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에 또 하나의 야권 통합정당이 탄생했다. 시민통합당과 민주당이 '민주통합당'으로 합당을 선언했고, 그 당이 지향하는 강령도 발표했다. 강령을 보면 대한민국을 전면적으로 개혁하겠다는 당찬 포부가 담겨 있다.
발표된 강령에서 가장 눈에 띄는 용어는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근본적 개혁, 경제민주화, 조세정의 실현, 그리고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반값등록금, 주거복지 등이었다. 나열한 것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보면 한 나라의 중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정책, 조세정책, 복지정책에 관한 것이 총 망라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근본적 개혁과 경제민주화는 경제정책에, 조세정의는 조세정책에,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반값등록금, 주거복지 등은 복지정책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는데, 아마도 민주통합당은 이 세 영역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걸 목표로 하고 있는 듯하다. 즉, 조세정의를 통해서 더 많은 복지재정을 마련하고, 피폐해진 기업생태계와 고용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를 통하여 복지 부담을 줄이고, 사회적 안전망을 튼튼히 하여 시장을 더욱 역동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토지를 간과한 강령
그런데 강령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토지가 빠져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발표된 강령에서 토지와 관련된 것을 굳이 찾자면 '주거복지' 정도이고, '토지'라는 용어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토지를 이렇게 부차적으로 다뤄도 괜찮을까? 아니다. 토지의 사회경제적 영향력은 다른 무엇보다도 크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의 원인의 원인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토지와 만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지금이 '제2의 토지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1950년 이승만 정부가 단행한 첫 번째 토지개혁인 농지개혁이 산업화의 기초를 다지는 데는 성공했지만, 농업사회 버전이어서 산업화가 진전되어감에 따라 새로운 토지문제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태우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토지공개념'을 들고 나왔지만, 사실 이때 나온 토지공개념은 말만 거창하고 요란했지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따라서 지금은 산업화된 시대에 걸맞은, 토지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 있는 제2의 토지개혁이 필요한데, 이것의 핵심은 토지를 골고루 나눠 주는 것이 아니라 토지 불로소득을 공공이 환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경제민주화와 조세정의, 그리고 복지강화를 제대로 실현시킬 수 있고, 이것들 간에 더 좋은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실 있는 경제민주화를 위해서 제2의 토지개혁이 필요하다
경제민주화의 핵심 과제중 하나는 재벌과 대기업의 반칙과 특권을 해체하는 일이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중소기업과 신규기업에 대해서 재벌과 대기업이 막강한 힘을 가질 수 있는 까닭 중 하나는 엄청난 토지소유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말 그런지 잠깐 살펴보자.
토지는 "생산된 생산수단"으로 정의되는 자본과 달리 재생산이 불가능한 천부적(天賦的) 자원이다. 한 사람이 소유하면 다른 사람은 소유는 불가능하다. 또한 토지의 가격인 지가(地價)는 자본처럼 과거에 투입한 비용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발생할 토지가치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투기의 가능성은 매우 높다.
우리는 오늘날의 재벌들이 오로지 반도체, 자동차, 철강 사업만 열심히 해서 성장하지 않았다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의 성장과정을 살펴보면 토지투기가, 그리고 개발지를 미리 알아내거나 아니면 개발계획을 변경해서 얻은 막대한 토지 불로소득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면 21세기 들어와서는 이런 경향이 줄어들거나 중단되었을까? 결코 아니다. 이들의 토지 불로소득 추구 행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반면에 이런 현실은 신규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장(生長)에 엄청난 장애가 된다. 한 마디로 말해서 토지 불로소득을 개인이 사유화할 수 있는 현재의 토지제도는 재벌 및 대기업에게는 매우 유리하고 중소기업 및 신규기업에게는 매우 불리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토지 불로소득을 완전히 환수하는 토지개혁을 단행하게 되면 경제민주화의 가능성은 훨씬 높아지고 그 내용도 튼실해진다. 제2의 토지개혁이 단행되면 토지소유 정도와 기업의 시장지배력이 무관해지므로 토지에 짓눌렸던 신규기업과 중소기업의 영향력은 커지고, 엄청난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대기업과 재벌의 시장지배력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노동의 수요가 지금 보다 훨씬 높아져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고, 주거 문제도 상당히 해결 되어 하위계층의 삶은 크게 개선될 것이다.
