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정보지들은 외국에서도 발행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신문과 생활정보지가 전적으로 독립돼 운영되는 경우는 드물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산케이리빙처럼 신문사에서 생활정보지를 발행하고 있기도 하며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대륙에서는 대부분의 생활정보지들이 지역 신문을 발행하는 미디어그룹 소속이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안내광고를 주수입원으로 해 지역 소식을 전하는 지역 신문들이 우리나라 생활정보지와 같은 역할을 대행하고 있다.
외국의 생활정보지들이 이처럼 일반 신문사에서 발행되거나, 지역 신문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이들 외국 신문들의 지역밀착형 운영과 무관하지 않다.
구독료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유럽 신문들의 경우 지역 단위의 안내 광고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별도의 생활정보지들을 발행하거나 흡수 합병했으며, 광고 의존도가 큰 미국에서는 안내광고 수입을 주수입원으로 하되 신문은 무가로 배포하는 카운티(郡) 단위의 소지역신문들이 생활정보지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안내광고 시장이 지방 일간지의 광고수익을 능가할 정도로 커지고 생활정보지들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생활정보지’와 ‘저널’의 접점을 찾으려는 ‘실험’들이 시도되고 있다.
광주에서는 경영과 편집의 분리를 전제로 지역신문과 생활정보지가 ‘공생의 결합’이라는 이색적인 실험을 시도하고 있으며, 대구에서는 매일신문이 지역 안내광고의 ‘틈새시장’을 찾아 신개념의 주간지 ‘라이프매일’을 발행하고 있다. 대전에서는 생활정보지의 원조 대전교차로가 지역신문 ‘한밭신문’을 통해 지역 언론으로의 진출을 꿈꾸고 있다.
***시민 저널리즘과 풀뿌리 광고의 결합…‘시민의 소리’**
시민저널리즘을 표방하며 올해 2월 창간된 광주의 지역신문 ‘시민의 소리’는 우리 언론 사상 가장 독특한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편집과 경영의 완전 분리를 전제로 한 신문사의 운영이 유례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시민의 소리'의 모태는 광주지역의 시민 사회 단체들이다. 광주지역 시민 사회단체들은 지난해 여름 NGO 포탈 사이트 구축을 논의하다가 제대로 된 지역신문의 필요성에 의견을 같이하고 내친 김에 종이신문을 만들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
사단법인 ‘광주 시민의 소리’를 설립하고 여기에서 ‘시민의 소리’를 발간하기로 했다. 전남일보 편집국장 출신으로 참여사회21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던 손정연 편집인이 중심에 섰다.
문제는 ‘돈’이었다. 창간 준비단계에서 ‘시민주 방식’을 검토했지만 현실가능성이 낮았다. 시민단체 연합신문 방식도 거론됐지만 이 역시 쉽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창간에 필요한 자금의 상당 부분을 제공하고, 경상비도 지원하되 편집에는 간여하지 않는 ‘물주’를 물색하던 중 광주지역 생활정보지인 ‘광주교차로’와 이야기가 됐다.
광주교차로가 신문 경영에 필요한 제작비와 경상비, 시설을 제공하되, 편집에는 일체 간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대신 시민의 소리는 ‘광고지면’을 광주 교차로에 제공한다. 신문도 사단법인 광주시민의 소리 회원용을 제외한 전량을 광주교차로가 인수한다.
말하자면 광고영업권과 신문 판매권을 광주교차로에 이양하되, 광주교차로는 그 대가로 신문 제작비 등 경상비 일체를 지원하는 조건이었다.
자본금 1억원인 ㈜시민의 소리의 지분은 (사)시민의 소리가 33.4%, ㈜시민의 소리 편집진 구성원이 33.3%, 광주교차로가 33.3%를 갖고 있다. 소유, 경영, 편집이 완전 분리 독립된 체제이다.
시민의 소리는 신문 판형으로 8면씩 월, 수, 금 주 3회 발행된다. 매번 4만5천부 정도를 발행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4만부는 광주교차로에 끼워 같이 배포된다. 문순태 광주대 교수가 발행인을 맡고 있으며 편집팀은 노성경 편집장을 비롯해 12명으로 구성돼 있다.
제작비를 포함해 ‘시민의 소리’ 한달 경상비는 대략 2천4백만원선. 광주교차로는 시민의 소리 광고 수입 등으로 재원을 조달하고 있으며 시민의 소리가 발행되는 날에는 교차로 발행 면수를 8면 줄이는 방식으로 나름대로 수지를 맞추고 있다.
