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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백악관에도 조승희가 있다"

이라크전 반대하며 사임했던 전임 미 외교관의 경고

백악관의 조승희
  
  버지니아 공대 참사의 공포와 슬픔은 아마도 9.11 테러 사태 이후 처음으로 미국인들을 다시 하나로 뭉치게 했다. 필자가 살고 있는 워싱턴디씨의 주민들도 이미 추모 리본과 버지니아 공대 셔츠를 입고 있는데, 이는 9.11 이후 많은 미국인들이 "뉴욕과 한 마음"이란 문구가 새겨진 모자와 티셔츠를 입었던 것과 같다.
  
  이 사건이 벌어지자 언론들은 마태복음 27장 7절('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로 말세의 징조로 재난에 대비할 것을 설명하는 구절 : 옮긴이)을 암송하며 발 빠르게 보도했지만 버지니아 공대의 학살과 자살에 대한 분석틀을 제시하고 그 사건이 어떤 상황에서 발생한 것인지를 설명하는 것에는 미흡했다. 미국 언론의 그같은 보도 행태는 1994년 'O. J 심슨 사건' 이후 언론이 미국적인 사건을 다루는 하나의 규범이 됐다.
  
  조승희와 부시는 동전의 앞뒷면에 그려진 얼굴
  
  타자의 눈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도록 교육받았던 전직 외교관으로서 필자는 이 작은 지구의 나머지 사람들이 버지니아의 비극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주류 언론들이 이번 사건을 보는 해외의 시각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지만 <워싱턴포스트>의 몰리 무어는 이번 사건에 대한 해외의 반응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아래와 같은 기사를 썼다.
  
  "버지니아 사건에 대한 이라크의 반응이 그 어떤 외국의 반응보다 더 강렬했다. 이라크의 많은 주민들은 학교와 거리,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살인에 대해 미국을 비난한다. 바그다드에서 만난 19세 대학생 라냐 리야드는 '버지니아 사고는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앙과 비교해 볼 때 사소한 일'이라며 '우리는 매일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20년 이상 외교관으로 있다 보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필자는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의 관점에서 우리나라를 바라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고백컨대 필자는 정신병적인 다중살인자 조승희가 카메라에 총을 겨누고 있는 섬뜩한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미국의 대중문화에 담긴 폭력적인 이미지를 연상했을 뿐만 아니라 조지 부시의 외교정책이 가져온 파괴적인 실상과 부시라는 사람, 그리고 그가 벌인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떠올렸다.
  
  실제로 다른 나라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라크에서의 다중살인,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의 타락적인 사진들, 중앙정보국(CIA)의 이집트 성직자 납치, 관타나모에 있는 미국의 감옥 등은 이미 미국 정부 및 그 대통령과 동의어가 됐다. 따라서 그들의 머릿속에 조승희의 행동과 부시의 외교정책이 오버랩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의 눈에 그 정신병 학생과 미군의 최고사령관(부시)이 한 동전의 앞뒷면에 새겨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버지니아의 첫 희생자 에밀리
  
  첫째, 조승희가 썼던 글들과 학교 친구들의 증언을 보면 그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지 않다고 여겼다. 세상이 자신을 버렸다는 믿음은 그의 심리를 관통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9.11의 비극이 일어나자마자 부시 행정부가 "왜 저들은 우리를 증오하나"하는 마음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던 것을 기억한다('저들'이 누구를 의미하든지 상관없이).
  
  미국인들을 대표하는 부시 대통령이 세계 모든 이들로부터 동정어린 시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이는 교수와 의사들이 조승희의 정신적 문제를 도와주려는 노력과 유사하다-부시 대통령은 극소수가 나타낸 그 증오에만 반응했고, 많은 이들이 부적절한 폭력이라고 여기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미국은 그 첫 번째 대응으로 아프간을 공격했다. 외국 사람들은 (그리고 일부 미국인들은) 그것을 조승희의 첫 번째 총격과 유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조승희는 첫 희생자인 여학생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꼈고 두 번째 희생자는 우연히 같은 장소에 있었다. 아프간 침공과 조승희의 첫 번째 총격 후에는 그 후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치밀한 프로파간다(선전물)를 만들기 위한 약간의 휴지기가 있었다. 조승희의 경우 추후 행동은 30명에 대한 광란의 학살이었고,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침공을 단행해 셀 수 없는 희생자를 양산한 것이다.
  
  2002~03년 바그다드의 도살자(후세인)가 대량살상무기의 악귀라는 사실을 미국인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부시가 내놨던 프로파간다는 <폭스 뉴스>에나 어울리는 "충격과 공포"의 스펙터클에 대한 숭배로까지 이어졌다. 다른 나라 사람의 시선으로 봤을 때, '충격과 공포'에 등장하는 무자비한 소음과 광선의 쇼는 조승희가 자기 자신을 21세기의 총잡이로 묘사하고 자기를 못살게 굴었던 모든 이들에게 총질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비디오 영상을 영상케 한다.
  
