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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박한 위기: 위협과 기회

<촘스키가 바라본 오늘의 세계> 제 1회

전 세계의 진보적 지식사회에 적잖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노엄 촘스키 미국 MIT 명예교수가 지금의 세계를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위기가 임박한 상황"으로 진단한 글을 발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촘스키 교수는 미국의 평론잡지인 <먼슬리 리뷰(MR)> 6월호에 기고한 '임박한 위기: 위협과 기회(Imminent Crises: Threats and Opportunities)'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같이 진단하고, 우리가 적절한 대응행동에 나서지 않을 경우 "생물계가 유일하게 진행해온 고등지능 실험 자체가 종말을 고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 글에서 촘스키 교수는 현재와 같은 미국의 세계운영 전략과 대외정책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나름의 판단을 밝히고 있다. 이 글은 촘스키 교수가 지난 2006년 5월 베이루트에서 한 연설을 토대로 최근에 재작성한 것으로 <프레시안>에서는 4회에 나누어 싣는다.


이 글의 번역은 올해부터 <먼슬리 리뷰>의 글을 부정기 간행물로 형태로 번역, 출판하고 있는 도서출판 '필맥'의 MR편집팀이 맡았다. MR편집팀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편집자

최대의 문제지역은 중동: '에너지자원에 대한 통제'가 미국의 핵심 정책목표

▲ 노엄 촘스키 미국 MIT 명예교수ⓒwww.chomsky.info


유감스럽게도 임박한 동시에 매우 심각한 위기로 볼 수 있을 만한 것들이 너무 많다. 그 가운데 몇 가지는 모든 사람이 우선적으로 걱정해야 할 것들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아직도 그다지 멀리 치워지지 못한 종국적인 핵전쟁이나 환경상의 재앙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을 높이고 있어 인류의 생존에 말 그대로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보다 좁은 쟁점들, 다시 말해 지금 당장 서구에서 커다란 걱정거리가 되고 있는 쟁점들에 초점을 두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내가 가장 잘 아는 미국에 대해 주로 이야기할 것이다. 사실 미국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경우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확인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말한다면 유럽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가장 크게 걱정되는 곳은 중동이다. 이 점은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이미 여러 해 전에도 나는 중동과 관련해 종종 대화를 주선해야 했다. 지금 내가 하려는 이야기에 나더러 제목을 붙이라고 한다면 '중동의 현재 위기'를 제안하고 싶다. 중동의 위기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 지역의 거대한 에너지 자원에 대해서는 이미 60년 전에 미국 정부가 "전략적 힘의 엄청난 원천", "세계에서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역", "세계 역사상 추구할 가치가 가장 큰 표적들 가운데 하나"라고 인정했다. 그 뒤로 이 거대한 표적에 대한 통제권 확보가 줄곧 미국의 주된 정책목표가 돼왔고, 그러한 통제권에 위협이 되는 것은 자연히 미국에 매우 큰 우려를 일으켰다.

한동안은 위협이 러시아인들로부터 오는 것처럼 이야기됐고, 그 위협은 전 세계에 걸쳐 폭력과 정부전복 공작에 통상적으로 내세워지는 구실이었다. 지금 중동의 경우에 대해서는 이런 구실도 내세울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 구실은 공식적으로 폐기됐기 때문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아버지 부시 행정부는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했다. 거기서 아버지 부시 행정부는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은 새로운 수사의 틀 속에서 이루어졌다. 대규모의 군사적 체제도 여전히 필요하지만, 이제는 "제3세계의 무력이 기술적으로 정교해지고 있고"(이는 적어도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이긴 했다), 이 때문에 이제 전 세계적으로 미국에 주로 위협이 되는 것은 각 지역의 토착 민족주의라는 것이었다. 아버지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 문서는 더 나아가 미국은 중동을 겨냥한 해외투입 부대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에 위협이 되는 것"이 중동에서 발생해 미국이 개입해야 하게 되더라도 이제는 그것을 "크렘린 탓으로 돌릴 수 없게" 됐다는 것이었다. 이런 설명은 그 전 수십 년 간에 걸친 조작의 내용과 반대되는 것이었다. 흔히 그렇듯이 이 모든 것은 별다른 논평의 대상도 되지 않은 채 그대로 미국의 정책이 돼버렸다.

