했을 정도였다.(May and Zelikow 1997, 2)

***케네디와 부시의 공통된 무의식: 베드윈 전설 신드롬**

케네디의 냉전 시기 뮌헨 악몽은 9.11 테러 이후 업데이트된 버전으로 다시 미국 엘리트들의 무의식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강경한 네오콘을 경멸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토마스 프리드만이라는 뉴욕타임스 컬럼리스트의 '베드윈 족의 전설' 소개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이 전설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갖는다. 한 나이 든 족장이 회춘을 위해 칠면조를 사서 매일 영양분을 주고 정성껏 키었다. 그런데 어느날 누군가 이 칠면조를 훔쳐갔기에 족장은 아들을 불러 "우리는 이제 큰 위험에 처했다"고 말한다. 아들은 호들갑 떠는 아버지를 무시하며 방관하는 사이에 누군가 이제는 낙타까지 훔쳐갔다. 이에 아버지는 "나의 칠면조를 찾아오라"고 다시 지시하지만 아들은 여전히 방관한다. 결국 몇 주 뒤 그 아들의 딸은 강간을 당했다. 이때 족장은 아들에게 "모든 것은 칠면조 때문이다. 우리의 칠면조를 훔쳐갈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을 때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한탄한다.

비단 네오콘뿐 아니라 현재 미국의 많은 엘리트들이 군사적 무력시위, 해상봉쇄 등에 의한 강압적 외교나 더 나아가 소형 핵무기 개발 등 '충격과 공포' 전략을 선호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전설을 뼈 속 깊이 믿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러니하게 프리드만이 위의 칼럼에서 지도자의 유약함을 우려한 충정과는 반대로 미국의 지도자들은 베드윈의 전설의 교훈을 망각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이 전설에 너무 경도되어서 오히려 문제가 악화된다고 지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프리드만의 걱정과 달리 과거 1962년 케네디나 1994년 제2의 케네디인 클린턴 같은 리버럴들의 선제공습 필요성에의 집착은 이들이 한시도 베드윈의 전설을 잊은 적이 없음을 시사한다.

최근 부시 대통령 및 특히 그 주변의 네오콘들은 베드윈 전설에서 한발 더 나아가 닉슨이 베트남전 전략에 대해 설명하며 말한 '광인 이론(mad man theory)'의 맹신자들에 더 가깝다. 닉슨의 논지는 쉽게 말해 미국이 미친 사람처럼 보여 무슨 짓을 할지 몰라야 아무도 미국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 해소 이후 냉전까지 무너지면서 많은 미국의 전문가들이 이제 위기관리론은 시들해질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하지만 정반대로 위기관리론은 현재 전성기를 맞고 있다. 위의 프리드만의 또 다른 컬럼 제목처럼 미국은 "우리는 더 정신 나간 사람들이다(crazier than you)"라고 공언하며 위기를 관리하고자 한다. 과연 역사는 정말 진보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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