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서동천 인하대 교수의 '세계정치경제'를 부정기 연재한다. 경제학자인 서 교수는 40여년간 쌓아온 전문가적 식견을 바탕으로 세계경제의 흐름과 함께 이라크사태 등과 같은 세계적 관심사의 경제적 배경과 의미 등을 알기쉽게 설명할 계획이다. 편집자
***이라크 침공의 명분**
이라크 사태가 악화일로에 있다. 이라크는 1년 전 하이테크 무기의 엄청난 화력을 앞세운 미군의 '충격과 공포' 전술에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그러나 이제 그 충격과 공포에서 서서히 깨어나면서 독재로부터의 해방군을 자처하는 미군과 그 동맹군에 대해 격렬한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 반미감정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군정이나 과도정부에 대한 적개심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일부 지도자와 이슬람 지도자들은 각기 이성을 회복할 것을 호소하고 있으나 살육의 참극이 참극을 낳는 전장의 광기가 이라크 전역을 덮고 있다. 무엇이 이런 참극을 일으키고 있는지 원점부터 되짚어 보자.
미국이 처음 내세운 침공의 명분은 대량살상무기와 테러예방이었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도 찾아내지 못했고 9/11 테러와의 연결고리도 찾아내지 못한 부시는 이제 이라크의 민주화를 전쟁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이런 부시 대통령의 전쟁 명분은 미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의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 말대로라면 핵무기를 보유하겠다고 스스로 공표한 북한이 우선적 제거대상이었어야 했다. 또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이라면 9/11 연결고리가 가장 강한 사우디아라비아가 그 대상이었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민주적 정권의 수립이 명분이라면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리비아뿐만 아니라 허구 많은 독재정권이 미국의 정권교체대상에 오르게 된다. 미국은 이렇게 명분이 없는 전쟁을 일방적으로 벌여 놓았기에 아직 뚜렷한 수습방향도 못 잡고 그나마 확보한 국제사회의 협조도 이탈하는 채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이제 '전쟁은 평화다'라는 조지 오웰식의 프로파간다에서 벗어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 사유를 살펴보면 석유 외에 다른 이유는 없는 듯하다. 그러므로 바로 모든 것이 석유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라크 사태를 살펴보자.
20세기 문명의 원동력인 석유는 황금보다 고귀하다고 해서 '검은 황금'(black gold)이라고 불린다. 그래서 20세기 중동의 역사는 석유를 확보하려는 서구 열강과 독과점적 이윤을 추구하는 초대형 석유 메이저들의 각축장이 되어왔다. 그들은 중동을 필요에 따라 분할하고 허수아비 정권을 세워 석유 메이저의 이익을 도모했다. 1950년대 초, 석유주권을 선언한 이란의 '모사데그(Mossadegh)' 수상이 유전의 국유화를 단행했을 때 미국과 영국이 합작해 전복한 것은 그 대표적 사례다. 1970년대 있었던 두 차례의 석유위기를 통해 산유국은 석유주권을 상당부분 회복했지만 이런 산유국에 대한 무력개입의 역사는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되풀이되고 있다.
***미국의 에너지 정책과 이라크**
이라크의 비극은 부시 행정부 초기에 수립된 '국가 에너지 정책'(National Energy Policy)이라는 보고서에서 이미 운명지어졌다. 이 보고서는 일찍이 전 부시 대통령 시대에 국방장관을 역임했고 핼리버튼(Halliburton)이라는 대표적 유전관계 회사의 회장을 역임한 체니 부통령이 주도한 국가 에너지정책 개발그룹이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석유자원의 고갈에 대한 대안으로서 대체 에너지의 개발이나 소비의 억제라는 대안보다 공급의 확대에 역점을 두었다. 그리고 환경문제가 있는 알래스카 유전과 같은 국내 유전의 적극적 개발과 해외 유전의 확보가 방안으로 제시되었다.
다음 순서는 당연히 풍부한 매장량을 보유하고 중동의 전략적 요충인 이라크에 친미적 정권을 수립해 미국주도로 유전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 전략은 체니 부통령 등 석유산업 출신의 군ㆍ산업 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에 의해, 9.11 테러의 충격 속에서 호전적으로 변모한 미국의 여론을 업고 실천에 옮겨진 것이다. 부시-체니가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서둘러 봉합하고 이라크에 대한 개전을 주도한 배경은 <워싱턴 포스트>의 우드워드 기자가 최근 내놓은 <공격계획(Plan of Attack)>에 자세히 기술돼 있다.
