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와 5.16은 혁명과 반란으로 극명한 대립관계
5.16 정당화는 '4.19 이념 계승'의 헌법정신 부정 아닌가
4월혁명은 12년에 걸친 이승만 독재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분출됐다. 부정선거가 직접 원인이었지만 이승만의 집권을 연장하기 위한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백골단과 땃벌떼를 동원한 비판세력에 대한 백색테러, 자신의 정적인 조봉암 진보당 당수에 대한 사법살인, 이기붕을 비롯한 측근권력자들의 전횡과 부패, 친일파 출신 군경의 국민감시 등 여러 민심이반으로 인해 폭발됐다. 우리 현대정치사에서 권력의 횡포와 비리를 바로잡기 위한 첫 민주주의 시민혁명이었다.
4.19와 5.16은 혁명과 반란으로 극명하게 규정되는 역사적 대립관계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4월혁명을 짓밟은 5.16은 정치발전을 거스르고 역사 진보에 역행한 반민주적인 군사반란이었다. 1961년 1월 육군본부는 박정희 소장을 그해 5월 말 예편시키기로 정했었다. 박정희는 6.25전쟁 전에는 남로당의 군사프락치였고, 52년엔 육참총장 이종찬에게 군사쿠데타를 종용했으며 그 후 계속해서 불순한 반란 의지를 표출해왔기 때문에 당연한 조치였다. 또 5.16 군사반란의 핵심세력인 김종필 옥창호 신윤창 김형욱 김동환 등 육사8기생들은 무려 1355명이 임관한 최대 장교동기 집단으로 군내 계급승진 등에서 그 장래가 불안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개인적 불평불만과 출세욕구가 반죽돼서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박정희는 4월혁명 과정이 혼란스러웠기 때문이 아니라 52년부터 망상적으로 꿈꾸어 온 쿠데타를 민주당 신정부가 안착되기 전에 기회를 포착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5.16은 61년 당시 객관적 상황 때문이 아니라 박정희의 주관적 권력욕의 산물이다.
따라서 5.16 이후 박정희가 강행한 연속적 독재강화는 흉중에 숨겨놓았던 권력욕을 착착 실행에 옮기는 수순밟기였을 뿐이다. 그는 이른바 혁명과업이 성취되면 군대로 복귀하겠다는 공약을 식언한 채 63년 자신이 군복을 벗고 정권장악 공작에 나서 기만적인 민정이양을 했다. 69년엔 집권세력 내부의 반대자들까지 정보기관을 내세워 협박하면서 민주헌정의 금지선인 3선개헌을 강행했고 이어 72년엔 종신집권을 위해 또 한번의 쿠데타, 유신체제를 선포했다.
유신선포는 박정희가 권력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커밍 아웃
유신 국민투표, 계엄령 아래 찬반토론 금지된 채 공개투표도
박정희 독재의 종결판은 유신체제였다. 유신은 박정희가 본래 품었던 권력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커밍아웃이었다. 5.16 이후 3공화정과 유신체제 4공화정은 박정희 권력의 동질적 연속선상에서 그 심화과정에 불과한 것이지 민주성 평가로 결코 차이가 인정되지 않는다.
5.16도 4월혁명과 국민이 선택한 민주정부에 대한 반란이었지만, 유신선포는 민주주의와 의회정치, 국민주권에 대한 더 심각한 반역이었다. 유신을 쿠데타로 일컫는 이유다. 대통령 박정희는 국회를 해산하고 국무회의에서 1인 종신집권용 유신헌법안을 의결하도록 한 뒤 국민투표에 회부했다. 당시 헌법 어디에도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은 규정된 바 없다. 그것은 민주정치의 본질적 내용인 의회주의를 정면으로 말살한 반헌법적 쿠데타였다. 또 박정희가 임명한 장관들로 구성된 국무회의가 그의 1인 독재를 위한 유신헌법을 의결한 것은 한편의 정치 코미디였다.
