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APEC 특별전 작가가 '작품 철수'에 나선 까닭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APEC 특별전 작가가 '작품 철수'에 나선 까닭은?

<기고> 미술인들 '부산시립미술관장 사퇴' 촉구

APEC 정상회담을 기념해 부산시립미술관이 9월 29일부터 11월 27일까지 전시하 중인 '한국 현대미술전'의 공식 초대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모두 철거하겠다"고 나서는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졌다.

그를 포함한 일부 미술인들은 "이 사태는 모두 김용대 부산시립미술관 관장이 전시기획에 과도하게 개입하며 상식을 벗어난 독단행위를 일삼았기 때문"이라며 그의 '퇴진'까지 주장하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과 미술인회의 홈페이지에 김 관장을 비판하는 글이 쇄도하자 미술인회의는 급기야 지난 8일 부산시장에게 공개질의서를 보내기도 했다. 파문이 계속되는 가운데 화가 박불똥씨가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APEC 기념 특별기획전의 '초대작가'가 직접 '작품 철수'에 나선 이유**

지금 미술계가 시끄럽다. 속칭 '야이, 시발노마! 쓰리 고' 사건 때문이다. 부산시립미술관 관장 김용대(50) 씨가 그 사건의 '가해자'이며 '피해자'는 중견작가 안창홍(53) 씨로 알려져 있다.

지난 여름, 고 이중섭 화백의 수백억 대의 유작을 둘러싸고 법정공방으로 번졌던 위작논란이 정작 미술인들한테는 '남의 일'처럼 여겨지면서 오히려 미술계 바깥의 일반인들에게 더 화제였던 반면, 이번 부산시립미술관 건은 세간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미술인, 특히 작가들에게 마치 '내 일'이나 다름없는 관심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날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11월 16일 '부산시립미술관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의 입장'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본격 활동에 나선 '부산시립미술관 사태 대책위원회'(이하 부시미 대책위)는 11월 21일 부산시립미술관 현지로 내려가서 '김용대 관장을 규탄한다!'는 플래카드 아래 시위와 퍼포먼스를 벌이고 전시중인 '한국 현대미술전'의 안창홍 씨 작품 12점을 모두 철거할 계획이라고 한다.

전시 도중에 출품작을 떼어내는 불상사는, 공권력이나 여론 또는 행사주최 측의 부당한 간섭에 의해 더러 일어난 적이 있지만 초대작가의 항의로 인한 예는 드물며, 더욱이 작가가 직접 그와 같은 '실력행사'에 나서기는 초유의 일이다. 그런 만큼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분노한 미술인들, '권위주의' 관장 퇴진하라"**

'한국 현대미술전'은 APEC정상회담을 기념해 부산시립미술관이 특별기획한 대형전시회로 국내외 화단의 원로급 작가(유영국 하인두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와 중견작가(이강소 안창홍 김아타) 등 8명이 초대됐다.

'부시미 대책위'에 따르면, 김용대 관장은 작가 선정과 전시장 작품배치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전시 개막일에 초대작가 안창홍 씨한테 '부적절한' 언행을 했을 뿐 아니라 그것의 해명과 사과 요구에 대해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미술인들의 거센 지탄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부시미 대책위'는 16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김용대 관장의 퇴진을 주장했다. 한편 미술계 일각에는 이번 일이 김관장의 사퇴까지 운위할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여기는 시각도 없지 않다. 그런데 미술인을 대표하는 단체 <미술인회의>가 부산시립미술관 관장의 임면권자인 부산광역시 시장한테 금번 사태와 관련한 공개질의서를 이미 11월 8일자로 보냈으며 응답이 끝내 없거나 답변내용이 미흡할 때는 김용대 관장의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가 한층 상승세를 탈 것으로 보인다.

부산시를 대표하는 공공미술기관의 수장으로서 설마 그랬으랴 싶을 만큼 차마 믿기 어려운 '공인 김용대 관장'의 '부적절한' 처신은 크게 세 갈래로 파악된다.

첫째는 편파성이고, 둘째는 거듭된 거짓말이며, 셋째가 사태파악의 무지와 사태수습의 무능에 덧붙여 책임전가에 급급한 비겁함이다.

'한국 현대미술전'의 전시기획 초안을 잡은 사람은 이상수 학예사다. 애초 초대작가는 4인이었으나, 각 작가 측의 출품승낙까지 받아둔 단계에서 김 관장의 강압에 가까운 주문으로 그 중 2인(김홍석 박고석)을 빼고 그 대신 다른 6인(하인두 박서보 정상화 이강소 김아타 이우환)을 넣음으로써 본디의 기획의도가 크게 어그러지고 말았다는 게 이상수 씨의 설명이다.

