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김정일 위원장과 정동영 장관간의 만남에 이어 진행된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은 23일 12개항의 합의를 끌어내면서 막을 내렸다. 전체적으로 가장 큰 의미는 북핵 위기라는 심각한 국면에서 1년여 동안 막혀있던 남북협상의 물꼬가 트였다는 데 있으며, 북측은 주로 경제지원의 성과를 얻었고 남측은 긴장완화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적 평가만으로는 향후 북핵 위기를 해결하기 힘들 것이다.
***북핵문제 해법 도출 없는 남북협상은 근본적 한계**
이번 남북간의 만남에서 북한이 전향적인 모습을 보인 핵심적인 배경은 북한의 식량난이라 할 수 있다. 매년 2백만t정도의 식량을 외부지원에 의존해오던 북한은 북핵위기의 고조와 더불어 외부지원이 축소되면서 올해 들어 식량난이 가중돼 왔다. 특히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가'로 가기 위한 전략을 세우면서 향후 더욱 어려워질 식량난 문제에 대한 고민은 대단히 심각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남측이 요구하는 긴장완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대가로 비료 15만t, 식량 50만t을 비롯한 경제적 지원과 협력이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북한은 이번 남북협상과정에서 임동옥 통전부 제1부부장, 권호웅 참사라인을 내세웠다. 이는 이 라인과 함께 호흡을 맞춰 왔던 한국의 대북정책책임자들의 요구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은 필자가 지적해왔듯이 실권이 대단히 한계가 있으며 특히 북핵문제와 관련해서는 정책적 협의가 힘든 사람들이다. 물론 정동영 장관과 김정일 위원장간의 만남은 있었지만 이는 정치적인 자리였지 구체적인 정책적 협의 즉 북핵문제의 해법 등에 대해 논의를 할 수 있는 장은 아니었다. 우리 대북정책책임자들이 북핵문제 해법 등을 포함한 실질적인 남북협상을 하고자 한다면 이 같은 문제들을 책임있게 협의할 수 있는 주규창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 강관주 대외연락부장등과 깊이 있고 구체적인 협상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이같이 북핵문제의 해법과 관련한 구체적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한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만 확대되는 상황이 지속되면 미국 부시정부의 네오콘은 물론이고 합리적인 다수의 정책담당자와 전문가들까지도 남북협상의 진전에 브레이크를 걸 것이다. 북핵문제는 본질적으로 남북간의 깊이있는 협상과 한미간의 긴밀한 협력이 두개의 수레바퀴처럼 나선형적으로 얽혀 들어가면서 구체적인 해법도출과 실행을 진전시켜야만 해결할 수 있다. 이 두가지중 어느 하나가 잘못되면 북핵문제, 북한문제를 해결하기가 힘들어 지는데, 현재 남북협상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고 한미간의 협력은 긴밀하지 못한 상황이다.
한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은 사실 북핵문제, 북한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지렛대이며, 한국의 북한과 미국에 대한 협상의 레버리지의 근거라는 성격을 가진다. 따라서 남북경제협력은 늦은 면이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북핵위기 막바지국면에서 특히 지난2월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상태에서 북핵문제의 해법도출, 한미간의 협의등과 연계되지 않으면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다. 특히 대북협상과정에서 원칙에서 벗어난 무리한 일을 진행시킨다면 그 후과는 대단히 클 것이라고 우려된다.
***북핵, 북한문제의 구체적 해법과 전략을 세워야 **
북한은 현재 핵무기 보유국가 즉 '파기스탄 모델'로 가고 있으며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한반도 비핵화 발언은 자신들의 핵무기 보유국가 인정을 전제로 한반도와 그 주변에 있는 모든 핵무기를 없애는 방향의 전략적 발언이다.
이 발언에 대해 북한이 쉽게 핵무기 보유를 포기할 수 있다는 식의 판단은 커다란 착오다. 북한은 체제안전의 절대적인 수단으로 핵무기 보유를 상정하고 있으며 특히 경제난으로 정상적인 군사혁신을 못하는 상태에서 유일한 경비절감형 군사혁신의 수단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핵무기 보유는 북한체제에 대한 총체적인 해법과 전략이 없는 상태에서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향후 북한은 10월경에 핵무기보유국가로 가기위한 최종적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 상황 이후에는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협상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에 한국은 그 이전까지 북핵문제의 구체적 해법에 대해 북한측의 실질적이고 책임있는 주체들과 깊이있게 협상을 추진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도출된 북핵문제의 구체적 해법을 근거로 다시 미국과 긴밀한 협의, 협력에 기반하여 구체적인 실행조치에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부시정부 1기 국무부 정책실장을 지낸 미국 외교협회 회장 리차드 하스는 '포린 어페어스' 7,8월호 기고문에서 북한에 대해 "일단 핵보유국으로 전제하고 '정권교체'가 아닌 현실적인 '정권진화'(Regime Evolution)정책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한국, 중국과 협력해 대북 안전보장과 에너지를 포함한 경제협력 보따리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북한의 핵동결과 핵 폐기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면 이 같은 미국의 합리적인 세력과 긴밀히 공조하고 나아가 라이스 국무장관의 방북을 성사시켜 북핵문제 해법의 최종안을 도출해내야 한다.
그리고 남북문제는 민족전체의 운명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여와 야 모두 정략적인 접근을 넘어서서 초당적으로 대처해야 하며 그래야만 전국민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북핵문제, 북한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박근혜대표의 방북과 유효적절한 역할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한반도는 통합된 선진국가를 건설하여 다시 한번 도약하느냐 아니면 북한은 실속없는 후진적 핵무기보유국가가 되고, 남한은 동북아의 어정쩡한 외톨이가 되느냐의 갈림길에 놓여있다. 민족의 모든 힘을 모아 북핵문제, 북한문제를 지혜롭게 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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