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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물'들아 제발 '현실'을 직시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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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물'들아 제발 '현실'을 직시해라"

['이명박 시대'를 맞으며] 신자유주의가 문제다

2007년 대선이 막을 내린지 1주일이 지났다. 진보 진영, (과연 적합한 표현인지는 자못 의문이지만) 개혁 세력 할 것 없이 모두 총체적 실패이다.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각 세력의 물밑 움직임이 분주하다. 문제는 과연 이들 정치 세력이 지금 국민과 시대가 요구하는 대로 환골탈태를 거쳐 이 땅의 유의미한 견제 세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느냐 일 것이다.

오랫동안 고질적 정파주의에 매몰되어 있던 민주노동당이 이번에야말로 그 견고한 틀을 깨고 진정 민중과 함께하는 진보 정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당의 양대 정파를 대표하는 세력이 '총선 불출마 선언'과 '지도부 총사퇴'라는 결단을 내린 것은 일단 긍정적으로 보인다. 기득권 포기 없는 환골탈태는 한낱 말장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먹물들, 제발 그만해!

하지만 지금 대통합민주신당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가소롭다. 나는 비록 민주노동당의 정파주의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한국 정치의 주류라는 통합신당과 한나라당의 계파 정치만큼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들의 계파 정치는 지난 구시대의 '3김 정치'의 답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과거 3김 정치가 1인자를 중심으로 모든 권력을 독식하는 체제였다면 지금의 계파 정치는 고만고만한 몇 개의 파벌이 분할되어 그 세력의 크기에 따라 권력을 나눠먹고 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통합신당은 열린우리당 이래로 서로 이질적인 몇 개의 파벌이 어정쩡한 동거 생활을 하며 정치 본연의 임무보다는 서로 간의 보이지 않는 견제로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과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개혁법안 하나 만들어 내지 못했다. 바로 이점에서 이들의 본질적 한계와 근본적 문제점이 있다.

차라리 백화점은 한곳에서 이것저것 살 수 있는 편리함이라도 있지만 정치에서 백화점식 정당이란 이들의 구호대로 모두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아무도 대변하지 못한다. 바로 '잡탕 정당'의 극명한 한계인 것이다.

지금은 누구의 잘못이 더 큰지, 누구를 추대하여 얼굴마담으로 내세울 것인지, 또 누가 불출마할 것인지 등을 가릴 때가 전혀 아니다. 각 개인과 계파에 맞는 노선과 이념으로의 분화만이 환골탈태의 유일한 길이다. 착각하지 마라. 국민이 심판한 것은 단지 노무현 대통령뿐만이 아니라 바로 노무현 정권 자체다.

단지 정권에 참여했던 각 계파별 일부 주류에 한정한 심판이 아닌 엄연히 지난 5년간 여당으로 자리매김했던 통합신당 세력 전체에 내리는 사망 선고라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그동안 단지 민주화 적자라는 도덕적 우월성만 내세워 입으로만 떠들고 실천이라고는 전혀 없는 공허한 언변과 속에 민중을 파탄지경으로 내몬 공언무시(空言無施), 곡학아세(曲學阿世)의 '먹물 정치'에 내린 엄중한 심판이다.

제발 더 이상 진실을 호도하지 말자! 벌써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한나라당 견제할 표 달라는 호소를 해야 한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참으로 염치없는 짓이다. 통합신당 사라지면 한국 정치가 사망이라도 한단 말인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파병 연장 반대'를 외치더니 선거가 끝나자마자 슬그머니 '찬성'으로 선회하려는 모습이 바로 오늘날 통합신당, 바로 당신들의 '일그러진 두 얼굴'이다.

진보, 다시 시작하자!

어떤 이는 이번 대선의 결과를 놓고 '진보의 몰락'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나는 이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말이 성립하려면 이번 대선이 최소한 정책이나 패러다임 차원에서 진보의 가치와 보수의 가치를 놓고 한판 승부를 겨룬 그런 싸움이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실 이번 대선은 'BBK 의혹'으로 대표되는 부패 스캔들을 놓고 구악과 신악이 격돌한 '먹고사니즘'의 싸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전부터 이 '먹고사니즘'이 정치의 본질이자 최고의 임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먹고사니즘'에 있어 진보적 가치란 무엇일까. 그것은 굳이 거창하고 현학적으로 표현할 필요없이 '모두가 고르게', '함께'라는 공동체적 가치를 말함이며 이것으로서 기존 양적 성장론에만 치우쳐 있는 보수의 가치와 뚜렷이 변별되고 더욱 분명한 대척점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바라볼 때 통합신당 세력은 실패한 세력이며 한나라당 세력 또한 우리가 섣부르게 희망을 줘서는 안 되는 집단이다. 그동안 한국정치의 주류로 자리매김해온 이들의 '먹고사니즘'에 대한 사상이란 다름 아닌 '신자유주의 체제'를 의미하는 것이며 지나온 발자취를 돌아보건대 이명박 정부의 탄생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개발 독재와 융합된 보다 급진적 신자유주의로 나아가겠다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지금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는 나라가 있는가, 이렇게 반문하며 '반신자유주의'가 시대착오적이라고까지 말한다. 참으로 우물 안 개구리의 근시안적 눈이자 현실 호도의 시각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을 세계의 중심에 놓고, 미국이 곧 세계의 전부라고 보면 그렇다. 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신자유주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사회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라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가능한가.

