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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윤리'야, 이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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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윤리'야, 이 바보야!"

[화제의 책] 시오노야 유이치의 <경제와 윤리>

청와대에서 '비전 2030'이란 것을 내놨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2030년 안에 복지국가가 될 운명이다. 간만에 들어보는 장밋빛 미래의 예언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희망과 낙관의 종합선물세트가 왜 굳이 대통령 임기 막판에 발표된 것인지 영 석연치 않지만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여당의 태도다. 누구 말마따나 청와대가 여당에 준 선물이라고나 해야 할 이 문서가 여당 정책위원회 의장에게는 영 마땅치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복지국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복지'야 1980년대 민주정의당 때부터 이 나라의 정당이면 모두 다 선거 때마다 양념처럼 들고 나오던 상투어인데, 왜 이제 와서 그 실현 계획에 여당이 딴죽을 걸고 나서는 것일까?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국민들은 다른 선진국 국민들에 비해 비교적 정부에 의존하기보다는 자기의 노력으로 잘 살고자 하는 좋은 국민성을 갖고 있으니 지나치게 정부에 의존하는 복지국가를 본받을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그는 이런 얘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 국민들은) 느슨한 복지국가보다 열심히 일해서 강대한 경제국가를 만드는 성향이 있다"고.

'지나치게' 정부에 의존하는 '느슨한' 복지국가라. 그 말에서부터 뭔가 복지국가에 대한 거부감이 짙게 묻어나온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와 같은 사람들이 잘 쓰던 표현 아닌가? 이 나라의 보수 정치인들은 복지국가가 꿈같은 이야기일 때는 복지국가라는 말을 잘도 남발하더니 이제 와서 그게 현실의 선택으로 다가오니까 이렇게 딴 소리를 하고 있다. 도대체 '복지국가'에 대한 이 나라 정치권의 철학이 무엇인지 아리송할 뿐이다.

'비전 2030'을 위한 철학?
▲ <경제와 윤리>(시오노야 유이치 지음, 박영일 옮김, 필맥, 2006). ⓒ프레시안

그런데 바로 그런 사람들이 봐야 할 책이 한 권 나왔다. 시오노야 유이치라는 일본 경제학자가 쓴 <경제와 윤리-복지국가의 철학>(박영일 옮김, 필맥 펴냄)이다. 600쪽 가까운 만만치 않은 분량이어서 사실 정치인들이 이 책을 읽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철학'이란 말이 붙은 만큼 읽기가 수월하지도 않다. 그래도 요즘 같은 때 정말 시의적절한 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시오노야 유이치라는 이름은 평자도 처음 들어본다. 옮긴이의 소개에 따르면 저자는 일본에서 케인스와 슘페터의 경제이론을 연구한 학자로 명성이 높다고 한다. 책날개의 저자 이력을 보니 유독 '복지'를 주제로 한 저서를 많이 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 2002년에 출간된 이 책은 도쿄대학에서 나오는 '공공철학총서'의 제1권으로서, 벌써 영역판도 나와 있다고 한다. 위압적인 분량 만큼이나 뭔가 좀 '있어' 보인다.

이 책의 주된 관심은 한 마디로 복지국가가 왜 필요한지, 그 철학적 기초를 다지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 수백 쪽에 걸쳐 현대 윤리학의 논쟁들을 종횡무진 누빈다. 하이에크, 노직, 롤스, 센, 샌들, 매킨타이어, 월처, 하버마스 등 쟁쟁한 이름들이 튀어 나오고 자유지상주의, 자유주의, 공동체주의의 쟁점들이 하나하나 다뤄진다. 그래서 지은이의 의도와 상관없이 현대 윤리학 논쟁의 개론서로 활용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핵심 주장은 의외로 간단하다. 첫째, 경제와 윤리(이 책의 영어 제목에서는 'morality'로 돼 있다)는 결코 따로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주로 경제 영역의 과제로 나타나는 '효율'과 윤리 영역의 과제로 나타나는 '정의', '덕', 이런 것들이 함께 해야만 더 나은 사회('선')를 보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의 단순한 주장은 아니다. '효율'의 보장 없이는 '정의'와 '덕'이 실현될 수 없고, '정의'와 '덕'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효율'이 의미를 갖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두 번째 중요한 주장은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보장 등 3항구도의 제시다. 지은이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윤리적 목표의 달성을 위한 기본 토대이지만, 또한 서로 긴장관계에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둘 사이를 이어줄 매개고리, 즉 세 번째 항이 필요하다. 지은이는 이것이 바로 '사회보장'의 과제라고 이야기한다. 사회보장을 통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조화를 이루는 복지국가만이 '효율', '정의', '덕', 이런 가치들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혹시 수백 쪽을 읽고 난 뒤의 결론이 고작 이 정도냐고 반문할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려고 롤스 등의 어려운 철학이론을 꼭 거쳐야 하느냐고 불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불평으로부터 이 책을 변호하자면, 이 책은 애당초 이런 반문과 불평을 할 분들을 위해 쓰인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인 것을 전혀 상식으로 인정하지 않는 다른 어떤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테면 복지국가는 20세기의 낡은 유산에 불과하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나 항상 선거 전략 차원에서 복지국가의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들 말이다. 굳이 부연한다면, '비전 2030' 정도의 이야기를 놓고서도 서로 옥신각신하는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인사들부터 사서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것이다.

