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고구려를 자기 역사라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지난 9월 말 고구려 수도 국내성(중국 집안)을 다녀온 서길수 고구려연구회 회장(서경대 교수)은 국내성이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중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고구려의 중국사화(中國史化)'작업을 추진하면서 최근까지 국내성에 대한 한국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한 가운데 대대적인 복원, 정비작업을 벌인 바 있다. 다음은 서 회장이 보내온 현지 스케치 내용. 편집자
***고구려 국내성이 달라졌다**
9월 26일, 새벽 5시 조금 넘어 잠을 깼다. 밖을 내다보니 이미 날이 밝았고, 장춘발(發) 통화행(行) 기차는 시골을 지나고 있다. 불을 때서 이른 아침을 짓는 집집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어 하루밤 사이에 마치 수십 년을 뒤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중국도 도시와 농촌의 소득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골짜기마다 옥수수 밭이 많고, 황금빛 벼들이 익어가는 논들은 향수마저 불러일으킨다.
통화에 토착하니 통화사범대학의 우교수와 윤교수, 철도에서 근무하는 에스페란티스토가 마중을 나왔다. 집안 박물관에 가져갈 무거운 짐을 심양에서 부쳤는데 통화역에 근무하는 에스페란티스토가 잘 보관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지고 간 짐까지 모두 맡기고 함께 식사를 하러 갔다. 식사하는 동안 주로 이번 10월 고구려 국제학술대회에 참가 예정인 윤교수의 문제를 상의하였다. 아직 정부에서 허가가 나지 않았지만 마지막 며칠을 남기고 허가가 나왔을 경우 급하게 여권과 비자를 받는 문제를 논의한 것이다.
8시 반 김동무가 차를 가지고 도착하였다. '홍기(紅旗)'라는 제법 좋은 차였다. 차를 타고 압록강가의 집안으로 가는 동안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해 집안이 어떻게 변했는지 자세하게 얘기를 들었다.
집안에 들어서는 고개를 넘자마자 변방군이 차들을 하나씩 검색한다. 전에 없었던 일로, 여름에 잘 모르고 들어온 한국 단체 관광객들이 여기서부터 걸리거나 성공하더라도 호텔에서 문제가 되어 벌금을 물고 쫓겨난 팀들이 많다고 한다.
고개를 넘자 바로 왼쪽 길로 들어서니 멀리 장수왕릉이 웅장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우선 원경을 촬영하고 장수왕릉 가까이 가서 촬영을 하였다. 타작을 하던 현지인들이 이상하게 보았으나 김동무와 운전수가 같은 동네 사람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장수왕릉에 이미 참관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참관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이따 자세한 근경을 촬영하기로 하고 광개토태왕비 쪽으로 내려와 광개토태왕릉과 아울러 찍을 수 있는 곳에 다리를 놓고 카메라를 올렸다.
촬영은 일단 여기서 끝냈다. 잘 닦여진 길을 따라 태왕비나 태왕릉이 훤히 드러나 있어 사진을 찍으려면 입장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촬영이 가능하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공안원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어 일체 삼가고 차로 지나가면서 변화된 상황만 체크하였다.
***1) 장수왕릉(장군총)**
서남쪽에 군부대가 들어 있어 능 앞의 경관이 아주 지저분했다. 바로 이 군부대를 철수시키는 것이 최대의 난제였다고 한다. 다행히 길림성 성장과 군부대 최고위급이 같은 집안이라 특별히 부탁해서 모두 철수했다고 한다.
장수왕릉은 원래 산기슭 높은 언덕 위에 우뚝 솟아 국내성과 압록강을 내려다보는 웅장한 모습이었다. 주변 건물을 철수하고 푸른색으로 조경을 하고 나니 옛 모습이 되살아났다. 입장료는 30위앤(한국돈 4천5백원)
<사진>주변 정리를 마친 장군총(장수왕릉)(c)서길수
***2) 광개토태왕비와 광개토태왕릉**
두 유적을 합쳐 하나의 유적권으로 만들었다. 그러기 위해 두 유적 사이에 있는 인가 4백호 정도를 이주시키는데 드는 비용이 컸다고 한다. 원래 국가에서 1㎡에 1천5백위앤(한국 돈 22만5천원)을 내려보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 평에 67만5천원이니 중국 현실에서는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 그런데 집안시에서 실제 지급한 금액은 1㎡에 많은 것이 7백위앤(10만5천원)으로 주민들의 불만이 컸다고 한다. 주민들은 재정이 궁핍한 시가 중앙에서 내려온 돈을 떼먹었다고 보는 것이다.
국가에서는 이번 유적정화사업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집안시에만 3억 위앤 또는 3억 9천만 위앤의 예산이 지급되었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하면 4백50억~5백84억원이 되는데 두 나라의 소득 차나 물가를 생각하면 우리 돈으로 5천억에 가까운 돈을 퍼부은 것이다.
