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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 시대 '위대한 공동체 유토피아'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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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 시대 '위대한 공동체 유토피아'의 전망

[서평] '세계화'를 '지구화'와 구별해내는 차인석 교수의 역작

한국 철학계의 원로인 차인석 서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의 새 저서가 최근 해외에서 출판됐다. <The Mundialization of Home in the Age of Globalization: Towards a Transcultural Ethics>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차 교수의 책은 한스 렌크 등 세계 철학계의 석학들이 철학의 국제적 교류를 위해 기획하고 있는 '국제적 맥락에서의 철학'의 일환으로 독일의 LIT 출판사에서 영문으로 출판됐다. 차 교수는 은퇴 후에 한국 철학도 세계와의 소통의 폭을 넓혀 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유네스코 석좌교수로서 세계 여러 철학자들과의 학술적 교류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번 출판은 그동안 그가 애써 왔던 국제적인 교류 노력이 본격적으로 평가되고 결실을 맺었다는 점에서 반갑다.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라는 연락을 받으면서 당연히 내가 써야지 하면서도 부담스러운 마음도 적지 않다. 여기서 잠시 어투를 바꾸어 존칭을 쓸 수밖에 없다. 차인석 교수님은 필자의 스승이시다. 제자가 감히 스승의 학문에 토를 단다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군사독재의 민주화 학생운동 탄압이 극심했던 1970~80년대에 차인석 교수님은 사회철학을 연구하는 제자들의 보호막 역할을 하고 진보적 사회철학 사상을 지도하면서 많은 후학을 길러 내셨다. 칼 마르크스의 책을 소지한 것만으로도 끌려가던 시절에 위험을 무릅쓰고 <독일 이데올로기>, <경제학-철학 초고>, <자본론>을 대학원 수업에서 연구하던 일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책에 대해 쓰기에 앞서 엄혹했던 그 시절 온갖 고초를 감내하면서 우리 제자들을 가르치고 이끌어주신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 차인석 교수의 책 <The Mundialization of Home in the Age of Globalization> ⓒ독일 LIT 출판사
차인석 교수의 책 <The Mundialization of Home in the Age of Globalization>은 우리말 번역부터 곤혹스럽다. '지구화(globalization)'와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mundialization'에 대해 그 의미에 맞는 적절한 번역어를 찾기도 힘들뿐더러 'home'도 homeland, homeworld, lifeworld 등으로 한 지역이나 나라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문화와 생활세계라는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우리말로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이 글에서는 편의상 <지구화 시대에서의 자기문화의 세계화> 정도로 번역해 두고자 한다.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서의 '듀이의 개혁자유주의'

우선 이 책에서 철학적인 기초가 되는 핵심 사상은 존 듀이의 개혁자유주의(reform liberalism)다. (차인석 교수는 이를 '혁신자유주의'로 표현하고 있지만, 이 개념이 사용되는 여러 맥락을 고려할 때 아무래도 '개혁자유주의'가 더 맞는 것 같다.)

이것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의아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데, 차 교수는 위르겐 하버마스를 위시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철학자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왔는데, 이 책에서 존 듀이의 개혁자유주의를 중심에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 교수가 최근에 와서 존 듀이의 개혁자유주의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아니고, 프랑크푸르트학파로부터 존 듀이의 개혁자유주의로 입장을 바꾼 것도 아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개혁자유주의에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이미 2000년 <진보평론>에 개혁자유주의에 대한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에 관심을 갖기 이전부터 듀이의 개혁자유주의를 자신의 철학의 기본 입장으로 삼아 왔던 것으로 보인다. 지구화 시대에 초래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목도하면서 차 교수는 본인의 기본적인 철학적 이념인 개혁자유주의를 그에 대한 대안으로 발전시켜보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익히 알려진 것과 같이 신자유주의적 폐해를 초래하고 있는 지구화 경향에 반해 차인석 교수는 우리 세계가 이에 대안적인 다른 경향을 향하여 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다른 경향이 차 교수가 '지구화'와 구별하여 표현하는 '세계화(mundialization)'다. 특히 여기에서 차 교수는 문화의 융합과 생활세계의 확장에 주목한다. 세계화는 자기세계(homeworld) 내지 자기문화가 다른 세계, 다른 문화와의 교류를 통해 확장되는 초문화화(transculturation) 과정이다.

이 세계화에서 차 교수는 희망을 본다. 인권, 시민사회, 민주화와 같은 모더니티의 근본적 가치를 문화적 교류의 차원에서 지구적 수준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면, 이는 서로 간의 인권들을 인정함으로써 함께 평화적으로 살 수 있는 기회들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권, 시민사회, 민주주의와 같은 근본적인 가치들이 그 기원인 서구를 넘어 지구적 규모로 확장되면, 이를 통해 지구화 시대에 요청되는 새로운 초문화적 윤리(transcultural ethics)가 창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초문화적 윤리'에 대한 기대, 그리고 '위대한 사회'의 이상

