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범죄자가 되어 가고 있다. 미 공군은 북부동맹을 지원, 마자르 이 샤리프에 폭격을 가했으며, 1992년부터 1996년 사이에 카불에서만 5만여명을 학살했던 우리의 자랑스런 이 아프간 동맹군은 이곳에서 또다시 6백여명의 탈레반군을 학살했다.
서방 언론들은 이렇게 말한다. 수용소에 수감된 탈레반 포로들이 ‘폭동’을 일으켰기 때문에, 즉 이들이 북부동맹 간수들에게 먼저 총격을 가했기 때문에 폭동을 ‘진압’했을 뿐이라고. 미군 특수부대와 영국군이 북부동맹의 폭동 진압을 도왔으며, CNN에 따르면 탈출을 감행하던 몇몇 포로들은 즉결처형당했다고 한다. 이는 잔혹한 행위다. 인디펜던트지의 저스틴 허글러 기자에 따르면 쿤두즈에서도 이보다 많은 탈레반군이 처형당했다.
미국은 이 대량학살에 대해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마자르 이 샤리프에 대한 포위 공격 동안 “만일 북부동맹측의 요청이 있다면” 탈레반 수비대에 대한 공습을 중단할 것이라고 언급했을 뿐이다. 북부동맹의 살인마들이 미 공군의 공습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폭로된 것과는 별개로, 럼스펠드의 이 책임회피적인 발언은 쿤두즈에서 자행된 전범 행위와 관련, 미국의 범죄 혐의를 인정하는 것이다. 미국은 북부동맹군과 완전한 군사적 공조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TV 언론인들은 이 추악한 범죄에 거의 아무런 관심도 표하지 않고 있다. 북부동맹을 치켜세우고 미군에 대해 수없이 떠들어대면서도 포로들에 대한 전쟁범죄 사실은 스쳐 지나가듯 간단하게 언급할 뿐이다. 도대체 9월 11일 이후 우리의 도덕적 잣대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내 생각은 이렇다. 세계 1차대전과 2차대전 후, 우리 서방은 더 이상의 전쟁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법적 장치를 구축해 왔다. 법 제정을 위한 최초의 시도는 1915년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이후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에 의해 주창되었다.
또 1945년 유태인 대학살과 독일제국의 붕괴 이후, 뉘른베르크 강령의 6장과 UN 협약의 서문에 대량학살은 “인간성에 대한 범죄”라고 명시했다. 1945년 이후 전쟁이 발발할 때마다 인권 관련 법률들이 계속 양산됐으며, 자유주의와 인도주의라는 서방의 가치를 전세계에 확산시키려는 인권단체들이 속속 생겨났다.
지난 50여년동안 우리 서방은 ‘도덕성’이라는 높은 권좌에 올라 앉아 중국, 소련, 아랍과 아프리카 등에 인권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왔다. 우리는 또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등의 학살 행위는 인권에 대한 범죄라고 선언했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뉘른베르크에서의 나치들처럼 전범 재판의 피고석에 앉혀졌다. 불량국가, 또는 괴퍅스런 독재자들에 의해 자행된 비밀 재판, 고문, 불법적인 처형 등을 메스꺼울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한 수많은 사건 기록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9월 11일 이후, 갑자기 우리는 미쳐갔다. 우리는 학살의 책임을 미친 탈레반과 오사마 빈 라덴 탓으로 돌리면서 아프간의 마을을 폭격하고 거주민들을 살해했다. 나아가 잔인무도한 우리의 동맹, 북부동맹의 포로 학살을 용인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형편없이 비효율적인 미국의 폭압적 정보기관이 “테러리스트 살인자”라고 지명을 하기만 하면 그 누구라도 제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비밀군사재판법률안에 서명을 했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법적 권리를 부여받은 미국 정부의 죽음의 특공대가 아프간을 누비고 있다. 불행히도 오사마 빈 라덴이 생포될 경우 그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게 이 법안의 목표다.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너무도 자명하다. 황인종, 흑인종, 또는 공산주의자, 이슬람신도, 민족주의자 등이 포로를 학살하고, 적을 공격하겠다며 민간 마을에 융단폭격을 가하고, 죽음의 특공대로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다면 이들은 당연히 미국과 유럽, UN, 그리고 ‘문명세계’의 이름으로 단죄돼야 한다. 우리들, 이른바 자유주의자들은 빈곤한 제3세계의 민중들에게 인권과 자유를 설교할 수 있는 위대하고 선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희생을 당한다면, 또 우리의 빛나는 건물이 파괴된다면, 우리는 모든 인권 법률을 뿌리째 무시하고 아프가니스탄의 가난한 민중들에게 곧바로 B-52를 침투시켜 우리들의 적인 살인마를 색출한다.
부시의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처칠은 2차대전 직후 나치 지도부에 대한 즉각적인 제거를 주장했다. 하지만 최소한 5천만명을(9.11 테러 희생자의 1만 배에 이르는) 희생시킨 히틀러의 극악무도함에도 불구하고 나치의 살인마들에게는 뉘른베르크에서 정당한 재판의 기회가 주어졌다.
트루먼 대통령이 “공정한 재판을 통해 유죄의 명백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는 한, 무차별적인 처형이나 처벌은 미국의 양심에 부합하지 않으며 우리 아이들에게 명예롭게 기억되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텍사스 주지사 시절 하도 많이 사형을 승인해서 ‘사형집행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부시가 이 발언의 도덕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놀랄 사람은 없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블레어, 슈뢰더, 시라크, 그리고 모든 TV 언론인들이 미국의 아프간인 학살이나 9.11 이후 잇따르고 있는 동유럽 스타일의 법률 제정을 목격하면서도 그저 샌님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탈레반은 잔혹한 무뢰한들의 집단이다. 그들은 1990년대 후반 마자르 이 샤리프 외곽에서 대량학살을 자행했다. 그들은 또 카불의 축구경기장에서 여성들을 처형했다. 그리고 9.11 테러는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라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또다른 문제점이 존재한다. 부시는 악에 대한 문명이 전쟁이라는 맥락에서 모든 사람들을 “우리의 동지 아니면 적”으로 구분했다. 물론 나는 빈라덴의 편이 아니다. 그러나 부시의 편도 아니다. 나는 부시가 우리 모두의 이름으로 허위적으로 시작했으며 세계무역센터에서 희생된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생명을 빼앗고 있는 “문명의 전쟁”의 잔인성과 허구성에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는 1차대전에 참전했던 사람이다. 그는 처음에는 그 엄청난 전쟁에 참전한 사실을, 그리고 그 전장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으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전쟁의 잔인함과 허무함에 분노했다. 그가 1992년에 운명했을 때, 나는 아버지의 참전 메달을 상속받았다. 그 메달의 뒷면에는 “문명을 위한 위대한 전쟁”이라고 씌어 있다. 이제 이 메달을 부시에게 보내야 할 것 같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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