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로버트 김에게도 보호받아야 할 인권 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로버트 김에게도 보호받아야 할 인권 있다

[기고] 그의 출소를 앞두고 정부 역할을 다시 생각한다

오는 7월 27일, 마침내 로버트 김이 출소한다. 돌이켜보면 8년이라는 기나긴 옥고를 치르는 동안 그를 줄기차게 괴롭힌 것은 남겨진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함께 한국 정부에 대한 배신감이었을 것이다. 로버트 김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국가와 국민, 그리고 국익과 인권, 애국에 대해 성찰해 보게 하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정부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재외국민 보호의 의무와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철저하게 저버렸다.

로버트 김은 한국정부로부터 단 한푼의 댓가도 받지 않고 순수한 모국애의 발로로 북한 관련 정보를 제공했다. 재판 과정에서 미국 검찰은 정부에서 전보도 오고, 격려의 치하도 받았다고 밝히면서 이에 대한 증거를 제시한 바 있다. 또한 사건의 정황으로 봐서도 한국 정부가 개입된 것이 분명한데도 당시 정부는 물론이고, 그 후 정권이 두 번 바뀌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정부의 외면과 무관심은 현 시점까지 계속되고 있다.

사건 발생 후 8년 동안 한국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1996년 11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와의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은 개인의 문제다. 한국 정부는 전혀 관계도 없고, 관심도 없다"며 너무도 당당하게 입장을 밝혔다. 이는 자칫 한미 양국 간에 민감한 외교사안으로 비화될 현안을 로버트 김 개인의 일로 치부함으로써 사건의 확대를 차단하려는 의도가 확실히 엿보이는 단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는 '도마뱀 꼬리 자르기'식에 다름 아니었다. 당시 여야 국회의원 100여 명이 구명을 위한 탄원서에 서명하고, 민간 차원에서 한국과 재미교포 사회에서 구명위원회가 발족되는 등 종교와 정파를 초월해 태평양을 넘나드는 범국민적인 단합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작 구명운동의 중심에 서야 할 한국정부와 청와대는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아버지의 구명을 호소하는 로버트 김 막내딸의 간절한 편지에 대해 우리 정부는 "그 나라의 법을 존중해야 한다..."는 답변으로 대신했다. 외국의 법은 존중하면서 모국을 위해 개인의 안위를 돌보지 않다가 모든 것을 잃게 된 재외국민의 인권은 거들떠보지 않는 국가가 과연 국가로서의 자격이 있으며, 그 정부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6.25전쟁 이후 지속되어 온 한미 군사동맹과 정보 공유라는 우호적 관행에 비추어 볼 때 한국정부가 미국 측에 로버트 김의 선처를 요청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도리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종일관 관망과 외면으로 일관했다.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한술 더 뜨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로버트 김이 무죄를 주장하며 정식 재판을 요구하자 미국 검찰은 한국 정부가 이 사건에 대해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한국정부가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는 로버트 김이 정보를 제공했던 주미 한국대사관 해군 무관 백동일 대령을 증인으로 신청한다는 뜻이었다. 이에 대해 한국대사관은 백대령이 사건 당시 외교관의 면책특권을 내세우며 로버트 김에 대해 성의를 보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스스로 저버렸다. 그리고 로버트 김이 변호사를 제대로 구하지 못해 애태우는 것을 알았을 터임에도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백대령을 위한 변호사만 고용했다. 수렁에 빠진 로버트 김으로서는 모국 정부에 대한 배신감이 뼛속 깊이 파고드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로버트 김은 미국 시민인 경우 3년형을 선고받는 기밀누설죄에 대해 한국대사관 무관이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공모죄가 추가되어 9년형이라는 법정 최고형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보호관찰 3년형까지 합치면 12년, 금쪽과 같은 50대, 60대 초반 황금기 인생을 몽땅 감옥에서 지내야 하는 너무도 가혹한 형벌이 내려진 것이다. 로버트 김의 말과 같이 '가난한 친정을 도와 준' 댓가 치고는 너무도 잔인했고 또 정부의 처사 또한 그에 못지 않았다.

로버트 김과 같이 미국 해군정보국에 근무하면서 조국 이스라엘에 군사기밀을 넘긴 조나단 폴라드의 경우 이스라엘은 그가 자국의 스파이임을 인정하고 그의 구명을 위해 장관이 직접 면회를 가고 수상은 클린턴 대통령과의 중동협상 테이블에서 그의 협상을 타결의 조건부로 내세우는 등 이스라엘 정부가 공개적으로 나섰으며 그의 가족에 대해서도 아무런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게끔 조치했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차라리 로버트 김도 조나단 폴라드처럼 정보 제공의 댓가로 한국 정부로부터 돈이라도 받았으면 상황은 달라졌으리라는 가정까지 해 보게 된다. 만일 그렇게 되었더라면 한국정부와의 커넥션이 분명히 밝혀질테니, 한국 정부로서는 그 사실을 무마하기 위해 어떻게든 사건에 개입했을 것이며, 로버트 김 혼자 모든 책임을 다 짊어져야 하는 가기 막힌 상황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1997년 5월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는 워싱턴 방문 길에 로버트 김의 가족을 접견하고 후원의 뜻을 표한 바 있다. 따라서 1998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섰을 때 로버트 김과 가족들의 기대는 컸다. 그 전에 보여준 관심을 감안하면, 김대중 대통령의 적극적인 해결의지에 희망을 걸 만도 했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 방한 시 로버트 김 이름 석자만이라도 언급해주기를 바라던 가족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이후 외교통상부 장관 앞으로 보낸 서신의 답신을 통해 한국정부는 "로버트 김의 정보 제공은 무관과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비롯되었다"며 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미국 법정에서 사법적 판단이 내려진 사안에 대해 한국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국제법의 기본원칙과 국제 관례에 배치된다고 하여 미국과의 외교적이 마찰을 우려하는 정부의 속내를 드러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격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인권정부라고 자처해 왔으며 몇 차례의 옥고를 치르면서 민주투사이자 국제적으로 인권의 상징처럼 인식되어온 김대중대통령이 이끄는 국민의 정부마저 이렇게 소아적인 국익에만 매달려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를 저버리고 존중받아 마땅한 로버트 김의 인권을 철저히 외면했던 것이다.

이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으나 이미 두 번이나 역대 정권으로부터 외면 받아온 로버트 김으로서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 한 치도 진전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정부에 대해 더 이상 어떠한 기대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 그렇더라도 참여정부를 지향한다는 현 정부는 그의 출소를 앞두고 그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로버트 김 후원회가 거리에서 벌써 한 달간이나 가두모금까지 벌이고 있는 국민적 캠페인을 모른 척하는 것은 기본적인 도리가 아닐 것이다.

로버트 김의 순수한 애국심이 평생 그의 발목을 잡는 억울한 일이 석방 이후에도 지속된다는 것은 그에게 값진 신세를 진 모국이 행해야 할 예(禮)가 아니다. 이역만리에서 근면, 성실로 자랑스런 재외한국인이었던 그가 남다른 애국심으로 한국정부가 파견한 무관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 선공후사(先公後私)의 민족정신을 실천하다가 순식간에 부와 명예 등 모든 것을 다 잃은 마당에 석방 이후에까지 이 나라 정부가 외면한다면 어느 누가 이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히 나서려 하겠는가?

로버트 김과 그의 부인 장명희씨의 절규가 지금도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한국정부와 정치인들은 그들이 필요로 할 때는 재외한국인도 같은 한국인이라며 조국을 위해 도와 달라고 호소하다가 정작 그 일을 도운 사람이 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 외면한다면 어느 누가 조국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습니까?"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