의도적 낙관주의의 혐의

그렇다고 이 책의 저자가 복지제도를 둘러싼 구체적인 쟁점들을 다루지 않는 것은 아니다. 책의 마지막 3분의 1 정도는 이런 논의에 할애돼 있다. 몇 가지 인상적인 대목도 있다. 기존의 복지 연구가 주로 사회복지가 갖는 '탈시장화'의 측면만을 강조했다면서 '탈가족화'의 측면을 부각시키는 대목이 바로 그렇다. 그러면서 저출산·고령화를 비롯해 가족제도와 연관된 제반 문제들을 짚는다. 지은이가 일본인이라서 그런지 우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가족의 문제를 좀 더 예민하게 바라보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또한 복지제도의 의의를 말하면서, 롤스와 자유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기본권'의 차원뿐만 아니라 센과 공동체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능력'의 차원을 끌어들이는 것도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복지제도란 게 이른바 '사회적 안전망', 즉 개인에게 닥칠 위험에 대비한다는 소극적 의미만을 갖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의 역량을 최대한(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탁월하게') 발전시킬 '도약대'를 마련한다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도 갖는다고 한다.

하지만 쟁점을 잘 짚어내는 데 비해 독창적인 제안은 찾아보기 힘들다. 기든스 류의 (또 노무현 대통령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 '제3의 길'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러한 공백과 한계는 역시 이 책의 근본 목적이 복지국가의 필요성 자체를 철학적으로 정초하려는 데 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보다는 저자의 핵심 주장들 중 하나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사회보장이라는 매개 고리를 통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조화를 이룬다는 명제다. 여기에서 지은이는 사회보장이라는 게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전제한다는 것을 힘주어 강조한다. 그리고 기회 있을 때마다 사회보장이 자본주의의의 '잔여'이자 '보완'이라는 점을 못 박는다.

그렇다고 지은이가 천진난만하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영구평화'를 선언한다고 볼 수는 없다. 둘 사이의 긴장관계에 대해서는 충분히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보장이 민주주의와 갖는 관계, 그리고 이를 전제로 그것이 자본주의와 맺는 관계에 대해서는 의도적인 낙관주의의 혐의가 너무 짙다.

이를테면 복지제도가 민주주의 측면의 압력 속에서 자본가의 구조적 이해와 대립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운 설명을 하지 않는다. 역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지속적인 팽창 욕구 때문에 복지제도가 끊임없이 위협받는 현실에 대한 서술도 미약하다. 사실은 지금 복지국가를 둘러싼 핵심적인 긴장이 바로 이 점인데도 말이다.

경제물신주의 시대에 긴요한 이의제기

말하자면 이 책의 저자는 사회보장이라는 '잔여'와 '보완'에 대해서조차 갑갑함을 느끼는 자본주의의 '괴물' 같은 팽창욕을 직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의 자본주의는 저자의 주 전공이라는 '케인스와 슘페터의 자본주의'에 지나치게 한정돼 있다. 거기서 망각되는 것은 바로 '마르크스의 자본주의'다. 현실의 자본주의는 케인스와 슘페터의 얼굴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잊고 싶어도 마르크스를 자꾸 떠올리게 하는 것은 자본주의 그 자체다.

하지만 불만은 이쯤에서 그치자. 지금 긴요한 것은 시장지상주의라는 우상을 깨부수는 것 이전에 그게 우상에 불과하다는 그 한 마디의 외침이기 때문이다. 시오노야 유이치의 책은 그 정도의 미덕은 갖고 있다. 이 책의 다소 우직하기까지 한 학문적 논의 곳곳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경제'라는 요즘의 익숙한 주문(呪文)에 대한 항변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이 "복지국가의 재건만이 아니라 윤리학으로서의 경제학을 부활시킬 기념비적 역작"이라는 옮긴이의 평가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그보다는 그런 부활을 재촉하는 논의들의 훌륭한 개론서라는 게 더 옳은 평가이겠다), 이 책 자체는 어떤 '기념비'의 의미를 지닐 만하다고 말하고 싶다. 가령 1998년에 아마티야 센이 노벨경제상을 받은 것과 같은 맥락의 '기념비'적 의의. 그러니까 이런 깨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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