지금 미국인들의 마음에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압도적으로 이라크 문제다. 그리고 미국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나라로는 이란이 쉽게 꼽힌다. 실제로 이란이 심각한 위협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 정부와 언론이 쳐대는 선전의 북소리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패턴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그 가장 최근의 사례는 이라크였다. 이라크 침공은 사실상 2002년 9월에 선포됐다. 이제는 우리도 알게 됐지만,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은 그때 이미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었다. 바로 그 달에 워싱턴은 대대적인 선전전을 시작했다. 사담 후세인이 다음 차례로 보내올 메시지는 뉴욕 시에 버섯구름을 피워 올리겠다는 것이 되리라는 콘돌리자 라이스 등의 경고도 곁들여졌다. 미국 정부와 언론이 퍼부은 선전의 집중포화는 불과 몇 주일 만에 미국인들의 감각을 국제적인 정상범위에서 완전히 이탈시켰다. 사담 후세인은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곳에서 경멸의 대상이었을지 모르지만, 유독 미국에서만은 인구의 대다수가 당장 내일 자기들에 대해 그가 저지를 수 있는 일에 겁을 집어먹었다. 이라크 침공 전쟁에 대한 지지는 바로 그러한 공포와 긴밀하게 연관된 것이었고, 이는 사실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러한 일은 이미 레이건 행정부 시절에 성공적으로 실현된 바 있고, 그 외에도 비슷한 역사적 선례가 많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체계적인 교리에 의해 조작된 지금의 괴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고 하며, 그 전에 먼저 이라크에 대해 몇 마디만 하고 넘어가겠다.

이라크에 대한 논평은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사실보도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적다. 기자들은 바그다드 시내의 요새화된 지역에만 머물러 있거나 점령군의 부대 안에 파묻혀 있다. 이것은 그들이 겁쟁이이거나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데가 아닌 다른 곳에 가는 것이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전의 전쟁들에서는 이렇지 않았다. 과거에 나치스가 점령지 유럽을, 또는 소련이 동유럽 위성국가들을 운영했을 때보다 지금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를 운영하는 데 더 곤란을 겪고 있다는 점은 놀랄 만한 사실이다. 독일에 점령당한 유럽 국가들과 소련의 동유럽 위성국가들은 현지의 민간정부와 현지의 방위군에 의해 운영됐고, 독일과 소련은 뭔가가 잘못될 경우에만 철권을 휘둘러 보이곤 했지 보통은 배후에 있었을 뿐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은 훨씬 더 쉬운 여건 속에 있었으면서도 그동안 순종적인 예속정권을 이라크에 세우지 못했다.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 미국 정부와 언론의 체계적인 교리를 벗어버리고, 이라크에서 무슨 일이 이루어져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져보자.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우선 몇 가지 기본원칙들을 분명히 해야 한다. 으뜸가는 원칙은 침략자는 아무런 권리도 없고 오직 책임만 있다는 것이다. 침략자의 첫 번째 책임은 배상을 하는 것이다. 침략자의 두 번째 책임은 침략을 당한 사람들의 의사를 따르는 것이다. 세 번째 책임도 있다. 그것은 침략의 범죄자들을 재판에 회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의무는 서구문화의 제국적 사고방식에서 워낙 멀리 떨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나는 이 세 번째 책임은 논외로 하겠다.

