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의 마늘협상 내용을 감추고 관련 정부 부처간 해명이 엇갈리는 등 서로 책임전가에 바쁜 정부야 물론 당연한 비판의 대상이지만 정부를 비판하기에 바쁜 정치권과 언론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일까.
2000년 한ㆍ중 마늘협상 당시 4.13 총선을 의식한 정치권의 세이프가드조치 부과 추진이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음에도 아무런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는 정치권의 모습은 바로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또 마늘협상 등 민감한 통상문제에 대해 국민감정만을 자극하고 있는 언론 또한 마늘협상에 대한 과정과 결과 및 후속조치에 대해 자세하게 보도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사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며 나아가 정부의 통상문제에 대한 무책임한 국내외적 대응을 견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계 10위권의 무역국가인 한국은 앞으로도 중국뿐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와의 다양한 통상마찰을 겪게 될 것이 틀림없다. 이번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은 무엇이 있을지에 대해 국제통상법 전문가인 이로리 박사(고려대 통상법연구센터 책임연구원)가 정부와 정치권, 언론의 책임방기를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글을 기고해왔다. 편집자
***한ㆍ중 마늘협상 파문과 책임론 공방**
연일 논란이 되고 있는 2000년 한ㆍ중 마늘협상 합의문 파문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특히 정치권과 언론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한국이 WTO 협정에서 보장하고 있는 세이프가드조치 연장권리를 미리 포기해 버림으로써 (사실이 정말 그렇다면) 적어도 중국과의 관계에서 재협상을 거론하기 거의 어려운 한ㆍ중 마늘협상의 결과에 대한 평가를 차치하고라도, 그러한 합의사실에 대해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정부 부처간의 책임공방은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가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른 듯 보인다.
지난 6월 농협중앙회의 마늘에 대한 세이프가드조치 연장신청으로 2000년 7월 협상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한ㆍ중간의 세이프가드조치 연장불가 합의가 드러나게 되자 외교통상부는 합의문 부속서 상의 “2003년 1월 1일부터 중국산 냉동ㆍ초산 마늘을 한국 민간기업이 자유로이 수입할 수 있다”는 문구가 그러한 합의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는 이미 부처간 합의를 거친 사항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농림부는 부속서상의 동 문구가 세이프가드조치의 연장불가 합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으며 동 조치의 적용기간을 2002년까지 한다는 본문의 내용을 반복하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발표했다. 더욱이 농림부는 동 협상결과에 대해 외교통상부로부터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는 등 정부부처간 해명이 엇갈리고 있다.
이와 같이 협상에 참여한 외교통상부, 농림부, 산업자원부, 재정경제부 모두 협상결과에 대하여 지금까지도 달리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 정부 내 통상정책의 책임 있는 조정기능은 특히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이라 할 것이다.
WTO 출범 이후, 특히 통상교섭본부의 신설 이후 통상마찰의 대외적 대처능력이 크게 신장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마늘분쟁', '한ㆍ미 양자간 투자협정 (BIT)협상'이나 '한ㆍ칠레 자유무역지대(FTA) 협상' 등에서 드러나듯이 통상정책이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통상리더십 확보와 통상관련부서의 전문성 확보 절실"**
통상관계에서 수혜산업과 피해산업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어떠한 통상정책 또는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관련 산업과의 마찰 내지 갈등은 필연적이다. 이러한 갈등은 정부 부처간 갈등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을 통상 당사국의 국익 입장에서 효율적으로 조정할 통상 리더쉽이 발휘되지 않음으로써 정부부처간 각기 다른 입장이 여과 없이 국민에게 표출되어 정부의 효과적인 통상국익보호 능력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게 된다. 특히 통치권자의 통상리더쉽이 존재하여야 이러한 정부 부처간 통상정책의 책임 있는 조정이 가능해 질 것이다.
또한 정부조직법에 따라 ‘외국과의 통상교섭 및 통상교섭에 관한 총괄 및 조정’을 담당하는 통상교섭본부에 통상관련 전문 인력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산업자원부 농림부 등 통상정책에 관련된 다른 부처도 자신의 권한에 관련된 범위에서 책임을 지고 통상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 부처간 통상전문성이 상이한 상태에서 통상정책에 관한 효과적인 의견조율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통상문제의 탈정치화 이뤄져야"**
정치권은 한중 마늘협상의 은폐의혹을 추궁하면서 관련자 문책과 중국과의 재협상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2000년 중국산 마늘에 대한 세이프가드조치 부과는 중국과의 통상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당시 4.13총선을 앞두고 여당의 국회의원 선거전략 차원에서 강력하게 추진됐다.
이는 결과적으로 중국의 한국산 휴대폰에 대한 비합리적인 과도한 보복조치를 불러왔으며, 결국 한국이 세이프가드조치 발동 중에도 중국산 마늘을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비정상적인 협상결과를 초래했다. 그런데 이러한 사태가 빚어지게 된 원인제공자로서의 책임을 져야 정치권은 당시 한ㆍ중 마늘협상의 결과를 철저하게 감독하지 않은 책임에 대한 자성의 태도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현 단계에서 농업중앙회의 세이프가드조치 연장신청에 대한 무역위원회의 조사개시 여부나 조치연장에 대한 결정을 기다려야 함에도 국내법 절차를 무시한 채 동 조치의 연장을 위한 재협상을 하라는 식의 요구는 현 정치권의 무원칙, 무책임의 통상정책관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통상문제는 자칫 국내외적으로 정치적 함의를 갖기 쉽고, 종종 정치적 고려에 따라 통상정책이 집행되는 경향이 있다. 세계 무역규모 10위의 통상국가인 한국에서 통상정책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통상문제의 탈정치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통상정책이 정치논리에 휘말려서는 장기적인 국가의 통상국익을 확보하기 어려우며, 경쟁력 있는 국가경제체제로서 급변하는 세계경제환경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도 사태발생 후 정부의 책임만을 추궁할 것이 아니라 국가의 통상정책에 대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정부 견제기능을 충실하게 이행해야 이번 마늘협상파문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국민감정 자극하는 언론보도 "무책임하다"**
2000년 한ㆍ중 마늘협상부터 이번 마늘협상 합의문 파문에 대한 초기 언론보도의 태도를 살펴보면 다소 감정적이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비단 마늘협상 뿐만이 아니라 민감할 수밖에 없는 통상문제를 보도하면서 이에 대한 배경, 영향 등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기에 앞서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식으로 사태를 부각시키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이번 마늘사태의 진실이 무엇인지 규명하려는 시도보다는 현재 책임공방을 벌이고 있는 정부 각 부처의 입장과 정치권 그리고 농민을 입장만을 그대로 부각시켜 독자들에게 감정적인 반응만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사실의 정확한 전달과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사태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언론의 몫이다.
2000년 협상 당시 국민적 관심이 컸던 통상 이슈인 마늘협상에 대한 협상과정과 협상결과 및 후속조치에 대해 언론이 관심을 가졌더라면 지금과 같은 정부의 통상문제에 대한 무책임한 국내외적 대응을 견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차제에 통상문제에 관한 정부, 정치권, 언론의 보다 이성적이고 냉철한 접근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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