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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무능한 관료들이 우리 과학기술 고사시켜"

[기고] 과학기술 개발, 언제까지 예산 타령인가

오랫동안 과학기술 현장에서 연구개발에 전념해온 한 연구자가 최근 일부 관료들의 연구개발 예산 증액 요구에 대해 통렬한 비판의 목소리를 보내왔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문제는 예산의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 예산을 운용하는 관료들의 무지함과 무책임에서 비롯된 '총체적 비효율'이 문제라는 것이다.

18일 오명 과학기술부 장관이 부총리에 취임함으로써, 19일부터 과학기술부는 명실상부한 부총리 부처로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하게 됐다. 과기부와 오명 과기부총리가 우선적으로 해결할 일이 무엇인지를 짚어주는 글이라 판단돼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과학기술 개발, 언제까지 예산 타령인가**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 보고서가 발표된 탓인지 우리나라 연구개발 부처의 수장들이 나서서 연구 개발 예산을 증액하라고 난리다. 우리나라 국가 연구개발비가 미국 자동차 회사들의 연구개발비보다 적다는 식의 단순 비교 논리로 우리나라 예산의 연구 개발비가 적다고 증액해 달라는 것이다. 이런 식의 논리는 올해 우리나라 정부 예산 중 과학기술 연구개발비가 7조인데 비해 우리나라의 가장 큰 전자 회사의 연구개발비가 5조에 육박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 허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의 연구개발은 단순 비교 대상이 아니다.

이렇게 무리한 논리를 들이대면서까지 정부의 연구개발 수장들이 연구개발비 증액을 외치는 데는 뭔가 배경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배경을 살펴보면 군색할 뿐이어서 한 마디 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국가 연구개발 능력을 증대하고자 하는 데에는 누구도 반대할 리 없다. 하지만 아무도 지금까지의 정부 연구 예산 투자가 효율적으로 집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한 바 없다.

우리나라 정부의 과학기술 예산은 1990년대 초반부터 급격히 증가하여 2002년 기준으로 세계 7~8위권이며, 영국의 전체 연구개발 예산과 비슷한 수준이다. 특히 같은 해 GDP 대비 예산 지출은 2.92%로 세계 4위권이다. 이 정도의 연구개발 예산 투자 수준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수준이 세계 상위권인지, 아니 상위권을 바라보고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내년 우리나라는 어려운 경제 여건에도 불구하고 연구개발 예산을 더욱 늘려 7조 5000억 수준으로 증액하기로 이미 결정했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는 가히 이공계의 천국이란 소리를 들어도 마땅할 터인데 어쩐 일인지 연구 현장에서의 느낌은 정반대이다.

***"비전과 전략 세워야 할 청와대, '언론 플레이'에만 열중해"**

가장 먼저 지적되어야 할 점은 도대체 우리나라 과학기술 개발에 장기적인 전략이 없다는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을 사용하는 연구개발 분야는 무엇보다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이 중요하다.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이 먼저 제시된 후에, 이를 기초로 개별 연구자나 산업체의 연구 전략이 수립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국가 연구개발 수준이 낮은 단계에서는 이런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가 그 동안 주먹구구식 연구개발이 통했던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는 이 단계를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에 대한 논의가 없는 것은 매우 한심한 상황이다. 기껏해야 성장 동력 산업이라고 추려 놓은 것도 아무런 기초 자료 없이 그냥 짜깁기 한 수준에 불과하다. 성장 동력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만 정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아무런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과학고 학생들의 주말 과제 수준 정도를 성장 동력 산업이라고 대대적으로 떠드는 게 우리 과학기술의 현실이다.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한다는 것은 산업계와 학계로부터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해 매우 신중하게 결정할 중요한 사항이다. 현재 대통령 직속 기구인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과학기술자문회의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정부 출범 2년이 다 되는 지금도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보고서 한 건도 없이 '언론 플레이'에만 열중하고 있다. 그나마 나온 자료도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보고서를 짜깁기한 수준에 불과하다. 심지어 정부에서 이 분야의 가장 핵심적인 행정·조정 역할을 수행해야 할 인물이 유명 논문에 저자로 들어가면서 촉발된 도덕성 논란은 국가 연구 개발의 장기적인 전략과 같은 염불에는 관심 없이 잿밥에만 관심을 두는 현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지하고 조급한 관료들, 실적만 앞세워 과학기술 고사시켜"**

둘째, 이러한 장기 전략의 부재는 관료들의 조급함을 자극해 실적 위주, 특히 기술 개발 분야로 연구개발을 몰고 간다. 급격한 발달로 인해 과학과 기술의 구분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기술 없는 과학은 가능하지만 과학 없는 기술은 불가능하다는 기본 명제 조차 팽개친 채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기초 과학 기반이 없는 기술 개발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이렇게 명확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것은 관료들의 무지와 책임 회피일 뿐이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이 분야의 가장 전문적인 집단인 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EP)의 전문위원조차 과학과 기술을 분간하지 못하는 현실은 답답함을 넘어서 안타깝기까지 하다.