'3각 특권동맹체제' 해체를 위해서 제2의 토지개혁이 필요하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하에서 남북관계는 크게 진전되고 사회 각 영역에 투명성과 합리성은 높아지는 성과도 있었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을 가장 괴롭히는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된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여기에는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필자는 재벌-경제관료-조ㆍ중ㆍ동으로 구축된 '3각 특권동맹체제'를 해체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에 포위당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차기 민주정부가, 아니 민주통합당이 집권해서 개혁에 성공하려면 이 3각 특권동맹체제 해체에 대한 방법도 치밀하게 구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서 말했듯이 재벌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땅 부자다. 경실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15대 재벌의 토지자산은 무려 83.7조 원이나 된다. 언제 어디서 개발이 이뤄질지 알고 있는, 아니 개발계획을 직접 디자인하는 경제관료들도 요지(要地)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도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조ㆍ중ㆍ동의 사주들도 어마어마한 토지소유자들이라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사실을 생각해보면 제2의 토지개혁이 한국 사회 개혁을 번번이 좌절시킨 3각 특권동맹체제를 해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재정낭비를 줄이기 위해서 제2의 토지개혁이 필요하다
엄청난 정부재정이 토건에 낭비된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4대강사업과 같이 강바닥 파내는데 엄청난 돈을 쏟아 붙는 사업과 수요량을 과대하게 부풀려서 밀어붙이는 공항과 도로건설과 같은 토건사업이 축소되지 않는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 여기에도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이 사업을 하면 땅값이 올라 엄청난 토지 불로소득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 따라서 토지 불로소득을 완전히 환수하는 제2의 토지개혁을 단행하게 되면 토지 불로소득을 노리고 추진되는 토건지출은 크게 줄어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교육, 의료, 노후 등의 복지에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할 수 있게 된다.
올바른 조세정의를 위해서 제2의 토지개혁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번 민주통합당의 강령에는 조세정의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조세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정확한 내용을 알기 어렵지만, 지금까지 나온 논의를 보면 그것의 구체적 정책수단은 비과세ㆍ감면의 대폭 축소와 고소득자영자들의 세금 탈루 방지, 그리고 소득세ㆍ법인세 강화 등일 것이다. 복지재정이 부족하니 서구 복지국가처럼 세금을 더 많이 거둬서 복지에 충당하자는 것이 조세정책의 기본 구상인 것이다.
그러나 제2의 토지개혁을 염두에 두면 새로운 관점의 조세정의를 모색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관점의 조세정의란 불로소득에 대한 세금은 높이고 노력소득에 대한 세금은 낮추는 것을 말한다. 다른 말로 하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위에 대해서는 세금은 낮추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서는 세금을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위란 부를 창출하는 행위, 다른 말로 하면 GDP를 증가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노동하고 투자하는 곳에 부담시켰던 세금은 줄이자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는 행위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행위가 아니라 '이미' 사회에 존재하는 가치를 얻기 위해 애쓰는 지대추구(rent-seeking) 행위를 뜻한다. 지대추구에 아무리 엄청난 노력을 투입해도 국부(國富)는 전혀 늘어나지 않는데, 여기에 대표적인 행위가 바로 토지투기다. 토지투기를 통해서 누가 돈을 벌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돈을 잃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지 국부가 증가했다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런 토지투기 행위를 방지하도록 토지에 대한 세금을 점차 강화하자는 것이다.
요컨대 새로운 조세정의란 바로 토지투기가 노리는 토지 불로소득을 세금으로 많이 환수하는 대신 생산 활동에 부담을 주는 세금(법인세, 소득세)을 감면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토지문제가 초래했던 생산 위축 문제와 분배 악화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경제에 부담을 주었던 각종 세금 감면은 생산 활동을 더욱 촉진시키게 된다.
관건은 '더 좋은' 선순환 구조 형성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조세정의 실현, 즉 세수를 늘리지 않고 세금의 무게 중심을 토지세로 옮기게 되면 현재와 같은 엄청난 복지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제2의 토지개혁이라는 토대 위에서 경제민주화가 진행되면 오늘날의 거대한 복지수요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이런 개혁은 대기업에 착취당하던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높여주어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소득수준을 크게 개선시켜 줄 것이고, 거기에다가 토지개혁 실시로 인한 일자리 증가와 빈부격차 완화는 복지수요를 더욱 더 줄여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다 토건에 낭비되는 지출을 줄이게 되면 지금 보다 훨씬 많은 복지재정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관건은 '더 좋은' 선순환 구조 형성이다.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경제민주화와 조세정의, 복지강화의 선순환 구조는 토지개혁 위에서 더 잘 작동된다. 토지개혁을 고려하지 않은 조세정의는 생산에 부담을 주는 증세로 갈 수밖에 없고, 토지문제가 초래한 복지수요를 차단할 수 없게 되며, 지금까지 개혁을 좌절시켜왔던 재벌-경제관료-조ㆍ중ㆍ동의 3각 특권동맹체제를 해체하기도 힘들게 된다. 그런데 토지개혁의 터 위에서 진행된 조세정의 실현은 경제를 더욱 활성화시킬 수 있고, 더욱 튼실한 경제민주화를 이뤄낼 수 있으며, 복지수요를 현저하게 줄이면서 더 많은 복지재정을 마련할 수 있게 해 준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민주통합당이 추구하는 개혁정책이 제2의 토지개혁 위에서 진행된다면 '더 좋은'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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