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쪽의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회에 가보면, 다루는 주제가 대개 정치개혁과제, 경제개혁과제, 사회정책과제의 순서로 되어있고, 그 중에서 토지는 부동산, 혹은 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정책과제, 즉 복지정책과제 중 하나로 다뤄지는 것을 보게 된다. 진보에서는 부동산 문제 해결, 정확히 말하면 토지문제 해결을 경제개혁과제의 중심주제로 다루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토지문제가 금융, 일자리, 주택, 환경 등 경제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일반인들의 상식으로 보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은 금융시장만 들여다봐서는 한계가 명확하다. 주택시장의 불안정도 주택만 주시해서는 원인을 파악하기 어렵다. 일자리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경제활동은 토지 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토지와 연관될 수밖에 없다.
현대 경제학에서 사라진 토지
현실 세계에서는 토지가 이렇게 중요함에도 왜 학문에서는 토지를 홀대할까? 필자는 그 까닭이, 오늘날의 경제학이 토지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토지의 독자성을 무시하는 전통 위에서 구축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은 토지를 자본의 하나로 간주하는 클라크(Clark, John Bates)의 길을 따라갔다. 한계생산력설로 유명한 클라크는 "토지는 파괴될 필요가 없는 유일한 자본재"(Clark 1902. The Distribution of Wealth. Macmillan Co.. p. 118)라고 하면서 토지와 자본의 구별이 불필요하다는 이상한 주장을 했다. 신고전주의가 이런 그릇된 인식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경제현상을 노동과 자본이라는 두 가지 생산요소로 분석하는 것이고, 토지문제가 경제 전체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파악하기 힘든 것이다. 신고전주의는 토지를 일반물자처럼 필요하면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는, 즉 공급을 조절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토지는 생산이 불가능하고, 공급을 조절할 수도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시장주의자로 불리는 신고전주의자들이 토지투기가 초래한 집값폭등의 원인을 주택공급 부족에서 찾고, 언제나 주택공급확대를 방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공장용지 가격이 폭등하면 공장용지가 부족한 것이니 농지나 산지를 공장용지로 변경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농지 가격이 올라가면 다른 땅을 농지로 바꾸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토지거품의 생성과 붕괴로 경제가 마비되어도 아무렇지 않게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보가 주로 기대는 케인즈 경제학도 토지를 무시하는 건 신고전주의와 똑같다. 슘페터(Schumpeter, Joseph Alois)가 말하듯이 케인즈가 <일반이론>에서 규명하려고 했던 것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는 침체한다."는 것인데, 그 책에서 그가 제시한 침체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투자의 한계효율, 즉 투자로 기대되는 수익률의 하락이다. 그러나 케인즈는 투자의 한계효율이 하락해서 투자수요가 위축되고 노동의 수요가 줄어드는, 즉 실업률이 높아지는 까닭을 토지와 연관시켜서 생각하지 않았다.