유영국(색채추상)-김홍석(백색추상)-박고석(자연구상)-안창홍(현실형상)의 4각 구도가 2(유영국 하인두) : 4(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이강소) : 2(안창홍 김아타)의 역삼각 구도로 바뀐 것이다.

'부시미 대책위'측은 김관장의 그러한 '편애'의 의미가 유파별 작가배분의 단순한 불균형 이상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곧 공인 김용대 관장이 공무를 처리함에 있어서 개인 취향에 좌우됨은 물론이고 문화권력자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그의 속성을 드러낸 결과라는 것이다.

***"김용대 부산시립미술관 관장, 개막일 직전 자의적으로 작품 탈락시켜"**

김용대 씨의 '과도한 관장 역할'은 개막일 직전 전시작품을 배치하는 국면에서 다시 등장해 급기야 디스플레이가 완료된 안창홍 씨의 그림 16점 가운데 주요작품을 넉 점이나 손수 빼버리는 '월권'을 행사했다. 통상 출품작은 전시를 기획한 미술관 측과 초대받은 작가 간에 긴밀히 협의하여 선정하며 그렇게 반입된 작품은 빠짐없이 전시하는 것이 미술계의 엄연한 불문율이므로 결국 김용대 관장은, 담당 학예사와 작가한테 어떤 상의나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일종의 '계약위반'을 행한 셈이다.

그 결과는 당연히 해당 작가의 항의로 이어졌는데 안창홍 씨는, 자기의 전시공간을 '짝퉁'으로 망가뜨린 책임을 부하직원인 학예사에게 모두 떠넘기는 김 관장의 태도에 분노하여 전시작품의 철수를 결심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미 개막해 전시중인 그림들을 떼어낸다는 것은 무엇보다 관람객의 향유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함부로 결행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김용대 관장의 '상식 이하의 행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안창홍 씨로 하여금 고심 끝에 김 관장에게 내용증명 우편물을 세 차례나 보내 공식사과와 작품반환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코미디'의 진상은 이렇다.

<박스 시작>
***한밤중에 예약 호텔에서 쫓겨난 사연**

초대작가가 원행이라 묵어가야 할 때 숙소를 마련하는 일은 대개 관장 아닌 직원의 몫이다. 그러나 특별히 박서보 선생 내외분 등을 위하여 그 역할을 자임한 김 관장은 번잡한 시내를 벗어나 송정 청사포라는 한적한 항구 쪽 호텔을 손수 예약했다.

우리가 이제 막 <블루비치>에 도착한 것이 밤 아홉시쯤이었을 게다. 프론트에서 그와 마침 마주쳤다. 서로 악수를 나눴고 방 홋수를 아니까 이따가 잠시 들러마 하는 가외 인사말까지 우리는 똑똑히 들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두 시간 후, 그는 박서보 정상화 유민자 이강소 선생의 해변 산책을 수행하고서 그들을 침소까지 배웅한 다음 호텔을 나서면서 '안창홍과 그 시다바리 두 사람이 들기로 예약된 방'을 대실취소 해버린 것이다. 뭐야, 도대체.

빈방이야 있다지만 이런 개 같은 경우를 당하고서 묵묵히 잠을 이룰 수는 없다. 게다가 서울행 정오 열차표를 미리 끊어뒀으므로 어차피 부산역까지 나가야 할 터, 자더라도 그 근처 가서 자는 게 옳지 싶었다. 택시로 한 시간 가량 달리는 동안에도 우리의 공분은 삭지 않았다. 나는 운전기사한테 상황을 대강이나마 들려주고 그 '중절모에 바바리코트를 입은 사내'가 왜 그런 짓을 한 것 같으냐고 물어보았다.

"밤이 이슥한데도 선생님들이 안 보이니까 아마 딴 데 가서 주무시는 걸로 잘못 이해한 모양이지요."

아니, 밤 열한 시도 채 안된 시간이 오밤중인가요. 또 오밤중 아니라 오오는 이십오 밤중이더라도 세상에 그게 말이 되는 겁니까.

부산역전에 떨어져서야 마침내 안창홍 선배와 김용대 관장이 전화로 어렵사리 연결됐다.

나는 나지막이 '욕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 여보세요. 관장님이세요.

채희석과 내가 곁에서 듣기에 안 선배의 태도는 괘씸할 정도로 공손하였다. 개통 직전까지 그 씩씩거리던 노기는 다 어디로 갔는가.

