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북한정권의 붕괴, 또는 북한에 대한 봉쇄정책을 추구해서는 안된다고 미국의 현실주의 외교전략가 헨리 키신저가 경고했다. 그는 또 6자회담에 임하는 미국의 정책목표는 "개혁 과정에 있는 북한을 국제사회에 편입시킬 수 있는 정치적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키신저는 독일 주간지 벨트 암 존탁 24일자에 기고한 '북한 길들이기' 칼럼을 통해 북한 정권의 붕괴를 "미국 정책의 단기적 목표로 선언하는 것은 중국 및 일본의 협력을 잃게될 뿐 아니라 한국을 자칫 반대편으로 만들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정책 대안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키신저는 이어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는 모두 한반도에서 혼란이 야기되는 것을 막는 데 지대한 관심이 있다"면서 "이들 국가들은 북한에서 (김정일 정권은 아닐지라도) 정치 발전의 전망이 유지되는 한도 내에서 직접적인 핵위기를 저지하는 결과를 도출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인 대부분은 북한의 개혁과 관련해 크게 기대를 걸지 않으려 하겠지만 "미국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북한 정권을 불안정하게 하거나 전복시키 위한 적극적 조치들을 피하면서 인도적 지원을 계속해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협상을 통한 북한의 비핵화가 불가능하므로 봉쇄정책을 취하면서 병행하여 정권교체를 추진하자는 이른바 봉쇄론에 대해 키신저는 "이는 일본의 핵무장을 촉발하고 중국과 일본의 외교정책에도 큰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봉쇄정책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하며 미국이 선호하는 정책이 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북한측의 북미 양자협상 요구 등에 대해서도 "양자협정은 하나의 함정이며, 불가침조약 체결 요구는 술책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키신저는 북미 양자협정은 한미관계를 손상시킬 뿐 아니라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국가들의 이해를 반영할 수 없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해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키신저는 "따라서 한반도 정책의 성패는 미국이 과연 관련 주요국들과의 관계를 장기적인 전략에 부합하도록 통합해 나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미국의 정책목표는 6자회담을 통해 "개혁 과정에 있는 북한을 국제사회에 편입시킬 수 있는 정치적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번 6자회담이 의미 있는 협상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중요하다면서 "내부적으로 시간 제한을 설정하거나, 협상 기간에 국제적인 감시 하에서 북한이 핵개발을 동결하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키신저는 결론적으로 이번 6자회담은 "다른 국가들의 핵 우려를 북한의 정당한 안보 우려나 정치적 요구와 결합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다음의 4가지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 완전히 검증 가능하고 영구적인 방법에 의한 북한의 비핵화 나) 6자회담에 참여한 비핵 국가(남ㆍ북한 및 일본)들의 핵무기 개발 포기 의무 다) 북한의 국제사회 편입 기회 제공 라) 핵합의 준수를 전제로 모든 당사국들이 상호에 대해 무력 사용을 포기하겠다는 약속
그는 이어 북한에 대해 "지금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북한이 개혁을 거부한다면 "미국이 어떤 정책을 취하든 간에 북한은 서서히 침몰하는 운명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70년대 닉슨 및 포드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역임한 키신저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현실주의 외교전략가로 손꼽힌다. 그가 이번에 제시한 북핵 문제에 대한 포괄적 해법은 현 부시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좌우하고 있는 강경파들의 입장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예컨대 부시행정부내 강경파와 입장을 같이하고 있는 제임스 울시 전 중앙정보국장은 독일 일간지 디 벨트와의 인터뷰(23일자)에서 6자회담은 "하나의 코메디와 같다"고 일축하면서 "최선의 해결책은 한반도에서 군사적 대결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북한이 약속하는 것은 하나도 믿을 수 없으므로 우리는 이를 잊어야 하며 사찰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럼스펠드 등 부시행정부 내의 강경파들은 내심 북한 정권의 붕괴를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키신저가 제시한 해법이 현실적으로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미국측에서 제시된 해법치고는 나름대로 상당한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소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다음은 키신저 칼럼의 주요 내용.
***북한 길들이기/독일 Welt am Sonntag, 24일자**
북한이 미국과의 양자회담을 고집하지 않고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회담을 수용한 것은 미국 외교의 승리만은 아니다. 이는 대량살상무기가 암울한 정권의 수중에서 축적되는 위험을 제거하는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6자회담은 개혁 과정에 있는 북한을 국제사회에 편입시킬 수 있는 정치적 여건을 조성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은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중국은 북한의 동맹국인 동시에 주요 교역국이다. 중국은 지난 해 중국 현대사에 있어 가장 순조롭고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이룩했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엑스포를 치러야 하는 부담도 안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의 혼란을 극복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나서 이제 국가적 통합과 개혁의 상징이 된 이 두 가지 프로젝트가 중국 국경에서 벌어지는 지속적 위기와 전략적 불확실성으로 위태롭게 될 소지가 없지 않다.