광개토태왕 유적은 태왕비 쪽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우선 태왕비는 지난날의 비각을 그대로 살렸으나 투명한 유리(아크릴?)로 4면을 모두 막아버려 가까이서 관찰하기가 불가능해졌다. 비바람에 노출되어 훼손되는 것을 막는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더 바람직한 것은 원 비석은 박물관 같은 실내에 보관하여 학술적인 목적으로만 사용하고 똑 같은 복제품을 만들어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마음대로 사진을 찍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어쨌든 이제는 지난날처럼 태왕비를 자세히 관찰하고, 사진을 찍고 하는 작업은 불가능해졌고, 기념사진을 찍어도 비석은 잘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태왕릉은 많은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크게 복원은 하지 않았다. 사실 그럴 시간도 없었다. 옛날에는 큰 차는 들어갈 수도 없을 정도로 주변에 집과 공장이 꽉 들어차고 길도 좁았는데 이제는 태왕릉이 태왕비를 바로 내려다보고 있다. 이렇게 보니 두 유적 사이의 거리가 아주 가까워 방향 문제만 아니면 비석이 태왕릉에 세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전에는 태왕릉 사진을 찍기가 어려웠다. 주위에 옹색하게 담을 쌓아 능 전체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옆으로 지나가는 길에서도 전체를 찍을 수 있게 주변 정리가 되어 있다. 폐교되었던 능 앞의 조선족 소학교는 지붕을 짚으로 이어 무슨 용도론가 사용하고 있다. 전에는 서쪽과 북쪽만 볼 수 있고 나머지는 풀이 많이 나서 자세하게 관찰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 모두 정비를 했으니 잘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생긴다.
하나 참 보기 싫은 것은 태왕릉 위로 걸어 올라갈 수 있도록 쇠로 사다리를 만들어 놓아 태왕릉의 경관을 심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한국인 사업가가 2억5천만원을 들여 한 태왕비 조경사업이나, 다른 한국인 독지가가 억대를 들여 태왕릉에 있는 전봇대를 옮긴 사실들은 이제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잘 포장된 길이 이 유적 앞뒤로 나 있어 북쪽 길로 가면 바로 춤무덤과 씨름무덤으로 이어진다. 두 무덤을 묶어서 입장료는 60위앤(한국돈 9천원)
***3) 다섯무덤(五盔墳) 2ㆍ3ㆍ4ㆍ5호+사신무덤(四神塚)**
이 무덤들을 모두 하나로 묶어 큰 구역을 설정하고 입구를 북쪽에 냈다. 관리실은 모두 초가로 한 점이 특징이고, 공안을 비롯한 직원들이 건물 밖에 앉아 감시하고, 역내에는 최첨단 감시카메라가 항상 작동하고 있다. 입구로 들어가 모든 무덤의 바깥 모습만 바라보는데 입장료가 40위앤(한국돈 6천원)이고 다섯무덤 5호 벽화를 보는 것은 따로 20위앤(한국돈 3천원)을 더 내야 한다고 한다.
공개하는 5호무덤은 입구를 길게 하여 땅 밑으로 들어갔다 무덤으로 들어가게 하여 바깥 공기와의 접촉을 최소화하였다고 한다. 북한에서 이미 이런 방법을 썼다고 하는데 기대가 된다. 그러나 결국은 일본의 아스까처럼 무덤 옆에 완벽한 모형관을 짓고 무덤은 폐쇄하여야 한다. 중국 당국에서도 일찍이 이런 계획을 가지고 이미 수 년 전부터 모형관 건물까지 지었으나 예산이 없어 집만 덩그러니 지어 놓았다가 이제 그 집마저 허물어버렸다. 물론 시간이 없어서 그렇겠지만 이 문제는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사진>국내성 북벽이 깨끗이 정돈돼있다.(c)서길수
***4) 춤무덤(舞踊塚)과 씨름무덤(角觝塚)**
나란히 붙어 있는 이 두 무덤은 태왕릉에서 북쪽으로 우산을 바라보면 그 사이 과수원에 자리잡고 있다. 한때 이 두 무덤을 비공식으로 공개하다 벽화 도난사건이 난 뒤 중단되었는데 이제 다시 공개할 모양이다. 태왕릉 뒤에서 이 두 무덤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새로 낸 데다 주차장까지 마련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점은 상당히 걱정이 되는 부분이다. 지금처럼 공개를 하지 말고 모형관을 지어 자세한 모형과 사진을 통해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면 유적도 살고, 중국 당국의 유적보호 의지도 보일 수 있으며, 보는 사람들도 훨씬 이해가 깊을 것이다. 만일 꼭 공개를 한다면 아무나 일반에게 공개하지 말고 전처럼 입장료를 10달러(1만2천원) 이상으로 해서 꼭 보려는 사람만 보고, 입장료 수입도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두 무덤은 5호무덤과는 달리 무덤 입구와 널방이 좁아 많은 인원을 효과적으로 관람시킬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회벽 위에 그린 벽화 위에 화학처리를 하고 그 위에 습기가 계속 찰 경우 속이 부패할 가능성이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모형관을 짓는 것이다. 이 모형관은 모든 벽화무덤을 다 해도 좋다. 초기 투자가 들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이 지역 관광수입을 올리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입장료뿐 아니라 이런 벽화들을 다 보려면 적어도 하루 이상 집안에 더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 전문가나 기관, 아울러 외자를 유치하는 것도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5) 박물관**
우선 겉모습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색깔도 밝은 색으로 칠했다.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전시물의 90% 정도가 모두 새 유물로 전시하였다고 한다. 기대가 된다.