특히 기술 개발은 산업체가 이끌어가고 국가는 기초과학에 투자한다는 것은 모든 나라 과학기술 개발의 기본 정책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기초 과학 투자는 전체 예산의 18% 수준에 머물고 있고 이나마 근거가 불확실하다.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은 정부의 순수 기초 과학 투자가 예산의 10% 미만으로 추산하고 있다.

기초 과학 토대가 마련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주장하는 핵심 원천 기술 (core technology) 개발을 주장하는 것은 마치 구구단도 못하는 학생에게 미적분을 풀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산자부가 주관한 부품소재 개발 산업은 오래전에 시작해 지난해 (2003년) 118억이 투자되었고, 앞으로 10년간 2조가 더 투자될 예정이다. 하지만 부품소재의 대외의존도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관료들이 눈만 뜨면 주장하는 핵심 원천 기술이 개발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전문가들은 단언컨대 한 사람도 없다.

***"유신 이후 성과주의에 기생해 성장한 관료주의"**

기초 과학에 대한 정부의 외면은 유신 정권에서 시작한 성장 제일주의가 그 뿌리이다. 단기적인 기술 개발에 매달리다보니 기초 과학은 점점 설 자리가 없고 정부는 점점 조급해 지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기생해 성장한 것이 관료주의이다.

국가 연구개발 사업의 상위 단계, 즉 정책·기획 단계에서 우리나라처럼 현장 과학기술자가 철저히 도외시되는 나라는 없으며, 이는 현실성 없는 정책이 남발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로 작용한다.

결국 과학기술의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관료들이 모든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은 과학기술 개발에 있어 언론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야기한다. 이제 관료뿐만 아니라 심지어 과학자들까지 '언론 플레이'에 매달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요즈음 정부에서 주도하는 나노기술(NT) 개발의 경우, 미국은 내년 국립보건원(NIH) 전체 예산의 1.7% 수준에서 집행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과기부내에서만 나노Fab 센터, 나노-SoC를 포함한 수천억원의 예산이 편성돼 있다. 장기적인 전략은 없고, 언론의 주먹을 받을 일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과기부총리 격상만이 해결책 못 돼"**

넷째, 앞에서 서술한 장기적인 전략 부재와 관료주의는 연구개발 사업의 체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성과주의'와 '언론 플레이'에 급급한 관료들은 수시로 예산을 마련해 연구개발비를 집행해, 현재 우리나라 정부에서 집행하는 수백 가지의 연구개발 사업의 체계성은 전무한 상태다.

심지어 얼마나 많은 종류의 연구 개발비가 집행되고 있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를 위해 과기부 부총리 격상과 조정기능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나 연구개발이 부처 이기주의에 의해 집행되는 것을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조정 할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섯째, 각 정부 부처의 정부 출연 연구 기관의 정체성이 없다. 출연 연구 기관의 수가 많고 예산이 많이 투자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원래 의도한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들의 기능이 대학에서 수행하고 있는 연구개발 기능과 정확히 일치해 정부 출연 기관의 고유 기능이 없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매년 1조원 이상의 연구개발비가 집행되고 있는데 대학 연구개발 기능과 차별화 시도가 없다면 이게 바로 예산 낭비가 아니고 뭔가? 특히 대학의 경우 교육부를 통한 일관된 통제와 조절이 가능한 반면, 정부 출연 연구 기관은 각 부처 소속으로 되어 있어 다양한 행정 간섭, 정책 부재, 연구비 획득을 위한 비정상적인 로비가 만연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덫에 속박돼 있다.

***"예산 타령만 하지 말고, 총체적 비효율성부터 해결하라"**

마지막으로, 2002년을 기준으로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은 과기부 25%, 산자부 23%, 정보통신부 16%, 국무조정실 10%를 집행되고 그 외 교육부, 보건복지부, 국방부등이 나머지를 차지한다. 이들 부처는 각기 과학기술평가원, 산업기술평가원, 정보통신연구원 등의 산하 기관을 통해 국가 연구 사업의 기획과 집행을 수행하고 있다.

문제는 지금까지 천문학적 돈을 쏟아 부었음에도 단 한번도 이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와 감사가 이루어 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산업기술평가원과 정보통신연구원의 조직적이고 체질화된 비리는 지난해부터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공개된바 있으나 아직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했다는 소식은 없다. 뿐만 아니라 연구비 배분이 학연, 지연, 심지어 학위나 주식 거래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고, 연구비가 필요한 연구자는 해당 전문위원과 연결 고리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우리나라 대학 연구자의 기본 사항이 되어버렸다. 학연과 지연에 의한 연구비 결정은 이미 상식이 되었는데 관료들만 모르고 있는 것인지 한심할 뿐이다.

연구 개발 예산을 증액을 주장하는 관료들은 예산 타령만 하지 말고 우리나라 국가 연구 개발 사업의 전략·정책 기획 단계, 기획·집행 단계의 총체적인 문제를 집어보기 바란다. 우리나라 국가 연구 개발 예산은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아니다. 장기적인 전략 부재와 총체적인 비효율성을 해결하기 전에 동방기술지국(東方技術之國)과 소득 2만불을 내세우면서 예산을 늘리라는 것은 관료들 스스로 자신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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