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가을, 권근술 한겨레신문 사장이 한국언론2000년위원회에서 안기부의 광고 탄압 사례를 간접적으로 증언하고 있을 때, 한겨레 내에서는 김성수 기획관리실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업 구상이 시작되고 있었다.
“안기부 광고탄압 사건은 한겨레의 입지를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됐다. 창간 취지인 독립언론의 위상을 계속 지켜 나가자면 수익 구조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신문사 운영만으로는 열악한 자본의 한계를 극복하기 힘들다는 판단이었다. 다각도로 새로운 사업을 모색했다.”
김성수 당시 경영기획실장의 말이다. 이 때 한겨레가 주목한 것이 풀뿌리 광고 시장인 생활정보지였다. 경기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뿐더러 생활정보지시장의 매출액 규모는 이미 연간 수 천억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신규 사업 구상의 핵심이었던 김 실장은 마침 생활정보지의 대표 주자격인 벼룩시장 사장과는 고교 동기 동창이어서 생활정보지 동향에 비교적 일찍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터였다.
무엇보다 기존의 생활정보지와 달리 지역언론의 역할을 담당하는 지역신문으로 키워 나간다면 한겨레와 상호 보완적인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이른바 ‘양날개론’이다.
김 실장이 말하는 양날개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단순하게 또 하나의 생활정보지를 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생활정보지를 기반으로 지역신문으로 키워나간다면 한겨레는 튼튼한 지역 기반을 구축하게 된다는 점이 더 매력적이었다. 수익도 내고 한겨레의 영향력을 조선일보에 필적할 만큼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생활광고시장에 주목한 것은 비단 한겨레뿐만은 아니었다. 한겨레의 동향이 기폭제가 되긴 했지만 중앙일보를 비롯해 조선일보, 동아일보, 국민일보, 한국경제 등 일간지들이 한겨레의 뒤를 이어 잇달아 생활정보지 시장의 진출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사실 생활정보지들이 싣고 있는 ‘안내광고(Classified Ad)’는 외국에서는 일간지들의 주요 광고 수입원이다. 신문사의 수입 가운데 구독료 비중이 높은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대표적인 신문사들과 미디어그룹들이 생활정보지들을 병행 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광고 비중이 높은 미국에서도 지역신문들은 말할 나위도 없고 뉴욕타임스 등 대표적인 신문들도 광고 수입 가운데 안내 광고의 비중이 높다. 하지만 한국의 신문들은 그 동안 중앙지나 지방지를 가리지 않고 굵직굵직한 대기업들의 광고로 먹고 살아왔다.
중앙지의 경우 광고 수입의 절반 이상을 대기업 광고와 협찬이 차지하고 있고, 지방신문들은 지방의 건설회사와 백화점이 주 광고주들이다. 똑같이 광고 수입 의존도가 크다고 해도 풀뿌리 광고라는 두터운 저변을 갖고 있는 미국 신문과 대기업 광고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 신문은 다를 수밖에 없다.
대기업들이 주는 광고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신문들은 대기업들에게 약하다. 수입의 20~30%를 넘지 않는 독자쪽보다 광고주의 눈치를 더 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한겨레와 다른 신문들의 생활광고시장에 대한 관심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뒤늦은 ‘각성’이기도 했다.
미구에 닥칠 외환위기를 앞두고 경제 사정이 크게 나빠지면서 대기업들의 광고가 크게 준 것도 생활정보지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주요 배경이 됐다.
***풀뿌리 광고도 잡고 지역기반도 잡고**
1997년 생활 정보지 시장의 규모는 이미 2,3천억원대 규모로 신문사들의 구미를 당길 만했다. 생활정보지의 매출액 규모는 99년 업계 추산으로 연간 4천8백억원, 지난해 6천2백억원에 이어 올해에는 8천억원 이상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체 규모로 따진다면 물론 종합 일간 신문의 광고 시장에는 못 미친다. 2000년 신문 광고 액수는 총 2조1천2백14억원. 생활정보지 광고보다 3배 정도 많다. 하지만 이들 풀뿌리 광고가 주로 기업들이 내는 광고의 3분의 1 수준이라는 것만 해도 놀라운 수치다.
이는 1989년 당시의 신문 광고 전체 규모(6천1백38억원)를 넘어서는 것이다. 지난해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신문사는 조선일보로 총 4천7백53억여원이었다. 이 가운데 광고 매출을 70~80%로 잡으면 대략 3천3백억~3천7백억원 규모. 같은 셈법으로 2, 3위인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의 광고 매출을 추산하면 각각 2천6백억~3천여억원선이다.
단순 비교가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전국적인 풀뿌리 광고시장은 총량만 놓고 보자면 조선, 중앙, 동아 같은 전국지 2개 이상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규모이며, 조,중, 동을 제외한 전국 종합일간지의 광고 매출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다만 그것이 ‘신문의 것’이 아닐 뿐이다. 생활정보지라는, 90년대 들어 새롭게 등장한, 무료 광고지들이 그 주인이다.
중앙 일간지와 지방지들이 마냥 기업 광고만 바라 보고 있을 때 이들 생활정보지들은 길거리를 샅샅이 훑으며 서민들의 절실한 요구를 광고로 담아 이제는 그 어떤 중앙 일간지도 부럽지 않은 튼튼한 광고시장을 일궈낸 것이다.
한겨레의 양날개 전략 구상은 이 매력적인 ‘광고시장’과 ‘지역기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자는 것이었다. 한겨레에 이어 중앙일보가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기존 생활정보지의 벽은 의외로 두텁고 높았다. 98년 4월, 한겨레는 한겨레리빙이라는 또 하나의 날개를 달았지만, 그 날개는 채 펴보기도 전에 무참하게 꺾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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