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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이여 착각은 자유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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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이여 착각은 자유다. 하지만…"

미래연의 '지구촌 분석과 전망' <63> 사르코지 당선의 의미와 한국언론의 오해

다음은 서울대 국제대학원 국제협력 전공 석사과정에 재학하고 있는 프랑스인 학생 프레데릭 오자르디아스(Frederic Ojardias) 씨가 최근 프랑스 대선 관련 국내 언론의 보도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편집자>
  
  5월 8일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가 차기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를 둘러싼 프랑스 내 정치적 상황에 대한 한국 언론의 분석은 놀라울 정도로 부정확했다. 몇몇 언론은 사설에서 프랑스가 정통 신자유주의를 중심으로 재결집 했음을 열렬하게 환호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언론 스스로의 정파적인 목적을 관철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못해 프랑스의 정치, 사회, 그리고 경제를 편향되게 해석하는 오류를 낳고 있다.
  
  신문에서 "프랑스, 시장경제와 세계화를 택하다"라든가(주1) 또는 "스스로를 영·미식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마지막 보루로 일컬었던 프랑스가 세계화의 무게에 짓눌려 결국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주2)는 식의 기사를 접할 때마다, 이러한 기사들이 과연 필자가 알고 있는 프랑스에 대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만약 진정으로 "세계에서 일고 있는 변화에 저항하려는 한국의 보수 세력들이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주3)면 지난 주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더욱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는 유럽의 병자인가
  
  이것부터 우선 따져보자. 일부 언론에서 지적하는 대로 프랑스가 정말로 경제적·사회적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급진적인 대처식 개혁밖에는 답이 없는 지경인가? 프랑스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회 복지시스템은 여러 모로 위기를 맞고 있고, 소위 '방리우(banlieue - 도시 외곽지역)'라고 일컬어지는 빈민촌에 살고 있는 저소득 계층을 사회에 어떻게 융합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높은 실업률,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빈부격차, 국력 쇠퇴와 연구개발 분야에서의 경쟁력 부진 등의 난제도 당장 대책이 시급한 주제들이다.
  
  그러나 2007년 현재 프랑스는 지난 1976년 국제통화기금(IMF)에 도움을 요청해야 했던 영국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프랑스의 생산성은 세계 1위인 노르웨이에만 뒤질 뿐, 여전히 세계 2위의 높은 수준이다. 국제적인 컨설팅 회사인 KPMG가 내놓은 2006년도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용 측면에서 프랑스 기업의 경쟁력은 유럽에서 1위를 차지했다.(주4)
  
  리오넬 죠스펭 총리의 지도 하에 사회당 정부는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총 2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냈다. 그리고 이들이 입안한 '주당 35시간 근무제' 정책은 추가적으로 35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프랑스의 다국적 회사들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또 프랑스는 유럽국가들 중 외국인 투자를 가장 많이 유치하고 있다. 지난 4월 IMF가 출간한 최근 보고서는 2007년도 프랑스 경제 성장률(2%)이 독일(1.8%)과 이탈리아(1.8%)보다 높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쇠락하고 있는 경제'치곤 성적이 너무 좋은 게 아닌가.
  
  또 <조선일보>는 프랑스의 복지국가 모델을 "허황된 아름다움의 유혹"(주5)이라고 목청 높여 비난했지만 사실 지난해 유럽 내 최고의 출산율을 자랑했던 프랑스를 칭송했던 것도 역시 <조선일보>였음을 상기해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이렇게 높은 출산율은 초·중·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무상교육과 정부가 지원하는 가족수당, 고용안정 등 복지국가 시스템에 따른 정책의 직접적인 결과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프랑스인들은 결코 몇 개의 단순한 숫자나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 삶의 질을 누리고 있다.
  
  그렇다면 '프랑스 병'(주6)을 둘러싼 호들갑은 이쯤에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좀 더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한다고 해서, 사회복지 모델을 좀 개선해야 하다고 인정한다고 해서 프랑스가 당장 '영·미식 시장경제와 작은 정부' 노선으로 선회한다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식 모델은 아직 죽지 않았다.
  
  사르코지는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다
  
  사르코지 당선자는 분명 시장경제주의를 신봉하고 (이는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노동법을 좀 더 유연하게 고치고 세금을 줄이고 정부를 축소시키고 싶어하는 보수주의자다. 우연의 일치인지도 모르겠지만 영어를 못하는 사르코지 당선자를 '세계화의 옹호자'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사르코지 당선자가 내세운 경제 공약은 세제 및 노동 개혁을 배합한 국가주도형 경제 정책이다. '개방적 콜베르주의'(주7)라고 불리기도 한다. 사르코지의 당선 수락연설을 살펴보면 그의 '수사'가 점차적으로 보호주의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락연설에서 그는 유럽연합(EU)이 "EU를 '보호막'이 아닌 세계화의 위협이라는 '트로이의 목마'로 인식하고 있는 이들이 격노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의 연설에서는 '보호'라는 단어가 수도 없이 등장했다.
  
