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탑의 시간이 길어지고 고통이 심해지면서 같이 있던 병승이 형과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릿해지기도 했습니다. 7월 20일 서울에서, 제주도에서, 멀리 해외에서 현대차 울산 공장과 철탑을 찾아주신 분들의 마음으로 296일이라는 시간을 견뎌내고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땅에서 올려다본 25m 까치집은 우리가 10개월이란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는 것이 신기하게만 느껴질 정도로 아득했습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어머니도 만나뵙지 못했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현대차 아산 공장 박정식 열사를 찾아뵙고 좋아하는 술 한 잔 따라드리겠다는 자신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한 채 바로 병원으로 와야 했습니다.
두 평 남짓한 공간에서 296일 동안 길들여진 나의 몸은 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았습니다. 철탑에서 생활했던 자세를 버리지 않으면 회복도 느려진다고 하는데 보름이 지난 지금은 허리의 고통보다도 아무런 성과도 없이 내려온 나 자신이 야속하고 미련이 남습니다.
| ▲ 8일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최병승(왼쪽), 천의봉(오른쪽) 조합원이 296일 만에 철탑 농성을 마치고 땅을 밟았다. ⓒ프레시안(최형락) |
아무 성과 없이 내려온 나 자신이 야속
현대차가 써준 대로 언론은 희망버스를 폭력으로 몰아갔습니다. 과연 폭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무엇이 진짜 폭력일까요?
2010년 11월 대법원 판결을 지키라며 현대차 울산 1공장 점거 파업을 벌일 당시 저는 2공장에 홍보물을 나눠주기 위해 깁스한 다리를 이끌고 늦은 밤 공장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6명의 현대차 관리자가 저를 납치했고, 무려 3시간 동안 150만 평 공장의 구석진 곳에서 집단 구타를 당했습니다. 왼쪽 고막이 파열됐고 심한 외상을 입어 3주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작년에는 사내 현금 지급기에서 총무부장과 함께 돈을 찾고 있다가 대형 버스에 실려서 30명의 관리자와 용역들에게 집중 구타를 당하고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인근 꽃바위 근처에 마치 쓰레기를 버리듯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우측 어깨 염좌와 심한 외상으로 또 3주간 병원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 관련 기사 : 현대차 보안팀·용역, 비정규직노조 간부 집단폭행·납치)
현대차 관리자들에게 납치당해 집단 폭력 당했던 기억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파업하는 날에는 병원에 병실이 없을 정도로 많은 조합원들이 관리자와 용역들에게 맞아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현대차가 동원한 용역, 관리자들에 의해 심야에 납치당해서 집단 구타를 당했지만 어느 누구하나 처벌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니, 2010년 집단 폭행한 관리자들은 전부 진급을 했습니다. 어떤 언론도 현대차가 비정규직에게 가한 폭력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철탑에서 내려와 우리 비정규직 조합원들과 마음 편하게 밥 한 끼조차도 할 수 없었습니다. 현대차로부터 살인적인 폭행을 당하고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구속된 강성용 수석부지회장과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많은 조합원들 때문입니다. 철탑 농성은 해제됐지만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속될지 모릅니다.
폭력의 온상인 현대차가 희망버스의 폭력을 말합니다. 10년 동안 온갖 불법을 저질러온 정몽구 회장이 희망버스의 불법을 말합니다. 불법과 폭력을 바로잡아야 할 정부와 경찰은 정몽구 회장과 현대차에는 손끝 하나 대지 못하고, 희망버스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화풀이를 있습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불법과 폭력의 온상인 현대차에는 손끝 하나 못 대면서
8월 16일과 21일에 불법 파견 특별 교섭 실무 교섭이 있었습니다. 희망버스와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를 불법과 폭력으로 몰던 회사가 교섭에 나와 타결을 목표로 교섭을 하자고 합니다. 희망버스에 함께해 주신 분들의 관심과 연대 때문에 교섭의 자리도 열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회사는 불법 파견을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신규 채용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정년 퇴직자 등) 정규직 자연 감소 인원을 당연히 충원해야 하는데도 불법 파견 문제를 덮어버리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불법과 폭력의 주범이 희망버스와 비정규직인지, 현대차와 정몽구 회장인지 진실이 밝혀져야 합니다. 폭력은 중단되어야 하고 불법은 바로잡혀야 합니다. 10년 동안 온갖 탄압과 고통을 견뎌온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의 손을 내밀어 준 희망버스가 마음을 모아 불법과 폭력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현대차를 필두로 기아차, 현대제철, 현대하이스코, 삼성전자, 이마트, 케이블, 인천공항 등 전국의 비정규직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당하고 있는 불법과 폭력이 근절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현대차에서 그 물꼬를 터야 합니다.
다시 한 번 희망버스가 힘을 발휘해 현대차가 그동안 저지른 폭력의 대가를 반드시 치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재활 치료를 받고 8월 31일에 함께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 이 글은 <레디앙>, <참세상>에도 실립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