토지와 관련시켜 생각해보면 투자위축의 상당부분은 토지투기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헨리 조지가 밝혔듯이 지가의 투기적 상승이 초래한 기업 이윤 감소가 투자 위축을 낳고, 이것은 다시 일자리 부족을 초래해 가계의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한편 가계의 소비수요 감소는 집값 상승으로 인한 주거비 폭등에서도 비롯된다. 요컨대, 케인즈가 중시하던 유효수요 부족은 토지투기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토지는 농경시대에나 중요했다고 말한다. 그걸 입증이라도 하듯 <일반이론>에는 토지라는 용어가 겨우 4번 등장한다! 이렇기 때문에 케인즈의 이론에 영향을 받은 진보는 토지문제를 경제 분석의 핵심 변수로 취급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마르크스 경제학도 마찬가지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의 태동 과정인 '시초축적과정'이 토지 사유화 과정임을 인클로저 운동을 통해 자세히 설명한다. 이 과정으로 인해 수많은 도시빈민과 산업예비군이 생겨났고, 궁핍과 실업의 공포에 떠는, 가진 것이라고는 자기 몸뚱이 하나뿐인 수많은 노동자가 탄생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렇게 보면 마르크스의 표현대로 자본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이 세상에 나오는 주된 이유는 바로 토지 사유화 과정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이 현상의 원인이 '토지 사유화' 때문이라고 하지 않고 '토지의 자본화 과정'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토지를 자본의 하나로 간주하는 것이다. 마르크스 입장에서는 자본가가 토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토지와 자본을 구분할 필요를 굳이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으나, 그가 하려는 작업이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을 설명하는 것이었다면, 자본과 토지는 구별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실업, 불황, 독점의 상당한 원인은 자본이 아니라 토지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마르크스가 토지를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다. 리카도의 영향을 받은 그는 <자본론> Ⅲ권에서 자신의 지대론을 상론(詳論)한다. 그러나 그의 지대이론은 그의 경제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자본론> Ⅰ권의 내용과 결합되지 않았다. <자본론> Ⅰ권에서 토지문제는 오직 시초축적과정에서만 등장할 뿐이다.
이렇듯 현대의 경제이론은 보수의 경제학인 신고전주의 경제학은 물론이거니와 진보의 경제학인 케인즈 경제학과 마르크스 경제학에서도 토지가 거의 빠져 있다시피 하니, 진보 진영의 대안 모색에서 토지가 핵심 주제로 등장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론이 빠뜨린다고 해서 토지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토지는 노동시장, 주택시장, 금융시장 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것을 보면 이정전 교수의 말대로 "토지 문제에 관한 한 경제학은 퇴보"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이정전. 2011. <경제학을 리콜하라: 왜 경제학자는 위기를 예측하지 못하는가>. 김영사. p. 166.). 따라서 현대 경제학은 토지를 중요하게 다룬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존 스튜어트 밀, 헨리 조지의 지적 전통을 다시 흡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5대 불안'과 토지문제
이렇게 토지를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되면 현재 진보의 핵심 과제인 주거 불안·교육 불안·일자리 불안·의료 불안·노후 불안이라고 하는 소위 '5대 불안'을, 경제를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를 활성화시키면서 해소할 수 방안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기본적으로 진보는 이런 데에 들어가는 비용을 누진적 소득세와 법인세에서 충당하려고 한다. 이 세금을 많이 거둬서 대량의 임대주택 공급, 무상교육, 실업보장, 노후생활 보장, 무상의료에 투입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소득세와 법인세를 지금 보다 훨씬 많이 거두게 되면 경제가 위축되고 물가가 상승하며 고용이 줄어드는 건 피할 수 없다.
그런데 5대 불안 해소 비용을 토지 불로소득으로 충당하면, 토지 불로소득 환수 자체가 시장을 더욱 역동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5대 불안 자체를 상당부분 예방하면서 복지비용을 마련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내게 된다. 정말로 그러한지 하나하나 따져보자.
먼저 주거 불안을 살펴보자. 토지 불로소득으로 복지비용을 충당하는 방식은 임대주택 공급의 필요성을 크게 줄인다.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것 자체가 주택 가격을 하향 안정화시키고 개인의 주택마련을 훨씬 쉽게 만들기 때문이다. 장점은 그뿐만 아니다. 임대주택을 짓는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임대주택을 지으려면 국가가 토지를 매입해야 하는데,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하면 토지가격이 내려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토지 불로소득을 복지비용에 충당하면 임대주택 건설의 필요도 줄이면서 임대주택 짓는 비용도 절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 ⓒ프레시안(손문상) |
두 번째로 토지 불로소득 환수는 노후 불안도 상당히 줄여준다.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하면 '토지에 짓눌렸던 경제의 활성화 → 일자리 증가 → 고용률 증가·고용 기간 확대 → 개인의 노후 준비 가능성 증가'라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국가의 노후보장 부담이 훨씬 줄어든다.
