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3일 핵실험 예고선언을 하면서 동북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실험을 실제로 해서 핵보유국이 될 경우 일본의 핵무장을 부추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고, 아베 신조 신임 총리의 극우적인 성향은 이를 부채질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음은 아베 신조 체제 출범 이후 평화헌법 개정 문제와 일본의 안보 정책을 조망한 조양현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의 글이다. 이 글은 북한의 '핵실험 예고선언' 이전에 쓰여진 것이어서 이 문제를 직접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프레시안>은 이 글이 일본 안보 정책의 역사적 연원과 아베 체제의 성격을 분석함으로써 '핵보유국 북한' 이후 일본 외교안보 정책의 변화를 유추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독자들에게 소개한다.<편집자>
아베 총리 체제의 개헌구상과 일본 안보정책 전망
21세기 들어 일본에서는 평화헌법 개정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는 일본의 국가진로는 물론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향배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의 하나인 만큼, 주변국에서도 주목해 왔다. 그러던 차에 최근 출범한 아베 정권은 개헌을 정권 구상의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바, 이 문제가 아베 정권의 외교안보정책과 관련하여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되었다.
이 글에서는 먼저 예비적 고찰로서 전후 일본 외교안보 이념구도 상의 아베 정권의 위치와 그 이념성향 그리고 정책노선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으로 개헌 문제와 관련하여, 전후 평화헌법 체제 하의 안보정책의 변천과 아베의 개헌 구상 및 그 전망을 전수방위와 집단적 자위권이란 개념을 중심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개헌 논의가 한반도 및 동아시아 지역질서에 가지는 함의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I. 일본 외교안보 이념구도 상의 아베 정권의 위치
가. 냉전기 통상국가론의 정착
냉전기 일본 외교안보정책의 근간은 1947년 제정된 평화헌법과 1951년 체결된 미일안보조약(1960년 개정)이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해 미국 주도의 전후 국제질서에 복귀한 일본이 택한 외교안보노선은 헌법 제9조를 전제로 한 미일안보조약의 체결이었다. 당시 일본의 정치·외교를 담당한 요시다시게루(吉田茂)는 방위비 등의 안전보장 코스트를 최대한 경감함으로써 전쟁으로 피폐한 일본의 부흥과 국제사회로의 복귀를 우선하였다.
이러한 '軽무장 경제우선 전략' 즉 통상국가론(이른바 요시다 노선)은 그 후의 '55년 체제' 확립과 자민당 장기집권기를 통하여 미소대립의 냉전체제 하의 일본 대외정책의 중심축을 차지하였으며, 이는 기본적으로 1980년대 후반까지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 냉전 이후 일본사회의 보수화와 보통국가론의 침투
1990년대에 들어서 일본의 국내외 환경은 급변했다. 대외적으로는 냉전의 종식과 걸프전의 발발,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 (북한 위협론) 그리고 대만해협 위기와 중국경제의 부상 (중국 위협론), 국내적으로는 노동조합의 약체화, 사회당 등의 혁신정당의 몰락, '잃어버린 10년' 으로 상징되는 장기불황, 천재지변과 대형 사건사고에 따른 사회불안과 위기의식의 확산 등이 그것이다.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일본 사회는 보수화의 경향이 강해졌으며, 새로운 국가전략의 모색이 본격화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1990년의 걸프전을 거치면서 일본이 소극적인 안보노선을 탈피하여 국제평화에 보다 적극적인 공헌을 해야한다는 미국의 압력이 거세졌고, 일본 내에서도 정계, 재계 및 언론계를 중심으로 '경제대국'의 지위에 어울리는 적극적인 국제공헌을 요구하는 주장이 분출되었다.
이른바 보통국가론으로 알려진 이들의 주장은 미일동맹의 유지를 전제로 한 일본의 적극적인 국제공헌과 군사력의 보유,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조건으로서의 개헌 요구를 내용으로 한 것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 일본내에서 이에 대한 지지가 확산되었다.
