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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언론이 희망이다 <3>

지역언론 육성, 정부가 나서라

1987년 말 언론기본법이 폐지되고 정기간행물등록법이 제정되어 시설기준이 완화되면서 지역신문의 발행이 다시 가능해졌다. 그러나 지역신문에게 실질적으로 자유로운 언론활동이 보장된 것은 지역신문에게 정치보도를 허용한 1996년 7월 이후였다.

그전까지 대부분의 지역신문은 정기간행물등록법상 ‘특수주간신문’으로 분류되어 정치분야의 보도, 논평 등을 할 수 없었다. 정기간행물등록법에 따르면 일반주간신문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시사” 등에 관해 보도할 수 있지만 특수주간신문은 “산업, 과학, 종교, 교육 또는 체육” 분야만 보도하도록 제한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지역신문은 정치보도를 할 수 없는 특수주간신문으로 등록해야 했다. 시설기준 때문이었다.

당시 정기간행물등록법에 따르면 일반일간신문, 특수일간신문, 일반주간신문으로 등록하는 신문사는 시간당 2만 부 이상을 인쇄할 수 있는 윤전기를 구비하고 있어야 했다. 이러한 시설기준 조항은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사이비 언론을 사전에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시행되어 왔다.

고가의 윤전기를 구입할 만한 재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신문발행을 허가함으로써, 언론의 통제를 수월하게 만든 독소조항이었다. 박정희 정권에서 만든 시설기준은 제5공화국의 언론기본법을 거쳐 1989년에 개정된 정기간행물등록법에까지 포함되는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정간법의 시설기준은 군소 지역신문을 겨냥한 것이었다. 우후죽순 생길 지역신문의 정치적 편파보도를 차단하기 위해서 불가피하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지역언론으로서 지역정치 보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1995년 지방선거를 맞아 대부분의 지역신문들은 선거관련 뉴스를 다루었다. 이에 대해 그해 9월 당시 공보처는 경기의 부천시민신문, 충남의 홍성신문, 전남의 해남신문과 나주신문, 경북의 영천신문 등 5개 지역신문에 대해 2개월 간의 정간명령을 내렸었다. 각 지역별로 대표성을 가진 지역신문을 골라내 본보기로 징계한 것이다.

***지방선거 보도 이유 2개월 정간**

그러자 정간을 당한 지역신문들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부의 탄압이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국회에 정간법개정 청원을 제출했다. 그 결과 1996년 7월 정간법이 개정되어 윤전기가 없는 지역신문도 일반주간신문으로 등록하여 자유로이 정치보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정부가 우려한 지역신문의 정치적 편파보도가 기우였음이 조사 결과 판명되었다. 1998년 한국언론재단이 정간법개정 이후 지역신문의 정치보도를 조사한 결과 지역신문의 정치적 불공정 보도는 매우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신문의 대통령선거 보도에 대한 조사결과에서도 소위 사이비 행태나 정치적 편파보도가 크게 우려할 정도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언론재단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해당지역에서 안정적인 기반을 갖추고 경영구조가 탄탄한 지역신문일수록 정치보도에 초연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지역신문의 불공정 대선보도에 대한 우려는 지역신문에 대한 선입견 또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일 뿐 조사결과와는 크게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중앙언론은 자신들의 권언유착이나 촌지 수수 문제 등은 덮어둔 채, 일부 지역언론의 부정행위를 침소봉대해 지역신문은 사이비 언론이라는 도식을 유포해왔다.

지역사회 발전과 지방자치 실현에 필수적인 지역신문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언론을 육성해 지역주민의 알권리를 보호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방자치를 활성화하려는 사회적 공감대나 정책적 의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비록 정기간행물 등록법의 제정으로 소규모 지역주간 신문의 발행이 자유로워지긴 했으나, 노태우 정권뿐만 아니라 문민정부라고 자처한 김영삼 정부도 지역신문에 대해서는 사이비 언론이라는 편견을 갖고 규제위주의 정책을 폈다. 결국 의욕적으로 시작한 지역신문들은 정부의 규제뿐만 아니라, 신문 발행경험 부족, 영세한 재정규모, 지역사회의 무관심 등으로 인해 대부분 심각한 경영난에 허덕여야 했다.

1994년 공보처가 전국 20개 시군의 40개 지역신문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들의 자본금은 대체로 5천만 원에서 1억 원 수준이었고, 발행부수는 5천 부에서 2만 부였다. 이중 흑자를 내는 신문은 6개에 불과했다. 대부분 적은 인원과 낮은 보수로 인해 기자의 자질이 떨어지고 이직률 등이 높아 정상 발행이나 질적 수준 유지가 어려운 것으로 분석되었다.

1996년 한국언론재단이 1백61개 지역신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역신문의 평균 발행부수는 1만5천 부 정도였고, 신문사의 형태는 64%가 자영회사였으며 주식회사 형태는 26.1%에 불과했다. 자체 인쇄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신문사는 거의 없었고 신문사당 평균 한 달 1백만 원의 적자를 보고 있었다. 대부분의 지역신문들은 심각한 재정난으로 인해 정상적인 신문발행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신문의 경영상태가 부실한 근본적인 이유는 수백 년 동안 굳어진 중앙중심적 제도와 관습이 지역언론을 발붙이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중앙지에 길들여진 지역주민들은 아직 지역신문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그 결과 지역신문 구독 습관이 정착되지 않고 있다.

