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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언론, 내연관계를 청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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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언론, 내연관계를 청산하라

<전문가 진단> 최근 공방의 핵심 - '나눠먹기' 극복해야 언론 독립성 확보

언론은 시끄러운 걸 좋아한다. 세상이 고요하고 평온해 크게 주목해야 할 사건이 없다면 언론인들은 힘들어진다. 이럴 땐 뉴스를 만들기라도 해야 한다. 별 것 아닌데 대단한 것인 듯 꾸며내야 하는 것이다. 최근 노무현 후보의 '동아일보 폐간'이나 '언론 국유화' 발언 여부를 1면 톱기사로 올리며 문제삼은 일부 신문들의 지면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뉴스거리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세계의 언론들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온 임동원 특사의 방북결과에 주목했지만, 한국의 보수언론들에게는 노무현 발언이 훨씬 더 중차대한 문제인 듯 보였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측에선 노무현 후보가 만약 그런 말을 했다면 심각한 문제라며 걸고 넘어졌고, 또 다른 쪽에선 하지도 않은 말을 갖고 문제삼는다며 반박했다. 여기에 소위 칼럼니스트들까지 나서 이러쿵 저러쿵 거들면서 - 필자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 그리고 그러한 칼럼을 가지고 또 이러쿵 저러쿵 따지면서, 마치 대형사고라도 터진 듯 온 나라가 발끈 달아올랐다.

***문제의 핵심은 '언론관'이 아니다**

보다 못한 언론개혁시민연대는 4월 9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말꼬리 잡기나 부풀리기가 아니라 불편부당하게 '언론정책' 전반에 대하여 모든 후보를 함께 평가하고 비판하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달라고 언론에게 점잖게 주문했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언론정책이나 언론관에서 기대할 것이 있을까? 언론의 자유는 보호받아야 하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언론이 필요하며, 국가사회발전에 기여하는 언론을 육성해야한다는 입에 바른 소리만 나오지 않을까?

정치인들의 언론관이나 언론정책을 논하기 앞서 먼저 짚어야 할 문제가 있다. 문제라기보다 정치인들로부터 약속을 받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기자들과 함께 술 마시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누구와 술을 마시고 안 마시고는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문제라고 항변한다면, 적어도 국민이 낸 세금이나 정치후원금으로는 그들과 술마시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싶다. 정치인들이 기자들과 술자리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취중에 무심코 한 말 때문에 뒤통수 얻어맞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때문에 정치인들에게 기자들과 같이 술마시지 말라고 부탁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가적 정책현안들이 국회와 행정부에서 논의되거나 시민사회의 토론회나 공청회를 통해서 의견이 개진되고, 그 과정과 결과가 기자회견이나 간담회, 보도자료를 통해서 발표되어 국민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술집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정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공공의 장에서 공개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정치행위를 사적 공간에서 은밀하게 행하는, 민주사회의 정치인으로서는 해서는 안될 행동이기 때문이다.

밤에 이루어지는 술자리 정치는 10.26 박정희 대통령 암살사건에서 드러났듯, 독재정권의 전매품이었다. 군사정권은 국회나 행정부는 허울로 둔 채, 권력자들과 정치인들이 제 딸보다 어린 젊은 여자들을 옆에 앉혀놓고 양주를 마셔가며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곤 했다. 비록 민주화가 진척되었다곤 하지만 각종 정치스캔들에서 드러나듯, 정치인들끼리 배후에서 은밀하게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폐습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비리를 은폐하거나 합리화시키기 위해 정보를 왜곡시키고 여론을 조작하려 든다.

***술자리 통한 '정보 주고받기'가 문제다**

이로 인해 술자리 정치문화는 한국 언론의 정치뉴스 취재 관행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정치뉴스를 제공해야 하는 언론에게 정치인들과의 술자리는 피할 수 없는, 피해서는 안되는 취재현장이 되었고, 피차간에 잃을 것이 없는 소위 윈윈(win-win) 게임으로 변질되었다.

정치인들과 언론인 모두 이러한 술자리를 통해 자신들의 잇속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언론을 이용해 여론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고, 언론은 정치인들과의 유대를 통해 고급 정치 정보를 독점적으로 신속하게 입수할 수 있다. 정치인들은 국가적인 정책이나 현안에 대해서 기자회견이나 간담회나 성명을 통해서 대응하기보다는 기자들과 사석에서 친교를 맺으면서 정보를 제공하는 것, 동시에 기자들로부터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훨씬 유리함을 잘 알고 있다.

권력을 지향하는 정치인들에게는 공정하고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가 유통되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에 유리한 정보가 유통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언론의 정도를 지키는 정치인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바람이다.