무엇보다도 국민투표는 계엄령이 존속되고 유신헌법안에 대한 모든 찬반토론이 금지된 가운데 시행됐다. 군대에서는 공개투표, 강제적 찬성투표가 자행됐고 전국의 공무원과 관변단체들이 '95% 이상 찬성율 올리기'에 조직적으로 동원됐다. 당시 반독재 학생운동으로 군대에 강제입영됐던 나는 그 공개투표 현장을 똑똑히 보았다. 찬성률 100%를 만들려는 대대장과 중대장은 나의 공개투표 거부를 그대로 응락했다. 나중에 들으니 내가 속한 중대의 투표율은 100%였다. 나는 투표하지 않았지만 인사계(상사)가 대리투표를 한 것이다.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는 이런 식으로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야만과 공포분위기 속에 조작됐다.
유신헌법은 이렇게 절차가 불법적이고 반민주적으로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더욱 희대의 절대왕정과도 같은 독재권력을 만들어냈다. 대통령을 2300~2500여명의 관변성 유지들로 구성된 이른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하게 했고 아무런 연임 제한도 없어 종신집권을 보장했다. 국민의 기본권인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제한할 수 없도록 한 헌법상의 명시적 규정조항이 삭제됐다. 법원의 구속적부심 제도조차 폐지했다. 국회의원 정수의 3분지 1을 대통령이 사실상 임명했다. 그 임명된 국회의원인 유정회 소속 인사가 국회의장을 맡기까지 했다. 더구나 대법원장을 포함해서 모든 법관에 대한 임명과 면직권도 대통령에게 맡겼다. 사법부의 독립과 국회의 국민 대표성은 말살됐다. 민주정치의 기본 원리인 삼권분립이나 권력 간의 견제와 균형은 없었다.
국회 해산한 유신쿠데타 지지는 의회주의 부정 아닌가
퍼스트레이디로 유신체제의 중심 축, 독재 방조 책임 커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 의원은 일관되게 5.16 군사반란과 유신체제에 대해 정당화하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그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이기 때문에 검증은 당연한 것이지만 특히 헌법정신과 역사관에 대해서 심도있게 따져보아야 한다.
| ⓒ프레시안(최형락) |
둘째, 유신체제에 대해서도 그 평가를 역사에 맡기자고 한 것은 사실상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 아닌가. 국회를 강제 해산한 쿠데타가 불가피했다고 본다면 자신이 과연 의회주의 신봉자인지 여부를 밝혀야 할 것이다.
셋째, 박근혜 후보는 74년 말부터 퍼스트레이디로서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유신체제의 중심축이었다. 딸로서 형식적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한데 불과한 것이 아니라 구국여성봉사단 등의 총재로 적극적인 대국민 활동을 벌였다. 실제 그 활동이 매우 넓고 깊은 영향력을 파생했기 때문에 함께 움직였던 최태민 씨와의 관계와 그의 비리의혹에 대해 중앙정보부와 검찰이 종합적인 내사보고서를 대통령 박정희에게 직보할 정도였다. 박 후보는 유신체제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그 야만적 체제폭력과 반민주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가 불가능한 것 아닌가. 인혁당 피해자들이 중앙정보부와 검찰의 고문 조작으로, 또 대통령이 임면권을 가진 대법원의 독재 추종적 판결로 사법살인이 자행될 때 퍼스트레이디로서 어떤 입장이었는가. 당시 박 후보는 24세로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억울한 희생에 대해 퍼스트레이디로서 나름대로 주견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넷째, 육영수 여사는 타계하기 전 퍼스트레이디로서 박정희 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피해당하는 희생자와 약자들을 제한적으로나마 감싸는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비해 박근혜 후보는 퍼스트레이디 시절 독재권력의 여러 전횡과 비행에 대해 조금이라도 견제하는 보완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방조하지 않았는지 밝혀야 한다.
