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일간지 가운데는 이미 생활정보지의 대쇄 업체로 전락한 데도 있습니다. 생활정보지가 지방신문을 인수할 조짐마저 없지 않습니다.”
서울에 주재하는 한 지방 신문사 관계자의 전언이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계자는 못내 조심스러워 했다. 지역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가뜩이나 주눅들어 있는 동료들의 자존심을 상하게나 하지 않을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풍문인가 싶던 이같은 전언은 다른 곳에서도 확인된다. 서울지역 교차로의 사장 한 사람도 “그렇지 않아도 누가 상의해 와 (인수)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한다. “먹을 것’도 없는데 괜한 욕심 부리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교차로의 터줏대감 가운데 하나인 그가 ‘인수 불가론’을 내세우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지론이다. 생활정보지 경영 마인드로 언론을 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에게 언론이 ‘장사가 되고 안 되고’는 그 다음 문제다. 장사 속으로만 따진다면 아예 생각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괜히 적을 만든다는 것이다. 생활정보지를 계속 하자면 적이 없어야 한다. 어쨌든 “이 사업은 알게 모르게 밑바닥에서 조용히 하는 게 좋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역에서 신문을 한다 하면 ‘정치적인 적’을 만들게 되고 사업에 하등 도움 될 게 없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지론과는 무관하게 그러나 이제 생활정보지들의 ‘역진출’ 움직임은 곳곳에서 파악된다.
작고한 고 박권현 대전교차로 회장도 언론쪽에 상당한 의욕을 갖고 있었다. 경영 형편이 곤란한 지방지들과의 접촉도 상당히 ‘깊숙이’ 진행됐었다는 후문이다.
지방 생활정보지들과 지방 신문들의 수익구조를 따져 볼 때 ‘역진출’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상스러운 일만은 아니다.
대전이나 대구, 광주, 부산 등 지방 대도시의 경우 선두 생활정보지의 매출이나 수익 규모는 서울 한 곳 보다 훨씬 크다. 서울이 보통 2~3개 구를 하나의 단위로 하고 있는 반면 이들 지방 대도시에서는 주변 인접 권역까지를 묶어서 한 판으로 낸다.
당연히 페이지 수도 많고 광고 게재량도 많다. 서울의 경우 한 지역당 타블로이드 50여쪽에서 120여쪽을 발행하고 있는 데 반해 대구교차로 같은 경우에는 260여쪽까지 발행하고 있다. 발행 부수도 서울 지역 한 곳이 4만~6만 여부인 데 반해 이들 지방 대도시 지역은 10만부를 넘게 찍는다. 물론 지역별 선두주자의 경우이다.
평균 매출도 이들 지방 선두 주자의 경우 공식적으로 월 10억원을 넘는 곳이 적지 않다. 연간 100억원에서 많게는 150억원 사이를 오간다.
이는 금융감독원에 결산보고서를 제출하는 비교적 경영이 우량한 지방 일간지 12개사의 지난해 평균 매출액(202억 여원)의 절반이 넘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들 지방 신문사들의 매출 가운데 상당 부분은 실제 수익은 얼마 되지 않는 대쇄(인쇄를 위탁받아 대신 찍어주는 것:용지까지 포함될 경우 매출은 크게 잡히지만 정작 수익은 얼마 안 된다) 수입이어서 95% 이상 광고 매출로 이뤄지고 있는 생활정보지 매출액과 단순 비교는 어렵다.
오히려 수익구조를 따져 보면 생활정보지쪽이 확실히 낫다. 이들 12개 지방신문 가운데 지난해 흑자를 낸 신문사는 5군데에 불과하다. 국제신문(법정관리 확인 요)이 29억원의 흑자를 냈을 뿐 광주매일(2억4천만원), 부산일보(1억8백만원), 강원일보(3천2백만원), 인천일보(7천6백만원)등 모두 합해도 간신히 5억원을 넘기는 수준이다.
반면 지방 생활정보지들의 연간 이익률은 보통 공식적으로 10% 정도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일정 규모가 넘어서면 대략 제조원가(종이 값과 인쇄비)와 인건비를 포함한 경상비, 수익의 비율을 3대 3대 3 정도로 추정한다.
연간 매출 100억원인 경우 10억원 정도에서 30억원(업계 추산) 정도의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지방 일간지의 한 기자는 “지방지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지방 생활정보지들의 대쇄업체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이미 그룹 체제를 갖추고 있는 미디어윌의 경우는 매출이나 수익 구조에서 웬만한 중앙일간지를 능가한다. 지난해 미디어윌 벼룩시장의 광고 매출은 8백40여억원, 순익은 70억여원이엇다.
