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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파병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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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아프간 파병은 안된다

10월7일부터 시작된 미국의 대테러 전쟁이 이제 한 달을 넘겼다. 당초부터 아프가니스탄의 지형과 기후 여건, 탈레반 및 테러세력의 배치 상황, 전쟁 경험 등을 고려할 때 미국의 최첨단 군사력도 개전 목적을 쉽게 달성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는데,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런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미국은 엄청난 규모의 공중 폭격과 더불어 일부 특수부대를 활용한 제한적 지상작전을 전개하면서 반군인 북부동맹을 지원하여 탈레반 점령지역을 탈환하기 위한 군사적 노력을 지속해 왔지만 아직 그 효과는 미흡하다. 공습을 통해 현저한 목표물은 상당수 제거된 것으로 보이나, 소규모로 분산 배치된 탈레반 군부대의 주력은 건재하고 다수의 지하동굴에 은거중인 테러세력도 거의 제거하지 못한 채 이따금 민간인에 대한 오폭이 문제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수부대 작전은 소규모 공습 목표에 대한 정밀 타격을 유도하기 위한 현지 정찰과 아울러 빈 라덴, 오마르 등 핵심 테러분자 및 비호세력을 직접 제거하기 위한 목적에서 수행되고 있지만 아직 소규모에 국한되어 있고, 미국의 군사 지원을 받고 있는 북부동맹군도 마자르 이 샤리프 등 요충 지역에 대한 진공 작전에서 결정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대테러 연합군 구상의 속내**

당초부터 미국은 이번 대테러전쟁을 자국만의 전쟁으로 보지 않았다. 미국은 테러사태 발생 직후부터 국제적인 테러 반대 분위기 고조에 힘입어 대테러 국제연대를 추진했으며, 부시 대통령은 9월20일에 행한 연설에서 국제사회가 “미국편에 설지, 테러조직의 편에 설지 결단을 내리기 바란다”고 언급한 바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테러에 대한 응징보복 전쟁을 독자적으로 전개할 경우 당장 내륙국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군사작전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고 설령 주변국의 동의하에 군사력을 사용하더라도 전황이 악화되고 민간인 피해가 대규모로 발생하게 되면 이슬람 등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또 미국은 테러사태로 인해 실추된 자국의 위신을 회복하기 위해 대테러전쟁이라는 명분하에 국제사회를 동원해 나가는 리더십을 보임으로써 초강대국의 위상을 회복,확인하고 자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유지해 나간다는 전략적 판단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군사작전은 이같은 대테러 국제연대의 결성으로 가능했다.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만 조심스런 입장이 나왔을 뿐 유럽의 NATO 국가들과 한국, 일본, 호주 등 동맹국들은 미국의 행동을 적극 지지.지원한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심지어 부시 정부 출범 이후 미사일방어(MD) 문제 등으로 갈등 관계에 있던 러시아와 중국조차도 일정한 지지를 표명했다.
아프가니스탄 주변의 파키스탄과 인도는 1998년 독자적 핵실험 이후 자국에게 가해진 국제제재를 풀기 위해 경쟁적으로 대미 협력을 추진했고, 그밖에 우즈베크, 타지크 등 북부의 CIS 국가들도 미국에 군사기지를 내주는 등 협조를 제공했다.

그런데, 최근 다시 불거진 대테러 국제연대는 단순히 전쟁수행 여건의 확보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소강 국면에 들어간 전황을 타개하기 위한 현실적 고려와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일 부시 대통령은 대테러 국제연대에 참여한 동맹 우방들에게 “단순한 지지가 아닌 행동을 보여야 할 때”라면서 직접적 군사지원을 촉구했다.
물론 5만명 정도의 특수부대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으로서 고작 수백명대가 투입된 지상 특수작전에서 심각한 인적 부족을 느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은 대테러 국제연대의 강화를 통해 자국군 이외의 다수 외국군을 실제로 참전시킴으로써 대이슬람 심리전 차원에서 우위를 장악함과 아울러 공세적 기세를 더욱 활발하게 하고, 나아가 수백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비를 분담함과 아울러 이들 외국과 그 군대에 대한 통제를 통해 국제사회를 계속 주도해 나간다는 다차원적 목적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장기전 돌입에 따른 반미여론 사전제어 및 전쟁비용 분담 포석**