우리가 노래방에서 좀 놀다가 자러갔더니만, 방이 없어요. 취소됐대요. 중절모 쓰고 바바리코트 입은 남자가 취소했대요.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 호텔 종업원 말이, 방 네 개 값은 계산하고 한 개는 취소했다는 거예요. 바로 관장님이 말이지요. 열시 사십 몇 분에. (…) 뭐라고요. 아니, 지금 관장님이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예요. 관장님이 그 방을 잡았었고 또 취소했다니까, 그러니까 관장님한테 이렇게 전화한 거 아닙니까. 이 일을 그러면 관장님 말고 누구한테 얘기합니까.

나는 전화기를 빼앗고 싶었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안 선배의 언성이 팍 튀었다.

"야이, XX놈아!"
"녹음해라, XX놈아!"
"그래, 끊어라, XX놈아!"

통화는 끝났다. 이 세 번의 'XX놈아' 앞에 들어 간 김 관장의 대사는 이렇다.

"저한테 그 얘기 하려고 자는데 전화걸었습니까?"
"이 목소리, 지금 녹음합니다!"
"전화 끊겠습니다!"

김용대 관장은 자기가 총책임자로 있는 부산시립미술관의 기획전시에 초대받은 작가 및 '그 시다바리들'이 얼마나 중요한 '손님'인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자기가 초대한 손님이 '새벽 세 시'에 침대 위가 아닌 길바닥에서 안타까이 전화를 걸어와 나 어떻게 하냐고 하소연을 하건만, 그는 단지 자다 깬 제 잠만 아쉬울 뿐인 것이었다?

새벽 다섯 시 무렵 모텔 <파라다이스>에 들어가 지친 몸을 뉘였는데 눈알이 쓰려도 잠은 이루기 어려웠다. 아,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어디서 어떻게 꼬여 이 지경이 되었는지 한숨이 절로 났다. 이부자리도 시원찮은 맨 방바닥에 모로 누워 깜박 졸았던가, 동침한 두 양반의 코고는 소리에 눈을 떴다. 일곱 시가 채 안 되었다.

안창홍 선배도 일어나 이상수 학예사와 연신 통화중이었다. 잠시 뒤 사건의 진상이 확인되었다.

이상수 학예사가 최종 종합하여 전화로 알려온 김용대 관장의 주장은 차마 유치찬란하다. 신용카드로 진즉 결제했던 예약 방 다섯 개의 숙박비를 23시경 전액 취소하고 그 즉시 그 중 네 방만 현찰로 다시 계산하면서 나머지 방 하나는 아예 없던 걸로 처리했다. 어쩔래. 내가 내 돈으로 한 일인데 취소를 했건 말소를 했건 너희가 웬 상관이야.

(인용한 글은 필자가 지난 10월 11일 <미술인회의> 자유게시판과 동시에 부산시립미술관 홈페이지에도 올렸던 '부산시립미술관 김용대 관장 사건의 진상 기록문'의 축약본이다. 그로부터 달포가 넘도록 이제까지 김용대 관장 측으로부터 별다른 이의제기가 없는 걸로 미루어 그 진술내용은 대부분 사실로 인정된 듯하다)
<박스 끝>

***교묘하게 고착화된 문화권력의 '권위주의'**

연일 들끓는 여론에도 아랑곳 않고 김용대 씨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묵묵부답이다. 그것은 모종의 자신감인가? 부산시립미술관 관장 임용 당시에 부산지역 미술인들로부터 적지 않은 반발이 일었으되 무난히 입성했던 것처럼 이번 사태 역시 절로 수그러들어 그는 무사히 임기를 채울 것인가? 심지어 연임까지도 너끈히 바라볼 것인가?

예술계라고 해서 정치권에 만연한 권위주의나 관료주의의 폐해가 없는 게 아니다. 어쩌면 더 교묘하게 심화되고 고착화되었을 수도 있다. 미술계도 마찬가지이다. 가히 폭발적인 미술인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1개 국립미술관과 4개 시립미술관의 관장 자리는 미술문화 권력의 요직인 셈인데 그 가운데 하나인 부산시립미술관의 관장으로서 김용대 씨가 작금에 보여준 처신은 미술계의 진정한 개혁과 발전을 생각할 때 참으로 우려와 개탄을 금할 수 없게 하는 구태의연한 모습에 다름 아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김용대'가 '고유명사'를 넘어 '보통명사'라는 사실이다. 문화권력을 그릇되게 사유화한 '김용대 관장'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