차인석 교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적인 경향으로서 자기문화를 인류가 더불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근본적인 가치들과 융합시키는 세계화의 경향을 존 듀이의 '위대한 사회'의 이상과 연결시킨다. 듀이가 비판한 1930년대 대공황 시기의 고전적 자유주의와 오늘날 신자유주의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유사성이 있다. 듀이는 당시의 자유주의를 대중의 필요를 고려하지 않는 시장원리 경제, 고삐 풀린 자유주의로 비판하였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도 시장 만능을 주장하는 고삐 풀린 자유주의인 점에서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듀이의 개혁자유주의로부터 오늘날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적 이념을 찾아보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개혁자유주의의 목적은 모든 시민이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동등한 기회의 폭을 확대하는 데에 있으며, 이를 위해서 개인의 창의성, 시민적 자유, 모든 주체의 합리적 판단 능력에 대한 신뢰, 정치 과정에의 시민 참여와 같은 가치들을 활성화시키는 것을 추구한다. 요컨대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부여되고, 시민들의 민주적 참여에 의해 구현되는 시민사회가 듀이가 구상한 위대한 사회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위대한 사회가 저절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이의 실현을 위해서는 주체적 노력이 필요하며, 차인석 교수는 그 핵심적 주체를 "새로이 출현하고 있는 중산층과 교사, 전문가, 종교인, 문인, 예술가, 언론인과 같은 지식인 집단들의 연맹"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들이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여 교육이나 비정부기구 활동을 주도하면서 개혁자유주의 사회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화 시대를 맞이하여 듀이의 위대한 사회의 이상이 그가 구상했던 것보다 더 큰 규모인 지구적 규모에서 성취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주체적 역량으로서 차인석 교수는 시민운동집단들이 지구적 규모에서 결합한 국제적 비정부기구들(NGOs)을 꼽는다.

듀이는 개론적인 수준에서 실용주의 철학자로만 알려져 왔을 뿐, 그의 개혁자유주의 사상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비단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서구에서도 그의 개혁자유주의 사상은 그 이론적 가치에 비해 별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차인석 교수의 책은 실용주의를 사회사상의 측면에서 더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돌이켜보면 리차드 로티와 오늘날 급진적인 반신자유주의 지식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노암 촘스키가 듀이의 실용주의 전통에 서 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실용주의의 사회사상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듀이의 개혁자유주의는 차 교수의 책에서 잘 조명되고 있듯이 지구화 시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으로서의 이념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이 점에서 개혁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념적 대안을 모색하는 데에 있어서 그 지평을 넓혀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에 대항하려면…

다음으로 듀이의 개혁자유주의를 사회사상의 일반적인 맥락과 연결시켜 고찰하면 그것의 이념적 설득력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개혁자유주의라는 개념은 듀이가 사용한 독특한 개념이라 할 수 있지만, 개혁자유주의는 다른 사회사상과의 유사성이라는 측면에서도 그 위치를 평가해 볼 수 있다. 신(新)실용주의를 자처하는 리차드 로티가 사회민주주의적인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북유럽 국가를 모범으로 언급한 데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크게 보면 개혁자유주의를 서구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유사한 것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 규제, 대중 복지, 시민 참여는 서구 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추구하고 있는 기본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듀이의 개혁자유주의도 이로부터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더군다나 두 사상은 시기적으로도 일치한다. 개혁자유주의나 사회민주주의는 둘 다 경제공황과 이차대전 이후 고삐 풀린 고전적 자유주의 내지 자본주의를 개혁하려는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배경 아래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개혁자유주의는 듀이라는 한 철학자의 사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 내지 자본주의의 개혁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이론적 보편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미 그러한 (평화의) 윤리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는 주장에서 바로 볼 수 있듯이, 차인석 교수는 지구화 시대의 미래를 매우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부정적 폐해를 초래하는 지구화 경향에 인권, 시민사회, 민주주의와 같은 기본 가치들이 문화적으로 확장되는 세계화의 경향을 대비시킨다. 그러나 지구화와 대비되는 세계화의 경향은 아직은 미래의 희망사항이지 현실은 아니다. 실업과 빈곤의 증대, 민주주의의 후퇴, 경제위기 상황의 악화, 1대 99의 대립과 같은 부정적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반면,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의 강화와 같은 경향은 아직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데이비드 헬드나 울리히 벡 같은 서구의 학자들도 지구화 시대의 부정적인 폐해들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을 뿐, 아직 이렇다 할 대안적 경향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차 교수의 미래 전망이 너무 낙관적이라고 해서 이를 폄하할 이유는 없다. 단지 현실을 현실 그대로 직시해 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자 할 뿐이며, 위대한 공동체 윤리의 세계화는 미래 비전으로서의 가치가 조금도 훼손될 필요가 없다. 차 교수가 강조하고 있듯이, 위대한 사회의 비전은 사회개혁을 견인하는 "지적인 산파"와 "정치적 교육자"의 역할을 하는 유토피아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한국의 '합리적 자유주의'를 위하여

개혁자유주의는 한국의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지형에서도 큰 의의를 가진다. 얼마 전 '강남좌파'라는 표현이 공론장의 한 지면을 장식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심각하게 거론되어야 할 문제는 한국 우파에 있다. 한국의 우파가 자유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 폐쇄적이고 부도덕한 비합리적 자유주의만 있을 뿐이고, 제대로 된 자유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지형 속에서 개혁자유주의는 '합리적 자유주의'로서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볼 만하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한국의 우파는 대대적인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며, 여기에 동등한 기회의 인정, "노동자들의 권리, 생태학적 문제, 특히 치열한 경쟁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을 고려하는" 개혁자유주의는 그 개혁의 이념으로서 충분히 고려될 만하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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