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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변혁 꿈꾼 '불나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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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변혁 꿈꾼 '불나비의 삶'

[추도의 글] '시대의 거울' 김진균 선생을 생각한다

우리 시대 지식인의 사표로 살아간 김진균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났다. 68세가 되도록 그는 늙을 줄 모르는 청년이었다. 50대에 인터넷 시대를 맞아 '불나비'(bulnabia)라는 이름으로 사이버공간을 누볐고, 민초들의 삶을 떠받치는 '밭 가는 청년'(菁丁)으로 호(號)를 삼았다.

작년 2월 정년퇴직 때까지 36년동안 한 학교(서울대)의 교수로 살아간 김진균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 그가 이땅의 민주적 진보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향한 실천에 몸바쳐왔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를 결성하고 세번에 걸쳐 공동의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하여,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과 <민주노총>의 지도위원을 거쳐 <사회진보연대> 대표에 이르기까지 40대 이후 전국 규모 운동단체에서 지도적 지위를 수행한 것이 20여개가 된다.

민주화와 민족통일과 진보를 향한 김진균의 실천활동은 노동운동의 확대강화와 진보세력의 정치적 성장이라는 두 가지 기조 위에 선다. 이들 두 방향의 활동은 민족통일의 성취와 내용상 중첩되는 현재적 과업의 두 축으로 상정된다. 생산직·사무직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민중세력의 의식적·조직적 성장과 정치적 진출에 조응하는 방식을 통해서만 통일운동은 온당한 것이 된다. 분단체제 기득권세력의 경제·정치적 지배와 외세의 주도권이 관철되는 이른바 흡수통일은 현재의 모순을 해소하거나 척결하기보다 고착시키고 정당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김진균의 정치적 실천은 궁극적으로 통일 이후 민족국가가 직면할 계급문제와 민족문제를 최소화하는 일관된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그가 보여준 정치적 실천의 내용은 철저히 학문적 탐구의 결과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분단체제와 그 속에서 일어나는 비민주-불평등-반민족 요인들의 원인과 극복방안을 모색하는 그의 사회과학적 탐구는 방법적으로 미시적 실증자료와 거시적 사회역사 인식틀을 함께 구사했을 뿐 아니라, 역사와 철학의 영역을 넘나드는 학제간의 연구로 진전되었고, 지향점에서 인류평화와 환경보존에 기여할 통일된 민족국가의 모습을 그려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와 함께 그의 강좌 또한 내용과 방식에서 새로운 시도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새로움을 향한 그의 학문적 추구는 일상적 태도가 발현되는 하나의 양상이었다. 후배 연구자와 학생 및 청년운동가들과도 두루 어울리며 서로의 생각과 느낌과 삶을 나눌 만큼 그는 마음을 비우고 자기 속을 드러내었다. 군부정권에 의해 해직된 시절 창고 건물에서 시작된 '상도연구실'이 '한국산업사회학회'의 선진적 학풍을 이루게 된 것도 이렇듯 누구에게서나 배우는(不恥下問) 정신의 소산이었다 할 것이다.

김진균의 학문세계와 실천세계에서 세기의 교차시점 이르면서부터 두드러지게 읽혀지는 측면이 있다. 인식과 실천의 통합을 향한 그의 관심이 더욱 확대되고 구체화하는 모습을 우리는 본다. 그가 만년에 씨름했던 중심적 과업은 통일을 준비하고 통일 이후에도 유효한, 그리고 인류사회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공동체적 규범과 질서의 모색이었다. 과학 내지 학문은 민중의 욕구를 실현하는 과정에 기능하는 인식적 도구여야 한다는 그의 믿음은 이론과 현실 양쪽에서의 총체성 지향으로 드러난다. 민주변혁과 민족통일의 과업에 접근하는 데 있어, 그리고 이들 과업과 상호함수적 위치에 있는 민족자주성과 민중주도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 김진균은 이론운동과 실천운동 양쪽을 향해 '인식론적 단절'에 기초한 전략의 수립을 호소한다. 그가 강조하는 '인식의 전환'은 단순히 이론상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발상의 전환'에까지 나아간다.

이러한 김진균식 발상의 전환에는 최근 들어 진행되어온 세계사적 변화에 대한 인식에 기초한다. 정보화시대를 지배하는 자본권력이 문화의 산업화와 산업의 문화화라는 외피 속에 군사와 문화의 통합이라는 파괴적 지향을 본성으로 험축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본주의의 핵심문제인 계급갈등이 새로운 문화상황-기술상황에서 더 이상 '유일한 문제'로 규정될 수는 없지만 또한 동시에 지식정보사회의 부차적 요인으로 떨어져 '해소된 것'으로 볼 수는 더욱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성의 소수독점을 벗어나서 대다수 민족-인류의 삶에 기초하는 새로운 어떤 결합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 김진균의 처방이다. 이러한 '결합'은 '연대'나 '공생'이라는 규범적 개념으로 진전하는데, 그 핵심으로 도입되는 하위개념이 '노동을 향한 자유'와 함께 '수단적 노동으로부터의 자유'이다. 만년의 글들에서 그가 선보이는 새로운 사회의 규범은 '각자의 삶이 남의 삶의 바탕이 되는 삶'(相資以生)을 제도화한다는 것으로, 이윤창출에 기여하는 노동에 기초한 임금이 아니라 공동체복지의 증대에 기여하는 노동에 대한 소득을 일반화한다는 것이다. 노동 중심의 사회과학적 변혁의 이념을 역사와 철학의 인문적 발상과 결합하여 유럽식 '제3의 길'과는 적어도 그 자신의 관점에서는 다른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했던 것이다.

김진균은 평생을 학자로 살면서 학문적 진리를 사회적으로 실천하고, 현실문제를 학문의 주제로 삼았다. 그의 학문세계는 다양한 영역들을 소통하고 통합함으로써 폭과 깊이를 더해갔다. 학문 뿐 아니라 그의 생애 전체가 여러 층위에 걸친 연대와 통합을 향한 전진이었다. 여기서 선생의 삶은 죽음 이후에도 우리에게 거울이 된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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