다섯째, 박근혜 후보는 최근 유신체제 아래서 사법살인으로 희생된 인혁당 피해자들에 대해 "같은 대법원이 서로 다른 2개의 판결을 했다"고 말했다. 유신체제 아래 대법원은 1인독재 아래서 대통령이 임면권을 행사했다. 또 법관들이 수시로 정보기관이나 군 특수부대원의 정치테러와 협박에 노출돼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대법원은 국회인사청문회와 여론의 검증까지 거쳐서 임명되며 정치적 독립성이 유지되고 있다. 그 정체성이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결코 '같은 대법원'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또 박 후보의 그런 언급은 1차 인혁당과 2차 인혁당을 구분하지 못해서라기보다도 유신체제 아래 사법부를 더 믿기 때문 아닌가. 삼권분립이나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 파괴된 유신체제 아래서의 사법부를 더 신뢰하거나 민주화된 이후 독립된 사법부와 동일시한다는 것은 심각한 역사관의 타락이다. 박 후보는 유신체제 아래 내려진 사법부의 잘못된 판결들을 더 신뢰하는지, 민주화 이후 재심에 의한 무죄판결을 믿지 않는 입장인지 밝혀야 한다.
여섯째, 새누리당 대변인 홍일표 의원은 12일 공식브리핑에서 인혁당 피해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관련, "박 후보의 표현에 일부 오해 소지가 있어 사과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날 박 후보 본인은 선거대책위 대변인인 이상일 의원을 통해 위로할 수는 있으나 사과할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분노하는 민심을 달래기 위한 술책 아닌가. 겉으로는 사과하는 척 하고 속으로는 과거비행을 고수하는 양두구육식 공작정치 아닌가.
수사검사 출신을 기용한 것은 '안철수 저격용'아닌가
경찰 고위 정보책임자의 대화녹취록 국회가 국정조사해야
일곱째, 최근 박 후보 선대위의 정준길 전 공보위원은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측근역할을 하는 금태섭 변호사에게 불출마를 종용하거나 압박에 해당하는 전화를 했다. 정준길 씨는 결코 압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친구 사이의 전화였다고 해명했다. 박 후보는 금 변호사가 이를 문제삼는 기자회견을 하자 "친구 사이의 전화였지 않으냐"고 했다.
그러나 정 씨가 전화하면서 탑승했던 택시기사는 "안 원장에게 출마하지 말라고 전하라. 대선 나오면 죽는다. 우리가 조사해서 다 알고 있다."고 '협박 정황'이었으며 친구 사이 대화는 아닌 것 같았다고 증언했다. 당초 정 씨는 택시에 타지 않았고 자기 차를 손수 운전하면서 전화했다고 주장했다가 기억이 잘못됐다고 번복했다. 정준길 씨는 10여년 전 벤처비리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였으며 그 때 안철수 교수도 조사대상이어서 관련 사실들을 알고 있다는 투로 금태섭 변호사와의 전화에서 말했다. 이는 직무상 얻은 비밀과 정보를 이용하거나 누설하지 못하도록 한 법규나 윤리규정에 위반되는 것 아닌가.
박근혜 후보는 안철수 교수가 관련된 일을 조사한 적 있다고 주장하는 검사 출신 정준길 씨를 '안철수 저격수'로 선대위에 기용한 것 아닌가 밝혀야 한다. 이는 수사검사 출신에게 직무상 얻은 정보를 이용해 상대후보를 공격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유신독재 시절 공작정치 방식의 선거전략 아닌가.
더구나 <뉴시스>는 12일 경찰 치안감인 고위 정보책임자가 안철수 교수가 드나들었다는 룸살롱에 대한 뒷조사를 시사한다는 기자와의 대화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취록은 매우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와 정황을 담고 있어서 경찰 정보계통의 '안철수 사찰'의혹에 대해 국회가 국정조사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는 금태섭 변호사가 말한 '거대 권력의 음모'를 실감하게 하는 증거 중 하나다.
여러 사건을 종합해 볼 때 박근혜 후보는 자신의 높은 지지율을 무기 삼아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를 지키려는 것 아닌지 묻고 싶다. 대통령 후보로서의 정치적 기반을 아버지의 명예 보호와 옥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역사 왜곡을 강행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의 정치적 유산에 얽매여 있는 사인(私人)의 입장이지 결코 새 시대의 지도자로서 자리매김하는 모습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의 유산과 명예를 지키는 일과 공당의 대통령 후보로서의 길을 놓고 양자택일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묻고 싶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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