“처음 해보는 시도지만 아직까지 큰 문제는 없었다. 교차로와의 ‘합의’는 잘 존중되고 있다. 또 생활정보지들이 서민들이 이용하는 매체인 만큼 우리의 편집방향과 기본적으로 부딪칠 소지도 적은 편이다.”
노성경 편집장의 말이다. 노성경 편집장은 “교차로측으로서도 나름대로 기업 이미지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한다. 투자나 경영 측면에서 불만이나 미흡한 점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욕심을 내기로 한다면 끝이 없겠지만 큰 불편은 없다”는 말로 대신했다.
이들 양자간의 결합에 ‘사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시민의 소리가 광주지역 일간지들의 결산 보고서를 분석해 실은 기사가 이 신문의 인쇄를 대행하는 광주일보 측의 ‘인쇄 거부’로 교차로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삭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광주일보가 ‘자사에 부정적인 기사를 실은 신문을 인쇄할 수 없다’고 제동을 걸자 발행 시간에 쫓긴 교차로측에서 시민의 소리측과 ‘충분한 상의’ 없이 해당 기사를 빼고 다른 기사로 대체해 인쇄해 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시민의 소리와 광주지역 시민 사회 단체들의 항의로 문제됐던 기사가 다시 게재돼 발행됨으로써 일단락됐다. 하지만 양자간의 결합이 ‘결정적인 이해관계’에 직면하면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시사해주는 한 사례라고 하겠다.
시민의 소리는 장기적으로 ‘독립’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1천명 정도인 (사)시민의 소리 회원을 1만명 수준으로 확대한다면 자립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회원은 연 5만원을 회비로 내고 있으며, 이는 시민의 소리 구독료로 사용되고 있다.
시민의 소리는 철저하게 ‘지역신문’임을 고집한다. 1면 머릿기사는 물론 전체 지면이 광주 지역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도자료 베끼기를 거부하고 쟁점 위주의 ‘이슈 신문’을 자임한다.
전남대의 신임 교수 임용 비리를 폭로하고 지역사회의 대표 기업인 금호고속의 불법화물 탁송 사업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는가 하면, 부동산 경매업무에 뛰어든 지역 변호사업계에 문제를 제기하는 등 ‘성역없는 비판’을 지향한다.
시민의 소리는 또 언론개혁에 대한 논란과 시민운동의 정치 세력화 등 우리 사회의 첨예한 쟁점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한 면을 터는 토론마당을 마련하고 있다. 이 또한 철저하게 지역 논객들을 내세워 지역사회의 토론 문화 정착에 힘쓰고 있다.
시민의 소리에서 주목되는 또 하나의 지면은 ‘미디어를 쏴라’는 미디어 비평면. 언론사 세무조사 공방을 비롯해 CBS 사태 등 전국적 현안은 물론 지방자치단체의 계도지 문제와 지방 언론사들의 왜곡, 축소 보도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류한호 광주대 교수(언론정보학)는 시민의 소리의 실험이 “일단은 연착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할 말은 다하는 신문이라고 자처하는 신문도 있지만 시민의 소리는 진실로 해야 할 말은 다하려고 노력하는 신문”이라고 비교적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러나 그는 “경영의 독립 문제, 자본과 규모의 영세성 문제, 사회적 약자 위주의 역편향을 극복하는 문제 등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지적했다.
광주에서 시도되고 있는 새로운 언론 실험을 광주 시민들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취재차 내려간 광주에서 택시 기사, 음식점 아줌마, 터미널 매점 주인 등 만나는 사람마다 ‘시민의 소리’를 아느냐고 물어 보았다.
광주 시내에 4만부가 깔리면 결코 적지 않은 부수이다. 그렇지만 아직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몇몇 사람들은 “보긴 한 것 같은데…”라는 반응이었다. 아마도 교차로에 끼워 배포되기 때문에 독자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는 듯 했다.
그러나 “보시는 분들은 그 신문만 본다고 하더라”는 광주전남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지윤경 간사의 말처럼 열성 팬도 적지 않다. “신문 하면 우리와는 달리 ‘높게’ 보이 데 내 주변의 이야기들을 실어주어 친근감이 간다”는 지윤경 간사는 아쉬운 대목이 있다면 말해달라는 주문에 “색깔이 너무 시민단체에 치우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아니 그러면 시민단체로서는 좋은 일 아니냐는 반문에 “좋긴 하지만 다양한 시각을 균형 있게 담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굽히지 않았다. 시민의 소리의 실험은 이제 시작이다. 이 실험이 과연 지속 가능할 것인지, 광주 지역과 지역 언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 편을 들어 주어 좋기는 하지만 좀 더 균형 있는 성숙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속내 깊은 독자들의 진심어린 질책과 격려는 이미 이 실험이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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