이러한 보통국가론은 1990년대 후반 이후, 특히 2001년 등장한 고이즈미 정권 하에서 일본의 대외정책 기조로 자리잡았으며, 그 주장의 많은 부분이 실현되었다. 즉 개헌 논의의 본격화(국회 내의 헌법조사회 설치와 그 최종 보고서의 제출, 자민당의 '신헌법 초안' 발표), 국민통합 장치의 법제화(교육기본법 개정의 움직임, 국기·국가법, 통신방수법, 주민 기본대장법 제정), 국가위기관리 태세의 강화(유사관련법안 제정, 국민보호에 관한 기본방침의 각의 결정) 및 국제공헌의 강화(특별조치법 제정에 의한 자위대의 해외파견, 유엔 안보리상임위 진출 시도) 등이 그 예이다.
다. 아베 정권의 이념 성향 및 정책 노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신임 수상은 친미보수(親美保守)의 성향이 강하며, 이러한 이념성향이 차기 정권의 정책 전반에 방향성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아베 내각의 인적 구성을 보면, 자민당 총재 선거에 대한 논공행상적인 요소와 더불어, 아베의 이념성향에 가까운 보수계 인사와 측근이 주요 각료 내지는 수상관저 보좌관으로 적극 기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아베 내각이 보수색이 강한 정책노선을 추구할 것을 예상케 하며, 따라서 아베 정권의 정책노선은 기본적으로 보통국가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전후 세대 출신으로서는 첫 총리인 아베는 자신의 정권 창출을 '戰後체제로부터의 새로운 출범(戦後レジームからの新たな船出)' 으로 정의하고 있다. 일본 보수세력에게 있어서 전후체제란 패전 후 연합국에 의해 '강요된' 것이며, 이의 총체적인 상징이 바로 평화헌법이다.
따라서 아베 정권의 航海는 이러한 전후체제를 해체하고 그 자리에 "국민들 스스로가 일본인인 것을 비하하지 않고 자신감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국가"의 기초를 일본 '스스로가 세우는' 작업이다. 그리고 이 항해에서 海圖가 되는 것은 일본의 역사, 전통, 문화 등인 바, 그 목적지인 '아름다운 나라'는 결국 전통적 요소에 기초한 국가이다. 이처럼 아베의 정치이념은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다는 복고주의적인 색채가 다분하다.
이렇게 볼 때 향후 아베 정권이 추구하는 보통국가화 정책이 보수주의적 이념의 제도화를 통한 국가체제의 정비에 집중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실제로 아베의 정권구상은 고이즈미 구조개혁 노선을 부분적으로 계승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개헌과 애국심 고취를 위한 교육개혁, 대외적으로는 미일동맹의 재편·강화, 자위대의 항구적인 해외 파견과 무력 사용을 가능하게 하는 법적·제도적 정비를 통한 '강한 일본'의 건설을 중장기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또한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그 기본 목표를 "주장하는 외교에 의한 '강한 일본, 신뢰받는 일본'"으로 설정하여 변화를 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종래의 수동적이고 조용한 외교행태에서 탈피하여, 자국의 입장을 명확히 주장하면서 필요할 경우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발휘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주장의 내용 자체는 반드시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다고 보기 어려운 바, '주장하는 외교'의 추진에 있어서는 상대국별·현안별 개별적 접근법과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아베 정권 하에서는 야스쿠니와 같은 역사문제와 영토문제에 대한 신중한 대처, 한국·중국과의 관계개선의 기회주의적 모색, 미일동맹 강화와 개헌의 적극적 추진, 북한문제에 대한 강경노선의 견지 등이 예상된다.
II. 전후 일본 안보정책의 변천
가. 냉전기 전수방위 개념의 정착
평화헌법 개정 논의는 대개의 경우 안보정책, 특히 전수방위, 집단적 자위권 등의 개념과 관련된다. 따라서 아베 정권의 개헌 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후 평화체제 하의 안보정책의 흐름과 논점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한 바, 아래에서는 이에 대한 필요 최소한의 예비적 고찰을 제시하고자 한다.
냉전기 일본 안보정책의 특징은 최소한의 방위력 보유와 소극적 방위를 특징으로 한 전수방위(專守防衛) 라는 개념으로 대표된다. 일본의 평화헌법은 전력(戰力) 보유의 포기 및 교전권의 부인(제9조 2항)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엄격히 해석하자면 일체의 전력 보유와 무력 사용은 위헌으로 보아야 하겠지만, 한국전쟁 발발을 계기로 일본의 자체 방위를 위한 경찰예비대가 창설되어 1952년 보안대(保安隊)로 개조된다.
