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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동자가 먼저 세금 내자' 주장이 힘 받으려면

[기고] 민노당의 '소득연대전략'에 붙이는 제언

한편으로는 집값의 폭등이,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노동자들을 삶을 '팍팍'하게 하고 있는 2006년 대한민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솔선수범해서 세금을 더 내자"는 주장이 나오면 열 받지 않을 노동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데 '노동자의 정당'임을 자처하는 민주노동당 안팎에서는 이런 주장이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논의돼 왔다. '소득연대전략'이라고 불리는 이 주장은 노동자들이 먼저 세금을 더 내는 모범을 보임으로써 부유층과 자영업자들이 세금을 더 내도록 유도하고 그렇게 해서 확대된 재원으로 우리 사회의 사회보장 수준을 높이자는 것을 핵심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이 임금소득의 상당부분을 '사적' 보험시장과 사교육시장에 쏟아 붓고 있는 현실에서 그런 돈의 일부를 세금으로 전환하면 '공적' 사회보장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셈이 깔려 있다. 한마디로 비대한 사적 사회보장 시장을 축소하고 과소한 공적 사회보장 시장을 키우자는 주장인 것이다.

민주노동당 부설 정책연구소인 진보정치연구소는 이런 논의를 보다 확대시켜 정책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지난 10월 '소득·임금 측면에서 노동계급 연대 전략'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연구소의 소장인 장상환 경상대 교수는 지난 11일 학술단체협의회가 주최한 '한미 FTA, 세계화, 그리고 한국사회의 대안적 발전 전략'이라는 심포지엄에서 한미 FTA로 대변되는 자본 위주의 세계화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으로 이런 소득연대전략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현재 민노당 당원이자 한때 당 정책연구원으로 일선에서 활동하기도 했던 윤종훈 회계사가 기고문을 보내왔다. 윤종훈 회계사는 이 글에서 민노당의 소득연대전략에 기본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에서 이 전략은 '증세'가 아니라 '과세 기반의 확대'를 겨냥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편집자>

▲ 윤종훈 회계사. ⓒ프레시안

권영길 의원의 국회 대표연설을 계기로 민주노동당 발(發) '소득 및 임금 연대전략'(이하 소득연대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노동자들이 먼저 나서서 소득세와 사회복지 기여금을 추가로 부담하겠다고 결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본과 부유층에는 증세를, 자영업자들에는 공평과세를 압박하고 이에 따른 재정 확대분을 복지확대와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에 투입하도록 하는 것이 소득연대전략의 핵심이다.

서민이 어렵게 모은 돈을 기부하는 것이 재벌의 억지 춘향식 기부보다 더 감동적이듯, 경제적 약자인 노동계층이 먼저 희생하겠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정책방향이라 할 수 있다. 부유세 도입 제안 이후 민주노동당이 대중에게 호감을 주는 정책이슈를 제기하지 못한 터에 새롭게 주목받을 수 있는 이같은 정책 이슈가 나와 반갑기 그지없다.

그런데 어떤 내용으로 노동자들이 추가적인 세금부담을 결의할 것인지, 추가로 확보된 재정을 어느 곳에 쓸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아 아쉽다. 그동안 진보진영의 고질병으로 지적돼 왔던 것처럼, 총론은 거창하고 옳은데 이를 실현시킬 각론이 나오지 않거나 엉뚱한 내용의 각론이 나오는 상황이 온다면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세금을 늘리는 게 아니라 세금을 내는 사람 수를 늘려야

이런 기우로 몇 마디 참견을 하고자 한다. 우선 노동자들이 소득세를 추가로 부담하는 방안이 단순히 각 구간별 세율을 인상하는 것이라면 기존의 증세 주장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소득세율 인상은 민주노동당뿐 아니라 열린우리당의 일부 의원들도 주장한 바가 있어 이는 민노당만의 전략무기가 될 수 없다.

현재 소득세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면세자의 비율이 너무 높아 과세기반이 매우 협소하다는 점이다.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면세자 비율은 모두 50%에 달한다. 이는 납세자의 절반이 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낸다는 뜻으로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자영업자의 탈세로 인한 근로자와 자영업자 간 세부담 불공평은 매우 오래 전부터 제기된 문제다. 그동안 자영업자의 탈세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정부는 자영업자의 세원을 포착하기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보다 각종 공제제도를 확대해 근로자의 세부담을 경감함으로써 이들의 불만을 무마했기 때문에 근로자 중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의 비율은 계속 높아져 왔다.

그렇다면 이를 거꾸로 풀어야 한다. 즉 "각종 공제제도를 정리해 근로소득자의 과세기반을 넓힐 테니 간이과세제도 폐지 등으로 자영업자의 세원 파악을 강화하고, 대기업과 부유층에게 혜택을 주는 각종 비과세감면 제도를 정리하자"고 주장하는 게 옳다.

