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은 이산가족 상봉 중단 사태를 바라보는 이산가족들의 심경과 그들이 생각하는 해결방법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지난달 '6.15계기 이산가족 특별상봉'에서 북측의 누나를 만났던 박재영(64) 씨에게 글을 청탁했다.
박재영 씨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 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둘째아들로,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서 전쟁 당시 아버지와 함께 북으로 간 큰누나 설영(70) 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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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박 씨는 청탁을 거절했다. '나 혼자 사는 게 아니다'라는 이유였다. 북측을 비판한다면 혹여 북쪽의 가족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남측의 쌀·비료 중단을 비판한다면 남쪽의 가족들이 눈총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월북 작가의 아들'로 살아오면서 몸에 밴 피해의식과 경계심이 느껴졌다.
하지만 박 씨는 전화를 끊은 후 밤을 새워 장문의 글을 썼고, 용기를 내 <프레시안>의 문을 두드렸다.
정치적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려는 노력이 역력한 이 글에서 박 씨는 누나와 나눴던 '상봉의 추억'을 담담하게 소개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이산가족 상봉의 정신과 개선 방법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그러나 박 씨는 '이산가족 상봉은 생명의 문제'라며 인도적 차원의 이산가족 상봉을 정치적인 문제로 묶어 '목을 조르는 일'은 생명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글 곳곳에는 인도주의적 문제를 정치 논리로 다루는 남북 양측의 태도에 대한 원망과 한탄이 묻어났다.
긴 글의 말미에서 박 씨는 "남쪽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 북한이 미사일을 쏜 것은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라면서도 "하지만 그 문제는 쌀과 비료를 주지 않는다고 해서, 또 이산가족 만남을 중단시킨다고 해서 해결될 게 아니다"라며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그로 인한 남북 양측의 인도주의적 교류 중단에 원망의 눈초리를 던지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과 쌀·비료 지원은 남북 화해·협력의 양대 주춧돌이었다. 남북관계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인도주의적 교류라는 이 두 가지 '생명의 문제'는 남북대화의 생명줄을 잇게 했다. 생명의 문제와 직접 대면했던 이산가족들의 목소리가 엉켜가기만 하는 남북관계를 풀 실마리를 줄 수는 없을까. <편집자>
"꺼져가는 촛불에 소방호스를 들이대다니요"
남북의 문제는 너무 오래도록 남쪽과 북쪽의 위정자들에 의해 정권 유지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악용되어 왔고, 아직도 일부 정쟁의 빌미로 삼고 있으며, 또 분단이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강대국의 의지와 이권에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에 남북이 합의해 통일로 간다고 하면 과연 가만 두고 볼 주변 강대국들이 있겠는가 하는 것은, 막상 닥쳐 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예측하기 힘든 일일 것입니다.
특히 인도적 차원에서의 남북 이산가족상봉은 가족과 친척을 단순히 만나 보겠다는 것 이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없는데,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이산가족상봉까지 한꺼번에 묶어 목을 조르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중대한 생명의 문제입니다.
북한에 쌀과 비료를 지원하는 문제 역시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을 돕자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 무엇을 하면 주겠다는 비인도적인 생각을 하는 것은 생명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회담에 복귀하면 쌀을 주겠다는 남측이나, 쌀을 안 주면 이산가족 상봉을 할 수 없다는 북측 모두 인도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부터 다시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전장에서의 적십자에게 부상 군인은 적군도 아니고 아군도 아닌 그저 환자일 뿐입니다.
이산가족 상봉의 경우 아직까지 신청조차 못한 사람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미 신청한 분들을 기준으로 알려진 것을 보면 총 신청자 13만 명 중 기다리다 돌아가신 분 만도 거의 3만 명이나 된다고 하니 이 어찌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분들의 소원이 그저 죽기 전에 내 가족, 내 친척의 얼굴이나 한 번 보고 죽겠다는 것인데, 그것 하나 못 해주는 정부가 과연 무슨 올바른 정치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현재 9만 여명의 이산가족들이 자기 생명을 걸고 기다리고 있는 이때, 남의 일이니 급할 게 하나도 없다는 식으로, 그야말로 응급실에서 분초를 다투며 기다리는 그 꺼져가는 촛불들을 꺼지지 않도록 간호해 주지는 못 할망정 소방 호수로 물을 퍼부어 더 빨리 꺼져버리라고 하는 작태를 그냥 두고 볼 자가 있겠습니까.
