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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복지'를 위한 방송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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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시청자 복지'를 위한 방송 절실하다

[기고] TV방송 이대로 좋은가?

요즈음 TV방송 프로그램이 상업주의에 바탕을 둔 시청률 경쟁으로 그 공영성 추락에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제동장치 없이 달려가는 자동차의 모습을 띠고 있다. 멈춤 없이 달려가는 시청률이라는 자동차의 물주인 광고주, 위태롭게 운전하는 방송사 임직원, 주인이면서도 손님과 같은 승객인 시청자. 이들 3자 가운데 피해보는 쪽은 수동적인 위치에 있는 시청자라는 생각이 든다.
  
  생명 경시를 조장하는 방송
  
  웰빙 바람에 편승하여 '잘 먹고 잘 살자'는 종류의 프로그램을 보면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잘 먹는 것이고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잘 먹고 잘 사는 인생의 본질은 외면한 채 흥밋거리로만 피상적으로 다루고 있다.
  
  잘 살자면서 걸핏하면 해외여행지의 볼거리나 제공한다. 예를 들면 '온천 비교체험' 같은 이름을 붙여 여러 나라의 이 온천 저 온천을 구체적인 정보나 내용 없이 보여주면서, 연예인 리포터가 과장된 목소리와 동작으로 요란스럽게 관광지를 홍보하고 있다.
  
  잘 먹자면서 전국의 음식점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또 어떠한가? 주방에서 요리하면서 살아 있는 동물을 펄펄 끓고 있는 가마솥이나 프라이팬에 집어넣거나 식당에서 손님은 살아 있는 낙지를 통째로 입안 가득히 넣고 우적우적 씹어 먹는다든지, 횟집 접시에 회 뜨고 뼈만 남은 생선 아가미가 숨을 쉬고 있는 접시를 식탁 위에 놓고 게걸스럽게 먹으면서 '몸에 좋다. 정력에 좋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장면을 여과 없이, 아니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나름대로 존귀하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처지에 있는 인간이 먹고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해칠지라도 방송으로 그런 반생명적인 장면을 재미 삼아 내보내야 하는지 우려스럽다. 나만, 또는 우리 가족만 값비싼 유기농 식품을 먹고 호화롭게 꾸민 집에서 행복하게 살면 잘 먹고 잘 사는 것인지 묻고 싶다.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방송이 극단적인 개인주의, 가족중심주의를 조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가치관 혼란을 가중시키고 전도시키기는 일에 앞장서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물질만능주의를 조장하는 방송
  
  최근에 국가 기간방송의 9시 뉴스 시간에 '대형마트에서도 재래시장처럼 땡 처리 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여기자가 어느 대형 마트에서 장보러 나온 사람들이 판매대에 몰려서 서로 사려고 아우성치는 현장에서 실감나게 보도하고 있었다.
  
  공영방송의 주요 뉴스시간에 저런 내용이 방송돼도 괜찮은지, 편집자는 누구이고 보도하는 기자는 무슨 생각으로 하는지 의문이 생겼다. 그들은 대형 할인마트가 여기저기 생겨나 동네 가게나 재래시장 상인들이 장사가 안 된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인가? 그 꼭지를 보도한 기자의 의도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 보도를 접한 시청자는 더 이상 재래시장이나 작은 가게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건전한 상식과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기자라면 대형마트의 땡 처리 판매를 새로운 소식인 양 현상만 보도하기 보다는 돈벌이가 되면 무엇이든지 하는, 심지어 재래시장이나 동네 구멍가게의 생존까지도 위협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은 대기업의 냉혹한 기업윤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강가에서 흙을 파헤치며 돌을 찾는 수석수집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보았다. 그럴듯한 돌을 찾아 한 건 한 것처럼 연출하고 그가 수십 년 모았다는 수석을 보여 주면서 100억대라고 강조한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사람에게 강에 나가 좋은 수석 하나 건지면 큰 돈 된다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자연물도 돈과 환치시키는 황금지상주의를 은연 중에 조장하고 있다. 수석과 같은 자연물 채취나 수집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프로그램이 공영방송 전파를 타는지 알 수 없다.
  
  한국 남성과 결혼해서 한국 농촌에서 사는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 여성들과 한국의 산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돈이 없어 마음대로 오가지도 못하고 수 년 동안 헤어져 있는 부모자식을 만나게 해 주고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얼핏 보면 인도주의적 프로그램 같지만 비인도적이다. 왜냐하면 감동이 방송사 세트장의 조작된 상황 아래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동물의 생태를 다룬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의 조작은 큰 문제가 되면서 이런 프로그램의 조작은 왜 묵인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수 년 동안 헤어져 있던 부모형제자매는 세트장이 아닌 한국에 들어오는 공항에서부터 만나는 게 자연스럽다. 녹화를 위해 천륜을 가로막고 격리시키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나 다름없다. 가난한 아시아인의 눈물도 돈으로 사려는, 시청률을 의식한 상업주의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연예, 오락프로그램의 범람
  
  남녀 사이의 삼각관계, 불륜을 다룬 그저 그렇고 비슷한 드라마가 아침시간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방송된다. 과연 드라마공화국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또한 연예인들이 신변잡답으로 억지웃음을 자아내는 자기들만의 잔치를 보고 따라 웃도록 강요하는 연예, 오락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있다.
  