이 방안은 여러 가지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 무엇보다 각종 공제제도를 정리하다 보면 그동안 면세자의 울타리 안에 머물던 저임금 근로자도 세금을 부담하게 된다. 가령 4인 이상 가족을 부양하는 근로자가 연봉 1500만 원을 받을 경우 지금은 소득세를 내지 않지만 앞으로는 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근로자가 월 1만 원 수준의 소득세를 낸다고 해도 당장 살림살이가 크게 나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노동자가 월 1만 원의 추가부담을 하는 것이 고소득 자영업자, 대기업, 부유층에게 더 큰 세부담을 요구할 수 있는 기반이 돼, 궁극적으로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확대로 되돌아온다는 점을 설득시켜야 한다.

간이과세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자영업자들의 엄청난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이로 인해 민노당이 지난 2004년 간이과세 폐지 법안을 제출했을 때 당 내에서도 반발이 매우 심했다. 그러나 이런 반발이 두렵다고 해서 피한다면 민노당이 정부여당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소득세 분야의 개혁은 '투명성 확보와 과세기반 확대'가 큰 흐름이 되어야 한다. 이런 명제 하에서는 상장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금융소득종합과세의 강화 등을 비롯해 부유층을 압박할 수 있는 제반 정책대안들이 다 유효해진다.

실제로 선진국 수준의 과세 투명성만 확보된다면 현재의 세율체계 하에서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4%의 추가적인 세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

서민과 근로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실제로 부유층이 더 큰 혜택을 보는 제반 비과세감면 조항들을 정리하다 보면 서민과 저소득 근로자가 유탄을 맞을 수도 있지만 이런 유탄을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동안 면세자의 울타리 안에 머물던 저소득 근로자의 이같은 작은 희생이 결국은 더욱 더 큰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서도 노동자가 양보하자고?…현 제도부터 개혁해야

하지만 국민연금을 납부해 온 근로자가 미래 연금급여를 양보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저소득층을 지원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이런 제안은 현행 국민연금 체계를 그대로 두자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소득과 관계 없이 급여가 결정되는 정액 부분과 소득과 연계하여 급여가 결정되는 비례 부분이 합성된 소득비례 '일원형' 연금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소득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상태에서 일원형 연금구조는 필연적으로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초래해 사실상 선별주의적 연금체제로 운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금제도가 기초연금과 소득에 비례하는 연금이라는 '이원형' 연금구조로 개편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보편주의적 복지체제를 지향하는 진보진영은 이 체제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기초연금을 도입하자고 먼저 주장해야 옳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야당인 한나라당이 먼저 이런 연금의 도입을 먼저 주장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먼저 이슈를 선점했다고 해서 이 이슈를 피할 이유는 없다. 기초연금 재원 마련 방안에서 차별성을 두면 되기 때문이다.

2010년을 기준으로 현금급여 기준 최저생계비 수준의 기초연금을 지급하되 시행 초기에는 상위 20%에 대한 지급을 배제하면 최초연도인 2010년에는 GDP 대비 약 1.54%의 재원이 필요하게 된다. 이는 비례세인 사회보장세를 도입하면 마련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원천징수 대상 소득에 1%씩의 사회보장세를 부과하고 (단, 근로소득에 대해서는 사업자 부담분을 포함해 2%), 종합소득세와 법인세에 대해 결정세액의 10%를 사회보장세로 부과한다면 GDP 대비 1.93%의 재원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재원으로 2010년 이후 10년 간은 안정적으로 기초연금이 지급될 수 있다. 그 이후에는 사회보장세를 인상하든지 부유세를 도입하든지 하는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면 될 것이다.

정치엔 있는 '진보'가 사회경제엔 왜 없나?

마지막으로 재정지출 방향에 대해서도 대강의 내용이라도 제시돼야 한다. 세금은 거두기 위해 거두는 것이 아니라 쓰기 위해 거두는 것이므로 세금을 쓸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단순히 노동자들의 희생만 요구해서는 이들의 호응을 얻기 어렵다.

여기서도 주의할 점이 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자는 차원에서 단순한 개념의 복지만을 강조해서는 중산층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이런 복지 개념으로는 도덕적, 심정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세부담 증가를 감내하겠다는 적극적인 지지를 얻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공장을 세우고 길을 닦는 것 외에 복지와 연결된 새로운 '성장동력'의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평생학습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학습복지'가 여기서 매우 유용하다. 학습복지의 개념과 경제성장의 연관관계를 잘 설명한 후 '세금을 낼 것인가, 학원비를 낼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면 사교육비 지출에 지친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진정한 진보가 있는가? 적어도 필자는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말하지 못한다. 정치싸움에서는 진보가 있을지언정 사회경제적 분야에서는 진보적 대안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진보적 대안은 단순히 머리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돌 맞을 각오를 하고, 일시적으로 정치적 손해를 감수해야만 한다. 민주노동당이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진정한 진보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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