권력에 의해 강요되었던 지방언론 탄압정책은 시일이 지나며 지역의 고유 문화로 굳어졌다. 그래서 아무리 지역감정이 강한 곳이라도 언론만은 지역언론이 아닌 중앙언론을 선호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지역언론을 배양할 경제적 토양도 척박하기 이를 데 없다. 지역경제는 늘 불황에 허덕이고, 신문을 발행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나, 재정적 자원은 일찌감치 서울에 흡수되고 있다. 지역주민들이 원하는 양질의 신문을 만들 인력도 부족하고, 지역신문을 활용할 만한 광고주들도 많지 않다.

***전국지엔 부가세 면제 등 각종 혜택, 지역신문엔 全無**

따라서 우리 나라 지역신문이 제자리를 잡으려면 정부의 지역신문 육성책, 지원책이 필수적이다. 수십 년 간 지속된 지역언론 억압정책으로 인해 스스로 지역언론을 일으킬 만한 힘이 지역사회에 없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그런 역사가 없어도 지역언론에 대한 각종 지원을 해주고 있다. 소수자의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고,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각종 언론지원제도는 오랜 기간 억압과 소외를 받아온 지역언론은 외면한 채 대형언론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신문에 대해 부가세 면제, 윤전기에 대한 관세 면제, 언론연구 지원, 우편료 인하 등의 지원제도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언론지원제도는 대개 일간신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정작 여건이 열악해 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여론의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도 응당 지원을 받아야할 군소 언론, 특히 지역신문은 이러한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언론에 대한 각종 법률적 특혜는 일간신문에만 적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업배치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시행령’은 일간신문의 발행을 위한 공장은 다른 공장과 달리 신설이나 증설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 관세법은 일간신문사가 도입하여 신문제작에 사용하는 인쇄기에 한해서 관세를 면해주고 있고, ‘공연법 시행령’은 신문 중 일간신문사만이 공연자 등록을 하지 않고 공연사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은 선거 후 출구조사도 방송 및 일간신문에만 허용하고 있어, 지역신문은 신속하게 선거 결과를 예측해 유권자들에게 전달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현재 일간지 위주로 시행되고 있는 정부의 각종 신문공고도 지역신문을 차별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의 알권리와 효율적인 행정정보 공급을 위해 홍보가 필요한 각종 사항을 신문광고를 통해 국민에게 전달하도록 법제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문공고는 거의 모두 일간신문에만 하도록 제한되어 있다. 물론 각종 공무원시험, 인허가 사항, 자격시험 등과 같이 전국에 걸쳐, 혹은 광역도시지역에게 알릴 사항에 대해서 배포지역이 넓고 구독자 수가 많은 일간신문에 공고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일간지가 발행되지 않는 시군 행정기관에서 그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공표하는 정보나, 특정 기초자치 지역만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행정조치에 대해서는 굳이 전국지나 지방일간지에 공고할 필요도 없고, 그 지역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에 공고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더욱이 이들 지역신문은 해당 지역 내에서는 중앙일간지나 지방일간지보다 훨씬 보급률이 높은 신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일간신문 대신 지역신문에 공고를 하는 것이 보다 저렴한 예산으로 보다 많은 주민들에게 행정정보를 알리는 방법이다.

그러나 현행 각종 법령은 일간신문에만 정부의 공고를 게재토록 함으로써 정보공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예산 낭비를 조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은 선거운동을 위한 신문광고를 일간신문에만 허용하고 있다. 이는 일간신문이 발행되고 있지 않는 시군 단위에서 출마하는 입후보자들로 하여금 그 지역에서 발행하는 지역신문을 통해 광고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전남 해남군수 선거에 입후보한 후보자가 자신의 출마를 알리는 광고를 하려면 '해남신문'대신 전남도권역 일간신문에 광고를 해야하는 실정이다.

‘지방자치법시행령’과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른 조례와 규칙의 공포도 일간신문에만 허용되고 있다. 따라서 충남 아산시의회는 아산시민에게 적용되는 조례와 규칙을 만들어도 서울이나 대전에서 발행되는 일간지에 공고할 수밖에 없다.

한편 특정 지역에 해당되는 공시사항으로, 지역신문을 통해 지역주민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사항도 중앙일간지나 지방일간지에 공고하도록 함으로써,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자초하고, 효과적인 정책 홍보를 하지 못하도록 만든 법규정이 수두룩하다.

특히 지역사회의 개발과 관련,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정보 습득이 필요한 사항에 있어서도 일간신문 공고만을 허용함으로써 주민들에게 지역개발과 관련한 현안을 효과적으로 홍보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지역단위에서 행해지는 각종 개발관련 사업이나 정부공사에 관한 공고를 일간신문에만 허용함으로써 지역행정정보의 효율적인 유통과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유도에 장애가 되고 있는 법령의 사례도 허다하다.

