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신문은 무얼 먹고 사나 <5>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신문은 무얼 먹고 사나 <5>

거대 일간지의 생활정보지 실험

평탄하게 왔죠. 어려웠던 점 별로 없습니다.”
새로운 미디어제국을 꿈꾸는 주원석 미디어윌 사장의 ‘성공시대’를 다룬 기사들에서 빠짐없이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초창기, ‘사람들에게 생활정보지라는 게 이런 거다’ ‘이런 광고 내면 된다’는 것을 알리는 게 어려웠지, 일단 알려지기 시작하자 말 그대로 ‘순풍에 돛 단 배’였다는 거다.

하지만 어려움이 없었을 리 없다. 지금에야 정말 ‘알짜배기 사업’이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만 처음에는 동업자 구하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업체간의 경쟁도 치열했다. 서울권역을 9개판으로 나눠 선점하기는 했지만 선두를 지키는 일이 쉽지 않았다. 광고 수요 증가에 맞춘 일이기는 했지만 주 2회에서 주 3회, 그리고 주 5회 발행을 앞장서 단행한 것은 일종의 ‘모험’이기도 했다.

후발 주자들은 후발주자들대로 선발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피 말리는 ‘길거리 전투’를 해야 했다. 남보다 한 부라도 더 찍어야 했고, 다른 신문들보다도 더 빨리, 눈에 잘 띄는 곳에 자리를 잡기 위해 말 그대로 ‘별 별 일’을 다 해야 했다.

가로수, 교차로, 벼룩시장이 오늘날과 같은 주 5회에서 6회 발행에 하루 3회 배포는 10여년간의 치열한 길거리 전투 끝에 정착된 일종의 ‘평화 협정’ 같은 것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지금도 간혹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일정한 지분 분할이 끝난 과점 체제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몇 부를 찍어, 어느 곳에, 몇 부씩 갖다 놓을 것인가 하는 것은 여전히 이들 업체들의 주요 기밀사항이자 최대의 ‘노하우’다.

유해광고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초창기 생활정보지가 출현해 전국적으로 확산될 때만 해도 생활정보지는 ‘신선한 화제거리’였다. 광고를 싣고 무료로 배포하는 마케팅 방식이나, 지역 단위의 발행 형태는 언론의 관심을 끌어 자주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다. 초창기 언론들의 호의적인 보도는 생활정보지의 대중적 확산이 큰 도움이 됐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생활광고지가 대중화되면서 유해 광고 문제가 쟁점화되기 시작했다. 사채광고, 유흥업소 구인광고, 불법 광고, 청소년 탈선을 조장하는 불건전 광고들이 특히 도마에 올랐다. 생활광고지를 이용한 사기 사건들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치열한 경쟁, 유해광고 논란에 신문용지 값 폭등 직격탄**

규제 여론이 일었고, 언론들도 앞 다퉈 이 문제를 집중 부각했다. 이곳 저곳 무분별하게 설치돼 있는 배포대와 무차별적인 무가지 살포가 환경문제를 야기시킨다는 지적도 나왔다. 자칫 영업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 있었다.

가로수, 교차로, 벼룩시장 등 이른바 ‘빅3’를 중심으로 자정노력이 펼쳐졌다. 부동산 거래나 물품 구매에 관한 ‘주의문’이 실리기 시작했고, 문제성 있는 구인 광고나 비디오방, 전화방 등 청소년 유해광고에 대해서는 업계 차원에서 싣지 않기로 했다.

성별과 나이에 관계없이 무가로 무차별적으로 유포되는 생활정보지들의 유해광고 논란은 지금도 뜨거운 쟁점 가운데 하나다. 이른바 빅3 생활정보지들은 이러한 문제가 야기할 수 있는 사회적 파장을 우려해 나름대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상당한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어찌 보면 노출 정도가 덜하다지만 대다수 일간 신문사들도 유사한 ‘유해광고’를 싣고 있는 게 일종의 ‘방패’ 역할을 해준 측면도 없지 않다. 당국에서 규제의 잣대를 일률적으로 들이대기에는 이들 신문사들은 ‘힘에 벅찬’ 상대들이기 때문이다. 생활정보지 빅3가 싣지 않고 있는 유해성 광고를 오히려 이들 일간지들이 싣는 경우가 적지 않다.

94년 이후 가파르게 오른 신문용지 가격도 경영을 압박하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국제 펄프가격이 오르면서 신문용지 가격은 2년만에 4차례에 걸쳐 무려 44.85%가 올랐다. 신문용지 대금은 제조원가의 80~90%, 전체 비용의 50~60%를 차지한다. 생활정보지 전반적으로 제조비용이 대폭 오른 것은 물론 군소 생활정보지들에게는 치명적 타격이었다.