1950년 한국동란 이후 생긴 이산가족만도 1000만이 넘는다고 하니 이게 어찌 남의 일입니까. 저는 기회 있을 적마다 이런 이산가족의 아픔을 외국에 있는 외국 친구들에게 알려 왔습니다. 한국동란 이후 반세기가 훨씬 지난 이 시점에도, 생사나 확인해 달라고, 편지라도 한 줄 전해 달라고, 잠깐 만나서 얼싸 안고 혈육의 정을 나누겠다는 최소한도의 인도적 처리를 해 달라고 하는 수많은 이산가족들의 울부짖음을 남과 북의 위정자들은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쓰지 않은 손수건
먼저 남쪽 정부 당국자에게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이산가족의 상봉, 꼭 한정된 지역에서 극소수의 인원이 그 많은 시간과 경제적인 비용을 낭비해 가면서 꼭 서로 만나서 만져 보아야만 된다는 착상 그 자체가 잘못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꼭 만져 보아야만 나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행복하다'고 했듯이, 이산가족이 꼭 서로 만나서 서로 만져 보아야 내 혈육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된 정치적 착상입니다.
제 경우를 한 번 예를 들어 봅시다. 한국전쟁이 난 지 56년. 전쟁 당시 아홉 살짜리 국민학교 3학년 철부지 때 누나와 헤어진 저는 반백(半百)의 세월이 다 흘러 반백(半白)의 머리로 변한 노인이 되었고, 헤어질 당시 단발머리 여중 2학년생의 누나는 꼬부랑이 칠십세 할망구가 되어 서로 만났을 때, 과연 서로를 금방 알아보고 곧바로 남매의 정을 느낄 수 있었겠습니까.
혈육의 정으로 느끼는 끌림이 있기는 했지만, 사전에 번호를 부여해 남쪽 동생은 그 번호 테이블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고 북쪽에서 오신 누나는 그 번호의 테이블을 찾아오니까 '아 동생들이구나', '아 어렸을 때 헤어진 단발머리 소녀가 반세기가 지났으니까 저 정도로 늙었겠구나' 하는 짐작으로 서로 끌어안고 반평생, 아니 56년 한평생 그 긴 세월동안 꿈에라도 한번 보고 싶었던 혈육의 정을 느껴보려고 애를 썼지만, 너무나 긴 세월을 헤어져 그동안 글 한 자 말 한 마디 전하지 못하고 흘러간 그 세월이 너무나 길었기에, 그 그리움이 두 가슴 속에서 꽁꽁 얼어붙어, 내 가슴 속엔 남극의 빙하가, 그리고 누나의 가슴은 북극의 빙하가 되어, 56년간의 그리움을 한꺼번에 느껴보고 싶어서 서로 힘껏 끌어안았으나, 그 빙하가 도저히 녹아내리지를 않았고, 그 녹은 물이 눈물이 되어 펑펑 쏟아지리라 생각했던 것은 완전히 오산이었죠. 이산의 아픔이 '오산'의 슬픔이었죠. 힘껏 끌어안은 남매는 전신으로 반세기의 긴 가슴앓이를 한 순간에 서로 치유해 주려고 했지만, 그것은 너무나 얼어 있었기에 그 눈의 물을 닦으려고 미리 준비해 간 두 개의 손수건은 무용지물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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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첫날의 첫 상봉은 반세기를 상기하는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고, 둘째날은 점심 후 금강산 삼일포 호수가로 그야말로 원족(遠足)을 가서, 삼일간의 회포를 단 두 시간 동안에 다 풀고 가라는 양 당국자의 '엄청난' 배려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면서, 북한 산 사과단물(주스)과, 캔 커피와, 과자와, 카스테라를 들면서, 그 금쪽같은 상봉의 시간을, 큰 누나가 일찍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혼자 몸으로, 금이야 옥이야 키운 자식들, 그리고 그 짝들과 손자·손녀까지 모두 이름과 나이를 적어 달라고 하는 요구로 흘려보냈죠. 누나는 4녀 1남에 그 짝, 그리고 손자·손녀 둘씩해서 9명, 그러니까 현재 스코어로 '5+5+9' 꼭 19명을 두셨더군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성경에서도 말했듯이, 큰누나 한 분이 그 체제 하에서 평생을 자기 자신을 버리고 사신 표본이었던 결과라 생각했죠. 금년 시월이면 막내딸이 또 하나를 출산해 19 + 1 = 20명, 큰누나를 포함해 21명이니까, 앞으로 우리 생전에 통일이 되어 누나네 가족과 남쪽의 동생들 가족이 다 함께 만나 서로 알고 지냈으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우리가 먼저 죽는다면, 우리 남은 가족들이 서로 찾을 수 있게 해 주고 가는 게, 우리의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그 금쪽같은 시간을 우리는 서로 나눈 것이죠. 앞으로 통일된 나라에서 남쪽이든, 북쪽이든 식당에서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내 사촌이나, 내 조카를 서로 모르고 또 다시 이산가족의 아픔을 답습한다면 이게 어찌 인간으로 할 도리겠습니까.
