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 글을 지금 읽을 수는 없겠지요. 몽골 순방 중이시니까. 그래도 써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시대의 진실에 침묵해버린 비겁한 사람이 되고 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역사의 기록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라고 믿습니다.
착잡해집니다. 부러 이렇게 날 서게 공격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기대를 접은 지 오래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한 가닥 최후의 양심에 호소하는 심정이 되어 봅니다. 평택 주민들의 분노와 절규가 내 몸에서 영 떠나지를 않습니다.
아파서 씁니다. 이 아픔이 느껴지지 못한다면 당신은 대통령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파하는 이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권력자는 그 누구도 이 땅에서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더할 나위없는 자랑이고 뜨거운 희망이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노풍'에 담긴 역사의 진로가 우리 모두의 미래라고 굳게 믿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우리'는 노무현 이름 석 자에 대통령이라는 승리의 월계관을 씌우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했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국민이 대통령"이라고 당신은 기쁘게 외쳤습니다. 대화를 나누고 토론을 하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참여"를 약속했습니다. "특권의 질서"를 폐기하는 개혁의 깃발을 들겠다고 했습니다. "말할 것은 말하겠다"며 미국을 향해서도 선명한 자세를 취했습니다. 다른 누가 아닌 자신이 한 말이니 모두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이제 민주주의는 더 이상 후퇴할 수 없다, 이 나라의 자주는 거대한 진전을 이룩할 것이다, 특권은 무너질 것이며 한반도의 평화는 현실이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린 확신하고 감격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들만의 어리석은 착각이었고, 노무현 당신의 생각은 전혀 다른 곳으로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배신의 계절'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너무도 일찍 찾아왔던 것입니다. 착각했던 우리에게 잘못이 있었겠지요.
취임 전부터 당신은 북한의 돈줄을 죄겠다는 미국의 전략에 철저하게 협력했습니다. 김대중-김정일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특검 조처가 그것입니다. 취임 후 첫 번째 맞는 6.15 공동선언 기념일에는 골프를 치는 것으로 기념식을 대신했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 선포에 선뜻 동조를 표명했습니다.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 침략전쟁에 이 나라의 젊은이들을 남북 관계를 앞세워 보냈습니다. 전후복구 사업이익을 미끼로 정당화했습니다. 그러나 얻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김선일이라는 청년이 목숨을 잃었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좋게 여기려 해도 그런 태도는 잔혹했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은 정말 눈물을 흘려야 할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만 눈물을 흘렸던 모양입니다.
우리가 약소국이니까, 나라의 총괄적인 이해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대통령의 입장에 서보면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겠지, 남북관계를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미국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도 엄존하잖아, 우리가 거리에서 소리 높이면 대통령은 그걸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할 전략적 지혜가 있을 거야, 그렇게 이 나라 백성들은 착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이해하기 어려운 사태를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그렇지만 날이 갈수록 대통령 노무현은 자신이 공약했던 바를 하나하나 스스로 부인해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았는지 점점 헷갈려 했습니다.
'참여'는 '봉쇄'로 바뀌고, '대화'는 '일방적 결정'으로 변했습니다. '토론'은 '지시'로 대체되고, "국민이 대통령"이라던 당신의 입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세력에 대한 비난과 엄단이 이어졌습니다.
대통령 혼자만 애국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북악산 기슭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급기야는, 오늘날 이 시대의 영혼을 담아내는 영화인들에게, "자신감도 없느냐?"고 조롱하고 윽박지르며 스크린 쿼터 축소를 강행했습니다. 결정의 과정에서 영화인들을 철저하게 무시했습니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무지한 환상에 기초한 전략의 희생물로 스크린 쿼터를 갖다 바쳤습니다. 그런 대통령의 모습은 영혼을 판 파우스트와 닮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일이 그렇게 끝난 것일까요? 당신의 그 잘못된 선택으로 영화인들은 세상을 새롭게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불행 중에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당대를 고뇌하는 영화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뜻하지 않았던 소득입니다. 그러나 그 소득은 당신의 것은 아닙니다. 그건 당신을 겨누는 화살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 시장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는 논리로 FTA가 가져다 줄 혜택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건 미국이라는 나라를 당신의 손아귀에 쥐락펴락 할 수 있을 때에나 가능한 일입니다.