중국은 의심할 여지없이 위기의 신속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핵계획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해왔고, 이는 새로운 회담을 성사시키는 데 추진력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의 정치적 붕괴는 피하면서 정치적 틀 속에서 위기 해소에 기여하겠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어떤 경우라도 북한에서의 정치적 사태 전개에 대해 일정한 통제력을 갖기를 원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한국은 북한 핵무기로 인해 가장 위협을 받는 나라이며, 북한의 목표는 한국과 동맹국들을 이간질시키고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불안케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한국이 미국의 도움을 받아 공산군을 물리쳤다거나 미국의 지원 아래 현대적 산업국가와 민주국가로 도약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한국의 시각에서 보면 북한 지역의 핵무기가 한국에 대한 위협을 크게 더 가중시키는 것은 아니다. 더 큰 위협은 비무장지대에 배치되어 수도 서울을 사정권안에 두고 있는 1만여문의 북한 야포들이다. 따라서 많은 한국인들은 외교 노력이 실패할 경우 무력에 호소할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미국의 적극적 정책에 대해서는 지지를 꺼리고 있다. 그러나 미ㆍ일ㆍ중ㆍ러 등 주변국들이 공통적인 한반도 정책을 추진할 경우 한국이 이들의 정책에 반대하면서 북한의 호의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일 것이다.
북한의 반항적 태도는 잔혹하고 고립적인 정권의 상황 악화만을 초래할 것이다. 북한은 호전적 구호를 제외한다면 군사적 선택의 여지가 없다. 북한이 현재 취하는 정책은 단계적인 경제파탄으로 나아가거나 아니면 정권의 붕괴를 자초할 무력 도발로 나아가는 대안만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지닌 최대의 협상 카드는 사실상 붕괴 위협을 가하는 것인데, 이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전략이다.
6자회담에 참여하는 국가 중 일본은 현재는 미국과 긴밀한 공조를 취하고 있으나 보다 자의식을 갖고 자국의 이해를 대변하고자 하는 과정에 있다. 하지만 일본은 동맹국과 현재와 같은 유기적인 정책 협력을 취하기 위해서는 아주 신중함을 기해야 한다. 러시아는 핵확산방지에 공감하면서 강대국으로서의 자국의 지위를 강조하기 위해 협상테이블에 나올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 정책의 성패는 미국이 과연 관련 주요국들과의 관계를 장기적인 전략에 부합하도록 통합해 나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유럽 국가들은 6자회담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핵무기 확산방지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주요 우방국들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대서양 지역에서의 안전을 위한 공동체 의식을 복원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책을 취할 경우 미국은 정치적 강제에 유념하지 않음으로써 실패로 돌아간 1994년 핵합의의 잘못들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다음과 같은 원칙들을 반영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북미 양자협상은 하나의 함정이며, 불가침조약 체결 요구는 술책에 불과한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스탈린적인 북한 정권이 자신들이 항상 "자본주의의 쓰레기"라고 헐뜯어왔던 국가로부터 불가침을 보장받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미국은 또한 간단한 휴식기를 취하고 나서 북한과 양자협상을 벌일 경우 한미 관계를 악화시킬 소지가 있다.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은 미국의 외교가 너무 적은 양보를 했거나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고 비난을 가할 것이다. 양자협정은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국가들의 이해를 반영할 수 없을 것이다.
봉쇄정책은 최후에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하는 외교적 수단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바람직한 외교적 수단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협상을 통해서는 수용할 만한 조건 하에서 북한을 비핵화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므로 봉쇄정책을 취하면서 병행하여 정권교체를 추진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은 이러한 노선을 추진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기술적 수단을 갖고 있다. 미국은 적어도 북한의 초기 단계의 핵무기 및 미사일 계획을 저지할 수 있는 미사일방어망 구축 작업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일본과 아시아 주변부의 동맹국들에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고 미사일을 배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봉쇄정책이라는 명목으로 북한의 핵을 사실상 묵인하는 정책을 취할 경우 이는 일본의 핵무장을 촉발하고 중국과 일본의 외교정책에도 큰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봉쇄정책은 모든 외교적 수단이 고갈된 다음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으나, 미국이 선호하는 정책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의 잔혹한 전체주의 정권은 사실 붕괴되어 마땅한 정권이다. 물론 이를 미국 정책의 단기적 목표로 선언하는 것은 중국 및 일본의 협력을 잃게될 뿐 아니라 한국을 자칫 반대편으로 만들 소지가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는 모두 한반도에서 혼란이 야기되는 것을 막는데 지대한 관심이 있다. 이들 국가들은 북한에서 (김정일 정권은 아닐지라도) 정치 발전의 전망이 유지되는 한도 내에서 직접적인 핵위기를 저지하는 결과를 도출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아주 중요한 하나의 결정은 의미 있는 협상을 위해 허용되는 시간에 관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밝혔다. 윌리엄 페리 前 국방장관과 같은 냉정한 관측통들은 북한이 2002년 폐연료봉 재처리를 완료하고 국제 핵사찰에서 벗어날 경우 전쟁이 거의 불가피할 것이라는 점을 경고했었다. 북한이 6자회담을 지연전략을 펴서 핵재처리 과정을 완료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데 활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6자회담은 내부적으로 시간 제한을 설정하거나, 협상 기간에 국제적인 감시 하에서 북한이 핵개발을 동결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다른 국가들의 핵 우려를 북한의 정당한 안보 우려나 정치적 요구와 결합시켜야 하는 협상들은 다음의 몇 가지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
가) 완전히 검증 가능하고 영구적인 방법에 의한 북한의 비핵화 나) 6자회담에 참여한 비핵 국가들의 핵무기 개발 포기 의무 다) 북한의 국제사회 편입 기회 제공 라) 핵합의 준수를 전제로 모든 당사국들이 상호에 대해 무력 사용을 포기하겠다는 약속
미국인 대부분은 북한의 개혁과 관련해 크게 기대를 걸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북한 정권을 불안정하게 하거나 전복시키 위한 적극적 조치들을 피하면서 인도적 지원을 계속해나가는 것이다.
북한의 현 정권은 지금 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이 어떤 정책을 취하든 간에 북한은 서서히 침몰하는 운명을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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