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영국의 언론인이자 논픽션 작가인 앤서니 샘슨이 영국 주간지 '옵서버'(11일자)에 기고한 칼럼 '서방의 석유 욕심이 후세인 제거를 부추기고 있다(West's Greed for Oil Fuels Sadam Fever)'이다. 샘슨은 이 글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민주주의나 인권 때문이 아니라 이라크의 막대한 석유자원 장악을 위한 것이라면서 그러나 미국 등 서방측이 원하는 에너지 안보는 결코 무력개입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동지역에 대한 서방측의 무력개입으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한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서방측에 에너지 안보를 달성하려면 세계 석유자원의 대부분이 중동지역에 집중돼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들 지역의 회교도들과 화해를 시도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샘슨은 지난 70년대 초국적 석유기업들의 내막을 파헤친 '세븐시스터스'를 비롯, 에너지 및 국제금융 분야에 관해 다수의 저서를 발표한 베테랑 언론인이다. 다음은 칼럼의 주요 내용. 편집자
***'서방의 석유 욕심이 후세인 제거를 부추기고 있다'(옵서버, 11일자)**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석유전쟁으로 변질될 가능성은 없는가? 즉 위험한 독재자 및 국제테러의 근원을 제거하는 것만큼이나 서방의 에너지안보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목표는 아닌가?
물론 사담 후세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분노를 누구도 의심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 워싱턴에서의 사태 전개는 미국인들의 머릿속에서는 민주주의나 인권보다는 석유가 점점 더 큰 목표가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랜드연구소가 국방부에 제출한 사우디에 관한 보고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지난 주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랜드연구소는 사우디를 ‘악의 핵’으로 지칭하면서 워싱턴은 사우디를 적으로 취급할 것, 필요하다면 사우디의 유전을 장악할 것 등을 권고했다.
다국적 석유기업들이 사우디의 (정치적) 안정에 불안을 느끼면 느낄수록 이들은 세계 2위 의 매장량을 가진, 그러나 서방측의 접근이 차단돼 온 이라크의 석유자원에 더욱 매력을 느낀다.
석유사업가 출신이며 중동지역과 깊은 상업적 관계를 갖고 있는 딕 체니 미 부통령은 지난 주 캘리포니아주에서의 연설을 통해 후세인 제거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거침없이 밝혔다.
‘후세인은 전세계 석유매장량의 10%를 깔고 앉아 막대한 부를 누리고 있다. 후세인이 이 막대한 석유자원을 멋대로 처분하도록 놔둔다면 머지않아 핵무기까지도 손에 넣을 것이라는 게 우리들 대부분의 판단이다.’
만일 후세인이 축출된다면 엑슨을 주축으로 한 서방의 석유기업들은 이라크의 석유자원에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사우디의 석유자원, 그리고 사우디 왕가의 운명에 덜 의존하게 될 것이다. 둘 다 석유사업가 출신인 미국의 정.부통령이 이 이해관계를 모를 리가 없다.
이라크에 대한 서방측의 정책들은 언제나 석유자원 확보라는 목표에 크게 영향 받아왔다. 물론 서방측 지도자들이 이같은 목표를 분명하게 밝힌 적은 거의 없다. 이라크가 건국된 것은 1차 세계대전 후인 1920년이었다. 당시 영국 외무장관 커존(Curzon)경의 표현대로 연합국은 ‘석유의 바다 위에서 승리를 자축했다.’ 하지만 서방측은 이라크 석유에 크게 의존하면서도 짐짓 관심이 없는 체 했다. 예컨대 당시 프랑스 총리 클레망소는 ‘석유가 필요하면 구멍가게에 가면 되지’라고 말했다.
클레망소와 커존은 아랍인들의 이익과 민족자결 등에 대해 떠들어댔지만 이라크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당시 북쪽에서 막 생산되기 시작한 석유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는 귀중한 모술유전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아랍 산유국들이 전세계를 석유자원의 볼모로 잡았던 1973년의 1차 석유위기 이후 이라크의 석유는 더욱 소중한 존재가 됐다. 게다가 이라크 남부에 엄청난 양의 석유가 매장돼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지면서 사우디의 라이벌로서 이라크의 가치는 더욱 커졌다. 그런 이라크가 서방측의 적이 됐으니 서방의 분노는 한층 커질 수밖에 없었다.