당시 요시다는 헌법에서 말하는 '전력'이란 근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장비와 편성을 갖춘 것을 뜻하므로 보안대는 전력이 아니며, 이것을 침략으로부터의 방위에 사용하는 것은 위헌이 아니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 후 1954년 자위대와 방위청이 발족하여 실질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기에 이른다.
1957년 자위를 위한 최소한도 내의 방위력의 정비와 미일안보체제에 의한 외부침략에의 대응을 내용으로 하는 국방의 기본방침이 각의에서 결정된다. 1970년에는 최초의 방위백서가 발표되어 전수방위의 입장이 천명된다. 이에 따르면, 재래식 무기에 의한 소규모의 직접 침략과 간접침략에 대해서는 일본 자력으로 방위하고, 핵을 포함한 대규모의 전면전은 미일안보체제에 의존한다고 되어 있다.
1970년대 후반에는 미일동맹 하의 양국의 역할이 보다 명확하게 규정되기에 이른다. 즉 미국의 대일 방위분담 증대 요구와 국제정세 변화를 배경으로 1976년 일본의 방위력 정비계획을 담은 방위계획대강이 각의결정된다. 이에 따르면 소규모의 제한적인 공격에 대하여는 일본이 자체적으로 방어하고 대규모 외부 공격시에는 미국에 의존하며, 이를 위해서 일본은 최소한의 '기반적 방위력'을 가지도록 한다고 되어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전수방위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지만, 기반적 방위력이란 개념으로 일본의 역할을 규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에 기초하여 미군과 자위대간의 협력사항을 문서화한 것이 1978년에 확정된 미일방위협력지침 이른바 가이드라인이다.
1980년대 초에는 종합안전보장이란 개념이 도입된다. 즉 안전보장의 범위를 외부 침략에 대한 방어 외에 자유로운 국제질서, 에너지, 식량의 확보 및 자연재해에의 대비 등으로 확대하고, 이를 달성하는 수단에 있어서는 군사적 요소를 최소화하고 비군사적 요소, 즉 외교, 경제, 에너지, 식량, 방재 등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발상이다. 이는 평화헌법에 의해 군사력 보유의 제약을 받는 일본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여 전수방위 개념을 보완하고자 한 것으로, 이후의 일본 안보정책의 기본요소로 정착한다.
이처럼 평화헌법과 미일안보조약이라는 틀 속에서 기반적 방위력과 종합안전보장의 개념을 기본으로 한 전수방위 원칙은 기본적으로 1980년대 후반까지 일본 안보정책의 중심축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했다.
나. 냉전 이후 적극방위의 모색과 미일동맹의 강화·재편
1990년대 들어서 일본 안보정책에는 근본적인 전환이 있었는데, 이는 적극방위의 형태로 나타났다. 즉 본토 방위에 국한되던 자위대의 활동범위가 주변지역의 유사사태에의 대응까지 확대되고, 자위대의 해외파견의 길이 열린 것이다. 1995년 발표된 신방위계획대강은 종래의 기반적 방위력 개념과 미일동맹 체제를 견지하면서, 냉전 이후 일본 방위정책의 기본을 재설정하였다. 즉 일본에 대한 직접 공격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 자위대의 대처를 주로하고 미군이 이를 보완하는 형태로의 작전개념의 전환, 자위대의 임무에 자연재해나 지역 위기상황에의 대처,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의 참가를 추가하였다.
이에 따라 미일동맹 역시 다시 정의되었다. 1996년 발표된 미일 안전보장 공동선언은 미일동맹이 21세기 아시아·태평양지역 안전과 번영 유지의 근간임을 확인하고, 미일동맹의 대응범위를 '필리핀 이북의 극동'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했다.
이러한 '동맹의 광역화'에 따라 미일간의 구체적인 협력강화 방안을 규정한 것이 1997년에 확정된 신미일방위협력지침(신가이드라인)이고, 이를 근거로 일본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것이 1999년 제정된 주변사태법이다. 주변사태법은 주변지역 유사사태 발생시의 자위대 역할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였고, 주변지역의 범위를 상황적 개념으로 규정함으로써 자위대의 활동범위 확대를 꾀하였다.