***국제석유시장의 정치경제**
그렇다면 부시는 국제 석유시장의 무슨 긴박한 사정 때문에 이라크에 대한 침공을 감행한 것일까. 지구상에 석유자원은 유한하지만 석유의 공급은 아직까지 물리적 한계에 도달하지 않았다. 기존 유전의 고갈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신유전의 탐사와 개발이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부분 석유위기는 수요 공급과 같은 시장의 경제적 변수 때문에 일어났기보다 전쟁과 같은 정치적 변수 때문에 인위적 생산 감축이나 수출제한을 하면서 일어났다.
국제 원유가격은 시장에서 수요 공급과 같은 경제적 변수로 결정되는 정상가격과 정치 불안을 반영하는 '불안 프리미엄'으로 형성되는데 전시에는 이 프리미엄이 급등해 석유위기를 초래한다. 석유는 역사적으로 전쟁과 같은 정치적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파동을 일으켜 왔기 때문에 가장 정치적 상품이다.
1970년대의 1차 석유위기는 직접적으로는 이스라엘-아랍 전쟁으로 아랍 산유국들이 서방국가에 대한 수출을 금지하면서 촉발되었고 1970년대 말의 2차석유위기는 이란의 내전으로 석유공급에 대한 불안이 촉발한 것이었다. 원유가격은 1990년대 초 걸프전 때도 일시적 급등을 보였고 이제 이라크 사태 발발 이후 다시 정치 불안을 반영해 고유가를 지속하고 있다.
국제석유시장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의해 주도되는데 1970년대에는 공격적 석유정책으로 공시가를 4배나 올리고 수출제재도 가해 소비국을 위협하고 세계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두 차례 석유위기가 초래한 세계경제의 침체와 소비감소로 원유가격이 장기 침체를 겪으면서 세계경제의 안정이 산유국 이익이라는 교훈을 터득했고 이제 전문 기술관료들이 시장의 안정과 균형을 관리하고 있다.
특히 가장 생산여력이 많은 사우디아라비아는 생산량을 조절하면서 카르텔 하의 수급균형을 맞춰왔다. 그러나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반미감정이 높아지고 친미적 왕권의 취약성이 노출되면서 미국의 신뢰는 떨어지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석유안보는 사우디가 비우호적으로 돌아설 경우에 대비해 사우디에 대한 견제세력을 구축하고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것이 전략적 과제로 등장했다.
그러나 우드워드의 저서에 나타났듯이 미국이 개전계획을 자국의 국무장관에 앞서 사우디 대사에 통보할 정도로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OPEC 회원국들도 이 시점에서 공격적인 석유정책을 밀고 나올 징후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세계경제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나 미국의 에너지 안보에 대한 위협 때문에, 또는 그 예방적 차원에서 개입한 것이라는 전쟁의 명분도 성립하지 못한다.
***마지막 명분-특수이익집단의 이익**
결국 부시-체니의 정치적 기반세력인 미국의 석유ㆍ군수산업이라는 특수 이익집단을 위한 개입이라는 설명밖에 남지 않는다. 사실 미국의 석유산업은 최근 신유전의 개발이 한계에 부딪치고 있어 새로운 출구를 모색하고 있었다. 후세인 정권 하에서 오랜 경제제재 조치로 노후한 이라크 유전의 보수와 무한한 신규개발은 그들에게 엘도라도였을 것이다. 그들은 미군점령 후 수의계약으로 막대한 계약을 수주해 복구사업을 벌이고 있다.
진주하는 군대의 깃발을 따라 상인이 진출하는(Commerce follows flags) 전형적인 식민주의, 제국주의적 개입이 21세기에도 되풀이되고 있다. 이라크 민중이 그들의 참상의 실상을 이렇게 꿰뚫어 보았다면 그들은 종파와 종족을 떠나 점령군과 그들이 앞장세운 과도정부, 그리고 누구보다도 배후로 지목된 기업을 증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배후기업들이 전쟁을 사주해 이라크를 파괴하고 황금보다 고귀한 석유를 팔아 자기들의 복구비용을 충당하면서 민주주의를 운운하는 위선을 간파했을 것이다.
최근의 팔루자에 대한 미군의 보복적 포위공격은 이들 기업이 고용한 용병의 사체를 이라크 민중이 훼손함으로써 적개심을 나타낸 사건으로 촉발된 것이다. 이라크가 보유한, 세계 제2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석유는 불행하게도 이라크 민중에게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끝없는 시련과 재앙을 몰고 오는 저주가 된 것이다.
***필자 약력**
1941년생. 서울산. 경기고ㆍ서울법대졸. 산업은행 입행. 호주 멜본 라 트롭대학서 국제경제학 박사.
외교안보연구원 교수ㆍ미국 남가주대학 교환교수ㆍ인하대학 경제통상학부 학장 역임. 현재 정교수 재임.
저서; <Non-traded and intermediate goods and the pure theory of international trade> <아세안의 정치경제>
***필자 이메일**
dchon@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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