이론적으로 영국에서 태동하여 미국에서 발아한 신자유주의는 남미와 구소련을 수마처럼 휩쓸고 지나간 뒤 일본을 거쳐 마침내 한국과 아시아 지역에 상륙하기에 이른다. 김영삼 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김대중 정부에서 보다 체계화된 이 신자유주의는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대세가 되었다.

'글로벌리즘'이라는 거창한 모토를 가진 이 신자유주의는 언제나 '선진화'와 '개방'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가지고 정치사회적으로 더 미숙한 후진국들에서 유독 기승을 부린다. 그것은 이 신자유주의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 문제, 즉 경쟁과 효율을 빙자한 '적자생존'의 난폭성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인간'은 철저히 배제될 수밖에 없으며 공동체적 가치는 적자생존의 법칙 앞에 한낱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정부는 자본이 요구하는 '시장의 자율'을 보장할 수 있는 한도에서만 그 최소한의 존재 의미를 가지며, 정치는 독식의 논리를 보조하는 안전장치로 전락하고, 복지와 사회안전망은 단연코 시장의 자율을 해치는 최대의 적으로 규정된다. 또한 노동은 '생산성'과 '이윤'이 극대화 하는 꼭짓점에 도달하기 위한 한낱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그 자체로는 아무런 고유의 가치가 없다. 즉 노동은 이윤을 위한 수단의 의미 이상의 가치로 평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시장의 자율'이란 공정한 '시장의 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진 자', 즉 '자본의 율법'을 말하며 다수의 빈자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무조건적 '복종'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이 때문에 극단의 양극화는 필연적 결과이며 이기주의는 신자유주의의 유일한 적자로 인정된다.

신자유주의자들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미국을 제외한 나라에서 신자유주의가 성공한 사례가 있는가? 국내의 재정 적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전략적으로 대외로 눈을 돌려 '전쟁 불사'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온갖 '경제적 수탈'을 일삼고 있는 미국적 성공이 과연 진정한 성공일까? 50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공공성이 파괴된 냉혹한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변변한 의료서비스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소외되어 있는 미국적 현실이 과연 우리의 미래가 되어도 좋은가?

혹자는 '반신자유주의'가 대안 없는 발목잡기라고 비하한다. 도대체 그 '대안'이란 무엇인가. 담장이 무너졌으면 쌓는 것이 대안이고 가족이 해체됐으면 다시 가족을 꾸리는 것이 대안이며 공동체가 무너졌으면 복구하는 것이 바로 대안이다. 가치가 무너졌으며 세우는 게 대안이고 인간과 노동이 파괴됐으면 자본에 저항하는 것이 곧 대안이다. 대세론을 앞세워 엄연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호도하고 강자의 논리 앞에 지레 저항을 포기하는 정신이야 말로 바로 대안부재의 맹목적 보수성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말이다.

우리는 지금도 군사적 패권주의에 대해 우려와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난 세기를 통해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간 무서운 재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지금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는 '자본의 패권주의'에 대해서는 오히려 저항보다는 침묵과 동조를 보낸다. 나는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이며 그렇기에 이 땅의 진보가 반드시 새롭게 무장해야할 가장 큰 이유라고 믿는다. 이제 이 땅의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은 마땅히 '신자유주의'와 '반신자유주의'가 되어야 할 것이며 고로 다가올 총선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는 향후 한국 정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시험대로 인식되어야 한다.

당신은 지난 20년간의 눈부신 '독식 경제'에 만족하는가. 그렇다면 주저 없이 '신자유주의'의 편에 설지어다. 당신은 진정한 행복과 보다 인간다운 삶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두 팔 걷어붙이고 '반신자유주의'의 편에 설지어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 민중 속의 시대정신이자 한국 사회에 닥친 양립불가의 현실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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