그러나 신문용지 파동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불필요한 부수를 줄이고, 활자 크기를 조정하고 광고게재 단수를 6단에서 7단으로 늘려 면당 광고 게재건수를 늘리는 등 경영 합리화의 계기가 됐고. 경쟁력 없는 후발 사업자를 퇴출시킴으로써 시장을 안정화시켜 준 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본격적인 시련의 고비는 그 다음에 왔다. 그것은 보다 직접적이고, 위협적이었다.

***한겨레와 중앙일보의 출사표…건곤일척의 승부**

1997년, 대통령 선거가 한창 막바지에 접어들던 11월. 생활정보지 업체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한겨레신문이 생활정보지를 낸다는 소식이 삽시간에 생활정보지 업체들에게 퍼져 나갔다. 한겨레뿐만이 아니라는 소문까지 나돌면서 업계는 일순 긴장에 빠져 들었다.

한겨레의 진출은 전혀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을 의미했다. 그 어느 분야보다 선점효과가 분명해 2등이 1등 따라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다는 생활정보지 시장이었지만 중앙 일간지가 나선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질 수 있었다.

생활정보지 시장에서 선점효과의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브랜드 인지도’다. 후발 업체가 선발 업체를 따라 잡기 힘든 것은 한번 고착된 브랜드 인지도를 바꾸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겨레 같은 전국적 브랜드 인지도의 중앙 일간지가 진출한다면 사정이 어떻게 될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게다가 자사 지면이나 광고면을 통한 중앙일간지들의 가공할 만한 홍보력까지를 감안할 때 삽시간에 시장 판도를 뒤바꿀 수도 있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겨레, 그 다음이었다. 한겨레가 진출한다면 다른 신문사들이라고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만약 한겨레의 진입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다른 신문사들도 줄줄이 뛰어들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얼마를 뺏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생활정보지들이 살아남느냐, 죽느냐 하는 건곤일척의 승부였다.

때를 맞춰 벼룩시장 쪽에서는 ‘이상한 동요’들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일부 지국 주요 인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한겨레의 움직임과 무관치 않아 보였다. 92~93년 상표권 파동을 겪었던 벼룩시장으로서는 또 한번의 내홍이 우려되기도 했다.

당시 상표권 사용료와 지분 등의 문제로 갈등을 빚던 지사장들 가운데 상당수가 ‘파랑새’라는 제호로 새 살림을 꾸려 떨어져 나갔었다. 벼룩시장으로서는 한겨레의 진출도 진출이려니와 예상되는 한겨레의 ‘사람 빼가기’에 신경이 곤두서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업체들 또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한겨레의 움직임에 이어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해 왔다. 제휴를 제의하기도 했고, 이들 업체들이 열세인 지역에서 ‘손을 잡고’ 1위를 공략해보자는 유혹도 있었다.

생활정보지들로서는 신문사들이 나선다고 해서 이미 굳어진 판세를 뒤엎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지만 한겨레에 이은 중앙일보의 생활정보지 창간 움직임은 생활정보지 시장의 일대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거센 도전인 것만은 분명했다.

***1년만에 퇴출당한 한겨레리빙과 중앙타운…”더 이상 무서울 게 없다”**

98년 4월 20일, 한겨레가 발행하는 생활정보지 한겨레리빙이 첫 선을 보였다. 다른 생활정보지들이 서울을 9~10개 권역으로 나누고 있는 데 반해 중부, 동부, 서부, 남부 4개 광역권역으로 나눠 발행했다. 모두 본사 직영 체제였다.

한겨레리빙은 기존의 생활정보지들과 차별화를 선언하고 나섰다. 광고나 배포 등은 다른 생활정보지와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채택했지만 단순히 ‘광고’만을 싣는 광고지가 아니라, 지역의 소식과 정보가 담겨 있는 지역 신문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20~30명의 취재 기자들을 두고, 전체 40-48개 지면 가운데 8-10개 지면 정도를 각 권역별 지역 소식과 문화생활, 볼거리, 먹거리 등 생활 문화 정보로 채웠다. 일부 기자는 한겨레에서 파견됐다. 한겨레신문의 문화, 인물 기사도 같이 실었다. “한 번 보고 버리는 게 아니라 갖고 다니면서 읽는 생활 정보지”를 표방했다. 한겨레리빙의 최종 목표는 지역신문이었다.

또 불건전 광고는 싣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술집 여종업원 모집 광고나 짝짓기 이벤트·전화방 광고와 같이 성을 상품화하거나 불법적인 광고는 싣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생활광고지에 대기업 광고가 등장한 것도 생활정보지에서는 처음 있는 일었다. 달라도 뭔가 달랐다.

