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배적인 담론의 심층을 드러내기 위해 역사(여공의 지식과 담론)를 '도구적'으로 사용했다. 한 축으로 나는 '비공식적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객관적이라고 불리는 지식체계를 뒤집어서 사고해 보고자 한다. (…) 내가 다루는 산업화 시기의 객관적인 역사(혹은 지배적 담론의 역사) 역시 역사가들이 만든 하나의 '텍스트'이며 그것을 객관적 진실로 지지해주는 것은 지배적인 지식체계와 권력이다."
김원 서강대 연구교수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펴낸 <그녀들의 反역사-여공 1970>(이매진, 2005)은 단순히 1970년대에 '공순이', '식모', '버스차장 혹은 안내양', '기지촌 여성'으로 불리던 여성 노동자들의 고단했던 현실에 대한 증언집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들이 '산업전사'로 '부녀(가장의 아내이자 딸)'로 '가정부'(가정부가 지금의 파출부라면 식모는 하녀에 가깝다)로, '팜므 파탈(femme fatale)'로, '잠재적인 윤락여성'으로, '승공(勝共)의 역군'으로, '달러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로, 그리고 '무오류의 신화를 창조해낸 여공 투사'로 불리게 되는 과정을 담아낸 책이다.
***1970년대 여공, 그들은 누구인가**
저자는 '여성'과 '노동'에 대한 시선의 변화를 통해 한국사회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노동사 연구에서 여공을 둘러싼 그간의 지배적인 담론들을 하나둘 들춰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져나간다.
산업화 시기의 여공을 둘러싼 담론이 은폐 혹은 조작하려 했던 것은 무엇인가? 산업화 시기에 대량으로 창출된 여성 노동력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공적 영역에서 배제되었는가? 저자는 이런 의문을 기존의 역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사료, 즉 저자가 '익명적 지식'이라고 명명한 것을 통해 밝혀내고 있다.
예를 들면 저자는 한국 노동사에서 진행돼 온 남성주의적 담론의 효과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1970년대 노동운동의 담론구조 안에 자리 잡은 첫 번째 단어는 '전태일'이란 세 글자다. 전태일은 1970년대 노동운동을 이해하는 지식체계의 맨 앞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특정한 방식으로 전태일에 대한 담론이 노동운동사 해석에 특권화된 것은 아닐까? 전태일을 해석하고 이에 부여한 의미 체계가 특정한 방식으로 1970년대 노동운동에 대한 '사유방식'을 형성한 것은 아닐까? 이것은 1970년대 노동운동을 둘러싼 담론에 대한 나의 중요한 질문이다. (…) 또 1970년대 노동운동에 대한 지배적 담론이 지닌 결정적인 문제는 노동문제를 '중성적' 혹은 남성적인 무엇'으로 사고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여성 노동자들은 '부차적 대상'으로 여겨졌다. 노동운동사에 대한 남성적 해석을 매개로 전태일 담론이 작동했고, 전태일 담론을 만들었던 남성 지식인들의 사유구조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이 '다락방 담론'으로 표현되는 <전태일 평전>에 관한 재해석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 인간 이하의 위생조건, 무권리 상태, 무지 등으로 둘러싸인 다락방 담론을 폭로했으며 그리고 이에 대한 처방은 여공 보호론과 흔히 인간선언으로 불리는 인간주의 담론이었다. (…) 그러나 의도와는 별개로 중성적 노동자관은 자본주의 아래에서 성별 분업을 은폐하는 동시에 여성 노동자들을 보호의 대상으로 여김으로써 가정으로 유폐시킬 가능성이 농후한 담론이었다는 것이다."
***국가-고용주-남성 지식인이 만든 여공 이미지**
한국에서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노동천시의 전통이나 전근대성 때문만이 아니다. 이 책은 여공에 대한 지배 담론의 효과, 구체적으로 말하면 국가-고용주-남성 지식인의 공모 하에 만들어진 '표준적 여성'이라는 이미지에 주목한다.