"외상장부를 만들면 됩니다"
이산가족 상봉이 잘못된 만남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진행하더라도, 생사확인을 먼저 빠르게 진행하고, 그 작업이 끝나면 그 때에는 서신과 사진 만으로라도 먼저 상봉을 하고, 남쪽이 인터넷 세계 강국임을 자랑만 하지 말고, 북쪽에 많은 수의 컴퓨터를 제공해, 지원하는 게 또 퍼준다는 소리를 듣기 싫으면, 남북 '외상장부'에 적어 두었다가, 남쪽에서 북쪽의 경제상황을 끌어 올라가게 한 후 그 이자까지 합해서 받으면 어떨까요.
북쪽의 일정한 장소에서 그쪽 체제에 맞게 국가 통제 하에 이메일을 교환할 수 있도록 그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게, 오히려 남쪽에서 북쪽 체제의 붕괴를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또 뜻하지 않은 붕괴로 인한 통일은 서로 바람직하지 않고, 남쪽의 경제 상황만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게 뻔하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 북쪽을 돕는 것이, 우리 남쪽뿐만 아니라 앞으로 통일 후의 통일한국의 나아 갈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남쪽은 너무나 많은 제품이 넘쳐나서 더 오래 사용할 수 있고 또 재활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마구 버려 환경 문제를 유발하는 것도 남과 북이 나누어 쓴다는 생각으로 아껴 쓰고 나누어 쓰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현재 북쪽에서는 남쪽의 주민등록시스템과 같은 게 어느 단계까지 왔는지 잘 모르지만, 남쪽과 같은 체제를, 아니면 더 선진적인 시스템을 갖도록 도와준다면, 자기 체제 유지에도, 또 이산가족과 같은 생사여부 확인에도 활용할 수 있음으로 아주 적은 인원의 상봉비용을 이러한 일에 사용하는 것이 더 활용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예산낭비를 줄이면서도 더 많은 이산가족이 재회할 수 있고, 또 서로 도울 수 있는 아이디어는 이렇게 많습니다. 이산가족들의 기력이 하루가 달리 쇠약해져가는 때에 그런 아이디어를 실행할 생각은 하지 않고 북한으로의 모든 지원은 '퍼주기'라는 말로 매도되고 정부 당국은 행여 퍼주기 딱지가 붙지 않을까 벌벌 떠는 상황, 그리고 그렇다고 이산가족 상봉을 끊어버리겠다는 선언은 모두 다 재고되어야 합니다.
남쪽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 북한이 미사일을 쏜 것은 상식을 벗어난 행동입니다. 하지만 그 문제는 쌀과 비료를 주지 않는다고 해서, 이산가족 만남을 중단시킨다고 해서 해결될 게 아닙니다.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그저 북쪽의 가족들을 만나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현실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오랫동안 중단된다면 정부 당국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때에도 정부는 북한 탓만 하고 있을 생각인지, 이산가족을 만나게 하겠다는 처음의 생각이 그런 것이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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