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론은 '떼거리 저널리즘,' '경마 저널리즘,' '조폭 저널리즘'이라는 불명예를 좀처럼 벗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이번 황우석 교수 연구 파문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우리 언론이 황 교수의 연구와 연구과정, 그리고 〈PD수첩〉 관련 사안들을 취재, 보도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건강한 상식의 차원에서 되짚어보자.
첫 번째, 황우석 교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중계방송하는 식의 보도는 우리나라의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황 교수 1인이 있고 없음으로 결정되는 '1인 의존체제 방식'으로 인식되게 하는 것이다. 책임 지도자는 물론 중요하지만 연구는 무릇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며 현재 황 교수 연구실의 실상이 그렇다면 이것이 오히려 국익의 입장에서 더욱 큰 문제다.
두 번째, 황우석 교수의 연구를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에서 국가 위상, 생명공학 산업, 난치병 치료는 중요한 것인 만큼 그것이 잘못된 연구에 의해 뒷받침되었다면 결코 올바른 것일 수는 없다. 〈PD수첩〉이 어긴 취재윤리가 〈PD수첩〉의 진정성을 덮어버리듯이 황 교수의 연구도 마찬가지다. 규범과 윤리의 문제는 〈PD수첩〉에는 적용되지만 황 교수에게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는 이중적인 양상이 언론에 의해 조장되고 있다.
세 번째, 언론은 마치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당장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올 수 있고, 당장에 난치병 환자를 치유할 수 있을 것 같은 내용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엄청난 시간이 소요됨은 물론 의료체제의 개혁이 선행되지 않을 때 이러한 혜택이 일부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언론은 장밋빛 환상을 심어줄 것이 아니라 꼼꼼히 따져보고 더더욱 침착해야 한다.
네 번째, 황우석 교수 연구 결과에 대한 판단의 문제에서 가장 주요한 근거로 많은 과학 학술지 중 하나일 뿐인 〈사이언스〉와 그 편집장의 권위에 의존하는 몰상식한 모습에서 우리 언론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황 교수 연구결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측은 대부분의 언론에서 매장되고 있다.
다섯 번째, 왜 아무나 나서서 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가 하는 언론의 지적 또한 황우석 교수 연구실에서 〈PD수첩〉에 원자료들을 넘겨주고 일정하게 검증과 관련한 약속을 했었다는 사실을 외면한 것이다. 학술지의 오류는 항시적으로 있는 문제다. 문제제기가 타당하다면 일개 학술지와 일개 편집장의 권위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필요한 절차와 과정을 짚어 정리하라고 해야 마땅한 일이다.
여섯 번째, 난자 채취의 위험성과 관련된 여성 인권에 대한 문제이다. 난자 기증자가 몇 명을 돌파했다는 수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연 이들이 난자 채취와 관련된 위험성에 대해 충분한 인식을 했는지, 또 그러한 정보가 이들에게 충분히 제공되고 있는지 언론은 꼼꼼히 물어야 한다. 또 '금 모으기'식 난자기증 운동이 벌어지는 사회 분위기 상 만에 하나 난자채취 과정에서 공여자에게 어떤 문제가 발생했더라도 이에 대해 제대로 문제나 제기할 수 있을 것인지 크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일곱 번째, 〈PD수첩〉이 잘못한 취재윤리와 관련해 그 같은 몰상식한 행태를 이해하고 덮어주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문제를 다루는 언론은 〈PD수첩〉의 잘못을 매섭게 지적하되 우리 언론의 고질적인 행태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시작해야 설득력과 양식을 겸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에 대한 보도는 '야만적 보도'라고 할 수 있을 만큼 〈PD수첩〉에 대해 철저하게 적대적이고 폭력적이다. 이는 지금은 물론 향후 우리 언론계를 안팎으로, 크게, 그것도 감정적으로 분열시키면서 서로에게 큰 상처를 입히는 시한폭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여덟 번째, 일부 대중들의 현재 상황에 대한 극단적인 반응과 태도의 문제다. 대중은 결코 무지하지 않다. 그러나 대중은 동시에 극히 위험한 존재다. 이 때문에 '파쇼적 대중'이라는 진단이 나온 것이며 우리는 지금 그 같은 대중이 벌이고 있는 극히 위태로운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대중이 일종의 집단 히스테리에 사로잡혀 있을 때 건강한 언론은 이를 제어해야 하는 큰 책임을 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언론은 차분한 성찰에 기여하기보다는 집단적 광기를 재생산하는 공장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아홉 번째, 〈PD수첩〉, 더 나아가 이제는 뉴스데스크의 광고 해약에까지 이르는 사태의 문제다. 이는 앞으로 언론이 무차별적인 집단에 의해 어떻게 통제당하고 포박당할 것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방식의 광고 해약 사태가 특정 집단과 특정 자본의 조직적 결합에 의해 얼마든지 이뤄질 수 있고 또 어떻게 하면 된다는 방법을 생생하게 가르쳐주었다는 점이다. 상황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이것이 '자기 발등에 도끼 찍기'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MBC 광고 해약 사태를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는 한 언론인들뿐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회복하기 어려운 깊은 상처를 입게 될 것이라는 커다란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비합리적 사고와 행태가 횡횡하는 한 설령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성공해서 돈을 벌고 난치병이 치료가 되더라도 우리 사회는 결코 행복하고 건강한 사회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깊고 큰 우려를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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