이라크인들에게 배상을 해야 할 책임은 침략이라는 범죄와 그 가공할 여파에 대한 배상의 책임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미국과 영국은 그동안 오랜 세월에 걸쳐 이라크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최근의 역사만 보더라도, 사담 후세인이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시기 내내, 그리고 이란과의 전쟁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미국과 영국 두 나라 정부는 후세인의 테러정권을 강력히 뒷받침했다. 이란은 미국을 상대로 계속 싸울 수 없음을 인정하고 마침내 항복했는데, 그때까지도 미국은 사담 후세인의 이란 공격에 공공연히 가담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서구인들은 이미 잊어버렸을지 모르지만, 이란 사람들은 아직 잊어버리지 않은 게 분명하다. 곤봉을 들고 있는 자들에게는 역사를 도외시하는 것이 늘 편리한 태도이지만, 그들에 의해 탄압받는 사람들은 보통 현실세계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난 뒤에도 미국과 영국 정부는 자기들의 친구인 사담 후세인에게 계속해서 군사장비를 공급했고, 그렇게 공급된 군사장비에는 대량살상무기와 그 운반체계(투발체계)의 개발에 필요한 수단도 들어 있었다. 심지어 사담 후세인의 횡포가 절정을 지나고 이란이 항복한 지 한참 뒤인 1989년에는 미국이 이라크의 핵 공학자들을 미국으로 데려와 핵무기 개발 기술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1991년 걸프전쟁 직후에 미국과 영국은 곧바로 다시 사담 후세인을 후원하는 태도로 돌아섰다. 그때 미국과 영국은 독재자 사담 후세인 정부를 전복시킬 수도 있는 시아파의 봉기를 억누르기 위해 사담 후세인이 중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사실상 인가했다. 미국과 영국이 그렇게 한 이유는 공공연하게 설명됐다. <뉴욕 타임스>는 "이라크의 지도자가 어떤 죄를 지었든 간에 그에 의해 탄압을 받아온 사람들보다는 바로 그가 이라크의 안정에 대한 더 나은 희망을 서구와 중동지역에 제공해준다"는 "뚜렷하게 일치된 견해"가 미국과 그 동맹국들, 즉 영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존재한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안정'이란 단어는 '시키는 대로 한다'는 말의 암호다. <뉴욕 타임스>의 수석 외교담당 통신원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워싱턴에 "무엇보다 최선"인 것은 사담 후세인이 했던 그대로의 방식으로 이라크를 통치하는 "철권의 군사정부"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을 선택할 수 없었던 미국 정부는 차선책을 선택해야 했다. 그 차선책은 바로 사담 후세인이었다. 이라크인들이 미국과는 독립적으로 이라크를 스스로 통치하게 한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으로서는 생각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다.

그 뒤로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에 살인적인 제재를 가했다. 이 제재는 이라크 국민 수십만 명을 죽게 했고, 이라크의 시민사회를 황폐하게 만들었고, 독재자 후세인의 지위를 강화시켰고, 이라크 국민들로 하여금 생존을 위해 후세인에 의존하도록 강요했다. 아마도 이런 제재가 다른 사악한 독재자들이 맞은 운명으로부터 사담 후세인을 구해준 것 같다. 사담 후세인과 아주 비슷하기도 했던 다른 독재자들은 그들의 유혈통치가 끝날 때까지 미국과 영국의 강력한 후원을 받았음에도 결국은 붕괴됐다. 차우셰스쿠와 수하르토가 그랬고, 그밖에도 많은 독재자들이 그랬으며, 그들과 같은 운명을 맞는 독재자들의 이름이 계속 추가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이 곤봉을 든 자들에게는 따분한 옛 역사일 뿐이겠지만 그들에 의해 탄압을 받은 사람들과 세계를 이해해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독재자들은 온갖 대항활동에 부닥쳐야 했고, 더 나아가 대규모의 배상 요구를 받아야 했으며, 응분의 책임을 져야 했다. 그러나 제국적 문화에 깊이 뿌리 내린 도덕적, 지적 위기는 이와 같은 주제에 대해 그 어떤 생각도 하지 못하게 한다.

침략자의 두 번째 책임은 침략당한 국민의 의사에 복종하는 것이다. 영국과 미국의 여론조사는 침략자에게 이런 책임이 있다는 점을 입증해주는 충분한 증거가 되고 있다.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라크인들 가운데 "구체적인 미군철수 일정표"가 제시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비중은 87%로 2005년의 76%보다도 높아졌다. <뉴욕 타임스>에 보도된 대로 이것이 정말로 이라크인들의 여론이라면, 미국과 영국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지역에 거주하는 아랍계 이라크인들은 사실상 모두가 다 외국군대 철수의 확고한 일정표가 제시되기를 원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과거 나치스에 의해 점령된 유럽이나 소련의 지배를 받던 동유럽에서도 이런 높은 비중의 국민이 외국군대 철수를 원한 경우를 찾아낼 수 있을지 나로서는 의문이다.