***정부의 지역신문 지원ㆍ육성책 시급**

지역언론에 대한 차별적 규제는 거대 중앙언론 일변도의 권위주의적 언론법제의 산물이므로 당연히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지역신문이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려면 정부의 차별적 규제가 사라진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정책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지역언론과 군소 언론의 억압과 규제를 통해 소수 기득권 중앙언론에게 엄청난 특혜를 제공해온 우리 정부는 지역언론을 다시 일으켜 세울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의 지원은 지역신문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지역신문이 자립기반을 갖출 때까지 한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벤처기업과 마찬가지로, 지역신문이 경영 압박을 받지 않고, 따라서 비리의 유혹이나 외부의 압력에 넘어가지 않고 질적으로 우수한 신문을 만들 수 있도록 일정기간 재정적 뒷받침을 해주어야 한다.

정부는 우선 지역신문이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때까지 필요한 경영자금을 저리 융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취재 비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통신ㆍ전화료의 지원도 필요하고, 신문배달을 거의 전적으로 우편에 의존하는 지역신문의 배포 비용 절감을 위해 지역신문의 우편료를 인하해주어야 한다.

지역언론인의 교육도 정부가 지원해줄 부분이다. 신문의 성패는 얼마나 양질의 인력을 확보하는가에 달려 있다. 현재 3백여 개의 지역신문에 대략 1천5백여 명의 지역언론인이 종사하고 있지만 이중 언론관련 전문교육을 받았거나, 지역신문 입사전 언론사 근무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도 거의 없다.

지역언론인들이 언론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위한 교육을 받고 싶어도 그러한 교육을 제공하는 곳도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현직 언론인들에게 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한국언론재단의 경우 지역신문 종사자들에 대한 교육과 연구를 지원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지역신문에 대한 정부의 차별적 규제와 지원책 부재는 시장경쟁에서 뒤떨어지는 군소 신문을 적극 지원하는 선진 유럽 국가들의 지역언론 육성정책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유럽국가들이 군소 신문사들을 지원하는 이유는 소수에 의한 여론독점을 막고, 민주주의에 필수요소인 다양한 여론의 형성을 위한 것이다. 즉 다수 신문의 경쟁을 통해 시민의 정보접근권을 보장하고, 시민들이 다양하고 정확한 정보를 근거로 정치적인 과정에 참여토록 하려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이 경쟁력이 뒤진 신문을 지원하는 방법은 직접적인 보조금 지급, 공동배급 및 인쇄에 대한 지원, 부가세 면제, 우편요금 감면, 항공료나 육상운송료 요금 감면, 인쇄기 수입 시 관세혜택, 정부광고 신문배정, 언론인 교육프로그램 제공 등이다. 이밖에 판매세와 전화통신료 감면, 통신사 지원, 금융대출 우대 등도 이루어진다. 이러한 지원책을 통해 군소 지역신문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전국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소수가 장악한 거대자본 신문에 의한 여론독점을 예방하고 있는 것이다.

1969년부터 소위 2류 신문과 군소 신문에게 보조금을 지급해온 노르웨이의 경우, 1995년 약 3백55억 원을 지원했다. 이 금액은 전국지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5일 이하로 발행되는 98개의 작은 지역신문사에 골고루 배분되었다.

스웨덴 정부도 1994년과 1995년에 걸쳐 6백70억 원을 재정이 취약한 지역신문사에 지원했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1995년 구독률이 지역 인구의 15%, 혹은 전국 인구의 5%에 못 미치거나, 광고가 1년 전체 지면의 22%를 넘어 광고의존도가 높은 신문들에게 77억 원을 지원했다.

독일 정부는 발행부수 영세신문사에게 1968년부터 1991년까지 2천2백12억 원을 제공했다. 프랑스 역시 “광고력이 약한 신문”에게 매년 10억 원 이상을 지원해왔다.

이제부터라도 한국 정부는 지역신문에 대한 차별적 규제를 없애고, 선진국처럼 소외계층의 알권리 신장과 여론의 다양성 도모를 위해서도 지역신문을 지원해야 한다. 우선 정부의 각종 행정공고를 지역신문에 게재할 수 있도록 법 규정을 바꾸어 지역주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행정집행의 효율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이밖에도 지역신문에 대한 다양한 정책적 지원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일정기간 동안 지역신문이 경영 압박을 받지 않고, 따라서 비리의 유혹이나 외부의 압력에 넘어가지 않고 질적으로 우수한 신문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물론 정부의 지원은 지역신문의 독립성, 객관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편집권의 독립과 지역사회의 기여도가 인정된 지역신문에 한정되어야 할 것이다. 지역언론에 대한 법적인 차별의 철폐와 적극적인 지역언론의 정책적 지원은 진정한 언론자유의 보장과 지방자치의 정착, 그리고 지역사회의 균등한 발전에 필수적인 전제조건인 것이다.

작은 언론이 희망이다(장호순 지음ㆍ개마고원 펴냄)중 90-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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