매출액 규모에서는 10개 중앙일간지 가운데 조선, 동아, 중앙, 한국, 대한매일, 한겨레 다음으로 많고, 순익 규모에서는 조선, 동아, 대한매일 다음이다.
이들 신문사들의 매출이 출판 등 여타 사업부문의 수익을 포함하고 있으며 전체 매출의 20~30% 정도가 구독료 수입인 점을 감안할 때 광고 수입만 따진다면 미디어윌의 순위는 두 단계 정도 더 상향 조정된다.
지방지와 비교해 보면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부산일보(762억원) 보다 많다.
***6월 항쟁의 수혜자…프랜차이즈 사업 활성화도 한 몫**
생활정보신문이 이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의 하나로는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성과를 빼놓을 수 없다. 6월 민주화 항쟁으로 정기간행물 등록에 대한 제한이 대폭 풀리면서 이들 생활정보지들의 발행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시장의 성숙 정도도 같이 고려돼야 할 것이다. 90년대 초반 이후 노동 서민 계층의 소비 활동이 활발해지고, 때를 맞춰 한국에 도입되기 시작한 각종 프랜차이즈 사업이 지역상권을 키운 것도 90년대 들어 생활정보시장이 꽃피울 수 있었던 주요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금과 같은 생활정보지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로는 일반 서민들이 이용할 만한 마땅한 광고 매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일간지에 지금의 생활광고지에 실리는 안내광고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구인, 구직, 대학생 아르바이트, 싼 이자 등 오늘날 생활정보지에 실리고 있는 안내 광고들이 지방지는 물론 중앙일간지의 광고 지면의 2-4면씩을 차지했었다.
그러나 90년대초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 광고 단가가 센 편인 중앙 일간지의 맨 뒷면(백면) 전면 광고 단가는 거의 1억원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까지 치솟았다.
경기 호황으로 대기업들의 광고가 넘쳐 나던 때였기도 했다. 하지만 신문사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앞세운 치열한 광고 수주 경쟁이 기업들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광고료를 올려 놓은 측면이 적지 않았다.
권력의 힘이 약화된 반면 언론의 힘이 세지면서 유사시 언론의 도움을 받기 위한 이른바 ‘보험성 광고’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도 이때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언(經言) 유착의 과정에서 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광고 지면은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지방 신문들도 ‘지역’ 보다는 ‘청와대’와 ‘중앙 정치권’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지역을 외면하고 “지역민들을 저버렸다.”
그 후과(後果)는 냉혹하게 이들 신문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IMF 이후 자금줄이던 모기업들이 잇달아 쓰러지거나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대기업을 지배 주주로 하고 있던 상당수 신문들은 경영상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그렇지 않은 신문사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기업 광고에 목을 매왔던 대다수 신문들은 98년 30% 이상 매출이 줄었다. 지난해 사정이 좀 나아졌다지만 상당수 지방 신문사들은 월급마저 제때 주지 못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 정치권력과 함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왔던 ‘선출받지 않은 권력’으로서 언론의 위세가 점차 그 빛을 잃어가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방신문을 비롯해 신문들이 이제 비로소 다시 독자에게 눈길을 돌리고 풀뿌리 광고에 주목해 보기도 하지만 한겨레리빙과 중앙타운의 사례에서 보듯이 이미 때는 늦었다. 생활정보지들이 구축해 놓은 무료 광고지 시장에 유료 신문들이 설 땅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평양 거리에 뿌려지는 벼룩시장…그 엉뚱한 단상**
벼룩시장의 요즘 TV광고 ‘대한민국을 넘어’ 나레이션은 이렇게 시작한다.
“전국 195개 지역에서 매일 만날 수 있는 벼룩시장. 196번째 시장은 평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벼룩시장이 평양에도 깔리는 그런 날의 도래를 마다 할 이유가 없다. 아니, 대한민국을 넘어 평양 거리에 벼룩시장을 깔고자 하는 벼룩시장의 ‘의지가 부럽기조차 하다.
그러나, 평양의 거리에서도 인민복 차림의 한 남자가 벼룩시장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광고 속의 장면은 왠지 모를 서글픔으로 다가온다.
그곳이 꼭 평양이어서가 아니다. 그 장면 속에 지역사회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대기업 광고에 목줄을 매고 있는 우리네 신문과, 생활정보지는 생활정보지대로 또 ‘다른 길을 가는 ‘우리의 현실’이 겹쳐져 연상되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한 두개의 튼실한 지역 언론을 먹여 살릴 광고 파워를 갖고도 제대로 된 신문 하나 키우지 못하고 있는 우리네 서민 대중이나, 전망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지금까지의 관행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신문의 답답함이나,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90년대 초고속 성장을 거듭해온 생활정보지의 빛나는 성장, 그 이면에 드리워진 우리 언론의 짙은 그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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