  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았던 나라에서 살았고, 그 나라를 위해 외국에서 수십 년간 일했던 한 사람으로써 조승희의 행동과 조지 부시의 정책 사이의 두 번째 유사성은 더 분명하다.
  
  버지니아 살인 사건은 조승희가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여긴 공동체 전체에 엄청난 비탄과 슬픔을 안겨줬다. 버지니아 공대는 정신적 이상을 가진 학생들에게 상담의 기회를 제공해 오고 있다. 따라서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은 일로 인해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부시의 선제공격 역시 중동 지역에 대해 그와 유사하게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수만에서 수십만의 무고한 사람들이 부시의 무자비한 전쟁에 의해 목숨을 잃었고 부시 행정부는 그같은 파괴 행위의 결과 삶의 터전을 잃은 난민들에게 동정어린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이라크 난민들은 미국에만 입국을 금지당했다).
  
  조승희가 자신을 받아준 버지니아의 작고 순박한 대학 마을을 파괴한 것처럼 부시는 미국에 위협이 되지 않았던 사회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다. 해외 시각으로 볼 때,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군이 맞닥뜨릴 적을 소련식 이슬람 파시스트로 여기는 부시 대통령의 시각은 조승희가 그의 '적을' 바라볼 때와 마찬가지로 착각과 과대망상에 따른 것이었다.
  
  조승희의 자살, 미국의 자살
  
  세 번째 유사성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선뜻 받아들이지 못할지 모르는 것이다. 버지니아 공대와 마찬가지로 이라크도 문화와 학문의 보고로 여겨질 수 있다. 사담 후세인이 잔인한 폭군인 건 사실이지만 (이라크가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미국의 모든 고교생들이 알고 있듯 역사가들에게는 '문명의 요람'으로, 인류 최초의 '대학'으로 여겨진다.
  
  학문의 전당에 대한 조승희의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게, 조지 부시는 인류의 역사를 살찌운 한 나라의 전통에 대한 일고의 우려나 존경심도 비치지 않았다. 미군이 바그다드에 들어간 직후 바그다드 국립박물관, 국립도서관, 코란도서관이 약탈당했을 때 미국의 '해방자'들은 그 장면을 지켜보기만 했고, 미국의 국방장관(도널드 럼즈펠드)은 "어쩔 수 없는 일은 항상 일어난다(Stuff Happens)"라는 악명높은 말을 남겼다.
  
  끝으로 조승희의 자살은 부시의 이라크 전쟁이 미국에게는 자살행위와 다름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부시 개인의 자살이 아닌 미국의 자살 말이다. 부시의 군사주의, 그리고 "한판 뜨자(bring 'em on)"는 사고방식은 미국인들이 타인들과 자신 스스로에게 가하는 폭력을 부추기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미국은 '국제무대의 조승희'다. 그것은 캐런 휴즈(국부무 차관, 전 백악관 공보특보)의 소위 '업적의 외교'(diplomacy of deeds)에 따라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려는 우스꽝스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부시와 그의 대외정책 때문이었다. 문제는 대통령의 업적이란 것이 다른 나라들로 하여금 미국 정부를 믿을 수 없는 대상으로 보게 한다는 것이다.
  
  적으로 추정되는 이들과 자신들을 혐오하는 국제 테러 조직에 터무니없이 집착하고, 미국에 대한 경멸의 눈빛을 보내는 측에 부당한 폭력을 휘두를 준비가 되어 있고, 충고를 받아들일 의사가 없고,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의 결과-그것이 문명 발상지의 파괴로 귀결되더라도-를 인식하지도 못하는 정부라는 게 다른 나라에서 보는 미국의 모습이다. 부시와 그의 고위급 참모들은 다중살인만 확대시킬 게 뻔한 바그다드로의 병력 증파에 대해 오히려 자긍심을 느끼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부시 재임 6년이 지난 오늘 바그다드와 버지니아 블랙스버그가 그리 멀리 떨어지진 곳이 아닌 것 같아 근심스럽다. 세계를 향해 미국을 설명해야 하는 외교관들이 애처롭다.
  
  (번역=황준호 기자)
  
  * 이 글은 미국의 외교관이었던 존 브라운이 미국의 정치평론 웹사이트 '톰디스패치'에 기고한 '백악관의 조승희' 전문이다. ( ☞원문 바로가기)
  
  런던, 프라하 등 유럽에서 미국의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브라운은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기 8일 전인 지난 2003년 3월 12일 미국이 명분없는 전쟁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사직서를 던져 파장을 일으킨 인물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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