  주말의 주요 시간대는 연예오락프로그램이 다 차지하고 있는데, 이마저 부족하여 평일 아침 뉴스 시간에도 연예인들의 결혼, 폭력, 이혼 등의 사생활을 버젓이 방송하고 있다. 그것도 한국의 대표적 공영방송을 자처하는 곳에서 말이다.
  
  이런 프로그램을 매일 보고 자란 청소년들은 스타 연예인들의 화려한 생활을 동경하여 연예인이 되려는 꿈을 키우고 그 과정에서 사기도 당하고 몸과 마음의 상처를 받는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방법이야 어떻든 돈만 벌면 된다는 극단적인 상업주의가 우리 아이들을 멍들게 하고 있다. 연예인에 대한 열병은 마치 청소년기의 통과의례처럼 되어 있다.
  
  우리나라 방송법 시행령에는 교양 프로그램은 매월 전체 방송시간의 100분의 30 이상, 오락 프로그램은 매월 전체방송시간의 100분의 50 이하로 편성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규정은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다. 이런 편성 비율이 형식적으로 지켜지는지는 몰라도 연예오락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보도나 교양, 다큐멘터리 자리까지 차지하고 있다.
  
  다큐멘터리다운 다큐멘터리, 설 자리가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영방송이란 곳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스페셜이란 이름으로 방송되어 다양성의 한 부분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런 프로그램들이 이제 가벼운 볼거리 위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여행안내를 하는 관광 프로그램인지 생활 정보 프로그램인지 성격이 모호한 프로그램들이 다큐멘터리라고 방송되고 있다. 고정 편성된 연예오락, 스포츠, 주부대상 프로그램의 한 꼭지로 들어갈 만한 유사다큐멘터리가 정통 다큐멘터리를 밀어내고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진지한 삶의 이야기나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프로그램은 주제가 무겁다고 외면 받기 일쑤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를 즐기는 시청자는 오히려 가벼운 볼거리보다 진지하고 의미 있는 주제를 선호하고 있다고 본다.
  
  방송인, 소비의 매개체에 머무를 것인가?
  
  다양한 시청자들의 욕구 수용을 위해 때로는 가볍고 감각적이고 말초적인 프로그램도 필요하겠지만 문제는 다양성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가볍게 웃고 떠들며 즐기는 프로그램 일색이라는 데 있다. 자신이 만들어 방송되는 프로그램이 타인의 인생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필자는 최근 <아름다운 거래> 라는 공정무역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송한 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 한국 사람들도 제3세계의 빈곤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구촌의 가난한 이웃과 더불어 살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프로그램을 본 어느 여고생이 "제3세계에서 노동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받는 농민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 자신의 미래를 던져서 한번뿐인 인생을 정말 보람차게 살고 싶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다큐멘터리 한 편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어떤 소녀의 인생 진로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생각하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입장에서 두려운 마음이 든다.
  
  우리 국민들은 하루 평균 두세 시간씩 방송을 시청한다. 방송인들은 방송이 시청자에게 큰 영향을 끼친 만큼 책임감도 커야 한다. 방송행위자는 시청자에 대한 책임을 무한히 가져야 한다. 방송프로그램은 가벼울지라도 방송행위는 결코 가벼워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공공재인 귀중한 전파를 마치 사유물처럼 여겨 돈벌이나 생계수단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새로운 방송의 출현을 바란다
  
  연예, 오락 프로그램의 범람은 물론 진지하고 골치 아픈 것 피하고 싶은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겠지만, 이런 사회적 현상의 이면에는 상업주의에 의한 시청률 경쟁이 도사리고 있다. 문제는 프로그램의 획일화로 인해 방송이 추구해야 할 '시청자 복지' 라는 가치가 훼손되는 데 있다.
  
  인생을 보다 진지하게 다루는 무거운 주제의 프로그램도 시청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소수일지라도 의미 있는 시청자의 시청권도 존중해야 한다.
  
  우리나라 방송체제는 "다(多) 공영 일(一) 민영"이다. 그러나 공영방송다운 공영방송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다. 공영방송의 성격이 불분명한 데서 오는 정체성의 혼란이 시청자에게 그대로 옮겨진다.
  
  이런 판국에,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어 미국식 상업주의에 바탕을 둔 흥미 오락 위주의 프로그램이 판을 친다면 우리 나름의 뚜렷한 의식과 사회적 관점을 가진 방송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의 엄청난 물량으로 만들어진 프로에 대응하여, 우리 방송이 지금처럼 천편일률적인 드라마나 저속한 연예오락 프로그램으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울 것이다.
  
  실로, 우리 문화와 정신이 살아 있는 다양한 콘텐츠가 개발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의 전통 문화와 민족정신은 세계화라는 허상과 미명에 훼손되고 사라질게 뻔하다.
  
  기득권에 안주하여 거대한 조직 속에서, 매일 매일의 세계적 변화를 소화하기 위한 의식을 날카롭게 연마하지 않고 있는 공영방송사와 그 구성원들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참신하고 새로운 방송의 출현이 시급하다. 그도 아니라면 채널 재분배 등으로 방송 구조를 바꿔 방송통신 융합시대에 대비해야 할 시점이다.
  
  방송의 상업주의가 폭력에 무감각하고 반생명적인 환경 조성에 앞장서고 있지는 않는지, 인간의 본성 가운데 상대적으로 악한 쪽만 강화하고 고결한 정신을 좀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그러면서 강자의 승리를 찬양하고, 약자의 소외를 묵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잡목과 주목이, 풀과 나무가, 크고 작은 나무가, 새와 동물이 서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숲을 이루는 공존의 지혜가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 담기기를 바란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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