21세기 들어 일본의 방위정책은 한 단계 더 진화한다. 2001년 9·11 테러는 미일간의 위협인식 공유에 바탕을 둔 적극방위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즉 글로벌 차원의 테러리즘과 대량파괴무기(WMD), 동아시아의 북한이 새로운 위협요소라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고, 공동대응을 강화하게 된 것이다. 이를 반영한 2004년판 방위계획대강은 일본 방위와 더불어 국제안보환경의 개선을 방위정책의 기본 목표로 추가하였고, 본토에 대한 전면 침공에 대비한 냉전형 방위에서 새로운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다기능 탄력적 방위태세로의 전환을 꾀하였다.
이렇게 국제안보환경의 개선이란 목표가 추가된 것은 자위대의 임무를 일본 방위 및 주변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국제무대로 확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고이즈미 정권은 테러대책 특별조치법, 유사법제, 이라크지원 특별조치법 등을 제정하고 미국의 대테러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이라크에 자위대를 파견함으로써 미일관계를 공고히 했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의 새로운 군사·안보 전략의 일환으로 지구적 방위태세 검토(Global Posture Review) 즉 해외주둔 미군의 재편을 추진하고 있는 바, 이러한 미국의 글로벌 방위전략에 맞추어 미일동맹의 재편·강화가 추진되고 있다. 그 특징은 동맹의 지역화·글로벌화, 일체화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냉전기의 미일동맹이 일본 방위와 주변 유사시 일본의 기지 제공이 중심이었다면, 1990년대 후반에는 주변사태에의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지역방위 차원으로, 최근에는 글로벌 차원의 안보환경 개선 협력으로 확대되는 추세이다. 최근의 미일동맹의 재편에는 주일미군과 자위대의 상호 운용성 향상, 지휘·통제를 위한 사령부간 연계성 향상, 기지·시설의 공동사용, 정보공유·협력강화, 합동훈련 강화 등 동맹의 일체화가 두드러지고 있는데, 아베 정권 하에서는 이러한 추세가 정착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아베는 "핵억지력과 극동지역의 안정을 생각한다면 미국과의 동맹은 불가결하며, 미국의 국제사회에의 영향력, 경제력 그리고 최강의 군사력을 고려한다면 미일동맹은 최선의 선택"이라고 하여, 미일동맹의 재편·강화에 관한 한 고이즈미보다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전후 일본 안보정책은, 일본 방위에 한정했던 1976년 방위계획대강, 지역방위로의 확장을 시도한 1995년 대강, 그리고 국제안보환경의 개선이라는 글로벌 차원의 역할을 목표로 하는 2004년 대강을 거치면서 일본의 방위력 증대와 역할 강화 및 동맹의 재정의를 통한 미일동맹의 재편·강화를 추구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즉 일본의 역할이 주변지역 그리고 국제무대로 확장되고 자위대가 해외에 파견되면서 사실상의 적극방위로 바뀌고 있으며, 이는 냉전기 안보정책의 근본이었던 전수방위 원칙이 냉전 이후 형해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III. 아베 개헌구상의 논리와 전망
가. 전후체제와의 결별
일본에서의 개헌 요구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이 현실성 있는 논의로 구체화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다. 2000년 1월 일본 국회 내에 헌법조사회가 설치되어 2005년 4월 그 최종 보고서가 제출된 데 이어, 2005년 11월 자민당은 헌법 개정안 초안('신헌법 초안')을 발표하고 개헌에 필요한 국민투표법안 제정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추진 중이다.
전후 세대가 상당수를 차지하는 중의원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설문조사에서 헌법 제9조의 개정에 70% 가까이가 찬성을 보였는데, 이는 일본에서 개헌 논의가 더 이상 금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등장한 아베 정권은 개헌을 정권구상의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아베 정권에게 있어서 평화헌법 개정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보통국가화의 제도적 완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이념적 측면에서 보면 전후체제의 상징으로서의 평화헌법에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헌법을 제정' (아베와 같은 자민당 보수 정치가들은 '개정'이란 말보다 '제정'이란 말을 선호하는데, 이는 점령정책에 의해 강요된 평화헌법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일본의 헌법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함으로써 참다운 국가기반의 기초를 놓는다는 의미가 있다.