조선일보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취재거부까지 하고 있는 노무현 후보는 지난 91년 조선일보를 상대로 명예훼손소송을 제기해서 1심에서 승소했었다. 그러나 흐지부지 '화해'하고 말았다. 언론개혁을 외쳐온 그가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고, 손해배상을 받아내 왜곡과 오보를 일삼는 언론에게 따끔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것은 왜일까? 정치인으로서 언론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 언론개혁의 논쟁이 치열했고, 제도적 개혁논의 또한 무성했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정당들의 언론 접촉 방식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출입기자들에게 촌지를 나눠주고, 배타적 출입처 기자실을 그대로 두고, 저녁이면 출입기자들과 술자리를 함께 하고, 이를 통해 '우리는 한식구'임을 거듭 확인하곤 한다.

물론 정치인들만 이런 언론접대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나 대학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그들처럼 막대한 홍보비를 쓸 필요가 없다. 언론이 간절하게 구하는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론은 고깃밥을 던져주는 관광객 앞에 몰리는 연못 속의 물고기 떼처럼 정치인들 주변으로 모일 수밖에 없다.

***현재 관행대로라면 언론은 권력에 휘둘릴 수밖에 없어**

권력과 언론과의 대결구도에서 언론이 결코 정치권력을 누르고 일어설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일부 힘없는 혹은 한물간 정치인에 관해 몰매를 가하거나, 일시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여론을 호도할 수 있는 힘이 언론에게 있긴 하다. 그러나 결코 핵심 정치권력과 정면대결해서 승리할 수 있는 언론은 없다. 지금처럼 일부 보수언론이 감히 사생결단을 하며 진보적 후보자에게 덤빌 수 있는 것은 과거 독재정권에서 민주화로 이양되면서 생기는 권력의 공백기에 나타나는, 그리고 국민과반수의 지지를 받지 못한 정권에서 나타나는 과도적인 현상일 뿐이다.

만약 대선 이후 조선일보와 국민다수의 지지를 획득한 노무현 대통령이 겨룬다면 누가 이길까? 보수 언론이 진보적 대통령을 제압할 확률은 한국축구팀이 월드컵 우승할 확률보다 낮을 것이다.

그것은 정치권력의 막강한 힘 때문만은 아니다. 새로운 뉴스를 찾아내 제공해야 하는 압력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언론은 태생적으로 권력의 흡입력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독자와 시청자의 정보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는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정치인들이 쳐놓은 그물 안에 들어가야 한다.

진정 민주주의가 정착되려면 밀실정치, 요정정치가 종식되어야 한다. 정치행위가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 공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정치인들이 언론을 접촉하는 포인트도 공적인 업무의 일부로서 공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경선제 등이 실시되면서 앞으로는 자금이나 조직에 의한 선거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정치인들의 언론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과 같이 설정된 정치인들과 언론인들간의 관계가 유지된다면 정치인들은 겉으로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언론을 강요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더욱 더 교묘하고 집요하게 - 그것이 협박이든 유혹이든 - 언론을 조종하려고 들 것이다. 정치인들이 언론과 대결하려 한다면 언론을 개혁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계산이 고려된 정치적 행동일 가능성이 높다.

***'언론관'이 아니라 '대(對)언론 행태'가 달라져야**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언론개혁은 이처럼 태생적으로 위험한 정치와 언론의 관계를 건강한 관계로 유지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즉 정치와 언론간의 배타공생적 관계를 청산하고, 투명하고 경쟁적인 관계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와 언론이 나눠먹기를 할 수 없는 정치·사회적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언론의 측면에서는 공정한 시장경쟁의 틀을 마련하고, 군소·대안언론을 늘려, 소수 언론의 독과점을 막아야 한다. 언론의 숫자가 늘어나면 권력과 언론의 유착이 그만큼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만 바뀌는 것으로는 안된다. 정치인들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

언론을 부당하게 위협하는 정치인은 물론, 회유하거나 조종하려는 정치인들도 비난과 퇴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어떤 언론관이나 언론정책을 가졌는지 살펴보기 전에, 그들이 어떻게 언론을 대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언론을 투명하고 당당하게 대하지 않고 국민 몰래 조종하려드는 정치인은 언론을 협박하는 정치인만큼이나 위험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정치와 언론의 관계가 내연의 관계가 아니라 떳떳한 관계가 된다면, 술자리에서 튀어나왔다는 정치인의 해묵은 말 한마디 때문에 온 나라가 지지고 볶는 그런 부끄러운 모습을 다시는 겪지 않아도 될 것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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