  (재무장관 재직 당시) 자국 기업 보호를 우선시하는 사르코지 정책의 여파는 심각했다. 이웃나라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타국의 보호주의적인 정책으로 인해 독일의 경제적 이익이 침해될 경우 정부 차원에서 보복 대응하겠다고 공언하기에 이를 정도였다. 재무장관 직을 맡고 있던 지난 2003년, 사르코지 당선자는 파산위기에 처한 중견 중공업체인 알스톰 사(社)에 공적자금을 투입해 이 기업을 살려냈다. 또 프랑스 식품회사인 다농(Danone) 그룹을 인수하려는 펩시코로부터 지켜내야 한다고 여론에 호소했다. 대선 후보로 나선 후에는 국영기업인 가스공사의 민영화는 절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 후보처럼 사르코지 또한 프랑스 기업들의 해외이전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이뿐만 아니라 사르코지는 유럽중앙은행(ECB: European Central Bank)이 강력한 정치적 통제 하에서 "유로 통화 지역의 성장을 견인하기 위해"(주8) 고용창출, 성장 및 물가상승률 조절 등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도록 주어진 권한과 임무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르코지 당선자의 이 주장은 EU 내 여러 지도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불러왔다. 그의 맞수였던 사회당의 루아얄 후보 역시 ECB에 대해서는 같은 입장을 견지했다. 아울러 사르코지는 외국인으로부터 EU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EU내 '공동체 선호(community preference)'라는 제도의 도입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르코지의 경제 정책이 엄격하게 적용된다면 한국 입장에서는 그닥 좋지 않은 소식일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완벽하게 엄격히 적용될 가능성은 만무하다. 다만 중요한 것은, 니콜라 사르코지는 단 한 번도 신자유주의자였던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특정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프랑스의 이익을 맨 앞에 내세우는 실용주의자일 뿐이다.
  
  프랑스는 왜 사르코지를 선택했나
  
  사르코지의 승리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로 그는 전통적으로 변화에 대항하는 노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후보였다. 결선 투표에 앞서 실시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주9) 사르코지를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65세 이상의 연령 그룹(75%)을 제외한 나머지 연령별 그룹들은 모두 루아얄 후보를 선호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이번 선거의 핵심이었다. 사르코지에게 표를 던진 65세가 넘는 많은 사람들은 보다 폭넓은 개방을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사르코지의 보수적, 보호주의적이며 안보 중심적인 성향에 이끌렸기 때문이었다.
  
  둘째, 사르코지 당선자가 '가치의 대결'에서 승리한 점이 주효하게 작용하였다. 그의 공약 주제는 질서, 권위, 공헌, 그리고 일이었다. 아울러 그는 이민자들에 대한 통제 법안을 강화하고 프랑스의 정체성을 항변하면서 극우 성향 유권자들을 유혹하는 데 성공해 민족전선당의 장-마리 르펜(Jean-Marie Le Pen)의 사상적 지지기반 세력을 흡수했다.
  
  셋째, 이번 대선에서 가장 강력한 맞수였던 사회당이 약했던 점이 작용했다. 사회당은 내부에서부터 극심한 분열을 겪고 있었고, 세골렌 루아얄 후보도 당 내에서 자신에 대한 지지 기반을 확고히 구축하지 못했다. 또 스스로가 명확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결단력있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정립하는 데 실패했다.
  
  넷째, 사르코지 당선자는 언론을 이용하는 데에 탁월한 수완을 발휘했다. 장관 직을 역임하면서 그의 주장과 행동은 지난 5년 동안 프랑스 언론 어디에나 등장했었다. 이렇게 사르코지가 쌓아올린 카리스마를 루아얄 후보가 당해낼 수는 없었다. 또 사르코지는 프랑스 주요 방송사 중 하나인 TF1의 마르뗑 부오이그(Martin Bouygues) 사장을 포함해 많은 거대 언론사 사주들과의 친분관계를 통해 혜택을 입었다. 실제로 TF1 채널은 사르코지 당선자를 위해 선거운동을 벌여 왔다.
  
  결과적으로 보면 프랑스인들은 구닥다리 이데올로기(주10)를 거부하기 위해 사르코지 당선자에게 표를 던진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 대선은 "친세계화 대(對) 반세계화, 시장 대 국가, 성장 대 분배"(주11)라는 개념 간의 '대리전'도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대목에서 한국 신문(주12)이 잘못 지적한 부분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모 신문은 프랑스가 이웃나라 독일을 따라 잡으려 하는 이유를 소위 말하는 '프랑스-독일'간 적개심이라고 지목했다. 이러한 논리는 진실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서 걱정스러울 정도다. 이러한 논리는 유럽에 대한 무지(無知)뿐만 아니라 '일본과의 경쟁'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인 특유의 편견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프랑스와 독일은 누구보다도 가까운 동맹이며 두 나라 국민은 서로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존경심을 갖고 있다.
  