그러나 부시와 블레어, 그리고 그들의 제휴세력은 철군의 일정표는 있을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이런 입장은 민주주의에 대한 그럴 듯한 호소가 종종 수반되기는 하지만 강대국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퍼져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를 부분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발견해내는 데 실패한 뒤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호소가 가장 부각됐고, 그래서 이라크 침공을 위한 동기가 대량살상무기의 문제가 아닌 다른 새로운 것으로 대체돼야 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3년 11월 워싱턴에 있는 미국 민주주의재단(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에서 새로운 동기를 담은 독트린을 발표해 대단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는 이라크 침공의 이유는 그동안 미국과 영국 정부가 줄곧 내세워왔던 사담 후세인의 무기개발 프로그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라크와 중동을 포함해 그 어디에서든 민주주의를 촉진한다는 그 자신의 메시아적 사명에 있다고 선언했다. 언론과 저명한 학자들까지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들은 리버럴한 성향의 주요 논평가들이 말한 대로 '이라크를 해방시키는 것'이 역사상 '가장 고귀한' 전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안도했다. 비판적인 사람들조차 그런 정서를 내비치면서, 그러한 '고귀한 목표'는 우리의 능력 범위를 넘어서는 것일 수 있다거나 우리가 주려는 그런 근사한 선물을 받아야 하는 쪽이 너무 후진적이어서 그 선물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결론은 며칠 뒤 바그다드에서 미국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해 확인됐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서구 지식인들의 환영을 받은 새로운 독트린에 동의한 사람들도 일부 있었다. 그러나 그 '일부'의 수는 적었다. 단지 1%만이 이라크 침공의 목표가 민주주의의 촉진이라는 데 동의했고, 5%는 그 목표가 이라크인들을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은 점잖은 사람들끼리는 입에 담지도 못할 노골적인 것들이 이라크 침공의 목표임을 당연시했다. 우리는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나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와 같은 경우에는 우리의 적이 그러한 전략적, 경제적 목표를 추구한다고 쉽게 비난하지만,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그와 같은 비난은 입에 올리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라크인들의 대중적인 의사를 거부하는 것은 강대국들 쪽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며, 그 이상의 이유가 있다. 이라크가 독립도 하고 어느 정도 민주화될 경우에 추구할 가능성이 있는 정책이 어떤 것일지를 생각해보기만 해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이라크인들이 이란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은 자기들의 힘센 이웃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를 선호할 것이 분명하다. 다수파인 시아파는 이미 이란과 유대관계를 갖고 있으며, 그동안 그런 관계를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여왔다. 게다가 제한적이긴 하나 이라크의 주권이 회복된 것이 국경 넘어 사우디아라비아 지역에서 가혹한 탄압을 받으며 살아온 시아파 이슬람교도들로 하여금 기본적인 권리를 획득하고 더 나아가 자율권까지도 요구하는 노력에 나서도록 부추겨왔다.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공교롭게도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매장량의 대부분이 있는 곳이다.

이러한 상황이 전개된다면 시아파 이슬람교도들의 느슨한 동맹이 워싱턴과는 독립적인 입장에서 세계 에너지 자원의 주요 부분을 통제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는 워싱턴에 악몽이 될 것이며, 일단 그렇게 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시아파 동맹은 중국과 경제적 유대관계는 물론 더 나아가서는 군사적 유대관계까지 강화할 수도 있다. 유럽에 대해서는 미국이 겁을 줄 수 있다. 워싱턴이 공중에 대고 주먹질을 해대면 유럽의 주요 기업들은 이란에서 철수한다. 그러나 중국은 야만족들을 경멸하면서 3천 년이라는 역사를 이어왔다. 중국인들은 겁을 집어먹지 않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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