아베에 의하면 55년 체제로의 보수세력 결집이 가능했던 것은, 사회당의 약진에 대한 경계심 외에, 경제회복의 긴급성과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립 회복이라는 두 가지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전자는 고도성장에 의해 훌륭하게 달성되었지만, 후자를 대표하는 '자주헌법의 제정'은 아직도 달성이 요원하며, 그 결과 가족의 유대, 지역에 대한 애착,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등의 이해타산을 초월하는 가치관이 경시되는 폐해를 낳았다고 한다.
따라서 전후체제를 상징하는 평화헌법의 개정을 '아름다운 나라' 건설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규정한 것은 보수 논리의 당연한 귀결이다. 실제로 아베는 상기의 자민당 헌법 개정안에 대하여 그 前文을 일본의 전통, 문화, 역사를 강조하는 문장으로 수정하고자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베 정권이 개헌과 더불어 중점 추진 목표로 삼는 '교육개혁' 역시 보통국가화를 위한 이념교육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베는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현재 국회에서 '계속심의' 상태에 있는 교육기본법 개정을 최우선으로 추진할 뜻을 밝히고 있다. 교육기본법은 평화헌법이 실시되기 직전인 1947년 3월 말에 시행되었으며, 인간존중, 진리와 평화의 희구, 인격의 완성 등 평화헌법의 정신에 입각한 교육이념을 선언하여 흔히 '교육헌법' 내지는 '교육헌장'으로 불린다.
일본 보수세력은 교육기본법이 점령정책의 일환으로 제정되어 황국사상과 유교사상에 기초한 戰前의 '교육칙어' (1890년 공포) 를 대체하였다는 인식 하에, 평화헌법 개정과 더불어 교육기본법 개정을 일본의 근본에 관계되는 중요 사안으로 규정하고 이의 성립을 끊임없이 추진해 왔다. 아베가 교육기본법 개정안의 조기 성립에 의욕적인 것은 '가족과 지역, 국가를 중시하는 교육'을 실현하겠다는 보수 논리의 요구와 합치되는 것이다.
나. 집단적 자위권의 확보
둘째, 평화헌법 개정은 집단적 자위권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보통국가화의 제도적 완성을 의미한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전력 보유 포기를 규정한 평화헌법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전수방위라는 개념으로 자위대 운용의 길을 열었고, 또 냉전 이후 전수방위 개념의 많은 부분이 형해화하기는 하였지만, 평화헌법은 아직도 일본이 완전한 보통국가로서 행동하는 데 족쇄가 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집단적 자위권이다.
이미 지적하였듯이, 평화헌법 제9조 1항은 전쟁의 포기, 동 2항은 전력 보유의 포기 및 교전권의 부인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엄격하게 해석하자면 전수방위에 의거한 무력 사용 즉 개별적 자위권 행사도 결국은 무력 사용에 해당하므로 위헌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한 헌법 해석(이른바 해석 개헌)을 통하여 자위대('전력을 갖지 않은 군대')의 보유와 자위를 위한 최소한도의 범위내의 무력 사용(개별적 자위권의 행사)을 가능케 했다. 즉 일본 정부는 국제법상 주권국가인 일본은 당연히 고유의 자위권을 가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그 행사에 있어서는 개별적 자위권과 집단적 자위권을 분리하여, 전자와 관련하여 '자위에 필요한 최소한도의 실력'은 위헌이 아니라고 하여 인정하는 반면, 후자는 방어를 위한 '필요 최소한도'의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에 일본은 그 권리는 갖고 있으나 헌법의 규정상 그 사용은 불가능하다는(즉 위헌이라는) 입장이다 (1981년 5월 내각 법제국이 준비한 일본 정부 답변서).
그런데 이러한 집단적 자위권의 부정은 미일동맹의 비대칭성을 의미한다. 동맹관계에 있는 국가는 동맹국에 대한 외부의 침략을 자국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하여 자동적으로 침략의 저지에 필요한 행동에 나서는 것(집단적 자위권의 사용)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이러한 권리의 사용이 '필요 최소한도의 범위'를 넘어서므로 위헌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미국과의 쌍무적이고 평등한 동맹관계의 설정은 불가능한 것이다. 즉 일본이 공격받으면 미국의 군사력이 개입하지만, 미국이 공격받으면 일본은 군사적 수단에 의해 미국을 도울 수 없는 것이다.