대통령은 미국의 무엇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요? 후보 시절, 미국 사진사의 실력에 대해서는 그나마 알고 있었던 바가 있으셨나 보지요? 지금 생각해보니, 요트나 골프 말고도 사진에 그리 조예가 깊은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FTA라는 거대한 빨대는 그 입구가 미국 자본가들에게 장악되어 있고, 빨대의 끝은 이 땅에 박히게 됩니다. 이 나라의 농업, 금융, 문화, 교육, 의료, 서비스, 기타 산업 그 모두가 다 이 빨대에 줄줄이 빨려 올라갈 대상들입니다.
미국 시장에 빨대를 꽂고 단물을 빨아댈 수 있는 자는 이 땅에서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한-미 FTA 강력 추진'은 그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이 나라 전체를 희생시키겠다는 논리 외에 다름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그 빨대의 크기는 미국이 이 땅에 꽂을 빨대에 비하면 '새 발의 피'입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이름의 아메리카 제국 지배전략을 수용한 것은 이 땅에 미군이 마음대로 들락날락거리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투기 자본에게 문을 열어주더니, 외국 군대의 군사력 이동의 자유까지 주겠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라크 침략전쟁에 파견된 주한미군은 미국 본토로 가서 떠난 것이 아니라, 이 나라를 발진기지로 이미 사용한 바 있습니다.
당신은 한반도가 동북아 평화의 축이 되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었습니다. 그 말에 누가 반론을 펴겠습니까? 그러나 이 땅이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진기지의 하나로 이용된 판국에 그 평화라는 단어가 가당키나 한 것일까요? 할 말은 하겠다고 했다면, 이라크로 가는 주한미군은 괌이나 미국 본토에 귀환해서 떠나려면 떠나라, 그렇게 이야기했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요?
미국은 일본 동경에 동북아 사령부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중국을 포위, 겨냥하는 동북아 전략기지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미군이 전시 작전권을 쥐고 있는 한반도 남쪽은 그 동북아 사령부 예하 부대의 기지라는 군사적 의미를 갖게 됩니다. 전략적 유연성의 수용과 미군의 동북아 사령부 건설은 이 나라의 평화를 근본에서부터 위협하고 있습니다.
미군과 일본군의 융합체제를 한반도에서 떠받쳐주는 곳이 바로 주한 미군기지라는 점, 그리고 오산-평택-군산-광주로 이어지는 미사일 방어망 벨트는 이 나라를 전쟁의 화마에 언제든 휘말려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구조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닙니다. 독도 문제를 놓고, 고이즈미가 우리를 향해 "후회할 날이 올 것"이라고 으름장을 쳤던 까닭은 달리 있지 않습니다. 군사적으로 우리의 목줄을, 미국을 대리하여 일본이 쥐게 되는 시각이 착착 다가오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평택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동경 사령부의 보조기지로 선택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이른바 C4I(Command, Control, Computing, Communication and Information) 체제를 근거로 하는 첨단의 정밀타격 시스템이 장착될 전망입니다.
농사를 짓던 생명의 땅을, 무기가 꽉 들어찬 죽음의 땅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들판의 생명을 자신의 목숨처럼 여기고 살아 온 농부들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돈 주면 되는 거 아냐, 하고 막무가내로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른 당신이 돈이면 다 된다고 그렇게 믿고 살아오신 것은 아니겠지요?
평생을 살아 온 자기 땅이, 고향이, 학교가, 농토가, 그리고 마을이 폐허가 되고 그 오랜 세월이 모두 허공에 날아가는데, 그것도 외국 군대가 들어서는 군사기지가 된다는데 아 이런 고마울 데가 어디 있습니까? 하고 이 늙은 농부들이 순순히 물러설 줄로 알지는 않으셨겠지요?
생존의 터가 박탈되고 마을 공동체가 깨어져 나가고 손자뻘 되는 청년들이 제복을 입고 방패와 곤봉으로 밀어붙이는데 이 나라의 정부를 칭찬할 것이라고 여기지는 또한 않으셨겠지요?
"사태를 악화시키는 외부세력"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와 일부 언론이 주장하는 바입니다. 평택 주민 아닌 자들이 개입했다는 뜻이겠지요. 평택 주민 아니면 입 다물라는 이야기라고 들립니다. 학생, 시민단체는 미군기지 문제에 관여하지 말고 다 평택에서 나가라는 경고인 줄로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미군기지문제로 직접 관련당사자가 아닌 이 나라 국민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하고 굳이 따지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어떤 특정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에 그 지역에 살지 않은 누군가가 관심을 갖고 문제를 제기하면 불법이 된다는 헌법 조항이 있는지를 묻지도 않겠습니다. 이 나라 국민들은 자기 살고 있는 동네 이외의 곳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 이제부터는 시시비비를 제기하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살아가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면 되는 거지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은 평택에 사시나요? 국방장관도 주민등록지가 평택인가 보군요. 미군이 언제부터 평택주민이었습니까? 사태를 악화시키는 외부세력으로 따지면, 주한미군 말고 더 큰 외부세력이 있기는 한가요? 이른바 '외부세력'의 정체를 잘못 짚으신 것은 아닌가요?