세 번째로 의료 불안도 줄여준다. 왜냐하면 방금 말했듯이 토지 불로소득 환수 자체가 고용률을 크게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의료보험료 납부자 수는 크게 증가할 것이고, 이것이 의료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지금 한국의 의료보험은 원천징수가 어려운 영세자영업자(500만 명)와 일용근로자가 많고, 해마다 증가하는 기초생활수급자들에 대한 급여액으로 인해 재정 건전성이 나빠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이는 굉장히 중요한 변화이다. 그뿐 아니라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하면 기본적으로 기초생활수급자를 포함한 하위계층의 소득수준과 후생은 크게 증가하는데, 이런 변화는 빈곤이 초래한 나쁜 건강상태를 개선하는 데도 기여하고, 국가의 의료보험 재정지출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네 번째로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하면 일자리 불안이 크게 줄어들어 실업급여를 지급하거나 직업재교육과 일자리 알선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왜냐하면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하면 노동의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그것은 노동자들의 이직을 훨씬 쉽게 하기 때문이다. 이직기간이 단축되면 실업급여 지급하는 소극적 노동시장정책과 직업재교육과 일자리 알선하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 들어가는 비용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하면 토지문제에 짓눌렸던 하위계층의 소득수준이 향상되는 반면 토지 불로소득을 향유했던 상위계층의 소득수준은 하락하기 때문에, 즉 토지로 인한 빈부격차가 사라지기 때문에, 교육 불안은 줄어들고 국가의 교육복지 부담도 완화될 것이다.
이렇게 토지의 독자성과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것이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면 '5대 불안' 해소의 가능성은 훨씬 높아지게 된다.
인간은 토지 위에서 산다!
아담 스미스는 토지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대립을 경제학의 중심 주제로 다룬 첫 번째 학자이고, 이 흐름은 데이비드 리카도, 존 스튜어트 밀, 그리고 헨리 조지에게로 이어졌다. 이들은 토지가 다른 생산수단과 구별되는 것임을 명확히 인식했고,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토지보유세는 경제에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점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토지를 통해서 번 돈은 명백한 불로소득이라는 점도 강조했다.(고전파 경제학자 중에서 현대적 의미의 토지의 중요성과 토지의 독자성, 그리고 토지가 사회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소유의 정당성부터 시작하여 경제적 효율성까지 체계적으로 분석한 학자로 단연 돋보이는 사람은 헨리 조지이다.)
그런데 이런 중요하고, 어찌 보면 상식적인 흐름은 마르크스주의, 신고전주의, 케인즈주의에 오면서 끊어져 버렸다. 이 학파들은 토지를 자본의 하나로 보거나, 토지의 중요성은 산업사회로 오면서 크게 줄어들었다고 간주한다. 토지문제로 울고 웃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보면 참으로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자본이 아니라 토지 위에서 살아간다. 생산 활동을 하든, 쉬든, 운동을 하든 토지가 없으면 안 된다. 그런데 토지는 재생산이 불가능하고, 더구나 토지가치는 사회 전체의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세금으로 환수하는 것은 언제나 정당하다. 그리고 이렇게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하면 토지에 짓눌렸던 생산의 용수철이 높이 튀어 올라 산출량과 고용량이 증가하고, 토지 때문에 발생하는 빈부격차도 제거할 수 있게 된다. 거기에다가 경제에 부담을 주는 다른 세금까지 감면하면 경제는 더욱 확대되어 5대 불안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고, 국가의 복지부담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진보 진영이 이런 인식에 이르려면 인간이 토지 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과, 토지에 문제가 생기면 금융, 노동, 주택에도 문제가 생긴다는 보통사람의 상식으로 복귀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진보의 경제학이 토지를 중요하게 다뤘던 고전학파의 전통을 다시 흡수해서 재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토지문제에 시달리는 대중의 고단한 현실을 밝히 볼 수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희망의 학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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