'같이 땀을 흘리는' 동맹체제 구축이라는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위한 미일 간 군사협력 체제 강화 및 자위대의 해외 파견을 항구적으로 가능케 하는 제도 정비를 통하여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추구하고자 하는 아베로서는, 집단적 자위권을 부인하는 현행의 헌법 해석에 불만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아베는 미일동맹의 쌍무적 관계화에 의한 신뢰성 확보, 다국간 공동훈련, 주변사태 발생시의 지원활동 원활화 등을 가능케 하는 조건으로 집단적 자위권의 확보를 들고, 이를 실현하는 방법으로서 '2단계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즉 궁극적으로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 용인을 명시한 헌법으로의 개정(명문 개헌)을 추진하되, 그때까지의 잠정 조치로서 현행의 헌법 해석의 변경(해석 개헌)을 통하여 '행사할 수 없는 권리'의 행사를 가능하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먼저 명문 개헌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의 확보는 평화헌법 제9조의 수정에 집중된다. 상기의 자민당 헌법 개정안은 평화헌법 제9조 1항은 유지하고, 동 2항만을 수정하여 전력 즉 '자위군'의 보유를 명시했다. 다만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서는 명확한 언급을 피하고, 조문의 해석과 관련 법률의 정비를 통하여 그 행사가 가능하도록 한다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아베의 개헌 구상은 한걸음 더 나아가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명시하는 쪽으로 헌법 조문을 수정하고자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개헌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졌다고는 하나, 그 개정 범위와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개헌 자체를 반대하는 사민당과 공산당은 물론, 당 차원의 '헌법 提言'을 제시한 민주당, 그리고 여당인 공명당과 자민당 내에서 조차 다양한 의견이 혼재한다. 따라서 이들을 아베 노선으로 수렴시키기 위한 조정 작업은 결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 개헌을 위해서는 국민투표법 제정 등의 사전절차가 필요하며, 여기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개헌의 발의에는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재적의원 2/3 이상의 찬성을 필요로 한다는 점 역시 큰 제약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아베는 이와 같은 현실적 제약을 고려하여 5년 정도의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개헌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다. 향후 아베 정권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자민당 총재의 임기(현재 3년, 3선 불가)를 고려한다면 아베 정권 하에서 개헌이 실현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극히 작아 보인다. 물론 개헌을 위한 사전 작업은 진행될 수 있겠지만, 이 역시 내년 참의원 선거 이후에야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즉 참의원 선거 승리를 통한 정권의 안정성을 확보한 내년 가을 이후에야 국민투표법 제정 및 헌법안 절충 등의 작업이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해석 개헌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 사용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으로, 아베는 두가지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양적 개념'으로서의 집단적 자위권의 추구이다. '필요 최소한도의 범위를 넘어선다'는 이유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지 않는 현행의 정부 해석은, 뒤집어 보면 '필요 최소한도의 범위' 이내라면 용인될 수 있다고 보려는 것이다.
즉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는 '절대 개념'이 아닌 '양적 개념'으로 접근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평화헌법은 교전권 자체를 부인하고 있고, 정부 해석에 의하면 자위권의 발동에는 (1)일본에 대한 급박부정(急迫不正)의 침해가 존재하며, (2)그 외의 적당한 수단이 없고, (3)필요 최소한도의 실력행사에 국한한다 라는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즉 '일본에 대한 무력공격'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이상 집단적 자위권은 행사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이후의 귀추가 주목된다.
둘째, 집단적 자위권을 '중핵 개념'과 '외적 개념'으로 나누어, '외적 개념'에 한하여 그 행사 가능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구 반대쪽까지 가서 미국과 함께 싸우는 경우(중핵 개념에 해당)와 공해 상에서 미군선박이 공격받을 때 일본 해상자위대가 돕는 경우(외적 개념에 해당)는 상황이 다르므로, 후자와 같은 경우에 한정하여 집단적 자위권의 사용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논리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러한 개념 역시 자의적이고 애매한 측면이 많다. 따라서 아베 정권이 이러한 방법으로 헌법 해석 변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검토 작업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어쨌든 아베 정권은 출범 이후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서는 향후 구체적인 예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소극적인 내각 법제국 뿐만 아니라 이에 적극적인 외무성, 방위청 등의 담당자로 구성된 공동 연구팀을 설치하고 그 연구 결과에 따라 일정한 범위내의 경우에 한정하여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의 헌법 해석 변경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은 진정한 미일동맹이 되기 위해서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용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헌법 해석 변경을 공공연히 촉구한 최초의 사례는 2000년 12월의 '아미티지 보고서'로, 이에 따르면 집단적 자위권 행사 금지는 미일 간 동맹협력의 제약요인으로 규정되고 있다.