70년대 이후 석유가 공급과잉으로 바뀌면서 세계시장에 대한 산유국들의 의존도가 커진 것은 사실이다. 석유공급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산유국들은 어디든 자신들의 석유를 팔기 위해 경쟁을 벌여야 했다. 또한 서방 석유기업들은 자국 근처, 또는 보다 우호적인 국가에서 유전을 개발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대륙은 아직도 에너지 수요의 대부분을 장래가 불투명한 개발도상국들-대부분이 회교국이다-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위기가 닥칠 때마다 석유의 안정적 공급에 대한 우려가 항상 제기된다.
석유와 관련한 서방측의 이해관계는 군사ㆍ외교정책에 긴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석유기업들이 중앙아시아의 석유자원 확보를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는 한편으로 미국 정부가 이 지역 도처에 군사기지들을 건설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에너지 안보의 관점에서 보자면 ‘테러 네트워크’가 사우디의 석유자원을 장악할 수도 있다는 랜드연구소 보고서의 지적은 그야말로 악몽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사우디나 기타 걸프지역 국가들에 청교도적인 이슬람정권이 들어선다면 이들은 현재의 부패한 왕조정권보다 훨씬 자주적이 될 것이다. 그들의 석유를 외부에 팔아야 할 필요도 훨씬 작고, 따라서 시장의 힘에 쉽사리 굴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우디 출신의 빈 라덴은 부패한 사우드 왕가를 몰아내고 보다 깨끗한 이슬람정권을 세우는 것이 자신의 목표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러한 시나리오에서라면 미국은 더욱더 이라크의 석유를 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에 따라 후세인 제거의 필요성은 한층 높아지게 된다.
물론 미국 이라크정책의 배경에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때로는 모순되기도 하는 요인들이 있다. 9.11테러에 대한 분노, 국제테러에 대한 공포, 그리고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이스라엘의 우려 등이 후세인 제거를 추동하는 가장 큰 정치적 동력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에너지 안보의 필요성이라는 보다 장기적인 지정학적 목표도 분명히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다국적 석유기업들의) 상업적 압력을 등에 업은 미 국방부와 국무부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나아가 사우디의 장래에 대한 불안이 증대돼 가면서 이러한 (에너지 안보) 필요성은 더욱 절박한 과제가 돼가고 있다.
핵심적인 문제가 남아 있다. 과연 후세인을 제거하면 서방은 이라크의 석유를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부시와 클린턴 등 미국의 전임 대통령들이 결국 후세인 제거를 단념한 것은 후세인 축출보다는 그에 따른 힘의 공백이 더욱 위험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러한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만일 많은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후세인 제거 후) 이라크가 세 부분으로 갈라진다면 남부의 새 유전지대는 지금보다도 더 불안해질 것이다. 이 지역은 이란을 지배하고 있는 시아파와 끈이 닿아 있는 시아파 회교도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사우디의 정정마저 불안해진다면 힘의 공백은 한층 더 위험한 상황을 연출할 것이다.
석유전쟁의 역사는 별로 좋은 결과를 낳지 못했다. 또한 석유기업들이 국익의 최선의 심판관이라고 할 수도 없다. 지난 1953년 (이란의) 급진적인 모사데크 총리를 축출하고 샤를 권좌에 복귀시킨 영국과 미국 주도의 쿠데타로 서방의 석유기업들은 이란 석유에 대한 통제권을 탈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란 국민들은 (미ㆍ영의) 개입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으며 1979년 샤를 축출함으로써 설욕했다.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중동지역을 좀더 안정화시키고, 이 지역의 석유자원에 서방측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위험할 정도로 단순한 것이다. 서방 사람들은 석유자원의 대부분이 이슬람권에서 나오는 세계에 살고 있다. 서방측이 장기적 에너지 안보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회교도들을 끌어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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