"여성 노동자들은 여대생, 사무직 등에 대한 동경을 통해 자신들의 훼손된 여성성에 집착했다. 민주노조 활동가들이 가정했던 여성 노동자의 '저항적인 정체성'과 달리, 여성 노동자들의 여성성에 대한 동경은 지배적 담론의 '정치적 효과'로 설명될 수 있다. 또한 지배적인 담론은 여성 노동자의 '도덕 담론'을 통해 통제하고자 했고 이로부터 벗어날 때 이들을 범죄화하고자 했다. '개인'이자 '여성'으로서 여성 노동자의 욕망, 특히 성적인 욕망 등은 비도덕적이고 수치스러운 것이며, 건강한 재생산과 가족에 헌신적인 모성상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특히 대부분 노동사가들이나 남성 노동자 심지어 여성 노동자들조차 그녀들의 도덕적 타락은 저임금, 생활고에 기인한 것이라는 '무성적' 해석에 집착해 왔다. 그러나 실제 여성 노동자의 욕망이 억제된 이유는 이른바 '모성 담론'에서 기인했다."
이 책은 또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상당수 다른 해석들이 여공과 그들의 운동이 지닌 내부의 '복잡성'을 민주 대 어용이라는 '이분법적인 틀'로 환원시키고 있다고 보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당수 연구들은 1970년대 민주노조를 주도했던 여성 노동자들이 가장 큰 문제로 느낀 것을 노동조합의 '어용성'-대표적인 것이 도시산업선교회와 어용노조였던 한국노총과의 '균열'-이라고 지적하면서 1970년대 노조에서 남성중심주의를 중심적 문제로 다루는 것을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이를 바꿔 생각해보면, 중심적 균열은 '어용 대 민주'로 단순화되었고 기타 균열-남성 노동자와의 문제, 교회 및 지식인과 노동조합 간의 관계 등-은 주변화된 서술로 밀려났다. 동시에 민주노조의 주체인 여성 노동자들을 중성적남성적 전사투사의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동시에 민주노조운동 일반은 무모순적인 것으로 '신화화' 되었다. 이른바 교회 단체와의 연계가 반드시 긍정적이었는가에 대한 질문에 노조 활동 및 방향에 대한 지나친 개입, 노동문제의 사회화를 통한 노조로서 기능의 약화, 민주 대 어용이라는 이분법에 기초한 '어용 만들기' 등 숱한 모순과 균열이 민주노조운동과 도시산업선교회 사이에 놓여 있었으나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그간의 연구가 생산한 담론 속에서는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고 답한다."
이와 같이 이 책은 기존의 지배적 지식에 틈새를 내 여공을 둘러싼 담론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움직임과 효과를 읽어내고자 한다. 이는 "여공에 대한 담론이 어떻게 현재화되어 있으며 그 진리 효과는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저자의 노력 덕분에 독자들은 그 지배 담론의 가운데 있었던 다양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동시에 억눌리고, 침묵되어 왔던 여공들의 목소리에 늦었지만 귀를 기울일 기회를 갖게 됐다.
***침묵했던 것을 드러내기…비판적 사유의 출발점**
이제는 40대 혹은 50대 중반으로 중학생, 고등학생의 자녀들을 두고 아직도 변함없이 동대문 주변의 창신동, 숭인동, 이화동 등지에서 미싱을 돌리고 있는 1970년대의 여공들 그리고 그녀들의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들의 밝은 미래를 다양한 방법으로 꿈꿔보는 일을 하는 '참여성노동복지터'의 구성원인 나에게 이 책의 많은 이야기들은 1970년대 과거형으로 읽히지만은 않았다. 그동안 산업전사로 그리고 이제 의류봉제 제조업이라는 사양 산업에 종사하는 기술공으로 불리는 그녀들의 삶에 이 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확실한 것은 이 책이 노동운동에 대한 그간의 중심적인 담론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거나 문제점을 침묵하며 지배담론(남성 중심의 노동운동사 또는 중성적인 노동운동사)에 동조했던 나를 비롯한 많은 독자들에게 결코 편하지 않은 많은 질문을 던진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대개 현실을 바라보는 위치에 상관없이 이야기하는 방식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여성 노동자를 이야기하고 이해하고자 할 때 그 이야기의 내용 못지않게 이야기가 구성되고 이해되는 담론의 틀 자체를 문제 삼는다. '말해지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비판적 사유의 출발점'이라는 지혜를 이 책은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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