그 후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확보를 촉구하는 발언을 반복했을 뿐 만 아니라, 일본이 바란다면 개헌도 시야에 넣을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는 냉전 이후 지역안보 뿐만 아니라 글로벌 차원의 안보문제에 있어서 일본의 역할 확대를 원하는 미국의 안보전략을 반영한 것으로, 일본 내의 집단적 자위권 논의의 본격화를 유도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아베는 또한 국제협력 강화를 위해서도 개헌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자위대의 해외 파견과 관련하여, 이는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의무인 동시에 자원을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의 국익에도 합치된다는 인식 하에, 기존의 테러대책 특별조치법의 연장 시행과 더불어 자위대의 해외 파견을 항구적으로 가능케 하는 법률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일본은 1992년 PKO 협력법에 의거하여 PKO 활동에 참가한 이래 자위대의 해외 파견을 확대해 오고 있는데, 아베는 자위대가 해외에서 '제한 투성이의 행동기준'에 따라야만 하는 현실을 개헌을 통해서 바꾸겠다는 입장이다.
IV. 한반도·동아시아 지역질서에의 함의
아베 정권의 외교안보노선은 보통국가론으로 위치지울 수 있으며, 평화헌법 개정 논의는 기본적으로 보통국가화를 향한 국가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아베에게 있어 개헌은 전후체제와의 결별의 상징이자 자위대의 군대화 및 집단적 자위권 확보를 통한 보통국가화의 제도적 완성으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환언하자면, 개헌은 일미동맹의 강화·재편 및 일본의 군사적 역할 증대 그리고 '강한 일본'을 향한 '주장하는 외교'를 추구하기 위한 필요조건인 것이다.
일본의 보통국가화는 냉전 이후의 국제환경, 지역정세 그리고 일본의 국내 상황이라는 복합적 요인 하에서 일본 스스로가 국가전략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현재 진행형의 현상으로, 이미 상당 부분이 제도적으로 정착되었다. 평화헌법 개정은 길고도 험난한 과정으로 아베의 개헌 구상이 수년 내에 실현될 가능성은 결코 크지 않지만, 이러한 방향성의 추구는 중장기적으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 내지는 보통국가화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질서에 어떠한 함의를 갖는가?
먼저 일본의 보통국가화 노선이 보수주의적 이념의 제도화에 경사되고 이러한 제도가 다시 보수 이념을 재생산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상황을 지적할 수 있다. 그 경우 동아시아에서는 편협한 내셔널리즘이 횡행하고, 결과적으로 역사인식, 영토문제 등을 둘러싼 국가 간 마찰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자위대의 군대화 및 집단적 자위권의 추구는 일본 안보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의미하는 바, 이는 동아시아 지역질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냉전 이후 일본 안보정책의 방향은 미일동맹 강화 및 독자적 방위력 정비로 향하고 있는 바, 이는 지역 내 군비경쟁과 패권경쟁을 초래할 수 있다. 냉전 이후 미일동맹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일본의 2004년판 방위계획대강은 중국의 위협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바, 이는 미국과 제휴하여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로 이해된다.
과연 미일동맹 강화가 동아시아에 새로운 냉전을 불러올지 아니면 지역질서 안정에 기여할지는 지켜보아야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전자의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냉전 이후의 일본 안보전략은 대중 인식, 대북 인식, 미국과의 동맹관계 설정 등에 있어 한국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으며, 이는 한일 간의 전략적 연대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 미일동맹을 근거로 적극적인 후방지원에 나설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일 간의 전략적 인식 차이는 한국의 안보전략 선택폭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여겨진다.
*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www.knsi.org) 특별기획 '아베체제와 동아시아' 5편으로 코리아연구원의 양해를 구해 전재한다( ☞원문 바로가기). 코리아연구원은 연구자, 정책전문가, NGO 활동가 등의 연구네트워크를 기반으로 2005년 설립된 '네트워크형 민간 싱크탱크'로 외교안보 및 양극화 관련 정책대안 및 국가전략 제시를 목적으로 연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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