  프랑스는 결국 신자유주의 노선을 택한 것인가
  
  한 마디로 답하자면 '아니다'. 프랑스는 어느 날 갑자기 신자유주의 국가가 된 것이 아니다. 프랑스 전체 인구의 36%만이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이 국가를 운영하는 데 최적이라고 생각하고 (전체 인구 중 50%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주13)) 바로 이것이 사르코지 후보를 신임 대통령으로 선출한 프랑스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변화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저항의식, 그리고 프랑스 사회가 경험을 통해 축적하고 얻은 것들을 보호하려는 이들의 의지는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기에 앞서서 필자는 모 신문 사설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고픈 욕망을 억제할 수 없다. 사설은 "사르코지호 앞에는 어느 누구도 이겨내기 힘든 험난한 여정이 남아 있을 뿐"(주14)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역시나 우연의 연속인지는 모르겠으나 돌이켜보면 사르코지 신임 당선자를 배에 비유한 것은 아이러니했던 것 같다. 사르코지가 당선 확정 이튿날 지중해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몰타섬 해안에서 재벌 친구 뱅상 볼로레가 내어준 호화 요트(1주일 임대하는 데만 무려 19만3000유로가 드는)(주15) 선상에서 그의 승리를 축하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물론 사르코지의 이러한 행보는 프랑스에서 즉각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몇몇 한국 신문의 논설위원들이 바라 마지않는 '신자유주의로의 항해'가 모든 이들에게 험난하지는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이번 프랑스 대선 결과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승리가 아니다. 니콜라 사르코지 신임 대통령이 영미식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 시장경제와 세계화 물결의 투사이길 기대하는 자들, 그리고 스스로의 '교리'를 주창할 목적으로 프랑스를 그들의 편협한 시각으로 포장하는 자들은 잔혹하기 그지없는 환상의 세계로 스스로를 내몰 뿐이다.
  
  <필자 주>
  
  (주1) [사설] 프랑스는 市場과 세계화를 선택했다, 동아일보, 2007년 5월 8일자
  (주2) [배명복 시시각각] '프랑스 모델'의 침몰, 중앙일보, 2007년 5월 8일자
  (주3) [사설] 프랑스는 市場과 세계화를 선택했다, 동아일보, 2007년 5월 8일자
  (주4) 웹사이트 www.choixconcurrentiels.com
  (주5) [사설] 영국, 독일, 프랑스 그리고 한국이 가는 길, 조선일보, 2007년 5월 9일자
  (주6) 위와 같음.
  (주7) 유럽, 사르코지에 대비하다(Europe Prepares for Sarkozy), 파이낸셜 타임스, 2007년 5월 8일자 (콜베르주의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시장 내 장벽을 제거하고, 외부 경쟁에 대해 시장을 보호하는 정책을 선호한다.)
  (주8) 니콜라 사르코지 당선자의 캠페인용 자서전인 '증언들'에서 발췌
  (주9) 2007년 여론조사기관인 IFOP(http://www.ifop2007.fr)가 4월 27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18-24세 연령 그룹에서는 루아얄 후보가 53%, 사르코지 후보가 47%를 얻었고 25-34세 연령 그룹에서는 루아얄이 54%, 사르코지가 46%, 35-49세 연령 그룹에서는 루아얄 56%, 사르코지 44%, 50-64세 연령그룹에서는 루아얄 51%, 사르코지 49%, 65세 이상 연령 그룹에서는 루아얄이 25%, 사르코지가 75%를 얻었다.
  (주10) [사설] 프랑스는 市場과 세계화를 선택했다, 동아일보, 2007년 5월 8일자
  (주11) 위와 같음.
  (주12) [횡설수설/김순덕] 프랑스 대선(大選) 경제학, 동아일보, 2007년 4월 14일자
  (주13) 2005년에 실시된 조사 (www.globescan.com)에 따르면 중국인의 74%, 미국인의 71%, 독일인의 65%, 영국인의 64%, 그리고 프랑스인의 36%만이 자유경제 체제가 최적의 경제 시스템이라는 데 동의했다.
  (주14) [배명복 시시각각] '프랑스 모델'의 침몰, 중앙일보, 2007년 5월 8일자
  (주15) 사르코지 후보가 몰타섬까지 날아가는 데 이용한 전용기 이용료까지 계산에 넣으면 사르코지 가족의 이틀짜리 휴가비용은 프랑스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17년 동안 받을 임금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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