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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부자 정권, 그 다음을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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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부자 정권, 그 다음을 고민할 때다"

[기고] '2013년 체제'와 토지개혁

열려있는 과제로서의 '2013년 체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주창한 이래로 '2013년 체제'라는 개념이 한국 사회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다. 백 교수는 2013년에 한국 사회가 단순히 새 대통령의 취임 또는 집권세력의 교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시대를 열어보자는 의미에서 '2013년 체제'를 제안했다고 한다.

'2013'이라는 숫자에서 직감할 수 있듯이 2013년 체제는 미래형이다. 이와 유사한 '87년 체제', '97년 체제'가 '과거'의 성격을 규정짓는 것이라면 2013년 체제는 '미래'의 희망을 담고 있는 개념이다. 2013년 체제는 우리에게 열려있는 과제인 셈이다.

이와 관련한 토론회가 지난 11월 25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그 토론회에 참석한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2013년 체제의 핵심 키워드로 평화, 공정성, 혁신, 평등 등을 언급했고 핵심 과제로 파탄직전의 남북관계 개선, 재벌개혁,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착취 근절,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 해소, 복지강화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필자는 '토지개혁'이 2013년 체제의 핵심 과제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토지개혁'은 공정성과 혁신의 토대이며 재벌개혁,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착취 근절,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 해소 등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농경시대도 아닌데 웬 토지개혁?

일반시민에게 대한민국 제1의 과제가 뭐냐고 물으면 어떻게 답할까? 한반도 평화? 복지? 필자는 부동산 문제 해결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집이 없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빚을 내어 집을 산 사람 역시 고민스럽다. 가계 재산의 80% 이상이 부동산이라는 것도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부동산 문제의 핵심은 토지문제에 있다. 그러므로 결국 대한민국의 제1의 개혁과제는 '새로운 관점의 토지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 혹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문제가 토지문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토지 없이는 인간이 생산 활동도, 휴식도, 그야 말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만 인정한다면 한국 사회의 핵심 모순 한 가운데 토지가 있다는 것을 파악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주거불안, 창업활동, 빈부격차, 용산참사와 같은 갈등, 막대한 돈을 토건에 쏟아 붙는 재정낭비, 부정부패,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 등 어느 것 하나 토지와 관련되어있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지식인 서클에서는 이런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 할 것이다. 농경시대도 아닌데 무슨 '토지개혁'이냐고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정치학, 사회학 등 사회과학 일반에서는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는 토지개혁이 중요한 과제였지만 산업화가 진행된 이후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산업화에 걸림돌이 되는 '지주'를 제거하기 위해서 토지개혁이 필요했지만, 일단 산업화가 진행되면 토지의 중요성은 줄어든다고 보는 것이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사회과학의 꽃이라 불리는 경제학은 토지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토지는 경제학원론에 잠깐 등장하고, 경제학의 중요한 개념을 다루는 미시경제학에서는 아예 토지가 등장하지 않는다. 미시경제학에서 생산자 이론과 소비자 이론을 다루는 파트를 보라. 자신의 소득으로 효용을 극대화하려는 소비자들도 토지를 통해서 돈 벌려고 하고 있고, 이윤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생산자들도 위험성이 있는 이윤추구보다는 덜 위험한 토지투기를 통해서 어마어마한 불로소득을 누리려 애쓰고 있으며, 이런 행위들이 생산, 고용, 분배에 심각한 해를 끼쳤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미시경제학에 등장하는 생산자와 소비자들은 토지투기와 전혀 상관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이런 이론으로 무장된 지식인에게 '토지개혁'이란 주제는 낯설 수밖에 없다.

물론 오늘날 학문이 '토지'라는 주제를 완전히 제쳐버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루더라도 토지를 주택과 대출문제를 다룰 때에만, 즉 주거복지나 금융 불안정을 검토할 때만 언급한다. 토지는 '부동산'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졌고, 경제개혁을 다루는 테이블 위에는 올라오지 못한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잘 알듯이 토지의 영향력은 이것보다 훨씬 크고 광범위하다. 오늘날의 경제학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까닭이, 다시 말해서 실물경제와 경제학 이론 간에 커다란 간극이 존재하는 까닭이 일반인들은 너무나 잘 아는 토지의 중요성을 몰각한 것에 있다고 하면 지나친 진단일까?

2013년 체제는 일반시민들의 생활상의 요구를 담아야

한번 질문해보자. '2013년 체제'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한반도 평화'와 같은 거대한 과제도 있겠지만, 필자가 보기엔 일반시민들의 생활상의 요구라고 생각한다. 2013년 체제의 내용이 아무리 단단하게 지어진 논리의 집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대한민국 사회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안전하면서 역동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주지 않으면 많은 시민들로부터 외면 받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일반시민들의 생활상의 요구는 간단하다. 그것은 고등학교만 나와도 일자리 구하기 어렵지 않은 사회, 몇 년 열심히 일하면 주거문제가 해결되는 사회,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손쉽게 창업할 수 있는 사회, 국민이 낸 세금을 토건에 낭비하지 않고 복지에 투입하는 사회 등이다. 요약하면 괜찮은 일자리가 늘어나고, 빈부격차가 줄어들고, 집 걱정에서 해방되는 사회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토지와 직결되어 있다. 현재의 토지제도가 개혁되면 기업의 비생산적인 토지투기 행위는 사라지고 대신에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투자가 늘어난다. 금융권에 많은 자금들이 토지투기로 몰려가서 거품이 꺼지면 은행이 도산하는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엄청난 땅을 가지고 떵떵거리던 재벌들의 시장 지배력은 줄어들고 토지에 짓눌려있던 중소기업과 신규기업의 영향력은 커진다. 기존에 땅이나 집으로 돈 벌던 사람들의 힘은 약화되고 주거문제에 허덕였던 하위계층의 삶은 크게 개선된다. 그리고 재산권자의 배를 불릴 목적으로 진행된 토목공사에 투입되는 재정을 복지재정으로 돌리기가 한결 쉬워진다.