***6) 우산하 3319호 무덤**
기상대를 다녀오다 바로 길옆에 있는 무덤을 보았다. 새로 단장한 무덤을 보고 텐트를 치고 지키고 있는 사람에게 촬영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촬영은 물론 참관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길가에서 선 나는 이미 참관을 하고 있었다. 이 무덤은 무덤 앞에 인물상이 그려져 있고, 널방을 벽돌로 쌓은 무덤이고, 고국원왕릉이라는 설 같은 많은 논의가 있던 곳인데 깨끗하게 새로 정비한 것을 알 수 있다.
***7) 칠성산의 대형무덤**
집안시에서 마선구로 가는 길을 가려면 통구하 다리를 건네게 되는데 다리를 건너 얼마 안 가 오른쪽 산 아래 상당히 큰 적석묘를 정리해 놓았다. 길가에서도 전모가 드러날 정도인데 공개를 하지 않아 자세하게 보지 못했다.
***8) 마선구의 무덤들**
1998년 마선구를 갔을 때 가장 가슴 아픈 것이 천추릉이었다. 주변에 집들이 빽빽하게 둘러 쌓여 있었고 무덤돌 바로 옆까지 농사를 지어 옹색하기 그지없었다. 옛날에는 길에서 마을을 상당히 지나쳐야 다다랐는데 지금은 길에서 지금은 바로 길 옆에 있듯이 깨끗하게 정리하였다. 상당 수의 인가를 철수시킨 것이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국내성 최대의 천추릉 같은 웅대한 위용이 나타나지 않아 아쉽다.
미천왕릉(서대묘)도 새로 정비하여 계단식 모서리 같은 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다. 길에서도 멀리 바라볼 수 있다. 언뜻 보기에는 천추릉보다 더 커 보인다.
교통표지판에 626호 무덤도 정비했다는데 길에서 보이지 않았으나 2100호 무덤은 바로 길가에 있어 쉽게 볼 수 있었다.
***9) 국내성**
국내성은 시내를 걸어다니면 자연히 보이게 되고, 공식적으로는 참관이 안 되는 이상한 현상이다. 그래서 떠나는 날 아침 일찍 산보 삼아 돌아보는 정도였다. 가장 큰 변화는 서쪽 성벽인데 성벽과 통구강 사이에 있는 모든 집을 철거하고 발굴을 통해 새로 단장했다는 점이다. 이곳에는 층집(아파트)까지 있었는데 몇 달만에 모두 철거한다는 것은 중국만이 가능한 일이다. 몇 가지 특징적인 것만 메모해 둔다.
① 성안에서 궁궐터를 발견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궁궐터라고 추정되는 시정부 청사를 헐고 일부 발굴했으나 그 규모가 궁전 급이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시정부 청사 서쪽 발굴장에 대형 건물을 지어 보존하고 있는 것이 보였으나 가까지 가 보지는 못했다. ② 서벽에 치가 하나 완전히 나타나 있다 국내성에서 가장 잘 남아있는 치다. ③ 치 바로 옆에 서쪽으로 길게 배수구가 발굴되어 전시되어 있는데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지붕을 만들어 덮고 옆까지 막았다. 들어갈 수는 없지만 밖에서 들여다 볼 수 있게 했다. 이 배수구는 앞으로 국내성을 연구하는 데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④ 서북 각대에서 북벽을 따라 동쪽으로 조금 들어간 곳에도 발굴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 성분이 나왔고 문 양쪽에 적대가 나타났다. 일반인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철제 울타리를 쳐 놓았다. ⑤ 국내성에서 마선구로 나가는 다리를 건너기 직전 왼쪽에서도 발굴이 진행되었는데 바로 이곳이 국내성 서문인 어긋문 자리로 보인다.
현재와 같은 방향으로 앞으로도 계속 발굴을 하면 국내성 본래의 모습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국내성 안팎 50m를 모두 철거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앞으로 다시 그렇게 하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고 본다.
<사진> 주변 주택과 아파트를 이주시키고 복원한 국내성 서벽. (c)서길수
***10) 환도산성과 산성하무덤떼**
두 곳을 묶어 한 관광지로 묶었는데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환도산성 남벽을 발굴해 문의 형태를 나타나게 한 것이 멀리서도 보이고 서남 각대 쪽도 현재 발굴하는 모습이 보였다.
산성하무덤떼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부분이 산성자마을로 가는 길이 이 무덤떼를 지났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 길을 과감하게 강 쪽으로 돌아가도록 바꾸어 산성하무덤떼의 모습이 한결 좋아졌다. 이곳은 다리 건너기 전에 입장료를 받기 때문에 현재는 다리 건너기 전까지만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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