미국의 대테러 국제연대 참여 요구에 대해 국제사회는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국은 개전전부터 미국과의 군사협력을 통해 해.공군과 일부 특수부대를 투입했고, 프랑스도 정보부대를 투입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는 가운데 다국적군 참여국가와 투입 규모를 확대한다는 미국의 입장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먼저 움직이고 있는 것은 NATO 국가들이다. 프랑스는 2천명 규모의 대테러전 병력을 투입할 수 있음을 시사했고, 독일은 전후 최초로 3천9백명 규모의 지상군 병력을 해외 파견하기로 결정했으며, 이탈리아도 지상군 천여명과 해․공군을 투입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일본도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을 제정하고 1천여명의 자위대와 해군함정을 역시 전후 최초로 해외 파견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밖에 호주나 뉴질랜드 등도 요청이 있으면 특수부대를 파견하겠다는 입장이고, 파키스탄도 일부 병력을 투입할 수 있다는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러시아조차 직접적인 파병은 하지 않지만 각종 군사정보와 작전 경험을 미국과 공유하는 가운데 일부 구조작전을 지원할 용의를 표명한 바 있다.

이들 국가의 대테러 군사지원은 무엇보다 강한 반테러 정서와 아울러 미국의 요구에 먼저 응함으로써 나중에 지원도 하고 ‘싫은 소리’도 듣는 상황을 미리 배제하자는 입장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또 이들 친미 우방국들은 자칫 전쟁이 장기화되어 전비 부담이 더욱 늘어날 경우 자국에 대한 비용 분담 요구도 거세질 것을 우려하여 이를 사전에 차단한다는 계산도 하고 있을 것이다.

***오는 15일 열리는 한.미연례안보회의가 한국 파병의 고비**

우리 정부도 이와 같은 상황 진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미 김대중 대통령은 9월 테러사태 직후의 대미 메시지와 전화 통화를 통해 “한.미 상호방호조약의 정신에 따라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필요한 모든 협력과 지원을 할 것이며 테러 근절을 위한 국제연대에 참여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결정에 따라 수송.의료 등 비전투병력을 파견하기로 결정하고 그 실행을 위한 대미 실무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구상하는 파병 병력은 의료지원단 1백20여명, 해상수송단 1백70여명, 공군수송단 1백50여명, 연락장교단 10여명 등 지난 걸프전쟁 때보다 규모가 크게 늘어난 4백50여명 규모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이 비공식적으로 비전투병력보다 특전부대 등 전투병력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와 새로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 우리의 입장에서도 미국이 전세계적 태테러 연합전선을 펴는 가운데 대한(對韓) 군사요구가 없을 리 없으며, 설령 최초에 낮은 수준의 요구가 오더라도 상황이 악화될 경우 언제라도 보다 더 큰 부담이 지워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가 먼저 비전투병력을 파견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그 준비를 주도적으로 진행해 오기도 했다.

현재 정부는 아직 미국이 공식적으로 요청해 오지 않은 사안이지만, 오는 15일에 워싱턴에서 열릴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이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투병력 파견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미국의 파병 요청이 있을 경우 관계부처와 협의하에 전투 상황, 국제관계, 미국의 요청 수준, 한반도 안보정세, 국민여론, 중동 및 아랍권과의 관계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 결정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원론적 수준이다.

이 입장은 나름대로 현실적이면서 합리적인 것으로 평가되지만, 과연 전황이 악화된 가운데 미국의 강력한 요구가 있을 경우에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견뎌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라고 하겠다.

***잘못 개입하면 석유문제,남북문제 위험해질 가능성 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역시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국위와 국익이라고 하겠다.
물론 우리에게 한.미동맹의 유지는 사활적인 국가전략적 선택이다. 그러나, 동맹정신에 입각한 무차별적 지원은 자칫 한반도 안보정세에 새로운 불안정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북한도 테러사태 이후 반테러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테러 응징을 위한 군사 행동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 전투병력이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될 경우 북한은 노골적인 반대 입장을 표명할 수 있으며, 이는 현재 겨우 연명해 가는 남북 당국간 대화와 화해.협력의 분위기마저 완전히 질식시킬 수 있다. 안보정세가 악화될 경우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12만명의 대규모 특수부대는 우리에게 또다른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다.

또한, 전투병력 참전으로 인해 이슬람 국가에서의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이것이 자칫 우리에게 테러 보복의 불똥으로 나타날 가능성과 아울러 중동 국가의 석유자원에 대한 접근이 상대적으로 어려워질 위험도 늘 고려되어야 한다. 특히 이번 대테러전쟁이 장기전으로 치달을 것이며 국제적 테러리즘 박멸은 자칫 수십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점차 현실화되는 속에서 대이슬람 외교와 관련된 고려는 좀더 중시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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