공권력에 대한 도전을 용납할 수 없다, 그렇게 정부는 말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인 당신도 몽골로 떠나면서 엄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공권력은 그 나라 주민을 지키는 것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군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 공권력이 그 나라 주민을 공격하면 그 공권력은 국가 폭력이 됩니다. 공권력으로서의 정당성을 그 순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우리의 역사는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정작 공권력의 권위를 추락시킨 것은 대통령과 정부입니다. 외국 군대의 기지를 만들기 위해 군과 경찰에 몸을 담고 있는 이 나라 젊은 청년들을 공권력의 이름으로 동원한 것 자체가 공권력의 위신에 대한 도전입니다. 격렬한 시위를 유발한 근원적 책임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화나 사전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일을 저질러 놓고, 그 결과로 인한 정당성이 없는 사태에 항의하는 주민들을 적으로 모는 권력은 누구를 위한 권력입니까?
노무현 대통령 당신은 독도 문제를 거론하면서 식민지 시대를 논했습니다. 일본의 침략적 정책에 일격을 가했습니다. 그렇다면 평택은 무엇입니까? 과거 식민지 시대의 현실과 지금의 평택은 무엇이 다릅니까?
평택 대추리 김지태 이장의 편지는 놀라웠습니다. 국방부 장관은 이장과 자신의 격이 다른데 어떻게 같은 자리에서 대화하느냐고 했던 모양입니다. 편지를 읽어보고 나니, 그건 도리어 김지태 이장이 윤광웅 국방장관에게 해야 할 말이 된 것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은 이번 싸움에 철저히 졌습니다"라는 머리로 시작하는 그의 글은 읽는 이의 폐부를 찌르고 온 몸으로 체득한 진실을 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감히 대통령님께 당신이란 표현을 써서 국가원수 모독죄가 될지 모르지만 당신한테는 너무도 과분한 표현입니다. (…) 이제 우리들의 선택은 없습니다. 그대로 죽는 수밖에…. 차라리 문인을 가장하지 말고, 무인답게 한 칼로 쳐서 완전히 죽이십시오. 고통의 날이 하루라도 짧게…. 이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 당신, 이제 치유의 길은 없습니다. 더 이상 조롱하지 말고, 그리고 더 이상 고통 주지 말고 더 이상 기지이전문제 지연되지 않게 모두를 죽이고 당신 뜻을 이루십시오. 그리고 당신은 훗날 한미동맹을 공고히 했다고 평가받으며 그때 수많은 이름 없는 민초가 명멸해 갔다고 함께 기록되길 바랍니다."
어떻습니까? 몇 대목을 인용했을 뿐인데도 내용이 읽기에 편치 않지요? 이미 정해진 국책사업이니까 하는 식의 논리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정당성이 없으면 다시 검토해야 합니다. 한-미 동맹 운운의 주장은 허구입니다. 평화를 위협하는 동맹은 거부되어야 마땅합니다.
이 나라 군대를 주한미군기지 건설공병과 방패막이로 집결시키는 것이 평시 작전권 회수의 의미는 분명 아니겠지요.
잘못된 것은 돌이키는 것 외에 방법이 없습니다. 비상한 역사적 결단이 요구되는 엄청난 일인 것을 압니다.
미국의 군사와 자본, 그리고 문화가 이 나라를 송두리째 삼키려 하는 일에 적극 협력한 대통령으로 남기를 원하시지는 않겠지요. 식민지의 역사는 반세기전에 끝난 것으로 마무리 지어야 합니다.
문정현 신부님이 그러시더군요. 들을 빼앗겨도, 봄을 빼앗겨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노무현 대통령, 당신이 지금 가는 길의 끝은 어디인가요? 귀국할 즈음에는 무언가 다른 대답이 마련되어 있기를 아직도 애타게 기대한다면 너무도 어리석은 일일까요?
5월의 봄볕이 죽은 땅에서 이전의 기억과 미래의 열망을 한데 섞어, 라일락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봄비는 그 뿌리를 적시고 있고, 늙은 농부는 삽을 어깨에 걸치고 물꼬를 트러 논두렁길을 허위허위 걷고 있습니다. 그 평화로운 풍경, 당신도 보고 싶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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