5개월 후인 9월 28일에는 중앙일보에서 발행하는 중앙타운이 한겨레리빙의 뒤를 이었다. 한겨레리빙과 거의 유사한 ‘컨셉’이었다.

한겨레리빙의 출현은 곧 다른 생활정보지에도 영향을 미쳤다. 벼룩시장 등 기존의 생활정보지들도 기자를 두고, 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한겨레의 ‘깔끔한 편집’에 자극받은 다른 생활정보지들의 디자인도 상당한 변화를 보였다.

반면 한겨레리빙에도 ‘변화’는 있었다. “왕창 싼%”, “일수전문”, “이성체험 고백”, “성인남녀 문제실화”…. 창간 2개월이 채 못돼 한겨레리빙에 등장하기 시작한 사채 및 전화방 광고들이다.

불건전 광고는 싣지 않겠다는 한겨레의 다짐이 창간 2개월도 채 안돼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이상’과 ‘현실’은 다를 수밖에 없는, 한겨레리빙의 ‘불안한 출발’을 알리는 몇 가지 징후 가운데 하나였다.

당초 한겨레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졌던 일부 기존 생활정보지 관계자들의 동참 또한 기대에 못 미쳤다. 초기 자본금도 10억원을 넘지 못했다. 생활정보지 시장은 크게 위축되지 않았지만 외환위기로 꽁꽁 얼어붙은 소비심리도 어려움을 더했다.

더욱이 그 해 여름은 유난히 폭우도 많이 내리고, 장마가 길었다. 6,7월 내리 장마가 8월 중순까지 이어졌다. 비 피할 곳 없는 길거리 배포대에 신문을 내다 놓아야 하는 생활정보지에게 비는 ‘쥐약’이었다.

추석을 전후한 가을은 생활정보지들의 대목이다. 이사철인 데다가 광고물량이 연중 가장 많은 때다. 이 때를 맞춰 등장한 중앙타운은 한겨레리빙의 진입으로 가뜩이나 가열된 ‘덤핑’ 경쟁을 더 가속화시켰다. 3~4개월이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것으로 생각했던 한겨레의 당초 예상은 크게 빗나가기 시작했다.

연말을 앞두고 한겨레리빙의 적자폭에 대한 우려가 회사 내부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적자 규모가 이미 50억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겨레리빙은 한겨레 사장 선거의 최대 쟁점이 됐다. 해를 넘기면서 한겨레리빙은 존폐의 기로에 섰다. 중앙타운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99년 5월 3일. 한겨레 이사회는 한겨레리빙의 매각을 결정했다. 한겨레리빙이 출발한 지 딱 1년 만이었다. ‘대박’의 꿈을 안고 출발한 한겨레의 야심적인 사업은 이제 약 70억원의 부채와 여러 청산해야 할 ‘무거운 짐’만 남겨 놓은 골칫거리였다.

중앙일보의 행보는 더 신속했다. 창간 4개월도 채 안돼 전면적인 구조조정에 나서 연초 전직원의 4분의 3 가량을 감원한 데 이어 6월부터는 지면을 4쪽으로 대폭 줄였다. 배포 방식도 거리 배포에서 중앙일보 ‘삽지’로 바꾸었다. 사업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안돼 1백억원의 적자만 남겨놓은 사실상의 ‘퇴출’이었다.

“신문사들이 별걸 다 먹으려 한다”는 주변의 빈축마저 감수하고 감행한 두 중앙일간지의 ‘도전’은 두 신문사의 위상에 큰 손상을 입혔다.

특히 한겨레의 상처가 컸다. 한겨레가 이전 5년동안 흑자를 낸 것은 두 해, 합해서 17억6천 여만원이었다. 반면 적자 3년간의 총 누적적자는 83억 1천만원. 수천억원 빚을 지고도 잘도 돌아가는 것이 한국의 신문사들이기는 하지만 달리 기댈 곳 없는 한겨레에게 70억원의 투자 손실은 엄청난 타격이었기 때문이다.

한겨레와 중앙일보의 ‘침공’마저 물리쳐 낸 생활정보지 빅3에게는 이젠 거칠 게 없었다. 더 이상 일간지들의 공세를 겁낼 필요가 없게 됐다. 그 누구도 이제는 쉽게 덤빌 수 없는 저력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전리품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두 일간 신문사들의 진입 시도로 생활정보지의 위상은 한껏 올랐다. 생활정보지 관계자들은 그 누구나 이들 두 신문사가 결과적으로 생활정보지에 대한 인식 자체를 크게 바꾸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하는 데 결코 인색하지 않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