그뿐만 아니라 토지개혁은 공정성과 혁신의 기반이 된다. 어렵게 말할 것 없이 공정성이란 출발이 평등하고, 경쟁과정에 반칙이 없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공정성을 직접적으로 훼손시키는 것이 바로 토지문제다. 토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개인이나 기업은 200m 달리기 경주에서 100m 앞에서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토지소유자들은 생산 과정에서 아무것도 안했는데 엄청난 토지 불로소득을 누리는 반면 토지 없는 사람들의 노력소득은 그만큼 빼앗기게 되는데, 이것은 경쟁과정에서의 '오래된' 반칙이다. 이런 것을 보면 토지개혁 없는 공정성은 사상누각(砂上樓閣)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혁신도 마찬가지이다. 혁신이라는 가치가 한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혁신이 이윤 추구의 지름길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혁신을 통한 이윤 추구보다 토지 위에 건물 지어서 팔거나 아예 땅 사놓고 기다리는 것이 더 쉬운 돈 벌이 수단이라면 혁신이라는 가치가 뿌리내리기는 매우 어렵다. 요컨대 혁신 주도형 경제는 토지 불로소득이 발붙이지 못하는 곳에서 만개(滿開)할 수 있는 꽃인 것이다.

무엇에 대한 평등인가가 중요하다!

11월 25일 토론회에서 한국 사회의 진보 지식인의 한 사람인 경원대 홍종학 교수는 2013년 체제의 키워드로 '평등'이라는 가치를 제안 했다. 드디어 진보 진영에서 오랫동안 머뭇거렸던 '평등'이라는 용어가 재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평등 자체 보다는 '무엇에 대한 평등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 그런데 이 말이 유의미하려면 토지에 대한 권리가 평등해야 한다. 평등한 토지권 정신이 부정된 곳에서 인권은 초라해진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나 지금이나 결국 토지 없는 사람의 삶은 토지소유자에게 종속당하게 된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평등한 토지권 정신은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40%는 토지에 대한 권리를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고, 그들 중 대다수는 이로 인해서 인권은 고사하고 생존권마저 위협받고 있다.

그렇다면 평등한 토지권 정신을 회복시킬 토지개혁의 핵심 알맹이는 무엇이어야 할까? 그것은 토지 불로소득을 근본적으로 환수하는 것이다. 소유권의 3요소인 이용권, 처분권, 수익권 중 수익권 환수에 개혁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더 이상 땅이 돈벌이의 수단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토지는 이용의 대상이 된다. 토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사람이 토지를 소유하게 된다. 돈 벌 목적으로 토지를 소유한 사람들, 이윤 추구가 아니라 불로소득 추구 목적으로 토지를 소유한 기업들이 토지를 시장에 내놓게 되므로, 다시 말해서 토지의 공급이 증가하므로 토지가격이 자연스럽게 하향 안정화되어 집값도 내려가고, 신규로 시장에 진입하려는 창업자들도 손쉽게 창업할 수 있어서 일자리도 크게 늘어난다. 땅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재벌과 대기업들의 힘은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경제민주화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어떤 이는 수익권을 환수하면 누가 토지를 가지려고 하겠냐고 하겠지만, 그런 걱정은 필요 없다. 땅으로 돈 벌 수 없으면 결국 땅은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할 사람이 소유하게 되어 있다. 농지는 농사지을 농민이 소유하게 되고, 도시 토지는 그 토지를 가장 잘 이용할 사람이 소유하게 된다.

제2의 토지개혁이 필요하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대한민국이 산업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로 1950년 이승만 정권 기에 단행된 농지개혁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만약 농지개혁이 실패했더라면 그 이후에 어떤 지도자가 등장했어도 성공적인 산업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데에 동의한다. 이러한 농지개혁은 지주-소작관계만 혁파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교육열을 끌어올려 양질의 노동력을 제공하는데도 크게 기여 했다. 대다수의 소작농이 자영농으로 바뀌지 않았다면 교육열은 살아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승만의 농지개혁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산업화와 함께 새로운 신흥지주가 양산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뚜렷한 개혁이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은 주기적인 불황에 시달렸고, 빈부격차가 심해졌으며, 한 쪽에서는 땅과 집으로 불로소득 향연을 벌리는 반면―이 불로소득의 상당 부분이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다른 한편에서는 전세금 올려줄 돈이 없어서 자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생산적인 영역으로 흘러들어갈 자금들이 토지투기로 몰리게 되었고, 농민들도 농사짓는 것보다 온천지구나 관광특구로 지정되는데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되었고 그런 걸 공약하는 후보에게 표가 몰려왔었다.

따라서 지금 한국 사회는 제2의 토지개혁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변화를 바라는 수많은 시민들의 요구, 대중의 생활상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2013년 체제에 토지개혁을 최우선순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더 이상 땅과 집으로 돈 벌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은 생산적인 투자를 통해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고, 땅 값을 낮춰서 신규기업들도 시장에 쉽게 진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농부들도 땅 바람 부는 걸 기대하지 않고 농사일에 전념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상상력이 세상을 바꾼다. 2013년, 우리는 어떤 세상을 꿈꿀 것인가?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2013년 체제는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토지문제에서 완전히 해방된 한국 사회를 꿈꿔 볼 수는 없을까? 필자는 기업, 노동자, 농민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평등한 토지권을 누리는 새로운 사회를 상상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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